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전설 - 삼천갑자 동방삭이 끌려간 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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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08. 16:13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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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전설
삼천갑자 동방삭이 끌려간 탄천
탄천(炭川)은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하여 분당을 거쳐 서울로 유입되는, 한강의 제1지류이다. 흐르는 도중 강남구 일원동에서 양재천을 만나 수량을 늘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올림픽 주경기장 옆을 끼고 보다 큰 강, 즉 한강의 품에 안긴다. 서울 시민들에게 탄천은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것 같다. 예전에 운전면허 시험장이 있던 곳, 또는 잠실운동장에 갈 때 잠시 주차시키는 곳, 그때 얼핏 본 탄천의 물은 공해로 찌든 시커먼 폐수로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름조차 탄천(炭川)이었으니 더욱 그런 인상이 강하게 부각되었으리라.
탄천의 물은 본래부터 검었던 게 아니다. 탄천이 어떤 시내보다 맑았음은 발원지의 마을 이름이 수청동(水淸洞)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전래 지명이 ‘물푸레골’로서 얼마나 맑고 푸른 물이 흘렀으면 수청(水淸)이란 이름을 얻었겠는가. 이런 맑은 물이 그만 숯처럼 검은 물로 인식된 것은 탄천이라는, 잘못 붙여진 이름 탓이 아닌가 한다.
탄천의 발원지인 용인군 구성면 수청동
물이 워낙 맑아 수청동(水淸洞)이라 불렀다. 이 맑은 시내가 숯내, 즉 탄천(炭川)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데는 삼천갑자 동방삭의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차자표기(借字表記) 과정에서의 잘못도 있겠지만 그보다 동방삭의 전설에 묻어든 것이 더 큰 요인이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장수하는 것이 인간의 숙원으로 되어 있다.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은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삼천갑자가 얼마나 오랜 시간인가를 한번 계산해 보도록 하자. 한 갑자(甲子)가 60년이니까 60×3000을 하면 18만, 이승에서 그는 물경 18만 년을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일설에는 삼십(三十)갑자에서 점 하나가 잘못 찍혀 삼천(三千)이 되었다고도 하나 어떻든 한 갑자 60년도 채우지 못하던 그 옛날에 삼십갑자 1천 8백 년도 대단한 세월이다.
삼천갑자 동방삭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은 ‘오래 사는 사람’을 일컫는 데서 모든 이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삼천갑자가 얼마나 오랜 시간인가는 한 갑자가 60년이므로 60에다 3천을 곱하면 18만, 그러니까 동방삭은 18만 년을 살았다는 얘기다. 일설에는 삼십갑자에 점 하나가 잘못 찍혀 3천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역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이다. |
동방삭이 어찌하여 이렇게 오래 살았는지는 잘 모른다. 그가 아무리 꾀가 많았다지만 그보다는 염라대왕의 실수나, 아니면 저승사자의 직무유기로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저승이라 부르는 지옥에서 18명의 장관과 8만여 명에 이르는 옥졸을 거느리는, 게다가 명석하기 이를 데 없는 대왕도 어쩌다 실수할 때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승에로의 소환자 명단에 그만 그의 이름을 빠뜨리고 만 것이다. 말하자면 ‘염라 리스트’에는 빠졌지만 ‘쉰들러 리스트’에 오른, 억세게 재수 좋은 이 사나이를 우리는 동방삭이라 부른다.
동방삭이 끌려갔다는 탄천
그 냇가에 들어선 분당 신도시. 동방삭을 잡기 위해 숯을 빨았던 탓인지 한때 시꺼먼 폐수가 흘렀으나 지금은 많이 정화되었다.
어떻든 18만 년 후에나 이 사실을 안 염라대왕은 노발대발, 그놈을 당장 잡아들이라는 엄명을 내리고, 저승사자들은 강팀을 짜서 지상으로 내려온다. 오랜 세월 인간의 잔꾀로 무장한 그를 잡기 위해서는 특별한 작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경기도 성남 어디에 살고 있다는 정보만을 갖고 온, 이들 베테랑 사자들은 탄천가에 머물면서 비상한 유인작전을 구상한다. 그 작전이란 것이 숯골〔炭里〕에 가서 숯을 몇 가마 얻어다가 시냇물에 빠는 시늉을 해 보이는 것이다. 숯골이라면 지금의 성남시 태평동과 수진동 일대로서 옛날에는 숯 굽는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숯을 물에 빠는 일, 이들의 이상한 행동에 오가는 사람들의 무슨 짓이냐는 물음에 숯이 너무 검어서 희게 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웬 미친 놈 다 보겠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기를 여러 날, 드디어 노리던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들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숯을 물에 빠는 미친놈은 처음 보겠네”라며 혀를 끌끌 차는 노인이 있었다. “바로 이놈이다!” 그 순간 저승사자들은 번개같이 그 노인을 덮쳤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염라대왕의 실수에 이은 동방삭의 일생일대의 대실수랄까, 18만 년의 생애가 단 한마디의 실수로 황천객이 되고 만 것이다. 이 일을 당시 숯골 주민들은 어떻게 평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만 후세인들은 숯을 빨던 그 냇물을 일러 ‘숯내’ 곧 탄천(炭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탄천 동방삭을 잡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 저승사자들은 숯골에 가서 숯을 얻어다가 시냇물에 빠는 시늉을 한다. 이들의 행동을 지나던 이들이 보고는 미친 짓이라고 치부한다. 그러기를 며칠, 하루는 노인 하나가 와서 보더니 “내가 삼천갑자를 살아도 이런 미친놈은 처음 본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들은 저승사자들은 그가 동방삭임을 알고 몸을 덮쳐잡는다. |
동방삭은 본래 국적이 중국이라고 한다. 중국 땅에도 동방삭 전설이 있지만 어떻든 그는 이 나라 성남 땅에서 종말을 고하고 숯내란 묘한 지명만 남겨 놓았다. 지명이 탄천이다 보니 이런 재미있는 전설도 묻어 들게 되었겠지만, 아무렴 시냇물 이름에 탄천이 어울린다고 생각되는가? 어떤 이는 말하기를 홍수가 나면 이 지역에 피해가 막심하므로 한탄의 강 곧 탄천(嘆川)이 되었다고도 한다. 한탄의 탄천이든 숯내의 탄천이든 어쨌든 탄천은 맑은 시내의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옛 지도를 보면 이 시내를 험천(險川)이라 적고 전래명으로 ‘검내’라 부른다고 했다. 한자 험(險)은 검(儉)과 상통하는 자로서 지금은 ‘험’이 아니라 ‘검’으로 발음한다. 검을 다시 소급하면 ‘거마’ 또는 ‘고마’가 되어 예전에는 거마내 또는 고마내 정도로 불렸으리라 생각된다. 고마는 ‘크다’는 뜻 이외에도 방위상 뒤편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마을 뒤로 흐르는 시내란 뜻으로 여기서 마을이란 한산주, 곧 지금의 광주(廣州)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을 뒤로 흐르는 검내 또는 곰내〔後川〕가 훗날 검은 내로 오인되어 탄천(炭川)으로 전락한 것이다. 흑천(黑川)이 안 된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어떻든 이왕 불린 이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지금와서는 이 탄천의 물이 그 본래의 맑은 빛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천갑자 동방삭이 끌려간 탄천 (물의 전설, 2000. 10. 30., 천소영,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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