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심을 갈망하라 (약 5:7-11)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성도들끼리 항상 하는 인사가 있었습니다. 어떤 인사였을까요? ‘마라나다였습니다. 마라나타가 무슨 뜻일까요?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이제 뜻을 알고 다시 한 번 인사합시다. "마라나타" 사도 요한이 성경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장 마지막 부분에 마지막으로 한 기도가 바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였습니다. 마라나다~. 이처럼 그들은 기도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했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했습니다. 그것 말고는 극악한 현실에 대한 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심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암행어사 출도야’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영원한 신천신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들어 주시고, 성도에게 영원한 상급을 주시고, 악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죽음까지도 해결됩니다. 주님이 오시면 다 끝납니다. 재림은 물론 지금 성령으로 임하심도 놀라운 복이 됩니다. 주님 오심의 시제는 이렇습니다. 주님은 오셨고 오시고 계시며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지금도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가 있으면 갈등은 다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어떤 식으로든 오셔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답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오심을 갈망하는 자의 태도는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 보니까 길이 참으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7절에 “길이 참으라.”하였습니다. 8절에도 “길이 참고”, 10절에도 “오래 참음”이라, 11절에도 “인내하는 자”, “욥의 인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을 계속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믿고 참고 갈망하면 반드시 주님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지고 다가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1. 믿음을 준비하며 갈망해야 합니다. ------7-8절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여기 농부의 심정이 나타납니다. 농부가 파종하고 귀한 열매를 바라고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보리나 밀을 가을에 파종하는데 파종하고서 비를 기다립니다. 가을비를 맞고 자란 곡식은 봄에 다시 한 번 큰 비가 필요한데 그것이 늦은 비입니다. 이 때 비오지 않으면 농부의 심정이 얼마나 타겠습니까? 가물 때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심정은 농부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먼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농부 말고 또 누가 있을까요? 바로 그 심정으로 주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는 그냥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제초를 하면서 비를 기다립니다. 씨를 뿌릴 때부터 이 씨가 날 것이라는 믿음 가지고 씨를 파종합니다. 그리고 비를 기다립니다. 이처럼 믿음의 등불을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되 주님이 임하실 것을 믿고 열심히 신앙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은 준비된 심령에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와 상관없는 자에게 오신다고 하셨어요. 칭의의 확신 가지고 또 성결의 은혜 속에 사셔야 합니다. 열심 말씀보고 기도하며 경건생활하면서 복음에 서서 감사하고 안심하고 회개하고 겸손하고 사랑하고 충성하며 믿음 준비하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이 사람은 준비 됐으므로 들림을 받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임하십니다. 회개하면 회개한 만큼 주님이 임하시고, 사랑하면 사랑한 만큼 주님이 임하시고, 겸손하면 겸손한 만큼 충성하면 충성한 만큼 화목하면 화목한 만큼 사명 감당하면 사명 감당한 만큼 주님이 더 가까이 임하십니다. 구약의 준비된 제물처럼 흠이 없고 거룩하게 각을 뜨고 잘 준비되면 성령께서 불로서 임하십니다. 주님 오심은 기차가 플랫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이처럼 주님은 성도에게 이미 오셨고 성령으로 오시고 계시며 재림으로 온전히오실것이지만준비된 심령에 오시는 것입니다.
2. 굳센 믿음으로 나가며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9절에서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에게 원망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왜 이런 교훈을 주실까요?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핍박도 있고 시험도 있고 통과해야 할 인생의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굳센 믿음 아니면 실망할 수밖에 없어요. *어려운 일 닥치면 먼저 내부적인 원망이 생깁니다. 마음 내부의 원망부터 잡아야 합니다. 믿음 부족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범죄한 대표적인 죄 가운데 하나가 원망입니다. 그들은 서로 원망하다가 멸망 당했습니다. 원망이 시작되면 상대방은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서로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파국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원망은 징계하시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그만큼 원망의 파급효과 파괴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했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믿음은 있었지만 문제를 넘는 굳센 믿음은 없었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길을 명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막에서도 음료와 음식을 책임지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나무 더러 뽑히어 바다로 던지우라 명하면 그대로 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참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까? 믿음이 깊지 못해서입니다. 얕은 믿음 가지고는 바람이 불면 넘어집니다. 믿음에 인내를 더하세요. 믿음에 계속을 더하세요. 우리 한국인의 공통적인 약점 가운데 하나가 인내심 부족입니다. 어떻게 성격이 급한지 이 성격 때문에 늘 실수합니다. 인내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성경의 신앙위인들의 본을 따라가며 갈망해야 합니다. -------10-11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오늘 성경에는 3가지 인내가 나옵니다. 농부의 인내, 선지자의 인내, 욥의 인내입니다. 왜 이들을 말씀합니까? 그 본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내 믿음 수준의 목표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영웅들은 성경이 공인한 사람들이니 우리가 안심하고 그들을 본받아 살면 그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셨듯이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들을 통해 영의 공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지 않은 성경 인물들이 누가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 쌓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임하십니다. 다윗에게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찬송과 기도하던 다윗 성령이 임했습니다. 혹은 온유와 충성의 사람 모세, 뜻을 정해 놓고 했던 다니엘, 의인이었던 요셉, 목숨 바쳐 헌신한 마리아, 나라를 구한 드보라, 기도의 사람 한나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모두 하나님이 임한 사람들입니다. 눅2:36-37에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다 아기 예수 만났습니다. 자기를 이기기 위해 기도로 금식으로 성령으로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삼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처럼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했습니다. 안나 선지자를 본받고 성경에 나오는 신앙 위인들을 본받으면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마 하신 그대로 오십니다. 주님이 오시면 됩니다. 주님이 오시면 문제는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갈망하면서 믿음을 준비하고 더욱 믿음으로 전진하면서 신앙의 영웅들을 본받아 주님의 임하심을 받고 또 온전히 재림을 대비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