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다는 것은 승화되고 고양된 언어와의 만남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 以心傳心을 가능케 한 염화시중의 미소 또한 언어다. 표정언어. 승화되고 고양된 언어로 소통하려면 승화되고 고양된 영혼을 가져야 한다. 그 소통의 순간만이라도.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승화시키고 고양시키는 체험인 것이다.
시인의 일이란 스스로의 영혼을 맑게 하여 세상에 빠른 속도로 휙휙 스쳐가는 숱한 언어들 속에서 승화되고 고양된 언어를 변별하여 낚아채듯 붙잡아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어 길들이고 꾸며서 시를 만드는 것이다.
임하연 시인의 시집 『새벽을 나는 새』를 읽는다. 요즘 나오는 시집의 말미에는 의례 그 시인의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해설(더러는 다른 시인이 쓴 해설)이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 시집은 그러한 ‘공식’을 거부하고 시집 초입의 ‘서시’ 「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서시’는 이 시집에 들어 있는 시에 대한 해설 즉 시인이 독자를 향한 자신의 시에 대한 기법을 비롯한 시 정신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 ‘서시’ 「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을 찬찬히 읽어보자.
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 붙잡으려면 휘돌며 질주하는 그 옆구리에 홍화처럼 피어나 따라붙는 붉은 노을 흠뻑 찍어다가 주술로 하얀 갈기 잔결마다 한 가닥씩 바르고 뜨거운 핏줄 펄떡이는 그림을 그려서 말이 지나갈 길섶마다 내걸어 특급 현상수배 말이 되게 할까
고개 숙여 목 축이는 잔등 위로 은빛 왕관처럼 흰 김 연기 오르고 아침볕이 찹찹하게 내려와 덮이면 밤새 바다 위 달려온 백마가 엉덩이엔 새치름한 달 올려 앉히고 해안가 빙그르르 달음박질치게 할까
제 몸으론 따라낼 수 없는 광년의 거리 목화솜처럼 뭉게뭉게 부풀어 오르는 우주에서 헤벌려진 입술로 투루루 투레질하며 우주의 중심에 끈으로 매인 양 사력으로 휘돌다가 품에 안기듯 별을 따라 천궁으로 가게 할까 그 등에 오르면 나도 돌아갈 수 있을까
― ‘서시 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 全文
이 글의 모두에서 이미 언급했던 ‘시인의 일’을 상기하고 위의 시에서 말(馬)을 말(言語)로 바꿔 놓고 읽어보자. 이 ‘서시’ 「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이 어떻게 이 시집의 ‘해설’이 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임하연의 시는 기발한 언어의 변용을 통한 이미지의 비약이나 현란한 시적 기교를 즐겨 차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숙성된 시적 조형을 이뤄낸다는 것이 이 시인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