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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시민: 소주 한잔 주시오. (일은 진열장으로 손을 뻗친다.)
(집사가 위스키를 따라준다.)
클레어: 새 영감님을 깨우도록 해라. 난 남편이 그렇게 오래 자는것은
참을수가 없어.
일: 3마르크 10짜리를 드릴까?
둘째시민: 아니 그것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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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넨 늘 그걸 마셨잖은가?
둘째시민: 꼬냑을 줘요.
일: 20마르크 35페니나 하는걸 그런건 아무도 마실수 없을텐데.
둘째시민: 호강도 좀 해봐야지.
(무대 위로 거의 반나체의 소녀가 뛰어가고 그뒤를 토비가 뒤따른다.)
첫째여인: (초콜렛을 먹으면서) 저 루이제가 저런 짓을 하다니 망칙한 일이야.
둘째여인: (초콜렛을 먹으면서) 그런데 저 애는 베르톨드 슈베르쯔가의
금발머리의 음악가하고 약혼까지 한 사인데 저꼴이니 말예요.
(일씨는 꼬냑을 꺼낸다.)
일: 자 여기있소.
둘째시민: 그리고 담배도 주구료. 파이프용 말예요.
일: 드리고말고.
둘째시민: 수입품으로 줘요.
(일씨는 합계를 계산한다. 발코니에 남편8이 나타난다. 영화배우 키가 작고
늘씬하고 붉은 코밑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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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운 차림. 이 배역은 남편7과 같은연기자가 해도된다.)
남편8: 호프시 이거 정말 희한하지 않소. 이렇게 갓 약혼하고 처음 함께
아침을 들게 되다니 말이오. 꿈만 같구료. 자그마한 발코니 소슬한 보리수나무
소리, 졸졸거리는 시청앞의 분수소리, 비스듬히 보도위를 달려가는 한 두마리의
수탉들, 어디선지 하찮은 근심걱정으로 저 지붕뒤로 우뚝 솟은 대성당의 탑.
클레어: 앉아요. 호비 그리고 말을 말아요. 그런 경치는 나도 볼수있고 또
생각하는것은 당신의 장기도 아니잖아요.
둘째여인: 이젠 남편까지도 저 위에 나앉았군 그래.
첫째여인: (초콜렛을 먹으면서) 여덟번째래요.
둘째여인: (초콜렛을 먹으면서) 미남이지요. 영화배우래요. 우리집 딸애가
강호퍼의 영화에서 밀렵자의 역을 맡은 저사람을 보았대요.
첫째여인: 저도 그레암 그린의 영화에서 성직자의 역을 하는 것을 보았어요.
(남편8이 클레어 짜하나시안한테 키스를 한다. 키타의 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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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시민: 돈이면 무엇이든 살수가 있단 말이군요.
(그는 침을 뱉는다.)
첫째시민: 우리 고장에선 안될걸.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친다.)
일: 23마르크 80페니히요.
둘째시민: 달아놓으세요.
일: 이번 주일엔 내 예외로 해두지 하지만 실업자 구호금이 나오면 나한테
제일 먼저 갚아 줘야하오. (둘째시민이 문께로 간다.) 헤르메스베르거. (그는
걸음을 멈춘다. 일이 그에게로 다가선다.) 자네 새 구두를 신었네 그려. 노란
새구두를
둘째시민: 왜 그러시오?
(일씨는첫째시민 의 발을 본다.)
일: 자네도 호프바우어 자네도 새 구두를 신었네 그려. (그는 여인네들쪽을
쳐다본다. 그리고 그쪽으로 다가선다. 천천히 공포심에 싸여서) 댁들도 역시 노란
새구두를 신었구료. 노란 새구두를.
첫째시민: 그게 어쨌다는건지 모르겠군.
둘째시민: 영원히 낡아빠진 신발을 신고 돌아다닐수야 없지 않아요.
일: 모두들 새구두다 당신들이 어떻게 새구두를 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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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지?
여인들: 외상으로 샀지요. 일씨 외상으로 샀지요.
일: 외상으로 샀다고? 우리집에서도 외상만 지고 있지않소. 고급담배 고급
우유에다 꼬냑까지도 도대체 어쩌자고 당신들은 갑자기 가게마다 외상을
지는거요?
둘째시민: 당신네 가계에서도 우린 외상거래를 하고 있지 않아요?
일: 무엇으로 갚을 생각이지? (침묵 그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내던지기
시작한다. 모두 도망친다.) 무엇으로 갚을 생각이냔 말이야. 무엇으로
갚겠다는거지? 응? 무엇으로 무엇으로 말야.
(그는 뒤로 쓰러진다.)
남편8: 시내가 시끄럽군.
클레어: 그게 소도시의 생활이지요.
남편8: 저아래 가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것 같구료.
클레어: 아마 쇠고기값 때문에 다투고 있는게지요.
(강한 기타아의 화음소리 남편8은 놀라서 일어선다.)
남편8: 어이쿠! 호프시! 무슨 소리요.
클레어: 검둥이 표범이예요. 그놈이 으르렁대는 소리예요.
남편8: (놀라서) 검둥이 표범이라니?
클레어: 마라케쉬의 파샤한테서 받은거예요. 선물이예요. 이 옆의 살롱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예요. 두눈이 번쩍이는 큼지막한 사나운 고양이예요. 난
굉장히 그놈을 좋아해요. (왼쪽 식탁에 경찰관이 앉는다. 맥주를 마신다. 그는
천천히 신중한 태도로 말한다. 안에서 일이 등장) 자 식사를 시작해 볼까 보비?
경찰관: 용건이 뭣이지요? 일시 자 앉으시구료. (일은 선채로 있다) 당신 떨고
있군요.
일: 난 클레어 짜하나시안의 체포를 요구하오. (경찰관은 파이프에 담배를
담는다. 그리고 기분좋은듯 불을 붙인다.)
경찰관: 이상하군요. 정말 이상한데요.
(집사가 아침식사를 내오고 우편물을 가지고 온다.)
일: 나는 차기의 시장으로서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오.
경찰관: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선거는 아직 시행도 하지 않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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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당장에 저 부인을 체포하란 말이오.
경찰관: 그렇다면 당신은 저 부인을 고발하시겠다는 것이군요. 저 부인을
체포하고 안하는것은 경찰관이 결정할 문제요. 저 부인이 무슨 죄를 범했단
말인가요?
일: 저 여자는 우리 시민에게 나를 죽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소.
경찰관: 그러니까 내가 저 부인을 단적으로 체포해야 된다는 말인가요? (그는
맥주를 따른다.)
클레어: 우편물에요. 아이크가 편지를 했군요. 네루도 하고 축전을
보낸거로군요.
일: 당신의 의무가 아니오.
경찰관: 이상하군요. 정말 이상한데요. (그는 맥주를 마신다.)
일: 세상에 이보다 당연한 일이 어디있소!
경찰관: 이봐요. 일씨 그렇게 당연한 일이 아니란 말예요. 이번 경우를
냉철하게 살펴보기로 합시다. 저 부인은 당신 대신에 10억을 내놓겠다는 제안을
귈렌시에 대해서 했습니다. 당신도 내가 말하는 뜻을 아시겠지요. 그건 맞습니다.
저도 그자리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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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경찰이 클레어 짜하나시안부인을 간섭할 하등의 이유가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결국 법에 매여있는 몸이 아닙니까?
일: 살인교사가 아니요?
경찰관: 정신차려요. 일씨. 살인교사는 당신을 죽인다는 제안이 진정일
경우에만 성립되는 것이에요. 이건 분명한 얘기란 말예요.
일: 그건 나도 동감이오.
경찰관: 그것 보시오. 그러니 그 제안은 결코 진정이 아니었단 말씀이오. 그
10억이란 댓가는 너무나도 과장된 것이 아니냐 말이오. 그건 당신 자신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거요. 그런일쯤이라면 1천이나 혹 2천쯤 제의하는것이
고작이지 그 이상은 절대로 진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것이지 뭐겠소.
그리고 만일 그 제안이 진정이었다 하더라도 경찰로서는 저 부인을 진정이라고
생각할수가 없단 말이오. 그럴것이 만일 그렇다면 저 여자는 미친 여자니까
말이오. 아시겠소?
일: 경찰서장 저 여자가 미쳤건 안미쳤건간에 그런 제안이 나를 위협하고 있단
말이오. 그건 뻔한 이치가 아니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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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뻔한 이치가 아니지. 당신은 어떤 제안으로 위협을 받을수는
없는노릇이고 그런 제안이 실천으로 옮겨졌을때만 위협을 받는단 말이오. 그런
제안을 실천하려는 시도가 실제로 있다면 보여 주시구료. 가사 당신한테 총이라도
겨누는 사람이 있다든가 하면 내 바람같이 달려가겠수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않느냔 말이오. 아니 정반대가 아니요? 그
황금사도정에서의 시위는 지극히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늦기는 했지만 당신한테
축하를 드리겠어요. (그는 맥주를 마신다.)
일: 난 그다지 확신할 수가 없다구요?
경찰관: 그다지 확신할 수가 없다구요?
일: 우리 가게의 고객들은 고급 우유에 고급빵 고급담배만 사고 있단말이오.
경찰관: 그럼 좋아해야 할 판 아니오! 당신의 장사가 잘 되어 가니까 말이오.
(그는 맥주를 마신다.)
클레어: 뒤퐁회사의 주를 모조리 사도록 해요. 보비.
일: 헤르메스베르거는 가게에 와서 꼬냑을 사갔단 말이오. 그런데 그 친구는
수년내 돈이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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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한푼 벌지못하고 꿀꿀이 죽으로 살아가는 신세란 말이오.
경찰관: 그럼 그 꼬냑을 나도 한번 맛을 보게 됐군. 그 오늘 헤르메스베르거의
초대를 받았으니까요.
(그는 맥주를 마신다.)
일: 모두 새 구두를 신고 있단말이오. 노란 새구두들을
경찰관: 새구두를 왜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하시오? 나도 새구두를 한켤레
신었수다. (그는 자기의 발을 내보인다.)
일: 당신까지도
경찰관: 자 보시구료.
일: 역시 노란색이군. 그리고 필센 맥주를 마시고
경찰관: 맛이 좋거든요.
일: 여태까지는 이 지방산을 마시지 않았소?
경찰관: 맛이 고약했어.
(라듸오의 음악)
일: 저걸 들어보시오.
경찰관: 어쨌다는 거지요?
일: 저 음악말이오.
경찰관: "테리 위도우"로군 그래.
일: 저 라듸오 말예요.
경찰관: 이웃하게 홀쩌네 집이군. 창문도 닫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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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거지? (그는 수첩에다 기입한다.)
일: 어떻게 하게홀쩌가 저런 라듸오를 갖게 됐지요.
경찰관: 그야 그 사람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겠소.
일: 그리고 당신은 경찰서장은 필센 맥주나 새구두 값을 무엇으로 갚으려는
것이오?
경찰관: 그건 내 개인 문제요. (식탁위의 전화기가 울린다. 경찰관이 수화기를
든다.) 네 귈렌 경찰섭니다.
클레어: 그 러시아 친구한테 전화를 걸고 내가 그네들의 제안에 동의한다고
전해요. 보비.
경찰관: 네 알았습니다. (그는 수화기를 다시 놓는다.)
일: 우리집 고객들은 무엇으로 외상을 갚으려는가 말예요.
경찰관: 그건 경찰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않소.
(그는 일어나고 의자의 등받이에서 총을 집어든다.)
일: 그렇지만 나는 상관이 있단 말야. 그 사람들은 나를 가지고 외상을
갚으려는 수작이 아니냔 말이오.
경찰관: 아무도 당신을 위협하지 않고 있어요.
(그는 총에다 장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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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내 전체가 빚을 지고있소. 그 빚과 더불어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그 생활
수준과 더불어 나를 죽이려는 필연성도 상승하고 있소. 그리고 저 여자는
발코니에 앉아서 코오피나 마시고 담배나 피우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거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지.
경찰관: 터무니없는 공상을 하시는군.
일: 당신네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거요.
(그는 책상을 두들긴다.)
경찰관: 당신 너무 소주를 마셨구료. (그는 총을 이리저리 만진다.) 자, 이젠
장진이 다 됐군. 안심하셔도 돼요. 법의 존엄성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찰이 있는 것이오. 당신도 경찰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서건 그리고 어느 편에서건 눈꼽만치라도 위협의 혐의가
나타나기만 하면 즉각 경찰이 출동할 것입니다. 일씨 그점은 믿으셔도 됩니다.
일: (낮은 목소리로) 그럼 어떻게 그런 금니를 다 하셨지요? 경찰서장.
경찰관: 뭐요?
일: 번쩍번쩍하는 새 금니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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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당신 미친것 아니요. (일씨는 그때 총부리가 자기한테 겨누어져
있는것을 보고 두손을 천천히 든다.) 당신의 망상 따위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시간이 내겐 없어요. 여보시오. 난 가야겠소. 저 괴퍅한 억만장자 부인의 무릎에
올라앉은 강아지 새끼가 도망갔다는 거요. 그 검둥이 표범말이요. 그놈을
잡아야겠소. (그는 뒤로 나간다.)
일: 너희들은 나를 쫓고 있는 거지. 이 나를
(클레어 짜하나시안은 편지를 읽고 있다.)
클레어: 그 사람이 온다는군요. 제 여섯번째 남편 말이예요. 제 남편들 중에서
제일 잘생긴 남편이었지요. 지금도 제 결혼식의 옷은 모두 그 사람이 재단해 주고
있거든요. 메뉴엣을 부탁한다. 로비야.
(기타아로 메뉴엣이 울린다.)
남편8: 아니 하지만 당신의 다섯번째 남편은 외과의사 아니었소.
클레어: 제 여섯번째지요. (그 여자는 또 다른 편지를 뜯고 있다.) 서부철도의
소유주한테서 왔군요.
남편8: (놀라서) 그자에 대해선 한번도 얘기를 들은일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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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제 네번째 남편이었지요. 가난뱅이가 됐어요. 그 사람 주식이 제것이
됐으니까요. 그사람을 버킹검 궁전에서 유혹했었지요.
남편8: 그건 이스마엘경이 아니었소.
클레어: 정말 그랬군요. 당신이 옳았어요. 호비 요크셔에 성을 가진 그 사람을
감쪽같이 잊었었군요. 그다음 편지는 제 둘째번 남편이 했군요. 카이로에서 서로
알게 됐었지요. 스핑크스에서 서로 키스를 했었다오. 정말 인상깊은
저녁이었어요.
(왼쪽에서 장면 변화 "시청"이라 적힌 간판이 내려온다.셋째시민 이 나와서
상점의 돈궤를 치우고 카운터를 약간 이동시켜 그것을 그대로 사무용 탁자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시장이 나온다. 권총을 한자루 탁자위에 놓고 앉는다.
왼쪽에서 일씨 등장. 벽에는 청사진이 걸려있다.
일: 시장 당신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 왔소.
시장: 앉으시구료.
일: 사나이대 사나이로서 당신의 후계자로서 말하겠소이다.
시장: 그럽시다. (일은 선채로 권총을 내려다본다.) 짜하나시안 부인의 표범이
도망을 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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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원안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모양이오. 그러니 무장을 안할수 있어야죠.
일: 그럴테지요.
시장: 무기를 가진 장정들을 소집했었지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고요.
일: (의심스럽다는듯이) 그 참 굉장한 사치스런 얘기군요.
시장: 맹수사냥이랍니다.
(집사가 들어온다.)
집사: 부인 세계은행의 총재가 오셨습니다. 방금 뉴요오크에서
비래하셨습니다.
클레어: 난 면회할 수 없어요. 다시 돌아가라고 해요.
시장: 가슴속에 맺힌것이 무엇이죠. 어디 시원하게 털어놓으시구료.
일: (믿을수없다는듯) 거 좋은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구료.
시장: 금발의 페가수스란 거지요.
일: 상당히 비싼 담밸텐데요.
시장: 그대신 맛이 참해요.
일: 전에는 시장님은 다른것을 피운것으로 아는데요.
시장: 뢰쓸리 파이브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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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게 훨씬 싸지 않습니까?
시장: 너무 독한 담배가 돼서---
일: 넥타이도 새것을 매셨군요.
시장: 견직물이지요.
일: 그리고 아마 구두도 사셨지요?
시장: 칼버시에다 주문을 해서 샀어요. 이상하군요. 그걸 어떻게 아셨소?
일: 그래서 제가 왔으니까요.
시장: 아니 무슨일이 있으셨소? 아주 창백해 보이는군요. 어디 편찮으시오?
일: 전 겁이 납니다.
시장: 겁이 나다니요?
일: 생활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어요.
시장: 거 듣던 중 최신 뉴우스로군요.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겠소.
일: 저는 당국의 보호를 요청하겠소.
시장: 아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일: 그건 시장께서 더 잘 알고 계실텐데요.
시장: 의심스럽단 말이오?
일: 제 머리 하나에 10억을 내겠다고 하지 않았소.
시장: 경찰에다 의뢰하시지 그래요?
일: 경찰에도 갔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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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그렇다면 안심했겠구료.
일: 경찰서장의 입에선 새 금니가 번쩍번쩍하고 있더군요.
시장: 당신은 귈렌시에 계시다는걸 잊고 계시는군요. 이 인도주의의 전통에
빛나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 괴에테도 여기서 묵어간 일이 있고
브라암스가 여기서 사중주곡을 작곡했어요. 이런 훌륭한 일들이 보장을 해주고
있지않소.
(왼쪽에서 타자기를 든 사나이 등장 ---첫째시민이다---)
사나이: 새 타자기를 가져왔습니다. 시장님, 레밍톤예요.
시장: 음 그걸 사무실에 갖다놓게. (그 사나이는 오른쪽으로 퇴장) 우리는
당신의 원망을 살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요. 만일 당신이 우리 시민에 대해서
신뢰를 할수가 없다면 유감천만이군요. 저는 그런 허무주의적인 경향을
기대하지는 않았는데요. 우리는 뭐니뭐니해도 법치국가에 살고 있는게 아닙니까?
일: 그렇다면 저 부인을 체포해 주시오.
시장: 참 이상하군요. 정말 이상한데요.
일: 그런말은 경찰서장도 하더군요.
시장: 그 부인의 행동은 그렇게 이해가 안가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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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잖습니까? 당신은 어쨌든 두놈한테 위증을 교사한 것이고 한 소녀를 말할수
없는 비참한 구렁텅이에다 빠뜨린 것 아닙니까.
일: 바로 그 말할수 없는 비참한 구렁텅이란게 어쨌든 수십억을 의미하게
되었지요.
(침묵)
시장: 우리 서로 솔직하게 얘기를 해봅시다.
일: 저도 그러길 원하지 않았습니까.
시장: 당신이 요구한대로 사나이대 사나이로서 말입니다. 당신은 부인의
체포를 요구할 하등의 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또한 시장으로서도 당신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을수 없는것이 유감스럽습니만
일: 공식적인 발언인가요?
시장: 당의 위임으로 말씀드리는거지요.
일: 알겠소이다.
(그는 천천히 왼쪽 창문쪽으로 가서 시장한테 등을 돌리고 멍하니 밖을
내다본다.)
시장: 우리가 부인의 제안을 심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런 제안의 원인이
된 범죄를 시인하는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이란 직위에는 윤리적인
성질의 여러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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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건에 이제 합당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당신도 아셔야할게 아닙니까? 그 밖의
다른 점에 있어서는 당신에 대해서 우리가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존경과 우의를
가지고 대한다는 것은 자명한 노릇이지요. (왼쪽에서 로비와 토비가 다시 화환과
꽃을 들고 등장하여 황금사도정 안으로 사라진다.) 차라리 사건 전체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하는것이 더욱 좋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공보관에게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말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일씨는 몸을 돌린다.)
일: 벌써 제 관을 장식하고 있단말예요. 시장! 침묵이 제게는 너무나도
위험스럽단 말예요.
시장: 아니, 도대체 어째서 그렇지요? 일씨 우리가 그 불미스러운 사건에다
망각의 보를 덮어 씌우는데 대해선 오히려 감사해야 마땅할 텐데요.
일: 말을 하자면 나는 아직 빠져나갈 기회는 있을거란 얘기지요.
시장: 이젠 정말 참을수 없군요! 도대체 누가 당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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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당신들 중의 누군가지요.
(시장은 몸을 일으킨다.)
시장: 당신이 혐의를 둔 사람이 누구지요? 그 이름을 대시오. 그럼 내가 그걸
내가 조사하리다. 가차없이 하겠소.
일: 당신들 전체가 그렇지요.
시장: 그런 중상모략에 대해서는 우리 시의 이름으로 엄숙하게 항의하겠소.
일: 아무도 나를 죽이겠다고 하지않고 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길 모두가
바라고 있고 또 어느땐가는 누군가가 그것을 실행하게 될것이란 말이오.
시장: 허깨비라도 보이시는 모양이구료.
일: 저 벽에 걸린게 청사진인가요? 새로 지을 시청 청산가요.
(그는 설계도를 또닥거린다.)
시장: 온 세상에 설계야 할수있지 않겠소.
일: 벌써 내 죽음을 가지고 투기사업을 벌이고 있군요.
시장: 이봐요. 일씨. 내가 정치가로서 더 훌륭한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가질
권리도 없다면 그렇다고 당장 무슨 범죄를 범할 필요야 조금도 없는 것이지만
나는 물러설야 할 것 아니겠소? 그점에 관해서는 안심하실 수 있을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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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당신네들은 이미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것이오.
시장: 일씨.
일: (나직히) 저 청사진이 그걸 증명하고 있지. 그걸 증명하고 있어.
클레어: 오나시스가 온다고 했군요. 대공하고 대공부인도 오고요 아가 칸
말예요.
남편8: 아리 칸이 아니고?
클레어: 리비에라의 떨거지들이 온통 몰려온다는군요.
남편8: 기자들은 안오고?
클레어: 전 세계에서 다 몰려올 걸요. 제가 결혼을 하기만 하면 언제건
기자들이 참석을 해요. 그 사람들도 나를 필요로 하긴 하지만 나도 그사람들이
필요하거든요. (그 여자는 계속 다른 편지를 뜯어 본다.) 홀크백작한테서 왔군요.
남편8: 호프시 우리가 이렇게 생전 처음으로 아침을 같이 드는데 그래 당신의
전 남편들의 편지만 읽어야 시원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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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나는 언제나 전체를 전망하고 있어야 해요.
남편8: (고통스러운듯) 문제는 나도 가지고 있단 말이오.
(그는 일어서서 멀거니 시내를 내려다본다.)
클레어: 당신 포르쉐차라도 고장이 났나요?
남편8: 이런 시골도시는 답답하기만 하오. 보리수가 소슬한 소리를 내고
새들이 지저귀고 분수가 좔좔거리는것 그것도 좋기는 하오. 하지만 벌써 그것도
반시간 전의 일이었소. 전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구료. 자연도 그렇고
주민들도 그렇고 잠잠하기만 하오. 모든것이 깊고 태평한 평화와 만족과 안일속에
잠겨 있을뿐 아무런 위대성도 비극성도 없어요. 위대한 한시대의 윤리적인 사명이
없단 말이요.
(왼쪽에서 신부가 총을 매고 등장. 그는 좀 전에 경찰관이 앉아있던 식탁에
검은 십자각 그려진 흰보를 펴놓고 총은 호텔 벽에다 기대놓는다. 복사가
미사복을 입는것을 도와준다.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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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일씨 제의실로 들어오시오. (왼쪽에서 일이 들어온다.) 여긴 어둡기는
하지만 서늘해요.
일: 방해가 안될까요? 신부님.
신부: 하느님 전당에는 만인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는 총을
바라보고 있는 일의 시선을 느낀다.) 저 무기에 대해서 의아스럽게 생각지
마십쇼. 짜하나시안 부인의 표범이 근처를 쏘다니고 있어요. 지금 저 보끅속에
있었는데 이제 페터씨네 창고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일: 저는 도움을 찾고 있습니다.
신부: 무슨일로?
일: 전 두렵습니다.
신부: 두렵다니요? 누가요?
일: 사람들이요.
신부: 사람들이 당신을 죽인다는 건가요 일씨?
일: 그 사람들이 저를 마치 야수처럼 쫓고 있습니다.
신부: 사람을 두려워할것이 아니라 신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을 두려워 하십시오. 복사 이옷의 뒷쪽 단추를 좀 채워주시오.
(무대의 사면벽에 귈렌시민들이 보이게 된다. 맨처음 경찰관, 시장, 네 시민,
화가, 교사. 그들은 모두 총을 겨누고 이리저리 살피면서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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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제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신부: 당신의 영생이 문제인 것입니다.
일: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신부: 당신은 양심의 허깨비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 시민들은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처녀들은 몸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시
전체가 저의 살해를 위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겁에 질려
죽어갈 것입니다.
신부: 좋게 보셔야 해요. 당신의 겪고 있는 일을 그저 좋게 봐야 합니다.
일: 이건 지옥입니다.
신부: 지옥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사람들을 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알뿐입니다. 그 옛날에
언젠가 당신이 돈 때문에 한 처녀를 배반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미루어 보아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예요. 우리들의 두려움의 원인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속에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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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깨달으신다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수 있기 위해서 무기를 받으십쇼.
일: 시이메트호퍼네는 세탁기를 장만했습니다.
신부: 그런 일로 마음을 졸이지 마십시오.
일: 그게 외상이거든요.
신부: 당신의 영혼의 불멸에 대해서 마음을 쓰십쇼.
일: 슈토커네는 텔레비를 들여 놓았습니다.
신부: 기도하십쇼. 복사 흰띠를 주세요. (복사는 신부하테 띠를 둘러준다.)
당신의 양심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참회의 길을 걸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며
당신의 공포에다 자꾸만 불을 붙일 것입니다. 우린 달리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침묵. 총을 든 사나이들이 다시 사라진다. 무대 끝에 그림자들. 소방서의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신부: 자 이제 저는 제 직무를 수행해야겠습니다. 일씨 영세를 시켜야겠어요.
복사 성경과 전례와 기도책하고 찬송가집을 가져와요. 유일한 빛속으로 안전한
곳으로 인도되어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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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일: 두번째로 종이 울리다니?
신부: 어때요? 소리가 훌륭하지요. 은은하고 힘차지요. 좋게 보셔야돼요.
일: (악을 버럭 쓴다.) 당신까지도 신부님 당신까지도
(신부는 일에게 덤벼들어 그를 꼭 껴안는다.
신부: 도망치시오. 우리는 약합니다. 기독교도 이건 이교도 이건 약합니다.
도망치세요. 귈렌에서 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배반의 종 소리지요. 도망치세요.
당신이 이곳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우리를 유혹에 들지 말게 해주십시오.
(두발의 총소리. 일은 마룻바닥에 주저앉고 신부는 그의 곁에 웅크리고 있다.)
신부: 도망치시오. 도망쳐요.
클레어: 보비 총을 쏘고 있지그녀를 믿지 마세요.2
60.희철집. 마당. 밤.
시골의 이른 밤.
마당의 야외 테이블에 희철 부와 영주 단 둘이 앉아있다.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 희철 부.
희철 부: 염치없는 부탁이었는데 니가 며칠이라도 있어주겠다니까 고맙구나. 그동안 우리
그놈 마음 좀 돌려보자.
영주: (돌겠다.) ……. 네.
희철 부: 늦바람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거짓말 한번 안하고 큰 아이다. 아까도 분명히 말했지만 차라리 그놈을 버리지 내 너 안 버린다!
그러다가는 영주의 시선이 자기 의자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는-)
희철 부: 왜?
영주: 아니요. 그건 암만 봐도 팔걸이가 있었던 의자 같은데.
희철 부: (의외) 그래? 니가 어째 그런걸 아니?
영주: 그게. 예전에 목공을 좀 배운 적이 있어서.
희철 부: 그랬구나. 사실은 이게 고친다 고친다 하면서도…….
영주: 의자도 꽤 낡은걸요. 차라리 버리세요.
희철 부: 이게 실은 죽은 희철 에미가 앉던 의자란다. 이젠 너도 오고했으니 이참에 아예 새것으로 바꾸자꾸나.
그러면서도 의자를 아쉬운 듯 보는 희철 부의 표정을 읽는 영주.
61. 희철방.
(아무도 없다. 창문 밖으로 달빛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창이 살며시 열리며 몰래 기어 들어오는 희철.)
희철: (짜증) 내 방을 내가 왜 이렇게 들어오는 거야?
(어둠속에 영주의 쇼핑백을 뒤지기 시작한다.
옷이 나오고.
영주의 어린 시절 사진이 나오고.
지갑이 나온다.
드디어 고대하던 주민등록을 빼는 순간.)
소리: (영주) 야!
(놀라 돌아보면, 영주가 서 있다.
영주, 희철에게 달려들어 주민증을 뺏으려 드는데
뺏기지 않으려는 희철과 함께 넘어지고. 엎칠락 뒷치락, 그러나 달빛을 받아서인지 몸싸움이 마치 애무의 실루엣처럼 보인다.
어쩌다보니 영주를 깔고 앉은 희철.
영주의 팔을 무릎으로 누르고 주민등록증을 확보하려는 순간, 와삭!!
영주와 희철 동시에 돌아보면, 문 앞,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새우깡을 먹으면서 둘을 빤히 쳐다보고 있고.
무안한 희철.
그 순간 영주가 잽싸게 주민등록증을 뺏어 자신의 가슴 속에 넣는다.
희철, 다시 뺏으려 손이 영주의 가슴을 향하면-)
영주: 누가 보면 오해하지 않을까?
(주춤하는 희철, 그제야 둘의 자세를 확인하고는 후다닥 떨어진다.)
희철: 당신 정말 왜이래? 그냥 간달 땐 언제고.
영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때가 되면 가지 말래도 갈 거니까 걱정말고. 빨리 내 가방이나 찾아내라니까. 이딴 허튼짓 자꾸 하면 아예 여기 살아버리는 수가 있어.
희철: 허걱!
(이때 아래층에서 할머니를 부르는-)
희철 부: 어머니, 어머니 어디계세요?
(놀라는 희철 당황하여 왔다 갔다 하더니만 무슨 생각에선지
영주가 마신 듯한 책상위 물 잔을 가지고 창문 밖으로 뛰어버린다.
한참 있다가 바닥에 닿는 소리 나고.)
62. 용강약국 앞. 아침.
(잔을 손으로 잡으려는 영득의 손을 희철이 찰싹 때린다.
경찰 오토바이를 탄 영득, 증거 보관용 비닐을 꺼내 잔을 담는다.)
희철: 좀 더 빨리 안 돼?
영득: 일주일도 아는 사람 통해서 그런 거야.
희철: 우리 고모부한테는 비밀이다.
영득: 왜?
희철: 사방에 적이야.
영득: 나 같으면 데리고 산다.
희철: 시끄러. 가뜩이나 열 받는데.
영득: 열 받지 마라. 괜히 피부 상한다.
희철: (영득의 반응이 맘에 안든) 어이구~ 피부는 무슨. 어이. 고추 총각! 대회때 니들도 비키니 입냐?
영득: 간다.
희철: 잘 가라, 고추 총각.
마침 동네 할머니 두 사람이 지나간다.
오토바이를 멈추고 인사를 하는 영득.)
영득: 안녕하세요.
할머니: 응, 출근 허남?
영득: 예.
할머니: 잘하고 있지?
영득: 예, 걱정 마세요.
할머니2: 암튼 지간에 이버인 꼭 우리 마을서 1등이 나와야 혀, 알것지?
영득: 그럼요. 일보세요.
(영득, 인사하고 지나가면,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쳐다보는 할머니들.
이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희철: 어디들 가세요?
(대꾸 없이 못마땅한 할머니들.
쯧쯧 혀를 차며 그냥 지나가 버린다.
뻘쭘한 희철.)
63. 동네 가게.
(희철, 힘없이 들어와 라면을 집는데,
파리채로 희철 손을 내리치는 가게 할아버지.)
희철: 앗 따거. 아니 왜러세요. 할아버지
가게: 자기씨 밴 기집을 성에 안찬다고 버리는 놈한텐 절대 물건 못팔어. 나가!
희철: 아니 그럼. 저더러 라면 하나 사러 읍내까지 나가란 말씀이세요.
가게: 읍내에도 이미 소문 다났어~ 이 시러배 아들놈아!
64. 약국 안. (낮)
빵을 얌얌 먹으며 서있는 꼬마.
배고픈 희철, 그런 꼬마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꼬마: (천진한 얼굴로) 천벌을 받을꺼래요.
희철: (허걱!) …….
꼬마: (등 뒤에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그랬지? 여자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천벌 받을
거라고?
(엄마, 애매하게 웃으며 약을 받아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
희철, 한숨을 푹 내리쉬며 허기진 배를 박카스로 채운다.
옆에는 이미 박카스 빈병이 잔뜩이고.
65. 동네 길.
(수미와 걷는 영주. )
영주: 아. 공기 참 맑다.
수미: 몸은 좀 괜찮으세요?
영주: 그럼요. 이 정도 가지고 뭘요. 빵에선 원래 빨간약 하나면 뭐든 다 나술수 있어 요.
수미: 네? 빵이요?
영주: (당황) 아. 그게. 그러니까. 빵이 아니고 빠리요. 프랑스 빠리.
거기에 그런 전설이 있데요. 빨간약의 전설.
수미: 그런 거 보면 언니는 참 아는 것도 많아요. 그래서 저도 언니 보면서 얼마나 반성했는지 몰라요.
영주: 반성이라뇨?
수미: 사실 처음엔 언니가 오빠 후밴줄 알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이쁘고, 좀 주눅들었었
거든요. 근데 비슷한 처지인걸.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인데도. 이렇게 꿋꿋하고 똑똑한걸 보고는. 언니가 얼마나 존경스러웠다고요.
영주: 그랬어요. 나도. 수미씨가 참 귀엽고 좋아요.
수미: 정말요? 우와. (영주의 팔짱을 끼며) 우린 정말이지 친자매 같은 시누이 사이가 될 것 같아요. 그쵸?
영주: (왠지 켕긴다. ) 그. 그래요.
수미: 근데. 언니는 뭐하세요?
영주: 아. 그게. 지금은 쉬어요.
수미: 하긴. 몸도 그렇고. 그럼 그 전에는요?
영주: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 그냥. 국가 기관 같은데 있었어요.
수미: 국가 기관요? 뭐하는 국가 기관요?
영주: 그냥 뭐랄까. 다양한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서 따로 교육도 받고 하는.
수미: 아 그랬구나. 어쩐지…….
(이때 수미의 종아리를 개가 무는 것처럼 갑자기 꼬집더니 개 짖듯 ‘왈’하고 소리치는 남자!)
수미: 엄마야!
(수미, 비명을 지르고 돌아보면 양아치 세 명이 놀라는 수밀보고 낄낄대며 지나간다!)
양아치1: 수미, 많이 컸네? 잘 커야 한다! 낄낄낄!
영주: 누구예요?
수미: (화가 나는) 에이 씨 정말 기분 나뻐…….오빠 초등학교 동창인데, 껄렁껄렁 노상 저러면 서 다녀요. 아무한테나.
(영주, 노려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66. 도서관 마당.
건물 내부엔 온통 곰팡이가 피었고.
마당에서 친구인 점자가 이미 쓸모없어진 책들을 가득 모아 태우고 있다.
수미: 여기가 제가 일하던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는데요. 워낙 낡은데다 얼마 전에 비가 올 때 천장이 새서 온통 물바다가 되버렸어요, 그래서 그나마 있던 책들도 몽땅 젓어
못쓰게 돼 버리고.
영주: 저런. 그래서 어떠해요.
수미: (한숨) 아버지가 어떻게 마을사람들을 설득해보시는데. 쉽지가 않데요.
아예 이참에 문을 닫아 버리자고 들.
(순간 수미의 아쉬운 얼굴을 읽는 영주. )
수미: 다시 보수하고 책도 사려면, 한 사백만원 정도 있어야 하거든요.
점자: 그래서 내가 용득이 오빠한테도 부탁해놨어. 오빠가 돼기만 하면 좀 도와준데.
수미: 정말? 용득이 오빠가 꼭 고추 총각 됐으면 좋겠다.
영주: 고추 총각이요?
수미: 처음 들어보시죠? 우리 용강에선 몇 해 전부터 고추 아가씨가 아니라 고추 총각을 뽑거든요.
영주: (웃으며) 그래요? 그거 되게 웃긴다. 고추 총각.
점자: (약간 기분이 나빠) 그래도, 우리 마을에선 얼마나 유명하다고요. 작년에 뽑힌 옆동네 오빠는 ‘6시 내고향’에도 나갔었어요.
영주: (웃음을 참으며) 그래요……. 미안해요. 웃어서.
수미: 괜찮아요. 사실 우리 마을에도 아직 웃기다는 사람이 있는데요. 뭐.
영주: 그래요. 누가요?
수미: 우리 오빠요.
67. 희철 약국.
수미 대사 오버랩 되면서 좀 거칠어진 모습으로 전화를 받고 있는 희철-)
희철: (쩔쩔매는) 내가 전화를 하며 그때 오면 안 될까? 그럼, 내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긴 했는데. (오버) 아니,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래 재은아, 내가 전화할께. 그래.
(전화를 끊는 희철, 속이 곧 터질 것 같지만 어렵게 참고 끓는 물에 어렵게 구한 라면을 집어넣으면-
이내 꺼지는 가스 불.
희철, 가스를 빼어 흔들어 보고는-)
희철: (울상) 이런 젠장.
68. 희철집, 마당 평상. 밤.
(모기불이 피워져 있고.
고모네 식구들 까지 모여 왁자지껄 수박이며 과일 등을 맛있게 먹고 있다.)
희철 부: (농담하듯) 이거 이렇게 자주 모여 먹다가 우리 집 세간 다 없어지는 거 아닌가?
파출소장: (놀리듯) 그게 지금 농담이십니까? 참, 형님 농담도 재미없게 허십니다!
(웃음이 터지는 가족들.
영주, 이런 화기애애한 가족들의 분위기를 웃으며 바라보다가는 문득 자기를 돌아본 듯 얼굴에 그늘이 스치고.)
셋째고모: (영주에게) 그나저나 부모님, 어디 멀리 가셨나? 빨리 연락이 돼야 날도 잡고 그럴텐데.
영주: …….
둘째고모: 맞아, 얘 결혼시킬때두 그때 바로 날 안 잡았으면 강서방 또 도망갔을지도 몰라!
셋째고모: 언니도 애기 앞에서 참. 이게 농담이여. 듣지 마!
(다시 터지는 웃음
영주, 따라는 웃지만 이런 가족들 앞에서 왠지 죄의식이 느껴지는지-)
영주: (머뭇거리다가는) 저기, 사실 부모님이 안계세요.
일동: …….?
영주: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구요, 저두 수미씨처럼 엄마 얼굴을 모르고 컸습니다.
집이 어려워서 언니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언니랑 저, 그렇게 둘이에요.
일찍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영주의 고백에 식구들, 누구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희철 부도 당황한 듯 얼굴이 굳어진 상태.
이때 할머니께 사과를 수저로 갈아들이면서 말문을 여는-)
큰고모: 둘이면 어떻고 열이면 어때. 어떻게 컸느냐가 중요하지. 잘 컸구나, 힘들었을 텐데!
(따뜻한 음악이 흐르고…….
큰고모의 반응에 놀라는 식구들과 영주.
큰고모는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듯 할머니에게 과일을 먹여드리고 있고.
그런 큰고모의 신뢰 때문일까.
그제야 서서히 영주에게 위로의 말을 하기 시작하는 가족들.)
파출소장: 그래, 그런 게 뭐 중요해? 사람이 중요하지.
셋째고모: 그럼요, 아유, 진작 얘기하지. 고민 많이 했겠네.
(처음으로 진실을 얘기한 영주, 심성 고운 가족들의 반응에 감동을 느끼고.
같은 아픔이 있었음을 알게 된 수미, 영주에게 미소를 보인다.
눈가에 물기가 맺힌 영주, 역시 미소를 보내고…….
69. 동네 어귀 공중전화.
(전화를 하고 있는 영주.
수미는 저쪽에서 영주를 기다리며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신호음이 울리면 영주,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는-)
영주: 여보세요? 네 영주라고 하는. 어머.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언니 있나요?
(잠시 후 언니가 받자, 감정 안 좋은 척)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언니 말대로 여행 중이야, 정말이야. 여기 충청도 용강이야, 용강! 아냐. 내일은 늦더라도 꼭 갈 꺼야. 에이 씨. 언제는 내 말 믿었어?
오지 말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는데. 뭐라고?. 끊어!
(화가나 수화기를 내려버리는 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