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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일체(一切)의 성수(星宿)·일체(一切)의 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일체(一切)의 보살(菩薩)·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난조고시치로고로전(南條故七郞五郞殿)의 사십구일(四十九日)·보리(菩提)를 위하여 보내 주신 물품(物品)의 목록(目錄)에 관한 일, 엽전(葉錢) 이련(二連)·백미(白米) 일타(一駄)·토란 일타(一駄)·순두부(純豆腐)·곤약(菎蒻)·감 一바구니·유자(柚子) 오십개(五十個) 등(等) 운운(云云), 보리(菩提)를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일부(一部)·자아게(自我偈)를 수차(數次)·제목(題目)을 백천번(百千番) 봉창(奉唱)하였나이다.
대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경(經)은 일대성교(一代聖敎)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經)으로서·더구나 유불여불(唯佛與佛)이라고 설(說)하시어 부처와 부처만이 아시므로, 등각(等覺) 이하(已下) 내지(乃至) 범부(凡夫)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외다.
그러므로 용수보살(龍樹菩薩)이 대론(大論)에는 부처 이하(已下)는 오직 믿음으로써, 부처가 된다고 쓰여 있나이다. 법화경(法華經)의 제사법사품(第四法師品)에 가로되 「약왕(藥王)이여, 지금 그대에게 고(告)하노니 나의 소설(所說)의 제경(諸經)이 있다. 그런데 이 경중(經中)에 있어서 법화(法華) 최제일(最第一)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제오(第五)의 권(卷)에 가로되 「문수사리(文殊師利)여, 이 법화경(法華經)은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비밀(秘密)의 장(藏)이니라 제경(諸經) 중(中)에 있어서 가장 위에 있느니라」 등(等) 운운(云云), 제칠(第七)의 권(卷)에 가로되 「이 법화경(法華經)도 또한 역시 이와 같으니 제경(諸經) 중(中)에 있어서 가장 그 위이니라」 또 가로되 「가장 조명(照明)하며 가장 존귀(尊貴)하니라」 등(等) 운운(云云), 이들의 경문(經文)은 사의(私義)가 아니라 부처의 성언(誠言)이므로 반드시 결(決)코 그릇됨이 없으리라, 백성(百姓)의 집에 태어난 자(者)가 나는 무사(武士)와 같다느니 한다면 반드시 책망(責望)이 오고 더구나 나는 국왕(國王)과 같노라·또한 뛰어났노라 따위로 말한다면 자신의 죄과(罪過)가 될 뿐 아니라 부모(父母)에게도 처자(妻子)에게도 반드시 피해(被害)를 준다고 함은 비유(譬喩)컨대 대화(大火)가 가택(家宅)을 불태우고 대목(大木)이 쓰러질 때·소목(小木)들이 피해(被害)를 입는 것과 같다.
불교(佛敎)도 또한 이와 같이 화엄(華嚴)·아함(阿含)·방등(方等)·반야(般若)·대일경(大日經)·아미타경(阿彌陀經) 등(等)에 의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믿은대로 승렬(勝劣)도 분별(分別)치 못하고서·우리 아미타경(阿彌陀經) 등(等)은 법화경(法華經)과 제등(齊等)하다느니·또는 뛰어났다느니 말하면 그 동류(同類)의 사람들은 자기 경(經)을 칭찬받아서 기쁘게 생각 하지만 오히려 죄과(罪過)로 되어 스승도 제자(弟子)도 단나(檀那)도 악도(惡道)에 떨어짐이·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법화경(法華經)이 일체경(一切經)보다 뛰어났다고 하는 것은·지장이 없으며 오히려 대공덕(大功德)으로 됩니다, 경문(經文)과 같기 때문이니라.
이 법화경(法華經)의 시초(始初)에 무량의경(無量義經)이라고 하는 경(經)이 계시느니라, 비유(譬喩)컨대 대왕(大王)이 행차하실 때·장군(將軍)이 전진(前陣)하여 낭자(狼藉)를 진압하는 것과 같다. 그 무량의경(無量義經)에 가로되「사십여년(四十餘年)에는 아직 진실(眞實)을 나타내지 않았음」등(等) 운운(云云). 이는 장군(將軍)이 대왕(大王)에게 적대(敵對)하는 자(者)를 대궁(大弓)으로써 쏘아서 없애 버리고·또 장도(長刀)로써 베어버리는 것과 같다, 화엄경(華嚴經)을 읽는 화엄종(華嚴宗)·아함경(阿含經)의 율승(律僧) 등(等)·관경(觀經)의 염불자등(念佛者等)·대일경(大日經)의 진언사(眞言師) 등(等)의 자(者)들이 법화경(法華經)에 따르지 않음을 공격(攻擊)하여 복종(服從)시키는 이검(利劍)의 칙선(勅宣)이니라, 비유컨대 사다토(貞任)를 요시이에(義家)가 공격(攻擊)하고 기요모리(淸盛)를 요리토모(賴朝)가 타도(打倒)한 것과 같다. 무량의경(無量義經)의 사십여년(四十餘年)의 경문(經文)은 부동명왕(不動明王)의 검삭(劒索)·애염명왕(愛染明王)의 궁전(弓箭)이니라.
고난조고로전(故南條五郞殿)이 사출(死出)의 산(山)·삼도(三途)의 강(江)을 건너실 때, 번뇌(煩惱)의 산적(山賊)·죄업(罪業)의 해적(海賊)을 평정(平定)하고·사고(事故) 없이 영산정토(靈山淨土)로 가시도록 수행(隨行)하는 무사(武士)는 무량의경(無量義經)의 사십여년(四十餘年)·미현진실(未顯眞實)의 경문(經文)이로다.
법화경(法華經) 제(第)一의 권(卷)·방편품(方便品)에 가로되 「세존(世尊)의 법(法)은 오래된 후 반드시 응당(應當) 진실(眞實)을 설(說)하시리라」 또 가로되 「정직(正直 )히 방편(方便)을 버리고 다만 무상도(無上道)를 설(說)함이라」 운운(云云). 제(第)五의 권(卷)에 가로되 「오직 계중(髻中)의 명주(明珠)」 또 가로되 「유독(唯獨) 왕(王)의 정상(頂上)에 이 일주(一珠)가 있음」 또 가로되 「그 강력(强力)한 왕(王)이 오래 호지(護持)하던 명주(明珠)를 지금 바로 이를 수여(授與)함과 같도다」등(等) 운운(云云). 문(文)의 뜻은 일본국(日本國)에 일체경(一切經)이 도래(渡來)하였는데 칠천삼백구십구권(七千三百九十九卷)이니라, 그러한 경(經)들은 모두 법화경(法華經)의 권속(眷屬)이니라, 예컨대 일본국(日本國)의 남녀(男女)의 수(數)·사십구억구만(四十九億九萬) 사천팔백이십팔인(四千八百二十八人)이 있으나 모두 한 사람의 국왕(國王)의 가신(家臣)인것과 같다. 일체경(一切經)의 참뜻은 우치(愚癡)의 여인(女人)들이 오직 일시(一時)에 유의(留意)해야 할 것은 예를 들면 대탑(大塔)을 쌓는데는 우선 재목(材木) 이외(以外)에 비계라고 하여 많은 소목(小木)을 모아서 일장(一丈) 이장(二丈)쯤 짜 올리느니라, 이렇게 짜 올려 놓고 재목(材木)을 가지고 대탑(大塔)을 쌓아 올리고 나면·도리어 비계를 잘라 버리고 대탑(大塔)만 있느니라, 비계라고 함은 일체경(一切經)이며, 대탑(大塔)이라고 함은 법화경(法華經)이니라. 부처가 일체경(一切經)을 설(說)하신 것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시기 위한 비계이니라, 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이라고 하여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아미타경등(阿彌陀經等)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대일경등(大日經等)의 진언종(眞言宗)·아함경등(阿含經等)의 율종(律宗)의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等)을 잘라버리고 내던진 후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느니라. 대탑(大塔)을 쌓기 위해서는 비계가 소중(所重)하지만, 대탑(大塔)을 쌓아올리고 나면 비계를 잘라 떨어뜨린다. 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이라고 하는 문(文)의 뜻은 이것이 니라, 비계로부터 탑(塔)은 출래(出來)하였지만 탑(塔)을 버리고·비계를 배례(拜禮)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세상(世上)의 도심자(道心者)들·일향(一向)으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고 부르며 일생(一生)을 보내고·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한번도 부르지 않는 사람들은 대탑(大塔)을 버리고 비계를 배례(拜禮)하는 사람들이니라. 세간(世間)에서는 현명(賢明)하나·실(實)은 어리석은 사람이란 바로 이것이니라.
고시치로고로전(故七郞五郞殿)은 당세(當世)의 일본국(日本國)의 사람들을·닮지 않으시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현명(賢明)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이 아직 이십(二十)에도 미치지 않은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고 부처가 되시었으니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은 이것이니라. 바라고 원(願)컨대 비모(悲母)가 내 자식을 그립다고 생각하신다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어, 고난조전(故南條殿)·고고로전(故五郞殿)과 한곳에 태어나겠노라고 소원(所願)하시라, 한 종자(種子)는 한 종자(種子)·다른 종자(種子)는 다른 종자(種子)·같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종자(種子)를 마음에·간직하고 계신다면·같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나라에 태어나시리라, 세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실 때·그 기쁨이야말로 오죽하시겠느뇨.
대저 이 법화경(法華經)을 펴서 배견(拜見)하노라면 「여래(如來)는 즉 그를 위해 의복(衣服)으로써 이를 덮어 주시고 또한 타방(他方) 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이 호념(護念)하는 바가 되리라」 등(等) 운운(云云). 경문(經文)의 뜻은 동서남북(東西南北)·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에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잇따라와서 충만(充滿)하시었다, 하늘에는 별과 같이·땅에는 도마(稻麻)와 같이 열(列)지어 계시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일체(一切)의 성수(星宿)·일체(一切)의 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일체(一切)의 보살(菩薩)·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이렇듯 고마운 경(經)을 고고로전(故五郞殿)은 믿으시어 부처가 되시고, 오늘은 四十九일이 되었으니, 일체(一切)의 제불(諸佛)이 영산정토(靈山淨土)에 모이셔서 혹은 손에 얹으시고·혹은 머리를 어루만지시고·혹은 안으시고·혹은 기뻐하시니·달이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과 같이·꽃이 처음으로 피었듯이·얼마나 사랑하시겠느뇨. 대저 어찌하여 삼세(三世)·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강력(强力)히 이 법화경(法華經)을 수호(守護)하실까 하고 생각하건대·도리(道理)인 것이외다.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함은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諸佛)의 부모(父母)이니라·유모(乳母)로 되고·주(主)이신 것이니라. 개구리라는 동물(動物)은 어미의 음성(音聲)을 먹이로 하는데·어미의 음성(音聲)을 듣지 않으면 생장(生長)하지 못하느니라. 가라구라(迦羅求羅)라고 하는 벌레는 바람을 먹이로 하니·바람이 불지 않으면 생장(生長)하지 못한다. 물고기는 물을 의지하고·새는 나무를 보금자리로 한다·부처도 또한 이와 같이 법화경(法華經)을 목숨으로 하고·식물(食物)로 하고·주처(住處)로 하시느니라. 물고기는 물에 살고·부처는 이 경(經)에 사신다·새는 나무에 살고·부처는 이 경(經)에 사시며·달은 물에 깃들고·부처는 이 경(經)에 깃드시니, 이 경(經)이 없는 나라에는 부처가 계시는 일이 없다고 심득(心得)하십시요.
옛날 윤타왕(輪陀王)이라고 하는 왕(王)이 계셨는데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주(主)이니라. 이 왕(王)은 무엇을 수라(水剌)로 하셨는가 알아보니 백마(白馬)의 울음을 듣고 수라(水剌)로 하시었다. 이 왕(王)은 백마(白馬)가 울면 나이도 젊어지고·안색(顔色)도 환해지고·정신(精神)도 상쾌하고·힘도 세고·또한 정사(政事)도 공명(公明)하였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는 백마(白馬)가 많이 모아서 길렀다. 비유컨대 위왕(魏王)이라고 하는 왕(王)이 학(鶴)을 많이 모으고 덕종황제(德宗皇帝)가 반딧불을 사랑한 것과 같았다. 백마(白馬)가 우는 것은 또한 백조(白鳥)가 울기 때문이라, 그래서 백조(白鳥)를 많이 모았는데, 어느 때 어찌된 일인지 백조(白鳥)가 모두 사라져서·백마(白馬)가 울지 않게 되자, 대왕(大王)은 수라(水剌)를 끊으시고 한창 핀 꽃이 이슬에 시들어 버린 것 같고·만월(滿月)이 구름에 가리워진 듯 하였다. 이 왕(王)이 거의 붕어(崩御)하시려고 하자, 왕후(王后)·태자(太子)·대신(大臣)·일국(一國)이·모두 어머니와 헤어진 자식 같이·모두 실색(失色)하여 눈물이 소매를 적시었다·어찌하랴·어찌하랴, 그 나라에 외도(外道)가 많았으니·당시(當時)의 선종(禪宗)·염불자(念佛者)·진언사(眞言師)·율승등(律僧等)과 같았다. 또한 부처의 제자(弟子)도 있었으니·당시(當時)의 법화종(法華宗)의 사람들과 같았다. 사이가 나쁘기는·수화(水火)이고·호(胡)와 월(越)과 같았었다. 대왕(大王)이 칙선(勅宣)을 내리시어 가로되, 일체(一切)의 외도(外道)가 이 말을 울게 한다면 불교(佛敎)를 없애고, 오로지 외도(外道)를 믿기를·제천(諸天)이 제석(帝釋)을 공경(恭敬)함과 같이 하리라, 불제자(佛弟子)가 이 말을 울게 한다면 일체(一切)의 외도(外道)의 목을 베고 그 거처(居處)를 몰수(沒收)하고 불제자(佛弟子)에게 따르리라고 운운(云云). 외도(外道)는 실색(失色)하고·불제자(佛弟子)도 서로 한탄(恨歎)하였다. 그러나·그대로 끝날 일이 아닌지라 외도(外道)는 먼저 칠일(七日)을 행(行)했으나, 백조(白鳥)도 오지 아니하고·백마(白馬)도 울지 않았다. 후(後) 칠일(七日)을 불제자(佛弟子)에게 넘겨서 기도(祈禱)하게 하였던 바, 마명(馬鳴)이라고 하는 소승(小僧)이 한 사람 있어서, 제불(諸佛)이 어본존(御本尊)으로 삼으시는 법화경(法華經)으로써 칠일(七日)을 기도(祈禱)했던 바·백조(白鳥)가 단상(壇上)에 날아와서, 이 새가 한 마디 울자 한 마리의 말이 한 마디 우니, 대왕(大王)은 말의 소리를 듣고 병상(病牀)에서 일어나시었다. 왕후(王后)를 비롯하여 제인(諸人)은 마명(馬鳴)을 향(向)하여 예배(禮拜) 하였다, 백조(白鳥)가 一·二·三 내지(乃至) 십(十)·백(百)·천(千)·출래(出來)하여 국중(國中)에 충만(充滿)하였다. 백마(白馬)가 자꾸만·울어 한 마리·두 마리 내지(乃至) 백(百)·천(千)의 백마(白馬)가 울게 되니 대왕(大王)은 이 소리를 들으시고, 면모(面貌)는 三十정도·마음은 해와 같이 밝아져서 정사(政事)가 정직(正直)하였으므로 하늘에서 감로(甘露)가 내리고, 칙풍(勅風)·만민(萬民)을 순종(順從)케 하여 무량(無量)·백세세상(百歲世上)을 다스리시었다.
부처도 또한 이와 같이 다보불(多寶佛)이라고 하는 부처는 이 경(經)을 만나지 않으실 때에는 입멸(入滅)하시고, 이 경(經)을 읽는 세상(世上)에는 출현(出現)하신다, 석가불(釋迦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러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덕(德)이 있는 경(經)이기에·이 경(經)을 갖는 사람을·어찌하여 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후지천안대보살(富士千眼大菩薩)이 버리시겠느뇨 라고·믿음직스러운 일이로다. 또한 이 경(經)을 적시(敵視)하는 나라는·아무리 정직(正直)히 기도(祈禱)해도·반드시 그 나라에 칠난(七難)이 일어나서 타국(他國)에게 패(敗)하여 망국(亡國)이 된다는 것은·대해(大海) 중(中)의 대선(大船)이 대풍(大風)을 만난것과 같고·대한발(大旱魃)이 초목(草木)을 고사(枯死)시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라. 당시(當時) 일본국(日本國)이 어떠한 기도(祈禱)를 한다 해도,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멸시(蔑視)하므로, 여러가지 기도(祈禱)가 이루어지지 아니 하고 대몽고(大蒙古)에서 공격(攻擊)당하여 이미·망(亡)하려고 함과 같으니라. 지금도 보시라·그냥 이대로는 있지 못하리라·이는 모두 법화경(法華經)을 적대시(敵對視)하기 때문이라고 믿으시라.
대저 고고로전(故五郞殿)이 돌아가신지 벌써 四十九일(日)이니라. 무상(無常)은 상사(常事)이지만, 이것은 듣는 사람조차 역시 견디기 어려운데, 하물며 어머니이시고 아내이신 사람이야·심중(心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자식에는 어린 사람도 있고·어른다운 사람도 있고·미운 사람도 있고·불구자(不具者)조차도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법인데 하물며 남자(男子)인데다가 매사에 족(足)하고, 정(情)이 많았더라, 고우에노전(故上野殿)께서는 한창일 때 먼저 세상(世上)을 뜨시어, 한탄(恨歎)도 깊었으니·이 자식을 회임(懷妊)하지 않았더라면 불에도 뛰어들고 물에도 들어가려고 생각했으나·이 자식이 이미 평안(平安)하니·누구에게 맡기고 투신(投身)하랴 생각하여, 이렇듯 마음을 달래면서 이 십사(十四) 오년(五年)을 지나셨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고·두 사람의 사내자식에게·업혀 가리라고·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금년(今年) 구월(九月) 오일(五日)·달이 구름에 가리우고·꽃을 바람에 날리게 해서·꿈인가·생시(生時)인가·얼마나 기나긴 꿈이련가 하고·탄식(歎息)하고 있었는데·현실(現實)로서·이미 四十九日이 지나갔구려, 사실(事實)이라면·어찌하랴·피어 버린 꽃은·지지 않고·봉오리진 꽃이 시들었으니, 늙은 어머니는·머무르고·어린 자식은·떠나갔다, 매정스러운 무상(無常)인지고·무상(無常)인지고.
이러한 무정(無情)한 나라를·싫어하여·버리시고 고고로전(故五郞殿)은 믿으셨던 법화경(法華經)을 따르시어·상주불괴(常住不壞)의 영산정토(靈山淨土)로 일찍이 가셨는데 아버지는 영산(靈山)에 계시고·어머니는 사바(裟婆)에 머무르시니 두 사람의 중간(中間)에 계시는 고고로전(故五郞殿)의 마음이야말로·동정(同情)이 가서 애처롭게·생각됩니다, 할 말은 많으나·그치겠소, 공공근언(恐恐謹言).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568~15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