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와 해바라기
1.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게 된 배경
1886년 봄 파리로 온 고흐는 인상파 화가들과 많은 접촉을 통해 새로운 화법에 눈을 뜨게 되고, 1887년 늦여름 몽마르트 가정집의 정원에 널려있던 해바라기를 잘라 테이블 위에 놓고 4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이 해바라기 그림을 11월 샬레레스토랑에 전시하게 되는데 이 전시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으나, 마침 고흐가 존경하던 폴 고갱이 마티니크 섬에서 파리로 돌아와서 이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 화법과 색상의 대칭 등에 대하여 칭찬하자, 고흐는 자기의 멘토인 고갱한테서 칭찬을 받자 크게 고무된다.
The Paris Sunflower (August - September 1887)
1887년 늦여름 몽마르트 가정집의 정원에 널려있던 해바라기를 잘라 테이블 위에 놓고 4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다. 이 때 그린 해바라기 그림은 모두 어두운 색으로 그려져 있으며 해바라기 꽃의 씨를 자세하게 그린 점이 그 후에 그려진 그림과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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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송이 해바라기 1887. Oil on canvas 60 × 100cm 크롤러 뮐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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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송이 해바라기, 1887. Oil on canvas on triplex board 21 × 27cm. Amsterdam Van Gogh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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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송이 해바라기, 1887. Oil on canvas 50×60cm. bern kunstMuseum B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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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송이 해바라기, 1887. Oil on canvas 43.2 × 61cm.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Arles Sunflower (August 1888)
고흐는 1888년 여름 남프랑스 아를에서 몇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는데, 꽃송이가 3개인 것, 12개인 것, 14개인 것 등이 있다. 그리하여 이것들은 각각 ‘꽃병에 꽂힌 세 송이 해바라기’(73*58cm)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91*72cm) ‘꽃병에 꽂힌 열네 송이 해바라기’ (95*73cm)로 불린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캔버스 세 개를 동시에 작업 중이다. 첫 번째는 초록색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 세 송이를 그린 것인데, 배경은 밝고, 크기는 15호 캔버스다.
두 번째도 역시 세 송이인데, 그 중 하나는 꽃잎이 떨어지고 씨만 남았다. 이건 파랑색 바탕이며 크기는 25호 캔버스다.(남아 있지 않음)
세 번째는 노란색 화병에 꽂힌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이며, 30호 캔버스다. 이 그림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같은 편지에서 고흐는 이렇게 열심히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고갱과 함께 사용하는 아틀리에를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 그림으로만 장식하고 싶다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섯 송이 해바라기, 1888. Oil on canvas 98 × 69cm.
2차 대전 때 화재로 소실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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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송이 해바라기, 1888. Oil on canvas 73 × 58cm. Unitide States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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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송이 해바라기, 1888. Oil on canvas 91 × 72cm. Munich Neue Pinakothek
고흐가 1888년 아를에서 늦여름에 그린 4개의 그림 중 먼저 그린 3점은 뒷배경의 색상이 대조되는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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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송이 해바라기, 1888. Oil on canvas 93 × 73cm. London National gallery
고흐가 1888년 늦여름 아를에서 그린 4점의 해바라기 중, 제일 나중에 그린 것으로 뒷배경이 노랑색이다. 이때부터 고흐는 뒷배경에 같은 계열의 색을 사용한다. 바로 이 작품이 그의 11개 해바라기 그림 중 가장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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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송이 해바라기, 1888. Oil on canvas 93 × 73cm. London National gallery
고흐가 1888년 늦여름 아를에서 그린 4점의 해바라기 중, 제일 나중에 그린 것으로 뒷배경이 노랑색이다. 이때부터 고흐는 뒷배경에 같은 계열의 색을 사용한다. 바로 이 작품이 그의 11개 해바라기 그림 중 가장 걸작이다.
The Arles Sunflower (January 1889)
고갱의 부탁으로 12송이, 14송이 해바라기 그림이 고흐 자신에 의해 카피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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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송이 해바라기, 1889. Oil on canvas 100.5 × 76.5cm. Tokyo Sampo Japan Museum of Art
1987년. 고흐의 생일인 5월 30일, 그의 해바라기 그림에 대한 최초의 경매가 런던 크리스트경매장에서 3990만 달러에 일본의 야스다 해상보험에 낙찰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그림에는 고흐의 서명이 없다. 고흐가 서명하지 않은 것은 이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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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송이 해바라기. 1889 Oil on canvas 95 × 73cm. Amsterdam Van Gogh Museum
2. 고갱과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16세기초 페루에서 이주된 식물이다. 폴 고갱의 할머니(Flora Tristan)는 페루와 프랑스 혼혈인이었다. 1851년 고갱이 세 살 때 가족은 페루로 이주하게 되지만 아버지는 항해 중 사망하고, 고갱은 어머니와 누이와 같이 4년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살게 되고, 어린 시절 페루에 대한 그의 인상이 고갱의 그림에 영향을 주었다.
3. 고흐와 고갱
파리에서 많은 화가들과의 접촉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던 고흐에게 아방가르드한 고갱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을 수도 있었다.
1888년 봄, 아를에 온 고흐는 방 4개짜리 집(Yellow house)를 얻고 매일 그림에 몰두하면서 이 집을 새로운 미술운동의 근거로 생각했고 그 운동의 리더로 고갱을 모시고자 했다. 집수리를 끝내고 5월 말 고흐는 고갱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미술에 대한 생각, 화가로서의 삶 등을 밝히고 고갱에게 이 운동에 동참해달라고 파트너가 되기를 요구한다. 마치 공부하고 싶은 어린 학생이 선생님을 기다리듯, 그러면서 고흐는 아를르의 늦여름에 해바라기를 화병에 꽂고 4점의 해바라기를 그리는데 이 그림들을 고갱이 내려오면 그가 머물 방에 걸어 놓고 고갱의 환심을 얻고자 했었다.
고흐는 아를에 와서 세낸 집에 의자 12개를 준비하여,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중에는 해바라기 꽃의 숫자가 12송이인 것이 있는데 이는 그의 신앙심과도 연관 짓는 사람도 있다.
10월 드디어 고갱이 아를에 왔지만 그 해 가을에는 비가 많이 와서 두 사람은 집안에서 많은 토론을 했는데 두 사라 다 개성이 강했고 그림에 대한 관점이 달랐다.
우선 고흐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고자 했는데, 고갱은 보이는 것과 그것에 대한 상상까지도 그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고흐에게 있어서 자연은 절대로 있는 그대로 그려야 되는 것이지만 고갱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보다 자기 의사가 반영된 자연을 표현하고자 했던 차이가 아닐까?
고갱은 고흐에게 자연의 노예(slave of nature)라고까지 혹평을 한다.
고흐는 노랑을 좋아하나 고갱은 빨강을 좋아했던 것까지 두 사람의 동거는 오래 갈 수 없었고, 결국 1888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게 되고 고흐는 자기 귀를 자르는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자 고갱은 아를을 떠나 파리로 돌아간다.
4.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사실주의 화가나 그 이전의 화가들 작품보다 밝아진 것은 19세기에 서구사회에서 많은 것이 발견, 발명되고 그 중에서 새로운 화학제품 개발과 튜브 물감 등장으로 화가들은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특히 시배리아에서 발견된 염료 - 크롬 엘로 덕분에 밝은 노랑색을 구사하게 되었다.
고흐가 1888년 아를에서 늦여름에 그린 4개의 그림 중 먼저 그린 3점은 뒷배경의 색상이 대조되는 색이다. 색의 3원색에서, 노랑과 파랑의 혼합인 초록에는 빨강을, 파랑에는 노랑을, 오렌지에는 파랑을 대비시키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나중의 한 점(8번째 그림. 런던 national gallery 소장)은 뒷배경이 노랑색이다.
바로 이 여덟 번째 그림이 그의 11개 해바라기 그림 중 가장 걸작이다. 이 그림은 1923년 처음으로 런던 내셔날 갤러리에 전시되는데. 이 그림에 매료된 미술관 측에서는 고흐의 작품들을 특별히 별도 취급하고, 이 그림을 대표 그림으로 삼겠다는 등 정중히 제안한 결과, 승낙을 얻어 1924년 이 미술관에서 보존해오고 있다. 이 미술관에서는 고희 해바라기 그림을 여러 품목에 활용해 이 그림을 광고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8번째 그림을 보면 색상의 선명함과 부피감이 다른 어떤 그림보다도 사람들의 눈을 끌게 한다. 특히 그림의 뒤쪽 벽면을 칠한 노랑색은 우주 어디에서 가져온 듯한 신비함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에서 해바라기는 다양한 모양으로 그려진다. 이제 막 피어나는 꽃송이가 있는가 하면 꽃잎이 시든 것, 꽃잎이 떨어져 버린 것을 그렸는데 이는 생명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을 보면 그림자가 없는 평범한 입체감이나 원근법이 무시된 그림이다. 그리고 고흐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배경색을 노랑으로 부피감 있게 그린다. 따라서 노랑색이지만 부피감 때문에 다른 맛의 노랑을 보여준다.
고흐의 신앙심과 그가 미치게 좋아했던 노랑색, 그림이 갖는 평면성(그림자가 없다), 비원근법 등, 고흐의 모든 명이 집약된 것이 이 8번째 해바라기 그림이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 11점은 한 번도 모여져서 전시된 적은 없다.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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