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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가을 걷기의 마지막 발걸음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걷기는 마치 경기 같다고. 경기 같다라고 함은 기록을 잰다는 뜻이 경기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 경기 같다는 뜻이다. 오늘 걸을 예정 구간은 지난 주에 이은 서울 둘레길 내 북한산 둘레길 잔여 구간과 서울 둘레길 1코스 구간인데, 그 중간쯤 되는 지점이 마침 창포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포원을 기점으로 좌측은 전반전 발걸음, 우측은 후반전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 존을 마치고 서울 둘레길 안내 센터가 있는 창포원에 왔을 때는 여느 전후반 경기의 전반전을 마친 후처럼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창포원에는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고, 또한 차가운 식수도 있었으며 또한 편안하게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시원한 그늘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번 걷기는 볼링 경기와 같은 생각도 들었다. 볼링에서는 스트라이크도 중요하겠지만, 정말 중요하고 힘든 것은 남은 핀 (잔볼) 처리다. 지난 3번의 길나섬 이후의 남은 구간을 이번에 걷게 되어 그 모습이 마치 잔볼 처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편으로는 잔볼 처리처럼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은 정말 들어 맞았다. 사실 서울 둘레길 1코스는 그리 난이도가 높은 코스는 아니었다. 수락산과 불암산이 적당히 연계되어 걷는 길.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 당고개역이 있어서 인프라의 지원도 받을 수 있는 코스였다.
지난 대모산 코스 걷기 때, 서울 둘레길 코스가 조금씩 변경된 것을 인지한 후 혹시라도 다른 여타 코스의 변경의 확인을 위해 서울 둘레길 양재 센터에서 지도를 픽업했었다. 이때 알게 된 것은, 서울 둘레길 1코스 중 수락산 구간의 대대적인 변화였다.
서울 둘레길 1코스에는 다른 7개 코스와 달리 독특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옵션 코스의 존재였다. 수락산 귀목봉 아래 채석장을 조금 지나면 삼거리가 있는데, 한쪽은 당고개역 방향이고 다른 쪽은 당고개를 초점으로 포물선 모양의 수락산 – 불암산을 연계 둘레길 방향이다. 중요한 것은 전자가 일반적인 코스로 1번으로 명명되어 있었고, 후자는 “원하는 사람들만 가는” 옵션 코스로 1-2로 명명된 길이다. 어쨌든 어떤 코스를 택하건 철쭉 동산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일반적이기도 하고 창포원부터 적당히 걸은 후 당고개에서 한번 리프레쉬를 하기 적당하며 또한이 곳에서 귀가도 편하여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 1코스를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반대로 옵션 코스는 말 그래도 옵션이고 또한 거리도 무척 길다. 난이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수락산과 불암산 자락을 뺑 둘러 무려 5km를 “추가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그래서 서울 둘레길 완주를 목표로 하는 산객들에게는 거의 “딴 세상” 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내 경험에 의하면, 그 길에서 산객을 만나는 것은 가물의 콩나기였다.
그런데 이 옵션 코스가 이제는 정규 코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조금 바꾸어 말하면, 이제 당고개로 바로 하산하는 일은 “전지적 서울 둘레길 시점”으로는 비법정 탐방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국립공원처럼 산객이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아무튼 예전부터 그냥 그래왔다~라면 모를까? 얼마전까지 “수락산은 거의 다 마쳤다” 라는 시점에서 무려 5km를 추가로 더 걸어야 하는 것이 어쨌든 심정적으로 크게 부담감이 되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분명 이렇게 길지 않았는데, 길은 왜 이렇게 긴지 또한 업다운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하는 생각들이 돋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덕릉고개를 지나는데, 이 지점은 불수사도북 통과 지점이기도 하다. 불수사도북 때야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이고 또한 출발부터 마음을 독하게 먹어서인지 몰라도 이 불암산-수락산 연계 존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서울 둘레길 걷는 마인드” 상황에서는 이렇게 뺑 둘러 걷는 것이 무척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쪽으로 코스가 정규화가 언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봄의 100인 원정대는 어떻게 했었는지 또는 앞으로 있을 100인 원정대는 이 구간을 어떻게 운영할 예정인지 사뭇 궁금하기도 했다. 창포원부터 걸어온 약 6~7kn 길에 추가적으로 5km 정도를 더 걸어야 그나마 1코스 중간 쯤인 철쭉동산 도착하게 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할 곳도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1코스에서부터 이렇게 서울 둘레길이 어려운 코스였어? 하고 나머지 코스 걷기에 대한 의지를 꺽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
암튼 이런 오만 잡동사니 생각을 할 정도로 수락산 코스는 길고 멀게만 느껴졌고 28개 도장 중 마지막 1개 남은 “사슴과 토끼”가 그려져 있는 1-2번 인증 도장 받기는 볼링의 잔볼 처리처럼 힘들게만 느껴졌다. 잘볼 처리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이 이후의 불암산 둘레길과 연계되는 화랑대까지의 나머지 구간은 정말 편안했다고 할 수 있다. 불암산 구간에는 재미있는 랜드마크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 나서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팔각정, 불암산 전망대, 남근 바위, 여근 바위, 산속 테니스 장, 숲 속 책방 등. 단지 불암산 구간에서 탁족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했던 자리들이 모두 선점되어 있어서 탁족을 하지 못한 것이 쬐금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게 화랑대에 도착했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렇게 서울 둘레길 가을 걷기 축제용 길나섬을 마쳤다. 8월 폭염 한가운데 걸으면서, 폭염 아래서는 장소가 산이 되었건 또는 둘레길이 되었건 힘든 것은 매 한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날이 서늘해지면 고산 지대에는 금새 단풍이 들고 국립공원 탐방 가능 시간도 짧아지고 오후 3시만 되어도 계곡은 금새 어둑어둑해지기 때문에 9월이 되면 바로 산으로 향해야 하기에 폭염 주의보와 경보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둘레길 가을 축제용 걷기를 조금 당겨 걷게 되었다. 어차피 완주 인증은 11월 초까지이니, 다른 산객들은 푸른 하늘, 그리고 시원한 공기 아래 여유를 갖고 서울 둘레길을 즐겼으면 좋겠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서울 둘레길을 다시 한번 마쳤다. “축제”라는 단어에 혹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두 글자에 동기를 받아 걷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 둘레길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리고 점점 더 걷기 좋은 방향으로 진화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해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