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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의 수행체계
세존으로부터 사마타[悟]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아난은 다시 삼마제[修]의 최고방편을 묻는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런 법음을 듣고 여래장 묘각명심이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청정한 보배로 장엄한 여래의 시방국토 묘각왕찰을 다 포함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여래께서 다시, 다문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 것만 못하다고 꾸중하시니, 마치 떠도는 사람이 문득 천왕(天王)이 주시는 화옥(華屋)을 받은 것 같습니다. 비록 대저택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가야 하니 대자대비를 버리지 마시고 저와 이 모임에 있는 여러 어리석은 이들에게 개시하여, 소승을 버리고 여래의 무여열반인 본래 발심의 길을 모두 다 얻게 하여 주옵소서. 유학들이 어떻게 해야 과거의 반연을 잘 항복받고 다라니를 얻어서 불지견에 들어가겠습니까?"
다문(多聞)하고도 수행을 하지 아니하면 법에 대한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도분의 설법을 통하여 아난이 여래장 묘진여성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올바른 방편 수행을 수반하지 않으면 생멸심을 모두 여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대궐을 얻었으나 그 문을 찾지 못하여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아난의 요청에 답하여 세존은 삼마제, 즉 수행의 최고방편에 관한 법문을 펼치신다. 가장 먼저 언급한 삼마제 수행의 근간이 되는 초발심의 두 가지 결정의와 수행의 방편으로써 제시되고 있는 6근수행(六根修行)과 6해일망(六解一亡)의 원통법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초발심의 2결정의(二決定義)
(1)인지의 발심이 과지의 각(覺)과 같은지 다른지를 살필 것
아난을 위시한 대중의 수행의 최상방편에 대한 법문 요청에 세존은 먼저 처음 발심할 때 견고히 해야 할 두 가지 결정적인 뜻을 천명하신다. 첫째, 인지의 발심이 과지의 각과 같은지 다른지 살필 것이며, 둘째, 번뇌의 근본이 발업윤생(發業潤生)함에 어떤 것이 짓고 어떤 것이 받는가를 살펴야 함이다. 이것은 앞선 견도분의 법문을 시작할 때에 대의로서 제시하신 2종근본, 즉 무시보리열반원청정체와 무시생사근본에 대응한다.
그 중 첫 번째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각(覺)과 같을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때 세존께서 회중의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심에 자재하지 못함을 불쌍히 여기시며, 오는 세상에 세존이 멸도한 뒤 말법 중생이 보리심을 낼 수 있도록 최상승의 묘한 수행하는 길을 열어주려고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심을 내어 부처님 여래의 묘한 삼마제에 피로와 권태를 일으키지 않으려거든, 먼저 깨닫는 초심의 두 가지 결정한 뜻을 밝혀야 한다. 어떤 것이 초심의 두 가지 결정이냐? 아난아, 처음은 제일결정의다.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을 닦아서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인지의 발심이 과지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생멸심을 수행의 본인으로 삼아서 불승의 불생불멸을 구하려 한다면 옳지 않다. 이러한 까닭으로 너는 모든 기세간을 밝혀 보아라. 만들어진 법은 모두 변멸한다. 아난아, 세간의 만들어진 법을 관찰하라. 어떤 것이 무너지지 않느냐? 그러나 마침내 허공이 무너진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왜냐하면 허공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무너짐이 없다."
인지의 발심이란 처음 수행할 때의 마음을 말한다. 과지의 각이라고 하는 것은 성불한 이후의 불승인 불생불멸의 보리열반이다. 이는 곧 처음 발심할 때부터 생멸심이 아닌 불생멸심으로 수행을 해야 불지견의 마음과 일치가 됨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멸심은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변멸하는 4대로 구성되어진 몸이 견문각지하여 혼탁함을 만들고 본래 맑고 원만한 묘각명심인 본성자리가 4대로 얽힘으로 인하여 생멸심을 발생시킨다.
이것은 마치 청정한 물에 진흙이 섞여서 물이 혼탁해진 것과 같은데, 물과 흙을 비유로 들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너의 몸 가운데 단단한 것은 땅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것은 불이 되고, 동요함은 바람이 된다. 이 네 가지 얽힘으로 인해 너의 담원한 묘각명심을 분리되어 보는 것이 되고 듣는 것이 되며 느끼는 것이 되고 살피는 것이 되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으로 쌓이고 혼탁하다. 어떤 것이 탁이냐. 아난아, 비유컨대 맑은 물은 본래 청결하나 먼지, 흙과 재, 모래 따위는 형질을 갖기 때문에 두 체성이 본래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진토를 가져다가 깨끗한 물에 넣으면 흙은 유애함을 잃고 물은 청결함을 잃어서, 그 모양이 흐려지니, 이것을 탁이라 한다. 너의 탁이 다섯 번 중첩함도 이와 같다."
『능엄경』에서는 생멸심이 발생하는 근거를 5탁(五濁)을 들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세계에 두루함을 볼 때, 허공과 견(見)이 구분되지 않는다. 허공은 형체가 없고 견은 각(覺)이 없는데 서로 짜여 허망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제1중인 겁탁(劫濁)이다. 너의 몸은 현재 4대를 뭉쳐서 그 자체가 되었는데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막혀서 유애하게 하며 수, 화, 풍, 토를 돌려 각지하게 하여 서로 조직하여 허망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제2중인 견탁(見濁)이 된다고 말한다. 또 너의 심중에 기억하고 인식하고 외울 때 성(性)이 지견(知見)을 발휘하여 6진(六塵)의 모양을 나타내니, 6진을 떠나면 상(相)도 없고 각(覺)을 떠나서는 6진의 자성이 없는데 서로 조직화하여 허망한 것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제3중인 번뇌탁(煩惱濁)이다. 또 네가 아침저녁으로 생멸함이 멈추지 않아 지견은 항상 세간에 머물고 자 하며 업운(業運)은 늘 국토에 항상 옮겨 다니려 하여 서로 조직해서 허망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제4중인 중생탁(衆生濁)이다. 너희들의 보고 듣는 것이 원래 다른 성질이 없는데 여러 가지 진(塵)이 막혀서 무단히 다른 것이 생겼다. 6근의 성(性) 가운데에는 서로 알되 작용 가운데에는 서로가 등져서, 동(同)과 이(異)가 표준을 잃고 서로 조직하여 허망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제5중인 명탁(命濁)이라고 말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되는 5탁은 본래 맑고 순수한 여래장 묘진여성이 청정본연함을 잃게 되는 과정을 밝힌 것이다. 첫 번째로 겁탁이란 청정본연한 상주진심 성정명체에서 최초로 혼탁함에 의해 유위법이 형성되기 시작함을 뜻한다. 여기서 겁은 시간을 의미한다. 본래 담연하여 무형(無形) 무각(無覺)한 상태에서 공(空)과 견(見)이 허망하게 조직되었다. 이 과정을 『능엄경요해』에 의하면 "각(覺)은 공색(空色)이 아닌데 일념의 불각(不覺)함으로 말미암아 허망하게 허공의 상(相)을 보게 되고 이로 인하여 편파적인 미(迷)함을 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과 견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허공에 체(體)가 없어 견(見)이 섞이게 되고, 견이 각이 없어 허공에 섞이게 되니, 이것이 무명(無明)이 처음 생기는 혼망(混茫)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제일중(第一重)이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혼탁한 세계 형성의 최초 작용이 되어 겁탁(劫濁)이라 하는 것이다. 『능엄경』 제4권의 부루나장에서 세계가 홀생(忽生)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성각은 반드시 밝은데 허망하게 밝힐 각이 되었다."고 한 내용과 합치된다. 즉 무위대도(無爲大道)에서 한번 유위법으로 변할 적이 바로 겁탁이다. 『능엄경정맥소』에 의하면 겁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4대와 산하(山河) 등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겁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생이 비롯없이 회매(晦昧)가 허공이 될 때부터 바로 겁탁에 들어갔음을 표했으니, 백세 이후를 겁탁으로 보는 일반적인 설과는 다르다. 다른 경전의 겁탁은 수명 백세이후 말법의 험난한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이 『능엄경』에서 밝히는 겁탁은 그것과 다르다."라고 밝히고 있다.
두 번째로 견탁(見濁)이란 지, 수, 화, 풍 4대가 구성되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분별 욕심이 발생하기 시작할 때를 말한다. 본래 담원한 묘각명심이 4대의 결박에 의해 견문각지하는 간격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 『능엄경정맥소』에 의하면 견탁이라 부르는 이유는 "4대는 본래 무정물인 데 허망하게 짜임으로 인하여 바늘 끝이나 풀끝으로 찌를지라도 모두 다 통각(痛覺)이 있게 되고, 이로써 중생이 견고하게 아견(我見)을 일으켜 모든 견의 주(主)가 되어 62견이 모두 여기에 통합되므로 견탁이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5탁이 바로 5음이다. 5탁을 5음에 배대하면 겁탁은 색음(色陰)이고, 견탁은 수음(受陰)이다. 색음이 녹아지면 겁탁을 초월하고 수음이 녹아지면 견탁을 초월한다고 5음마장에서 밝히고 있다. 음(陰)은 가려졌다 또는 어두웠다의 의미이고, 탁(濁)이란 흐리멍텅하게 혼탁했다는 뜻이다. 음과 탁은 청정본연(淸淨本然)한 여래장 묘진여성을 흐리게 한다는 뜻에서는 유사하다.
세 번째로 번뇌탁(煩惱濁)이란 5음(五陰) 가운데 상음(想陰)에 해당된다. 상음자체가 바로 지견이다. 지견은 능취육상(能取六想), 능히 취하는 여섯 가지 생각인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 지각(知覺) 작용을 말한다. 성발지견(性發知見), 성(性)이 지견을 생기게 한다함은 바로 능취육상의 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용현육진(容現六塵), 그 모양은 6진을 나타낸다는 것은 취할 것인 6진의 상을 말하는데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인 6진이다. 능취 6식의 허망한 생각을 6상이라고 한다. 능(能)과 소(所)의 개념인 주관과 객관으로 볼 때 상(想)은 주관이 되고 6진은 객관이 된다. 주관과 객관이 발생함에 따라 주관이 객관에 대한 분별이 발생하여 좋다거나 싫다는 인식하는 마음의 작용이 생기고, 그 마음이 계속하여 단절되지 않고 분별심이 일어난다. 이는 곧 괴로움[苦]과 집착[集]을 낳기 때문에 분별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6진을 떠나서는 그 지각(知覺)하는 자상(自相)도 없으며, 6진을 떠나서는 분별할 수 없다. 또한 각(覺)을 떠나면 성(性)이 없다. 각이란 지견을 가리키며 망각인 6상(六想)을 떠나면 성(性)이 없다. 성이 없다는 뜻은 6진을 인식하는 그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의지하고 어울려야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엄경요해』에 의하면 번뇌탁에 대해 "기억하고 의식하며, 외우고 익히는 것은 지상(智相)과 상속, 집취(執取)와 계명(計名)의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성품의 내분(內分)에서 6지근(六知根)을 발하고, 모습의 외분(外分)에서 6진경(六塵境)을 나타내어 근(根)과 경(境)이 번거롭게 얽혀서 담성(湛性)을 괴롭게 하는 것이 번뇌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네 번째로 중생탁(衆生濁)이란 5음 가운데 행음(行陰)에 속한다. 이에 대해 『능엄경요해』에 의하면 "아침 저녁으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바로 업을 짓는 모습이다. 지견이 항상 세간에 머물고자 하는 것은 3계에 애착하는 것이다. 업의 움직임이 늘 국토로 옮기려고 하는 것은 취에 따라 생을 받는 것이 중생탁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능엄경정맥소』에 의하면 "본래의 담원한 성품 가운데는 생사가 없지만 겁탁, 견탁, 번뇌탁에 기계(器界)와 신심(身心)이 함께 갖추어졌다. 그러므로 기계에 옮겨 다니며 신심을 유지, 상속하는 곳에 드디어 무변생사(無邊生死)가 생기게 되었다. '지견(知見)은 머물고자 한다.'함은 생(生)은 순습(順習)을 좇으므로 범부가 살기를 탐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업운은 늘 옮겨 다니려 한다.'함은 사(死)는 변류(變流)를 좇으므로 범부가 자유분이 없게 되었음을 말한다. '서로 짜여 허망을 이룬다.'함은 한번 머물고 한번 옮겨가는 것이 씨줄 하나와 낱줄 하나가 빽빽이 짜여 나누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끝 두 구는 탁의 이름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로 인하여 7취(七趣)에 유전하여 일체중생의 모습으로 변하고 바뀌므로 중생탁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번뇌탁으로 인하여 6진에 지배받는 지견은 항상 세간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업운은 4대로 구성된 산하국토의 환경에 따라 변멸하며 취(趣)에 따라 다른 생(生)을 받는다. 이러한 지견과 업운이 서로 섞여 허망함을 이루기 때문에 중생은 항상 7취를 따라 12류생(十二類生)으로 시방세계를 생사윤회 하는 것이 바로 중생탁이다.
다섯 번째로 명탁(命濁)이란 5음 가운데 식음(識陰)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 『능엄경정맥소』에 의하면 "명탁이란 6근이 맺혀서 명근(命根)이 그 가운데 의탁하여 체와 용이다 자재하지 못한 것이 명탁이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에 대하여 각성(覺性)스님은 "6근이 맺혀 있으면 생명이 그 가운데 있으므로 6근과 6진(六塵)이 어울리면 생명이 존재하고, 6근과 6진이 분산하여 4대, 5온으로 분리되면 목숨도 떠나 버리므로 명탁이다. 『대승기신론소』에서 명근(命根)은 6근을 전부 다 총괄한다고 하였는데, 명근은 생명을 말하는 것으로 생명이 끊어지면 6근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명근을 명탁으로 보고 명탁은 식음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제8식으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능엄경요해』에 의하면 "견문각지하는 작용은 본래 맑고 원만한 하나의 마음을 근본으로 하므로 다른 성품이 없다. 그런데 6진으로 인하여 원융한 체(體)가 서로 막히고 어겨서 물질을 보고 소리를 듣게 되는 등의 다른 작용이 생긴 것이다. 곧 4대가 6근을 이루고 6근의 견문각지로 인하여 격리하여 상통하지 못하게 된 것이 명탁이다. 성품에서 본다면 동일한 진상(眞常)이므로 서로 알지만, 용(用)에서 본다면 생멸을 일으키므로 서로 등지니 진상과 생멸, 동이(同異)와 화합이 항상하는 기준을 잃게 되는 것이 명탁이 허망하게 짜인 모습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생멸심을 낳은 5탁도 끝에 이르러서는 근(根), 진(塵), 식(識)이며, 6근, 6진, 6식에서 떠나지 않는다. 본래는 여래장 묘진여성인 묘각명심인 그 자리는 오직 담원함만 있을 뿐이지 탁이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5탁의 과정을 『능엄경정맥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묘각명심(妙覺明心)은 오직 하나의 담원(湛圓)뿐이라. 오히려 안과 밖이 없는데 어찌 모든 탁(濁)이 있겠는가? 회매(晦昧)해서 허공이 된 후로부터 밖으로는 5대인 기계(器界)의 혼탁한 바를 입어서 겁탁이 되었고, 내적으로는 4대신상(四大身相)의 혼탁한 바를 입어서 견탁이 되고, 또 다시 안으로 6진연영(六塵緣影)의 혼탁한 바를 입어서 번뇌탁이 되며 그로 말미암아 끊어지거나 이어지는 몸과 마음과 천류하는 국토에 대해서 다시 생사의 혼탁한 바를 받아서 중생탁이 되었다. 이 4상(四相)을 보건대 곧 내외가 모두 다 하나의 혼탁뿐이어서 온전히 담(湛)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또 이로 말미암아 6진이 맺히고 박히며 6근이 다시는 융통하지 못하여 명탁이 되었나니, 이 일상(一相)을 보건대 온전히 원(圓)의 의미를 또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담원을 다시 되찾으려고 하면 모름지기 5탁을 맑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5탁을 벗어나는 방법으로써, 탁한 물을 정화(淨化)시키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난아, 네가 지금 견문각지를 멀리 여래의 상락아정에 아주 계합하고자 한다면, 생사의 근본을 먼저 알아내고 생멸이 없는 원만담연한 성을 의지해야 한다. 담연함을 써서 그 허망한 생멸심을 돌이키고 조복하여 원각(元覺)으로 되돌아가면, 원래 명각(明覺)인 생멸이 없는 본성을 얻어서 인지심(因地心)을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후에 과지(果地)의 수증을 원만히 이룰 것이다. 탁한 물을 맑히려 하면 고요한 그릇에 가만히 놓아두어서 오래도록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게 하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아서 맑은 물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것을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조복했다 말하고, 진흙의 앙금까지 다 버리고 순수한 물이 된 것은 근본무명을 영원히 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밝은 모양이 정미롭고 순일하여 일체를 변현해도 번뇌가 되지 않아 모두 청정한 열반묘덕에 합할 것이다."
중생은 생멸심의 망상인 5탁에 의해 묘각명심(妙覺明心)의 담원함을 잃어 버렸다. 이러한 5탁의 생멸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5탁을 명확히 인지하고 근본무명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행을 해야 과지의 수증(修證)도 원만해져서 열반의 묘덕(妙德)을 얻을 수 있다.
『능엄경』에서 5탁을 맑히는데 적합한 수행방편으로 원통근(圓通根)을 통한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2)번뇌 근본의 발업윤생(發業輪生)을 살필 것
초발심의 제1결정의(第一決定義)에서 수행이란 초발심에서 생멸심이 아닌 불생멸심으로 수행을 해야됨을 밝혔다. 유위법이 발생하게 된 차제를 5탁의 세부적인 설명으로 밝혔다. 제2결정의(第二決定義)를 통하여 수행에 방해가 되는 번뇌 즉 유위법의 근원을 파악하고 그 기제를 밝힘으로써, 그에 따른 적확한 수행법이 도출된다. 이와 관련하여 『능엄경』에서는 번뇌의 근본과 발업윤생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제2결정의는 너희들이 반드시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승에 대용맹을 일으켜 결정적으로 모든 유위상을 다 버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번뇌의 근본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비롯없는 때로부터 업을 발하며 윤생을 하는데[發業輪生] 어느 것이 짓고 어느 것이 받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아난아, 네가 보리를 닦더라도 만약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허망한 6근과 6진이 어느 곳에서 전도되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곳을 알지 못하고서 어떻게 번뇌를 항복받아 여래의 지위를 취할 수 있겠느냐? 아난아, 세간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보라. 맺힌 곳을 보지 못하면 어떻게 풀 줄 알겠는가? 허공이 네가 깨트려서 찢겼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무슨 까닭이냐? 허공은 형상이 없어서 맺히고 푸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곧 너의 현전(現前)에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인 여섯이 도적이 되고 중매가 되어 집안의 보물을 겁취하니, 이런 까닭으로 비롯없는 중생세계에 전박(纏縛)이 생겨 기세간(器世間)을 초월하지 못한다."
발업윤생이란 무시이래로 업을 발하여 익혀서 나게 한다는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6근과 6진이 근원이 같고, 속박과 해탈이 둘이 아닌데, 식(識)의 성(性)이 허망하여 허공꽃과 같으며, 진(塵)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을 발하고, 근(根)으로 인하여 상(相)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업을 발생시키고, 무엇이 업에 의해서 자업자득으로 다시 받는가.'를 잘 살펴보라는 것은, 바로 번뇌의 근본이 6식이고, 6식의 근본이 6근임을 밝히고자 함이다. 여기서의 식(識)은 분별식이며 생멸심을 나타내며, 근(根)은 자체로는 분별함이 없는 불생멸심(不生滅心)이다. 그러나 허망한 식과 진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불생멸심의 6근이 오히려 도적이 되고 중매가 되어 집안의 보물을 겁취하는 전도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능엄경』에서는 6근이 불생멸심이며, 망(妄)의 근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6근 자체는 불생멸이기 때문에 인식을 할 수 없고, 단지 6진 경계만을 받아들일 뿐이란 것이다. 여기에 6식이 작용함으로써 허망한 분별이 발생하게 된 다. 이것이 바로 번뇌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방편으로 6식과 같은 분별식을 버리고 분별함이 없으므로 불생멸심(不生滅心)인 근을 사용해서 닦음으로써, 생멸하는 6식과 6진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청정본연의 여래장 묘진여성인 원통에 이를 수 있다.
<능엄경의 수행과 구제의 상관성 연구/ 임병정(明照)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역사철학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