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에는 지내지 않은, 중음신(中陰身)을 제도하는 49재를 지내는 것은 귀신불교이다. 부처님은 식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생에서 저승으로 업을 짊어지고 가는 중음신을 부정하셨기 때문이다. 무아(無我)와 인연법(因緣法)의 불교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혼(靈魂)이 없다.
인상(人相)의 인(人)은 중음신(中陰身)이다. 이 생에서 저 생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존재하는, 임시적인 존재이다. 이 몸이 죽고 아직 저 몸을 받기 전의 존재이다. 소위 푸드갈라(pudgala)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이런 존재를 부인한다. ‘밀린다왕문경(Milindapanha)’에도 나오듯 환생은 ‘즉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경전은 이를 ‘장사가 굽은 팔을 펴듯’, ‘상이 거울에 맺히듯’ (즉각적)이라고 멋지게 묘사한다. 부처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긴 시간이 흐르자, 불법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사상(四相)이라는 초대형 오해가 생겨난 것이다. ‘금강경’은 그에 대한 처방전이다. 정법이 지속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음신 이론은 질이 나쁜 승려들이 신도들에게 겁을 줘서 돈을 얽어낼 시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혹은 만들어내지 않았어도 이미 존재하던 이론이 그런 용도로 유익하게 쓰인 교리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사바세계에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한다. 통상 다음 몸을 받기까지 걸린다는 49일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이 승려들은 아소카 대왕시절에 대왕의 전폭적인 불교후원에 힘입어 시주가 풍성히 들어오는 불교계로 시주를 노리고 머리를 깎고 위장전입·잠입한 외도들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결의한다. : “강 모(某) 교수가 우리의 정체를 폭로하려고 용을 쓰지만, 이 수익성 좋은 사업을 잃을 수는 없다. 이 사업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지시켜 이 사업장으로 계속 환생해서 세세생생 이 낙(樂)을 누려야 한다.”)
중음신(中陰身) 이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사찰입장료, 즉 문화재관람료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돈 되는 장사를 포기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세금까지 면제인 49재 현금수입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피해자인 선량한 스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중음신은 부처님이 설하지 않은 이론이므로, 부처님 사후 후대 제자들이 고안해낸 이론이므로, 다른 후대 제자들이 극심히 비난한 이론이므로(그 흔적이 금강경 사상 중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아무리 의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
출처 : 강병균 금강경 해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