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단상/김민자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3개월 동안 학교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개학연기, 온라인 개학, 온라인수업 등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일들로 분주했는데 우려되는 것은 이런 일이 또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진보한다고 한다. 기록은 창조의 디딤돌이라던가. 그래서 힘들고 어려웠던 3개월의 일상을 기록해보았다
3월 9일
개학일이 3월 2일에서 3월 9일로 1주일 연기된 이후 학교에 내려오는 공문의 제목은 대부분 코로나로 시작된다. 새 학기, 설렘, 희망, 신입생 이런 말이 사라졌다. 1학년 교실에 붙여 놓은 프랑 카드는 하염없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어서와! 너희들이 우리학교의 봄이야!” 노란 개나리꽃 바탕에 환영문구가 예쁘게 꾸며져 있지만 보아줄 아이들이 없다. 안타깝다.
3월30일
개학이 두 차례나 연기되는 동안 학교에는 벚꽃이 피었다. 작년에 전입해 왔을 때는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그랬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벚꽃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오늘은 벚꽃나무 아래에 가만히 서 보았다. 꽃잎이 산들바람에 눈발처럼 쏟아졌다. “우와! 선생님, 눈 오는 것 같아요.” “멋지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4월 6일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교사 회의실로 모이세요.” 교무부장이 다급하게 회의를 소집했다. “또 뭐여?” “또 개학 연기인가?” “교직경력 40년에 이런 일은 처음일세.” 교무부장의 얼굴이 전에 없이 무겁다. “온라인으로 개학하고 수업을 진행해야 한답니다. 수업 진행 방법을 정하여 보고해야 합니다. 수업유형은 세 가지입니다. 과제 제시형, 콘텐츠형, 실시간 쌍 방향형 우리 학교는 어떻게 결정할까요?” 각 유형의 장단점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과제 제시형으로 수업하면 선생님들이 무엇이 힘들고 편한지 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을까 부모가 돌보아 줄까를 먼저 걱정했다. 과제 제시형으로 운영하면 초등교육은 기초기본을 길러주는 것이 지향점인데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제 제시형으로 하면 교사는 덜 수고로운데 학생들의 배움을 돕는 편을 선택하는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아름다웠다. 오늘 수업유형 결정에는 정보부장의 활약이 컸다. “컨텐츠형이나 쌍방향 실시간으로 수업하려면 무엇보다 플랫폼과 도구가 표준화가 되야 해요. 3~6학년에게 배부할 태블릿을 우선 확보하고자 합니다” 현재 학교의 수량과 예산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구입했다. 예전의 지시만 듣던 회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가르치고 수업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 수업을 잃어버린 교사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다.
4월 20일
오늘은 3학년 한 한기 한권읽기 국어수업을 지원했다. “얘들아, 그동안 벚꽃이 이렇게 예쁘게 피었어. 벌이 앉은 모습이 꼭 너희들 보는 것 같아 선생님이 찍어서 가져왔어. 3학년 잘 지내니?” 온라인 첫 수업하는데 울컥했다. ZOOM 화면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몸이 가까이 다가가졌다. 한 달 반 만에 수업을 했다. 늘 하던 수업인데 새로웠다. 수업은 소통이고 공감이며 살아있음의 확인이라고 혼자 성찰해본다. 나는 천상 선생님인가 보다.
5월 6일
벚꽃이 진 교정에는 빨강 하양 철쭉이 별처럼 피었다. 초록 이파리와 어울려 빛깔잔치를 하는 것 같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오늘 수업시간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3학년 국어 수업하는 동안의 일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학교에 없는 동안 벚꽃이 피었다 지고 지금은 철쭉이 피었구나. 어서 학교에 올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보자.” 인사말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모니터 너머의 아이들은 가만히 듣고 있는데 한 학생의 화면이 살아서 흔들렸다. ZOOM 화면에 갑자기 파란하늘이 보이더니 마늘밭이 보였다.
“경훈아, 너 지금 어디야?” “엄마가요 오늘 마늘 쫑 작업하는데요. 마늘밭으로 저를 데리고 왔어요. 집에 혼자 있으면 집중 안한다고요” 유난히 산만한 아이지만 어떻게든 공부시키려는 엄마의 정성이 느껴졌다. 밭둑에서 태블릿을 켰는데 인터넷이 된다는 것도 신기했다. 밭에 부는 바람소리가 그 아이의 ZOOM을 통해 모두에게 들렸다. 아이들이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까지 수업에 참여하려는 정성이 고마웠다.
5월 15일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어제 화원에 들러 산 작은 꽃바구니를 들고 출근했다. 올해 첫 부임한 선생님의 첫 스승의 날을 축하해주고 싶어서였다.
날려 보내기 위해 새를 키웁니다.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갯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는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오늘은 도종환님의 스승의 기도가 더욱 마음에 다가왔다. 검은 화면을 젖히고 다음 주면 얼굴을 마주할 학생들과의 즐거운 전투를 위해 오늘은 교실을 정리했다. 역시 학교는 아이들이 있어야 제 맛이다.
첫댓글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서 좋습니다.
'줌(ZOOM)'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말 자모로 써야 합니다.
작품 이름은 <스승의 기도>라고 표시하면 얼른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세세히 일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