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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부도덕하고 악한 사람들을 위해서 전해야 하지만, 대체로는 옛 본성과 혈육에 관계된 것 아니면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선량하고 경건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춥니다. 복음은 선량하고 경건한 사람들을 위해 전해야 하지만, 대체로는 그것을 받아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는 악하고 불경건한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복음을 함부로 대하여 도리어 대담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바다와 황량한 사막에는 비가 퍼붓는데, 정작 목초지와 밭은 가뭄에 타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복음에서 현세적이고 육체적인 자유만을 섭취하여 오히려 더욱 악해집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걸맞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입니다. 이것은 만일 내 어린 아들 요한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무섭게 회초리를 치지 않고 조용히 식탁에 불러놓고는 사탕을 준다면 아이를 더 나쁜 길에 들어서게 하고, 결국에는 아이를 망쳐 놓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복음은 한여름의 찜통더위 속에 불어오는 상쾌하고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과 같아서, 죄책감에 시달린 양심을 달래고 어루만져 줍니다. 그러나 한여름의 작열하는 햇볕이 태양 광선에서 나오듯이 양심의 번민은 율법 선포에서 나오는데, 이는 우리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신선하고 쾌청한 바람이 우리에게 다시 위로와 활력을 줄 때는 잠자리에 누워 게으르게 뒹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양심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평안과 위로를 받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선행을 힘써 준행하여 믿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참과 눈물의 골짜기에서 사는 동안에는 파리와 해충들에게 시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와 세상과 육신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주저앉지 말고 힘을 내어 뚫고 나가야 합니다.
루터, 『루터의 탁상담화』, p.120.
첫댓글 복음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네요. 감탄과 공감을 합니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복음에서 현세적이고 육체적인 자유만을 섭취하여 오히려 더욱 악해집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걸맞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입니다." -->
위선자와 구원파 류의 율법폐기론자들이 듣고 뜨끔할 내용입니다.
"양심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평안과 위로를 받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선행을 힘써 준행하여 믿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 -->
칭의된 자가 그 결과로서 믿음의 증명으로서 성화하는 것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무릎을 치게 되네요. 루터 다운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네요.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율법은 부도덕하고 악한 사람들을 위해서 전해야 하지만, 대체로는 옛 본성과 혈육에 관계된 것 아니면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선량하고 경건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춥니다. 복음은 선량하고 경건한 사람들을 위해 전해야 하지만, 대체로는 그것을 받아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는 악하고 불경건한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복음을 함부로 대하여 도리어 대담해지는 것입니다." -->
루터가 인생들을 관찰한 내용에 공감합니다. 다만 츠빙글리나 칼빈이 말한 예정, 선택과 소명의 교리가 앞에 첨가되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너무 멋진 대비를 이루며 합당한 분별과 설명을 해주었네요.
루터의 탁상담화는 언제나 평안함과 위로를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통찰력과 신학적인 능력도 갖게 해줍니다.
네, 매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