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08
지난 3월 3일 이른 아침, 언론과 정치권은 난리가 났다. 예상을 뒤엎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전격적’으로 성사됐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마지막 TV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이제 야권 후보 단일화는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2월 27일 윤석열 후보의 단일화 결렬 기자회견 이후에도 양측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고, 안철수 후보 측에서 나오는 말을 봐도 ‘완전한 결별’로 보기에 충분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때는 지난 3월 1일이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3·1절 기념 행사에만 참석하고, 다른 유세 일정을 잡지 않았다. 3월 2일은 TV 토론 준비를 위해 유세를 안 했다 할 수 있지만, 3월 1일 일정을 잡지 않은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선일까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귀중한 하루’를 유세하지 않고 보낸다는 것은 대선 후보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안 후보의 입장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단일화 합의가 ‘전격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안철수 후보가 여론조사 금지 시작일인 3월 3일 아침을 단일화 발표 시점으로 삼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여론조사 공표 금지 시점과 관계 있다. 안 후보는 그동안 줄기차게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외쳤는데 윤석열 후보 쪽에서는 답이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단일화 방식까지 제안했는데 답이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것은, 안 후보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거나 감정이 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뜻을 굽혀 상대방 방식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여론조사가 가능하지 않은 시점에 단일화를 전격적으로 선언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또 철수냐!”라는 것이라는 점과 관계 있다. 안 후보는 ‘철수했다’는 비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단 대선 과정의 ‘마지막 공식 행사’, 즉 TV 토론까지는 마치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을 수 있다. 자신이 ‘철수’했다는 소리도 최소화하고, ‘정권 교체의 걸림돌’이었다는 비난도 피하기 위해 3월 3일을 단일화 시점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윤 후보 측의 단일화에 대한 절실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윤 후보로서는 박빙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파격과 충격이 필요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를 위해 지난 2월 20일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결렬 선언을 한 이후의 여론 변화 추이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결렬을 선언한 20일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층의 윤 후보 지지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다. 2월 24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인 NBS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25.9%,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이재명 후보의 중도층 지지율은 1주 전 대비 10%포인트 상승한 반면, 중도층의 윤 후보 지지율은 5%포인트 감소했다. 2월 25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2월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15%,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1주 전 대비 중도층에서 8%포인트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윤석열 후보는 5%포인트 하락했다. 머니투데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월 23일 발표한 여론조사(2월 21~22일 전국 유권자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17.2%,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중도층의 윤 후보 지지율은 1주 전 대비 6%포인트 빠진 반면, 이 후보 지지율은 10.5%포인트 상승했다.
이 여론조사 모두 상당히 유사한 현상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중도층에서의 두 후보 지지율 상승과 하락폭이 매우 유사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결렬 선언이 그만큼 중도층의 지지 후보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즉, 정권 교체는 바라지만 보수에는 선뜻 손을 내밀기 힘든 중도층 유권자들이 단일화 가능성 때문에 윤 후보를 지지했지만, 단일화 결렬 선언으로 희망이 물거품이 됐기에 지지를 철회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사됐기에 윤 후보를 떠난 중도 유권자 일부가 다시금 윤 후보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두 후보가 인수위 단계부터 공동으로 정권을 운영하겠다고 공식 발표까지 했으니, 정권 교체를 바라는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움직일 가능성은 더욱 크다. 이뿐 아니라 대선 선거일 당일 투표 후보를 결정하는 유권자가 평균적으로 7% 정도 달하는데, 이들에게도 야권 후보 단일화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는 합동 유세를 할 텐데, 유세장에서 두 후보가 손잡고 선거 운동하는 모습은 아직 투표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줄 테다. 한마디로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이 어떻게 흩어질 것인가보다, 단일화가 갖는 ‘바람(風)’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그동안 본인 혹은 가족을 둘러싼 의혹에 시달려왔다. 이런 의혹이 제기되지 않은 안철수 후보가 윤 후보와 공동 정권을 꾸리겠다고 나선 덕분에 이제 의혹 측면에서 야권이 상대적 우위를 확보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일반 유권자들이 전격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여당 성향 유권자에게 위기감을 줘 결집시킬 수도 있다. 또한 두 후보의 단일화는 자리 나눠 먹기식 야합이라는 비판도 들을 소지도 다분하다. 이뿐 아니라 사전투표 직전에 성사된 단일화기 때문에 사표(死票)가 나올 가능성도 상당하다.
결국 단일화의 긍정 효과와 여당 지지층의 결집 그리고 사표가 얼마나 나올 것인가 하는 세 가지 변수 중 어느 쪽이 더 적극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의 승패가 갈릴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는 투표율이다. 현재는 지지 후보에 대한 세대별 선호도 차이가 비교적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유독 특정 세대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을 경우 이런 세대별 투표율 차이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확진자에게도 투표 기회를 보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기표소까지 가는 ‘정성이 충만한’ 유권자가 얼마나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9호 (2022.03.09~2022.03.15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