異端의 追憶 #168. '한빛교회의 추억'을 읽으며...
솔방울님,
한빛교회의 추억...
좋은 회고의 글 올려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근황 잘 읽었습니다.
악의 뿌리에서는 선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법...
부산 문현동 한빛교회, 그 전신인 초량12교회의 추억이 아련하네요. 그것도 추억이라 할 수 있을지...
아직도 눈에 선~한 동덕삼씨는 심한 이북사투리를 그대로 구사하던 동방교의 명명이 '알렉산더'이고(그의 부인의 명명은 '니골라') 세칭 동방교의 부산 영주동2교회가 소재하던 부산의 영주동 피난민촌이 철거되어 이주한 동상동의 자칭 좁은길교회, 동방교 출신인데 후일에 부산 문현동의 한빛교회(초량12교회 전신)에 나타났군요.
겨우 근년에 들어와 부산 한빛교회의 터줏대감처럼 행세하던 정O조란 인물은 아마 명명이 '이사야' 라고 기억되고 김해 대동7교회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혹 아니라면 누구 아는 분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1970~80년대 당시는 좁은길에 출석하지도 않은 무명의 신도였지요. 아마 후대에 뒤늦게 하릴없이 나타나 하도 인물난이다 보니 마약이나 손 대던 건달 출신이 폼께나 잡고 음주 흡연까지 하면서 이단사이비 사상에 찌들어 우쭐거리고 있는듯 보이네요.
알렉산더니 이사야니하는 명명에 관해서는 요즘의 세칭 동방교 성민들, 지금의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 교단에 속한 신도들에게는 전혀 생소하겠지만 '이단의 추억'에서 여러번 기록한 내용이 있습니다.
세칭 동방교의 부산 당감동10교회 출신의 권병찬, 명명이 아마샤라고 부르는 분이 있었는데 초대 '주간 기독교' 사장을 지낸 분이기도 하죠. 이분과 가끔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가 '이단의 추억' 기록에 많이 있는데 다음은 그중의 이바구 한토막입니다. 이분과 관련된 이야기는 세칭 동방교의 거액도난사건을 비롯하여 '이단의 추억' 기록속에 찾아보면 여럿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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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칭 동방교에 입교해서 어느정도 신심이 확인되면 명명상신(세칭 동방교에서 부를 새 이름을 상부에 청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받게 되는데 물론 일정액의 지성(헌금)이 필요하다. 헌금의 단위를 세칭 동방교에서는 점수로 환산해 불렀는데 1점은 1백원이었다. 1960년대 당시 명명상신 점수는 7점, 즉700원이었다. 당시 시내버스 요금이 3원이었던것을 감안하면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하늘에 녹명된다고 하는 이 명명을 내리는 중요하고도 중요한 절차가 사실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던가 하는 실화가 하나 있다. 세칭 동방교 교주의 측근에서 활동하던 인물중의 한사람으로 그도 처자식을 버려두고 빈집초월(무단가출)하여 대기처에서 교주의 명을 받아 이런저런 일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 양반도 나중에는 그곳을 벗어나 지금은 생업을 일구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가 실토한 이야긴즉, 지교회에서 명명상신이 올라오면 신청한 용지의 그 이름옆에 앞으로 세칭 동방교에서 사용하게 될 명명 하나를 적어서 다시 지교회에 내려 보내게 되고 그것이 앞으로는 세칭 동방교내에서 누구나 부르게 되는 그 사람의 세칭 동방교 명명이 되는데 대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중에서 하나의 이름을 택해서 적어주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 사라, 에스더, 마태, 누가, 베드로 이런식이다.
초창기에는 교주가 직접 이름을 지어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신도수가 많아져 명명상신이 늘어나게 되니까 이 양반이 그 명명을 기록해주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냥 아무거나 생각나는데로 적어서 내려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 남자에게 여자 이름이 붙어오기도 하고 여자에게 남자이름이 붙어 오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지교회에서는 명명이 내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이름, 명명을 얼마나 황송하게 받들어서 수령했던가 말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작태인가.
(이단의 추억 #4, 명명을 받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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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부산한빛교회에서는 노광공(이래)과 그의 두 아들 노영도(아바)와 노영구(아브넬) 세 사람이라면 속으로는 껌뻑 죽는 시늉을 하는 옛 구성민들이 즐비하다. 노광공과 그의 차남 노영구에 대해서는 자기들 구성민끼리만 내부적으로 속닥거리고 외부적으로는 절대 발설하지 않는 확정편향적 인지부조화 상태에 갇혀 있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이중인격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자칭 좁은길, 세칭 동방교, 과거의 기독교대한 개혁장로회, 현재의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 교단에서는 지금은 노광공을 창조주 재림주 심판주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속내는 옛날과 동일한 그대로이고 밖으로는 노목사님~ 노목사님~ 하면서 겉으로는 교단의 설립자라고 내세우지만 노목사(노광공)라는 소리만 들어도 껌벅 죽는 시늉을 하는 세뇌된 구성민 신도들의 모습은 과연 불가해하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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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草梁), ‘인초(人草)가 건너는 다리’라는 뜻이라고 하면서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일찌기 이래 조부님(노광공)은 말씀하셨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이 교회는 지금은 문현동으로 이전했다. 문현동 언덕받이의 어느 낡은 건물을 장만해서 옮겨 갔는데 옮기고 나니 어떤 신도들이 예전에 이래 조부님(노광공) 께서 이곳에도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는데 참 희한하게 맞았다는 것이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다.
초량에서 문현동으로 옮겨가서 사용하던 건물이 수년 후 대형 아파트단지 신축공사 부지에 포함되어 그 땅을 아파트 공사 업체에 넘겨주고 보상을 받아 바로 인근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세칭 동방교의 총회 차원에서 일부 자금을 충당하기도 했겠지만 지금은 세칭 동방교에 출석하지 않는 옛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찬조를 받기도 했다. 무슨 물품이 필요한데, 무슨 시설이 필요한데 라고 운을 떼면 참 희한한 일은 그들이 찬조금을 낸다는 것이다.
그들의 심리상태는 대략 이렇다. 옛날 세칭 동방교에 심취하지 않아서 그 깊은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종교라는 것은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절간에 시주하는 심정으로 돈을 내기도 하고 또 당시 철저히 받은 세뇌의 마술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좁은길’(세칭 동방교)을 떠나더라도 성령 거스리지 않고(노광공을 비방하지 않고) 입만 다물고 있으면 나중에 지옥은 면한다는 세뇌인 것이다.
(이단의 추억 #15, 초량12교회, 인초가 건너는 다리 중에서)
첫댓글 정0조>>>정건조 장로를 말하는것 같네요!
잘 아는 관계인가요?
맞습니다. 맞고요. 근데 그는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단체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위 불법연대에 가담했다는 말씀인가요?
한빛교회 현수막에 김원지 가수가 되었다는 글씨가 보이네요. 엄마를 닮아서 동그란 얼굴에 항상 웃음기를 머금고 살았던 원지... 드디어 어릴적 꿈이었던 가수가 되었군요. 축하합니다.
그 현수막 사진 있으면 한장 올려주세요.
한빛교회 사진 중 걸린 현수막에 작은 글씨로 써 있어요. 확대해서 보면 됩니다.
글쎄요, 확대해도 잘 안보이네요 ^^
@하늘천 .
아~ 이거군요^^
저쪽을 불법연대라고 부른다지요? 그럼 이쪽은 합법연대랍니까? 그 기준을 누가 정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어차피 둘 다 이단의 쪼가리일 뿐인데...
ㅎㅎ... 그러네요 ^^
한빛교회 사진 밑의 현수막에 '김원지 가수가 되다'라고 적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