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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20-36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요약설교
1.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최후의 만찬 사이에 많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나 (마태복음에는 21장과 26장 사이), 요한복음에는 오직 이방인이 예수님께 찾아온 사건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이 부분은 분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22절. 이방인이 예수님을 뵈러 찾아옴
23-33절. 예수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34-36절. 빛을 믿으라고 권고하심.
20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1. 본 절에 나오는 ‘이방인’은 유대인으로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자들(요 7:35)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이 이방인들은 유대교로 전향한 소위 개종자(Proselytes)로서, 이때 유월절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찾아온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에 찾아온 개종자들의 대표들로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찾아와서 믿게 되자, 바리새인들이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고 말했습니다. (요 12:19)
2. 그러나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단체적으로 믿게 된 것을 보시고, 인간적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셔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요 12:24).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단체가 확장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마음이 몹시 괴로워 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라고 하시면서, 인간적으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몹시 괴로워 하셨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참으로 비장한 기도요 지극히 감동적인 순종의 기도였습니다.
어떤 학자(이상근 박사)는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을 모든 목회자가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p. 223)
21절.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1. 빌립을 찾아온 이방인들은 빌립의 고향 벳세다 부근 데가볼리 지역에 살던 사람들로서, 빌립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 14:44)
22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1. 빌립과 안드레는 고향이 같은 벳세다이고, 특별히 두 사람은 친해서 다른 곳에도 두 사람 이름이 같이 나옵니다.
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6:7-8.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1.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가리킵니다.
이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영적 구원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세상 왕이 되면 출세할 것을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찾아온데 대한 반응으로 자신이 세상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왕으로 추대되는 것을 바라보지 않으시고, 인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참으로 인류 구원의 사명에 충설하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송가 143>
1.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2.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 본 절은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씨를 뿌리면 한 알의 씨에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심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마태 13:8).
그런데 예수님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부모의 희생으로 여러 명의 자녀들이 건강과 복을 누립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여러 고아들이 안녕과 행복을 누립니다.
한 사람 애국자의 희생으로 국민들이 안녕과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복을 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도 봉사하고 희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을 누리고, 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의 경험상 목회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희생하듯 해야, 교인들이 은혜와 복을 받고, 교회가 평안하고 부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5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1. 참 역설적인 유명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사람하는 자’라는 말에서 ‘자기 생명’(ψυχὴν αὐτοῦ: life of him)이란 육신의 목숨을 가리킵니다.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에서 ‘영생’(ζωὴν αἰώνιον: life eternal)이란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가리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목숨은 유한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은 영원토록 누리는 생명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진주 장사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값진 진주를 산 것처럼(마태 13:46),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원리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가 십자가를 거절할 때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24-2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찬송가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 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26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1. ‘나를 따르라’(follow Me)는 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 되시려고 가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길로 가고 계시는데,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고, 사람을 구원하는 길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걸어간 제자들은 베드로와 요한 등이 있었고,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에 선교하러 오신 선교사들도 당시에는 한국에 오면 5년밖에 살지 못할 것을 알고도, 순교의 각오로 왔다고 합니다. (유진벨 선교사 증손인 인세반. Stephen Winn Linton, 1950년생. 간증)
27절.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1. 이 때 예수님의 마음(ψυχή μου)이 괴로우신 것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의 마음이 몹시 괴로우신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셔서 울기도 하시고(요 11:35), 피곤하기도 하시고(요 4:6), 시장하기도 하셨습니다(마 21:18).
2. 이 때 예수님은 기도하시기를 “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즉, 죄 없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죽어야 하는 일을 앞두고,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몹시 착잡한 마음으로 ‘이때를 면하여 주시라’고 기도했으나, 바로 자신의 사명이 이 때 십자가를 대신 져야 하는 것을 아시고,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 왔다’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가가 죽음에 순종하시는 기도를 했습니다.
3. 요한복음의 이 기도문은 공관복음에 나오는 겟세마네 기도문과 같습니다.
즉 마태복음 26장 39절과 마가복음 14장 35-36절과 누가복음 22장 42절의 겟세마네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4. ‘죽음의 공포’ 때문에 죽음을 면하여 주시라고 기도했으나, 곧이어서 ‘사명’에 따라서 절대적 순종을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명을 받은 성도들과 직분자들은 모든 역경과 죽음 앞에서 우리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즉 인간적인 필요를 위한 기도도 해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해주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찬송가 316> 주여 나의 생명
1. 주여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드립니다. 이 작은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다해 주님만을 위하여서 살기 원하오니 주여 잡아주소서. 나를 잡으소서. 주님만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아 불 같은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주님만 위해 살게 하소서.
28절.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1.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결국 예수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아 기도했습니다.
즉 자신이 존재하고 살고 죽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잘 져서, 하나님의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최종 목표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의 일이 잘되든지 잘 안 되든니,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는 우리 일이 잘 되어야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고, 어떤 경우에는 내가 희생해야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낫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시게 하시고, 심지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이미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또 다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셔서 영광스럽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 드러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542> 구주예수 의지함이
1.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영생 허락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29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1. 예수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은 분명히 인격적인 음성으로 이루어진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밝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천둥이 치는 것과 같은 소리로만 들렸던 것입니다.
2.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밝기에 따라서 깨닫는 정도가 차이가 납니다.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1. ‘이 소리가 난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하늘에서 나는 음성과 우레 같은 소리도 예수님을 믿게 하는 표적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레와 같은 표적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31절.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1. ‘이 세상 임금’이란 사탄 마귀를 가리킵니다.
원문에는 이제’(νῦν: now)가 두 번 반복되어 있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인간을 지배한 사탄의 사슬이 끊겨졌고, 최후로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써 사탄 마귀가 지옥으로 쫓겨날 것을 가리킵니다. (계시록 20:10)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1. ‘땅에서 들리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높이 달리신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것을 모두 포함해서 가리키고 있습니다.
2.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로 이끄신다’는 것은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자유인이건 노예이건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갈라디아서 3:28)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33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1. ‘어떠한 죽음’이란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죄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가리킵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유월절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34절.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1. ‘율법’은 구약 성경을 가리킵니다.
즉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은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가 메시아 왕국을 이루실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89: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 하셨나이다
이사야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에스겔 37:25.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2. 그러나 이 성경들은 메시아의 지상 왕국을 가리키지 않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1.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여기서 ‘빛’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앞에서도( 8:12)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잠시 후면 세상을 따나시게 되므로, ‘잠시 동안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6절.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1.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고(요 8:12), 빛을 믿으라고 하셨고(본절), 그러면 너희가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본 절)
예수님음 마태복음에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14).
즉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성령님)을 모시고 살 때,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죽음의 공포를 무릎쓰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것을 무한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생명의 빛되신 주님을 날마다 마음속에 모시고, 빛의 아들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복된 생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