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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개학이네요. 다들 방학 잘 보내셨는지요?
부모님들에게는 방학이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이실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아이들과 교사들에게는 쉼이 필요하지요.
특히 제도권 교육에 비해 이것 저것 할 것이 많은 발도르프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에게는요.
(근데 발돌 부모님들은 도대체 언제 쉰대요?
발돌 부모에게 휴식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교사들도 방학기간 잘 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방학동안 내년 준비를 위해 서울가서 교보문고에서 아이들 수업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보고, 고르느라 하루이틀 보내고,
몇몇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그 중 한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
선생님이지만 교대 1년 후배이기도 하고, 이전에 근무한 대안학교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었지요.
저보다 좀 더 오래 그 학교에 있다가(8년쯤?) 그만두고 6~7년 전에 다시 임용을 봐서 공교육 ㅡ 아니 제도권 교육으로 돌아간 녀석입니다. ^^;;
오랫만에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못나눈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학년을 맡은지라 이것 저것 좋은 정보나 자료도 얻을 겸, 녀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큰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올 해 소규모의 혁신학교로 옮겨 근무하게 되었다네요.
어쨌든 발돌을 지향하는 대안학교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겠고,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려고 이것저것 열심히 했나봐요. 또 그러기 위해서 제도권 교육이지만 부모님들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것이 교육인지라, 일반학교이지만 반모임도 하고 그랬다더군요. 뭐 저학년인데다 소규모의 학교이기도 하고, 부모 몇 분은 그래도 공동육아 어린이집 출신들이 있으셔서 담임교사가 하는 교육에 대해 이해도 높고 열심으로 참여해주셨다 하더군요.
그러다 얼마 전, 아이들의 작은 발표회를 한 날 저녁, 부모님들과의 조촐한 술자리를 갖게 되었데요.
옛부터 부모님들과 교사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아야 하는 관계이고,
(오래 지내다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요.)
뭐 공교육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런 만남을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지만
이미 작은 학교에서는 이런 자리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지요.
(하긴 신안 섬마을에서 일어난 그 해괴한 사건도 이미 그 전부터 교사들과 지역 부모님들간의 술자리가 정례화되어 있었기에 젊은 여선생님도 그 일을 피할 수 없었던 거지요. 저도 십 몇 년전 작은 학교 근무할 때, 부모님들과 같이 만나 식사와 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자리들이 많았습니다. )
그럼에도 나름 공동육아 부모출신과 대안학교 교사출신이라는 신뢰와 반가움에,
그리고 거의 한 매듭 끝남을 축하하는 부모님들의 권유에
조촐한 저녁 술자리를 갖게 되었데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 . . . .
한 부모님께서 이 녀석에게 "어이~ 김선생! 한 잔 받어~" 했데요.
처음에는 '김선새~앰(김선생님의 줄임말, 김쌤보다는 늘임말)'이라고 말씀했겠지 했다가, 계속 이야기가 도는 데도 자꾸 김선생, 김선생 그러더랍니다. 자꾸 마음이 불편하더래요. 자기를 너무 어리게 보나 싶어(그래도 이 후배, 애가 셋이고 40대가 넘었습니다.) 그냥 술자리 도중 편하게 슬쩍 나이를 물어보았다네요. 그랬더니 부모님께서 나이는 한 살 더 많으셨다고 하네요. 그러곤 '저는 몇 살입니다' 했더니, '근데 갑자기 왜?' 하는 분위기더랍니다. 어쨌든 술자리는 계속되었고 그 놈의 김선생은 선생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할 말 다 하지 못한 채로 자리를 파할 때까지 있을 수 밖에 없었다더군요. 뭐 선생이란 직업이 그렇지요. . .
그러곤 묻더군요.
"형~ 형이라면 어떻하겠어?"
"글쎄. . . 그런 술자리를 애초에 갖지 않았겠지. 불가원 불가근, 우리 이전에 oo학교에서 많이 경험했잖아~ 초창기 대안학교(2000년대 초)에서도 많이 겪었으면서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근데 난 왜 기분이 나빴을까? 내가 그 부모님들에게 선생으로 대접받고 싶어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김선생이라 불리니까 그닥 기분이 안 좋더라. "
"뭐, 요즘 교사야 동네 멍뭉이만큼도 안 본다며? 뭘 더 바래. 우리가 더 잘 해야지."
"근데, 너무 하대하는 느낌이 들었어"
"니가 하대 받을 짓을 하고 댕기니까 그렇지~~ 바보야"
" (눈빛으로 퍼버벅) --+++++++++ "
"혹시 앞에 '어이~~' 때문은 아닐까? '어이~' 빼고 '김선생~~' 했으면 좀 나았을려나?
하긴 나도 누가 '장선생~~'하면 그닥 기분은 좋지 않겠다. 왜지?"
"혹시나 하기도 하고, 서로 존중하는 뜻에서 난 모든 부모님들께 누구 어머님, 누구 아버님 꼭 하거든. 근데 계속 김선생, 김선생하니까 하대하는 것 같더라고. 서로 존중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그 말은 니가 '김선생님'이란 말을 듣고 싶어서 부모님들에게 누구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 것처럼 들려.
누구 아버님, 어머님. 너무 뻑뻑하게 들리기도 하고, 누구 아버지, 어머니. 누구 아빠? 엄마? 이건 좀 그렇다.
혹시 그 분들도 공동육아 출신이라 하시니, 공동육아에서 별명 부르던 것이 계속되서 그런 건 아닐까? 그때 애들이나, 부모님들이 나 부를 때도, '오늘~'하고 불렀지, '오늘 선생님'하고 부르진 않았잖아. "
"그렇긴 했지. 근데 그거랑 이거랑은 이상하게 느낌이 달라."
"아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들은 오늘이라 부르기도 했고, 오늘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했구나. 음. . . 나라면 어떨까?
장선생~~ 이거 옛날 우리 부장선생님이나 교장선생님이 부를 때 쓰던건데. ㅋㅋㅋ
근데 요즘 공교육에서는 서로 막 "쌤~~"이라고 부르잖아. 김쌤, 장쌤. "
"그러니까. . .그리고 그건 교사들끼리 부르는 호칭이지 부모님들이 담임을 부를 땐 잘 안 그러지"
"요즘 이쪽 판에서는 부모님들도 많이 불러~ 장쌤, 장쌤하고. 시대가 많이 달라졌잖아."
" (일반)학교에선 김쌤이라고 부르는 부모님들은 몇 분 있긴 하지만 거의 없으시긴 한데... 그거(김쌤)랑 이거(김선생)는 다른 기분이더라고."
"니네가 애들을 인질로 잡고있으니 그렇지. ㅋㅋㅋ
근데 왜 기분이 달라? 군대에서 고참병들이나 짬밥 좀 먹은 하사관들이 초임하사나 장교들한테 '장하사님, 김소위님' 대신에 '장하사요~ 김소위요~' 하고 불리는 기분이야? ㅋㅋㅋ 난 선생이라 부르든 쌤이라 부르든 그 말에 담긴 그 사람의 느낌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더라. "
"몰라, 기분이 그냥 그랬어.내가 선생이란 자의식이 강해서 그러는건가? "
"글쎄. . . 내가 그 입장이 되지 않아서 아직 잘 모르겠다. 근데 요즘 읽은 발도르프 책에서 말이지.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오더라고. 실은 쌤보다는 선생이, 선생보다는 선생님이라 부르는 게 중요해... 대접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줄임말이라는 것이....!@#$%%% 그게 대천사가 *&^%$33....에테르체가%~-@:... 경이와 경의와 경외가 @!?%^/♡....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부모와 교사가 서로 존중해주는 관계를 넘어 존경하는 관계가 되어야!@#^&* "
"그만 떠들고 술이나 한 잔 해요. . . 아이들이랑은 그냥 일년만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서로 좋고 아쉬운 시간이 딱 일 년 정도인 것 같애. . ."
"그래, 뭐 시간의 양이 중요하기보단 질이 더 중요하겠지. . .근데 말이야, 결국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 . 내가 선생답다면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을까? 씁쓸한 얘기긴 하지만."
ㆍㆍㆍㆍㆍㆍ
(둘 다 무거운 침묵... 애꿎은 소주만 비운다. 쩝)
"그러니까 그래도 아직은 관계가 건강한 우리 학교로 오지 않을래?"
"내가 대안학교 안 있어봤냐? ㅡ.ㅡ ++++++++++ "
방학을 마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며 돌아보니 자꾸 후배의 이야기가 숙취처럼, 아니 숙제처럼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아직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장선생'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김씨도 아니고, 박씨도 아니니 누군가는 저를 장선생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당연한 일인데도 아무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그분이 제게 '장선생'이라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저 역시 썩 유쾌하진 않을 듯합니다. 아. . . 그 분은 너무 어리신가? 다시 저보다 나이 많은 부모님으로 상상을 바꾸고... 그분이 저를 '장선생~~'이라고 부른다면? 뭐 아까보단 좀 덜 하지만 그래도 그닥? 왜 그렇지? 쩝.
(왜 그렇긴! 뭐 나이로 이러는 거 보니, 뭐 꼰대 맞구만.ㅋㅋㅋ)
왜일까요? 교사들이 가진 쩔은 권위의식일까요? 아님 꼰대라서? ^^;;
나는 부모님들께 'ㅇㅇ어머님', 'ㅇㅇ아버님' 혹은 '선생님(先生님-먼저 태어나셨으니)이라고 부르니까?
그럼 나도 ㅇㅇ아빠, ㅇㅇ엄마라고 부르면? '님'짜 빼고 부르는 거 똑같으니 선생이나 누구 엄마, 아빠나 똑같네요. 그렇게 부를 때 느껴지는 어감차이는 저만 느끼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네요.
뭐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 그러실 분들도 없으리려니와,
그러려면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신 분들이어야 할텐데, 50대가 넘어서신 분들께서 그 정도의 생각과 연륜이 없으시진 않으실테니, 제게 그런 난처한 상황은 잘 안 생기겠지요? ㅋㅋㅋ
하지만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을 게을리 할 순 없는 법.
제도권 학교에 계시는 교사 부모님들은 혹시 부모님들로부터 'ㅇ선생'이라 자주 불리시나요?
제도권을 떠난지 몇 년 된지라 이게 일상화된 용어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네요.
교권이 바닥이라고 하는 요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의 흐름인가 싶기도 하네요.
뭐 학교에서 배우는 일상적인 언어 사용의 예법과 용례의 문제를 들먹여
상호 존중이라는 교양의 문제라고까지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보고 싶네요.
교사인 저부터요.
만약 제 경우라면,
저에게 제 앞에서 '장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으시다면
(물론 뒤에서야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는 것쯤은 저도 다 압니다. 하하하)
저에겐 '장선생'보다는
차라리 '장씨~~'라 불러주세요.
이상하게도 '장선생'보다는 '장씨~~'가 좋네요.
아니면 '승규씨~~~'는 더 좋아요~~ ㅋㅋㅋ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슈타이너 때문입니다.
슈타이너가 한 말들 때문에
말에 대해서, 듣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걸랑요.
그리고 말을 고쳐나가려 노력하는 요즘이고요.
안 하고 살 순 없으니, 잘해봐야겠지요.
그런 저녁입니다.
잘 주무시고 내일 뵈어요~~
I think speech.
I speak.
I have spoken.
I seek myself within the spirit.
I feel myself within myself.
I am on the way to the spirit, to myself.
나는 말을 생각한다.
나는 말한다.
나는 말했다.
나는 정신(靈) 안에서 나를 찾는다.
나는 내 안에서 내 자신을 느낀다.
나는 정신으로, 내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
첫댓글 요즘 사람들 님을 붙여서 부르기 좋아하던데, 고객님, 대통령님, 친구님, 남펀님 등등..안붙여도 좋을 때는 붙이고 붙여야 할 때는 안붙이는...
며칠 전에 청계친구랑 통화하던 유단이 놀라며 하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너넨 샘이라고 불러? 그래도 되애~?? 우리는 절대 안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
시류가 더 낫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우리도 따라야 하지만 아니면 우리라도 지켜야죠.^^
(덧) 먼저 태어나서 선생님이라지만, 학부모인 저에게 선생님이라 부르시는 거 저는 참 민망하던디요. 유단엄마라고 불리워도 저는 암시롱 않더라구요.
넵, 선생님. ㅋㅋㅋ
사람들이 온갖 것에 '님'자를 붙이지만
또 한 편으론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라기보다는
상투어들이지 않나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가슴을 되찾는 일일텐데... 그러기위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밖에 없을 듯 하네요.
시가 쑤욱 파고 들어오네요. (사람관계든 일에서든 일상을 사는 제 모습에서든..막막 찔린다는 것이겠지요?^^;)
거꾸로 살고있는 세상 같아요.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 그게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처럼 그 전은 케케묵은 것이 되고요. 무엇을 어떻게 잘 지키는가를 떠나, 그냥 옛날 것은 일단 떠나- 가 되는 세상. 어떤 것이 진짜였지는 마구 헷갈리는 세상.
그래도 알아채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분들이 여기저기 여기저기 계실거에요. 두 분처럼요. 그리고 그 옆에서 반 박자 늦지만 아차! 하기도 하고.. 세상은 혼탁해지면서도 끊임없이 정화를 거치고 있다고 믿어요. 저도 혼탁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오늘도 화이팅 하겠습니다!
그래서 인지학에서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물구나무를 서야한다고 이야기한 것 같아요. 오히려 거꾸러 물구나무를 서야 제대로 보이는 헷갈리는 세상.
바쁘고 '정신' 없는 그 세상 속에서 용감히 살아가시고, 또 잃어버린 '정신'을 찾으러 아이를 이곳까지 찾아 보내시고 학교를 가꾸시는 일에 애쓰시는 리후어머님을 보며 존경과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잘 믿어주시고 많이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