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스님의 "오도송으로 보는 한국禪" 중에서] - 영파선사 ‘佛鍾聲'
선사의 법명 은 성규(聖奎), 법자는 회은(晦隱), 법호는 영파(影波), 속성은 전씨(全氏)이다. 선사의 어머님께서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에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품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선사를 잉태하였으며 영조4년(1782)에 선사는 태어났다.
10세 때에는 구류(九流 : 중국 한나라 때에 학문을 아홉 가지로 나누었다. 유가(儒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묵가(墨家), 잡가(雜家), 농가(農家)의 총칭)의 학문에 통달하였으며, 글씨를 잘 써서 당대 최고의 서예학자 이원고의 문하에 참예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글씨는 힘이 넘쳤다. 15세에 청량암에서 책을 읽다가 공양할 때 여러 스님들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오묘한 느낌을 받아 출가할 뜻을 굳혔다. 이후 4년이 지난 뒤 집을 떠나 용천사로 들어가 환응 장로에게 축발하였다. 이날 밤 선사의 꿈에 자란가사를 수한 노스님 한 분이 섬돌 앞에 서서 경쇠를 울리며 선사를 향해 세 번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 선사는 전국의 제방을 운유(雲遊)하면서 해봉(海峰), 연암(燕岩), 용파(龍坡), 영허(影虛)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아 정진하였다. 하루는 문득 “부처님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천명하려면 깨달음(頓悟)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에 선사는 금강대(金剛臺)에 재(齋)를 설하고 관세음보살의 법력을 기구(祈求 : 기도하여 구한다는 뜻)하였다. 재를 마치는 날 밤 선사는 묘한 꿈을 꾸게 되었다.
어느 방에 들어갔는데 서가에 책이 가득 꽂혀 있는데 모두 <화엄경>이었다. 곁에 한 노스님이 계시다가 책들을 가리키면서 “진리가 모두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선사는 황산 퇴은 장로를 찾게 되었는데 황산 장로는 선사에게 <화엄경> 전부를 내주었다. 이에 앞서 꾸었던 꿈속의 현상과 여합부절하게 맞아 떨어진데 대해 선사는 놀랄 뿐이었다. 이 때부터 선사의 <화엄경>에 대한 공부는 본격화되었다. 선사는 <화엄경>의 깊고 오묘한 이치를 궁구(窮求)하는 데에 30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변함없이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화엄경>을 궁구한 지 30년 만에 끝을 맺고 함월 화상에게 참예하여 <화엄경>의 종지(宗旨)와 선교(禪敎)의 이치를 물어 수참하였다. 용맹정진 중 가을밤에 가람의 종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였다.
"7일 동안 관중에서 부처님의 법음소리 들었네, 위엄스런 우레소리 천지를 진동했다. 말없이 말한 천고의 진리를 알고 싶었는데, 가을밤 찬 종소리 절문에 걸렸도다. "
선사는 오도 후 함월 선사에게서 의발을 전해 받고 그 법을 이었다. 이 때부터 선사는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을 설파하였는데 천지가 진동하였다. 이후 선사의 회상에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수좌, 학인, 대중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사의 운수행각은 계속됐다.
선사는 스승 함월 선사의 의발을 전해 받고 등단설법(登壇說法)을 하시면서 전국을 유수하는 도중 80세 때 꿈에 천구성(天拘星 : 하늘에 계신 개의 별신(星神))이 선사에게 물었다. “궁(窮)과 달(達), 수(壽)와 요(夭)가 무엇이냐.” 이에 선사는 대답했다. “명성은 동국(東國)에 가득하고 영달하여 곤궁치 않으며 수명(壽命)은 80에 다섯을 더할 것입니다.” 그리고 5년 후 순조12년(1812)에 세수 85세 법랍 66세로 은해사(銀海寺)에서 입적하였다.
■무산(경주 해회선원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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