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 김석수
딸에게 요즘 젊은이에게 인기 있는 영화가 뭐냐고 물었더니 ≪수리남≫이라고 한다. 수리남은 남미 북쪽에 있는 작은 나라다.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마약 거래 대부인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여섯 시간 동안 넷플렉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황금 만능주의에 병든 우리 사회 단면을 블랙 유머를 섞어가며 흥미진진하게 잘 보여 주고 있다.
마약 유통과 관련해서 해외 유명 드라마보다 참신하다고 볼 수 없지만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주인공 강인구(하정우)는 어릴 적에 부모를 잃는다. 어머니는 요구르트를 배달하다가 쓰러져 죽고 아버지는 레미콘 트럭을 몰다가 졸음운전으로 사망한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중학교에 무료로 다니려고 유도부에 들어간다. 그때 배운 유도는 영화 전반(全般)에 주인공이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적절하게 사용해 관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사기꾼 전요환 목사(황정민)는 우리 사회 부조리를 온몸으로 보여 준다. 양의 탈을 쓴 악마다. 그는 그가 하는 모든 못된 짓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어린 신도들에게 마약을 마시게 하면서 주님이 영혼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시아의 영혼을 일깨우려면 코카인을 한국으로 보내서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해야 한다고 강인구에게 말한다. 마약 거래 협상을 하면서 자기 의견이 하느님 뜻이라고 한다. 그가 하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 일부 종교인과 정치인이 가끔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하느님과 국민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강인구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마누라에게 잘해 주고 어떻게든 악착같이 두 자식을 잘 키우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돈 버는 일이라면 비리를 저지르고 뇌물을 주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행동한다. 전 목사가 자기 사업을 망치게 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의 제안을 받고 복수를 하려고 대담하게 전 목사에게 접근한다. 아내와 자식의 생계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혼자 힘들어하는 그를 보며 눈물이 난다.
그를 의심하는 전 목사의 신뢰를 얻는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자신의 행동에서 그는 목숨보다 돈을 우선하는 정체성을 들어낸다. 뭐하러 수리남에 왜 다시 왔냐는 전 목사 물음에 “왜긴 왜예요, 돈 벌러 왔지.”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영화 막판에 차이나타운 깡패 첸진에게 위협을 무릅쓰고 전요환 목사를 죽여버리라고 설득한다. 첸진이 마약 창고를 급습해서 코카인 대부분 물량을 가져가자 전 목사는 그를 배신자로 의심한다. 그는 자기를 의심하지 말고 내부 밀고자인 쥐새끼를 잡으라고 한다.
막판에 전 목사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강인구를 죽이려 하자 내부에 국정원 요원으로 들어간 변기태(조우진)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 전개가 조금 어설프다. 변기태는 첸진 조직에 있다가 전 목사에게로 왔다. 중국어와 우리말을 잘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국정원 요원이라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된다.
국정원 팀장 역할을 하는 박해수 연기도 볼만하다. 전화로 전 목사와 밀고 당기며 관객을 끝까지 긴장하게 한다. 마지막에 마약 구매자로 위장하고 전 목사 요청으로 수리남에 입국한다. 강인구와 동업자 행세를 하며 공항에서 그를 보자 얼싸안으며 “강프로 식사는 잡쉈어?”라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전 목사는 그의 여권을 조회해서 미국 대사관에 갔던 이유를 캐묻지만 임기응변으로 잘 둘러댄다. ‘속이면 살고 속으면 죽는다.’ 는 현실을 잘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마약왕의 정체를 배경으로 줄거리 전개가 관객에게 불안감과 긴박감을 계속 주고 있다. 전요환 목사는 겉으로 정의와 선을 나타내지만 속으로 잔인함과 야만성으로 꽉 차 있다. 신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수리남에서 자신만의 거대 왕국을 만들며 더 큰 돈을 벌려고 온갖 나쁜 짓을 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전요환은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그의 왕국은 아름다운 숲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병들어 있는 늪이다. 거짓과 사기가 판을 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첫댓글 어재까지 카페에 이상이 생겨서 글을 올릴 수 없었네요. 양해 바랍니다.
글로 영화 한 편 제대로 봤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꼭 보고싶네요.
한번 볼만 합니다. 고맙습니다.
어이쿠...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목사는 항상 악역인 게 안타깝습니다.
욕먹을 짓 많이 하는 목사도 있지만 진짜 존경할만한 목사님도 많이 계신데 말이지요. 하하
어쨌든 수리남, 재밌을 것 같네요.
한 번 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친구가 재밌다는 말에 혹해서 지난 10월 연휴에 달렸지요.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 보다 말다 했더니 원장님처럼 독후감 쓸 수준은 안 되었답니다.
덕분에 회상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