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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창 1:14~31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51.05
26.08.27(목)
오늘도 창세기 1장을 세 번째 시간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째 시간에는 창세기 1장 1절에 대해서 우리 생각을 해봤죠.
그 네 단어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절에서 무의 상태에서 창조하셨던 것은 시간 공간 그리고 천하 만물을 이루게 될 구성 물질이었다 하는 것을 우리 생각했고요.
두 번째 시간인 지난 시간에는 첫째 날부터 셋째 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그 1절에서 만드신 구성 물질들로 구체적으로 이 천하 만물을 어떻게 사흘 동안 창조하셨는지를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빛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심으로 이 천하 우주가 하나님의 질서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빛은 태양 빛하고는 다르다고 그랬죠.
이제 오늘 살펴보겠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태양은 넷째 날에 만드셨거든요.
그래서 태양과는 상관없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자연과학적인 접근으로 생각한다면 그 빛은 해와 달을 비롯한 모든 발광체를 위한 에너지원이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적으로 본다고 하면 그 빛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든 빛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빛은 곧 말씀의 빛 생명의 빛 진리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생 추구해야 될 근원적인 빛이죠.
그 빛 속에서 우리의 삶이 질서를 바로잡게 되는 것이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게 된 그 상황을 간증하는 가운데에 낮 12시였는데 하늘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자기를 두루비추었다. 바로 그 빛인 것이죠.
그 빛을 만남으로 사도 바울의 삶 속에 비로소 진리와 생명을 질서가 시작되는 것이죠.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제가 다니던 신학교에 주기철 기도탑이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이름이 붙은 기도탑이죠.
그 기도탑 조그만 골방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성경의 기록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은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들을 저한테 하나씩 하나씩 경험하게 해주시는 가운데 이 빛도 제가 경험하고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을 기도 가운데에 본 순간에 그야말로 태양은 어둠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빛이라 이 빛 속에 거하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는다.
그 빛을 추구하지 않으면 태양빛은 빛이 아니라는 거죠. 그건 어둠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사야 60장 19절에서 이렇게 이사야 선지자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새 하늘 새 땅에 이르러서 이 세상이 에덴으로 회복될 때 다시는 낯에 해가 내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리라
이 하나님의 빛 속에서는 낯의 해가 빛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빛을 경험함으로 이사야 60장 19절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지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빛 속에서 제 삶의 모든 질서가 바로잡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조명 속에 있는가 성령의 빛 속에 있는가
결국 이 말씀의 빛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의 빛으로 나를 비춰볼 때에만 내 삶 어느 부분이 이지러져 있는지 어느 부분을 내가 바로 세워야 되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단 말이죠.
그 근원적인 빚을 하나님께서 첫째 날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 날 하나님께서 물 가운데 궁창을 두시고
궁창 즉 하늘을 두시고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물을 나누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는 하늘 위 대기권 위를 물들이 뒤덮고 있었다고 그랬죠. 창세기에서 사람들이 수백년씩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자연 환경 속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다 어디로 갔는가?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을 여시고 그것은 모세가 무식해서 창문을 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가 아닌 하늘 위의 물이 떨어졌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늘의 창들을 여시고 물을 다 쏟아 부으셨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이후에 그물이 다 쏟아진 이후에 인간의 수명이 점점 줄어들어가지요. 그건 우리가 또 그 해당 본문들을 볼 때 함께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셋째 날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물들을 한 곳에 모으시고 땅과 물을 분리시키셨어요. 땅과 바다를 분리시키셨어요.
그래서 땅 위에 뭍 위에 온갖 풀과 채소와 과목이 나게 하셨단 말이죠.
그런데 성경이 강조하는게 그냥 나게 하셨다.
그게 아니라 각각 그 종류대로 진화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단백질이 결성되고 거기에서 우연히 하나의 세포가 나오고 그 세포로부터 온갖 생물체들이 진화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류의 풀을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쉽게 말해서 이 종이 저 종이 될 수 있는게 아니라 이종은 이종이고 저종이 저 종으로 만드셨다.
3400년 전에 모세의 두뇌로는 그런 말을 쓸 수 없는 거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셨기에 하나님의 영감속에서만 기록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땅들은 모든 풀과 모든 채소와 모든 열매 맺는 나무를 내어라 그 순간에 온 세상이 초목으로 변한단 말이죠.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히브리 원문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그랬죠.
굉장히 간단한 한 구절이지만 그 문장이 간단한만큼 하나님 말씀의 절대적인 능력과 권위가 우리에게 음습을 해요.
그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빛이 충만해지는 세상 물속에 하늘이 솟아오르면서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갈라지는 형상 이런 모습을 한번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이고 얼마나 장엄하고 얼마나 웅대 합니까? 그걸 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셨단 말이죠.
그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제일 첫 장부터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으로 그 말씀을 시작되요.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으로 오늘도 우리의 삶을 날마다 새롭게 창조해 주시는 분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이 창세기 1장을 얼마나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질과 수준과 내용이 달라진다고 그랬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한번 살펴보십시다.
14절에서 19절까지 우리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그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낯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10:00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는 이미 만들어 주신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 일월 성신을 만드신 이 넷째 날과 관련해서 우리는 네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던 시기는 3400년 전입니다.
3400년 전 사람들에게 해는 뭡니까?
신이어요 달도 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던 에집트 사람들 다 태양을 신으로 모셨습니다.
3,400년 전에만 그랬습니까?
2000년 전에 그리스 신화는 또 뭐라 그래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론 영어로 아폴로 태양신이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디아나 영어로 다이아나 달의 신입니다.
요즘은 또 어떻습니까?
일본 천황 이름 앞에는 성이 없습니다.
일본 천황은 이름만 있죠.
왜냐하면 일본 천황은 기원전 660년에 태양의 여신 아마 테라스의 자식이라는 거여요. 그래서 태양신의 자식이기 때문에 성이 없습니다.
지금도 일본 천황은 신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데 자기가 태양 여신의 자식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든 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저 하늘에 있는 어떤 일월 성신도 인간의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창조물이니까? 피조물이니까?
3400년 전에 모두가 태양을 신으로 생각할 때 모세가 생각해낸 것이겠습니까?
아니죠 태양을 지으신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내가 지은 것이다. 너희들은 누구도 태양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라 지금도 태양신의 후손이라고 족보를 꾸미고 있는 일본 천황을 보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웃으실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태양을 네 번째 날 만드셨기 때문에 태양이 있음으로 해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번 자전하는 그 시간의 길이가 24시간 하루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넷째 날부터 하루는 지구의 자전에 의한 24시간인게 분명해요.
그런데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태양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의 하루와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의 하루가 같다는 사람도 있고 틀리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느냐 말이여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가지 다 맞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첫째날부터 셋째 날의 길이와 넷째 날의 넷째날 이후의 날의 길이가 똑같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우리가 창세기 2장 가서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래째 마지막 날 안식하셨다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근데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그 여섯째 날 매일매일의 시간이 똑같아야지 어떻게 첫째 날부터 셋째 날과 넷째 날부터 그 다음 날 이후가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있겠느냐 일리가 있죠.
그죠. 또 틀리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이제 다음 시간에 그 전문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마는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던 무에서 유의 세상이 있기 시작한 것 그것을 천문학에서는 빅뱅이라 그러잖아요.
그 빅뱅 이후에 태양계가 생길 때까지 약 100억 년이 지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약에 그 과학적인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태양을 만드시기 전에 사흘 동안은 100억 년이 뭐 하루는 33억이어요
그리고 태양을 만드신 날부터 24시간으로 바뀌어지니까? 같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다 일리가 있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결과적으로는 똑같다요 왜 똑같은가
하나님께서 시편 90편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셔요.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년이 밤의 한 점 1초도 아니에요. 한 정점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인간이 시간 속에서 사는 인간이 인간의 시간적인 개념으로 100억년이다 33억 년이다 하지만 시간 밖에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33억 년이나 24시간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말이죠.
따라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을 길이가 다를 수 있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날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길이가 같으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넷째 날에 태양과 달과 별들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세 번째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4절 보십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의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하나님께서 태양을 만드심으로 낮과 밤을 나뉘게 하셨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자전을 할 때 24시간 자전하잖아요.
그래서 하루를 하나님께서 낯과 밤으로 구성되게 날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낮만 있으면 하루가 안 돼요.
밤만 있어도 하루가 안 됩니다.
낮과 밤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창조하신 하루 24시간이 구성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낯이 소중한만큼 밤도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낯의 소중함은 참 깊이 생각하지만 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낯과 낯 사이를 연결하는 시간이 뭐예요.
밤 시간이잖아요.
낮이 건강하려면 어떤 시간이 건강해야 되겠어요.
밤 시간이 건강해야 합니다. 낮 시간의 수준은 밤 시간에 의해서 결정돼요.
제 고백을 드리면 예전에 말이죠.
제가 술독에 빠져서 살 때 새벽까지 술 먹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당시에 낮 동안에 한 번도 제정신으로 살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때까지 항상 흐리멍텅해요.
뭘 생각을 하는데도 명료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5시 6시쯤부터 정신들만 하면 또 전화 돌리잖아요. 술 약속해야죠.
그리고 또 취해 있으니까
그 다음날 하루 종일 없어지는 거죠.
여러분 밤 문화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죠.
밤 문화 이러면 어느 나라든지 부정적으로 의미로 사용되요. 향락적이고 대표적인 모든 문화를 가리켜서 밤 문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루를 주셨는데 낯과 밤을 어우러지게 하루를 주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인 밤문화를 구축하는 사람들이 돼야 되죠.
어떤 것이 우리의 밤 문화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만남이 있어야죠. 내가 밤에 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힘을 얻지 않습니까?
20:00
그런데 예전에 술취해서 집에 들어가면 그게 안 돼요.
상대방의 눈의 깊은 곳이 보이질 않습니다.
또 우리가 밤 시간에는 그날 하루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하나님 앞에서 되새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밤 문화를 이루는 시간 아니겠습니까?
시편 42편 8절이에요.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낯 동안에 당신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신다는 거예요.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이다.
내가 밤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셨구나 그래서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내 속에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끌어올라 그래서 내가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라
밤은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밤은 더없이 중요한 안식과 쉼의 시간이죠. 잘 쉬고 잘 자야죠.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또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루를 또 맞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낮 시간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낮이 중요하기 위해서는 밤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의 24시간은 후회 없는 시간들로 엮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네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낯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그 하늘에 있는 해와 달을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셨다는 거예요. 우리말 성경에는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 이렇게 해서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징조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 말로 옷트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표 표시 증거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원문에는 어떻게 이 말이 기록이 되어 있는가 하면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기 위하여 있으라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만드시고 그 해와 달에게 명령하시기를 너희들은 계절 하루 24시간 날 해 365일 1년을 나타내는 표가 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존재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태양력이든 태음력이든 모든 시간과 계절과 날짜 계산은 해 아니면 달을 중심으로 우리 캘린더가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표가 되도록 그 증거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는 거예요.
따라서 하나님 오시는 날까지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다른 표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만드신 해와 달만 계절이 바뀌고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표식으로 하늘 위에 언제든지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20절에서 22절 말씀 이제 다섯째 날 보십시다.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이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이는 다섯째 날이라
하나님께서 다섯째 날에는 물속에 각종 크고 작은 모든 생물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온갖 새를 만드셨습니다.
여기에서도 강조하는 용어가 뭐죠 각각 그 종류대로 하나하나 종류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백과사전이라든지 뭐 아니면 컴퓨터를 통해서 새들의 종류를 나타내는 도감 또는 물고기들을 나타내는 도감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들이 많지 않습니까?
근데 희한한 건 우리나라에는 새들 중에 천연색 새들이 별로 없어요. 그죠.
그런데 저 아열대 지방에 가면 정말 새들이 온갖 천연색 깃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새들이 그 새가 본인이 원해서 색깔이 그렇게 바뀌었다 저는 그것을 믿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분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게 이상한데 정말 그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형외과는 다 문 닫아야 되잖아요.
여자들이 내가 오직만을 원하면 다 예뻐서야하지요. 그렇게 안 되지 않습니까? 그죠. 하나님께서 그 많은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 따로따로 만드셨음을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24절 이제 마지막 날 지으시는 겁니다.
24절에서 25절을 한번 보실까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에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의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가축과 짐승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가축은 잘 알다시피 사람과 더불어 사는 짐승이고 그냥 여기에서 짐승이라고 표현한 것은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을 의미하는 거죠.
그 모든 동물들도 하나님께서 각각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26절 드디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십니다.
26절 읽어 볼까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에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에 땅과 땅의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자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이제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시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지금까지 천하 만물과 짐승 새 고기들을 만들 때와는 표현 자체가 틀려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만들고 그 앞에도 하나님은 엘로힘 삼위일체 하나님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을 만들 때에만 특별히 성부 성자 성령님 하나님께서 우리가 만들자라고 사람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음을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여기에서 형상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말은 셀렘인데 본래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으면 그림자가 있을 수 없잖아요. 그죠. 그림자는 실체의 반영이죠.
그래서 이 그림자라는 의미가 형상이라는 뜻으로 바뀌어지게 되었죠. 또 우리의 모양대로 여기에서 모양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테무트인데 이것은 동사 따마에서 나왔는데 닮았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당신과 닮음으로 인간을 만드셨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은 영이시잖아요. 그렇죠. 우리와 같은 형체를 안 가지신 분이시죠.
따라서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형상과 모습이라고 하는 모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품성 하나님의 속성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죠.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만드시는가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의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면서 그 목적에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만드신 천하 만물을 다스리게끔 하시기 위해서 만드셨 습니다.
30:02
여러분 첫째날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은 우리는 그하나님께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이 천하 만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끌어가는 존재로 만드셨음을 우리가 깨달을 때에 내가 실패하고 가난하면 가난주님대로 주님의 뜻을 쫓아 내가 부유하다면 부유한 대로 교만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좇아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일구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늘 지엽적인 문제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근시안적인 삶에서 탈피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이 구절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시는 거죠.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형상
거기 공표를 한번 해 보십시다.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도 공표를 하시고
하나님을 형상하고 연결을 하십시다.
새 신자반을 이수하신 분들은 다. 배우셨죠.
하나님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하나님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시죠.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남성상으로 이해해 왔단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부터 당신을 형상으로 남자만 만드신 것이 아니고 그 경우는 하나님의 남자죠. 당신의 형상대로 여자만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그 경우라면 하나님은 여자겠죠.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드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부성과 모성을 동시에 지니신 분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일깨워 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어떤 신화에든지 남신과 여신이 항상 같이 등장해요 파워업 하고 능력이 있고 강력한 신상을 원할 때는 사람들은 남자신을 추구하고 어머니처럼 섬세하고 자애롭고 깊은 사랑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여신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자신들을 필요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모성애와 부성애를 동시에 지니신 분이심을 우리에게 일깨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남신이 따로 필요하고 여신이 따로 필요없죠
만약에 이 사실을 좀 더 깊이 생각했다고 하면 카톨릭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신격화해서 여신으로 모시지 않아도 될 뻔했죠.
가톨릭에서는 마리아 여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성애가 필요할 때 마리아에게 기도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내가 하나님 부를 때 그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기도 하고 내 어머니이시기도 하거든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어요.
남자 혼자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여자 혼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혼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고 했죠.
남자 여자가 한데 어우러져 삶으로 부성애와 모성애를 동시에 지니고 계신 하나님의 품성과 속성을 그 삶 속에서 회복시킬 수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60억 인구가 있고 30억은 남자고 30억은 여자라 해도 다른 사람이면 안 된다고 그랬죠.
내 남편 내 아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지지리 속을 썩이는가 새 신자반에 말씀드렸죠. 나를 속썩이는 내 배우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난 부분을 가시고 내 속에 하나님을 형상을 회복시켜 주고 계신단 말이여요.
그런 사실을 우리가 알 때 살아가면서 일시적으로 의견의 불일치가 있고 부딪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불신하지는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죠.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직후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1절 22절 한번 보십시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만 복을 주신게 아니죠.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들 새들을 지으시고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아까 사람에게 한 말하고 똑같죠.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를 바란다면 매일 매일 내 사업이 커지고 내 자식들 출세하고 모든 것이 잘 되기만을 바란다면 짐승과 구별되지 않죠.
하나님께서는 짐승에게도 복을 주시고 너희들은 내가 주는 복속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근데 짐승들은 열심히 번성하면 되는 거여요
생육하고 충만하면 짐승으로서 삶의 도리를 다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는 뭐라고 하셨는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법칙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진리를 쫓아 이 세상을 일구어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고 사람과 짐승의 차이입니다.
새 신자반에서 하나님의 복은 메이커의 애프터 서비스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만드시고 그 피조물이 피조물 다울 수 있도록 애프터 서비스 해주시는게 복이다.
그래서 여러분 짐승들은 그 하나님의 법 속에서 지금도 짐승 다아요. 그렇죠. 짐승 안 다운 짐승은 좀 문제가 있는 짐승이죠. 그죠. 모든 짐승은 지금도 짐승답습니다.
그런데 인간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 복을 상실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짐승처럼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는 것만 삶의 목적으로 삼지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자기의 삶을 일구어 가려고 하지 아니해요.
하나님의 이 복을 상실했기 때문에 사람만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걸 뭘 이야기하는가 이 복을 회복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73편 2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게 복이라는 거예요.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의 모든 행적을 전파한다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모든 뜻대로 내 삶을 이루어 내 주의 그 뜻대로 구축해 가겠다 이 고백이죠.
40:02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나의 복입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왜 그 하나님의 복속에서만 우리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고
그 사람만 나중에 코 끝에서 호흡이 끝날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죠.
2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들에게 뭘 먹으라고 말씀하셨어요. 모든 채소를 먹고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양식이 채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늘 위를 물층이 뒤덮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채식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9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요.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다 주노라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을 채식만 하게 만드셨는데 이젠 너희들 동물도 먹어라 피를 흘리더라도 육식을 해라 그러면 채식을 하라 하실 때와 육식을 하라 하실 때 그 사이에 무슨 사건이 있는 거예요.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습니다.
그 하늘을 뒤덮고 있던 물이 다 쏟아진 이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체질을 아시기에 이제부터 너희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육식을 해라
30절 보십시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의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풀을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땅에 기는 모든 짐승 새에게도 이 땅의 풀을 먹을거리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지으실 때 모든 짐승은 초식 짐승입니다
독수리 풀만 뜯어 먹어도 돼요. 매 풀만 뜯어 먹어도 돼요. 사자 풀만 뜯어 먹어도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이제 믿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한번 찾아보십시다.
이사야 11장 6절에서 8절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의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된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시면 이루어질 세상을 지금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인간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서 실락원 했던 에덴의 회복을 지금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표범과 양이 같이 있을 수 있죠.
어떻게 어린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을 수 있어요.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모든 짐승은 초식동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피를 흘리고 싸울 일이 없죠.
그런데 왜 짐승들 세계에서도 육식동물이 생기기 시작했는가 노아의 홍수 이후죠.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지 않습니까?
노아의 홍수의 원인은 인간의 타락이었죠. 그죠.
여러분 인간의 타락은 그 인간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자연계의 대변화를 초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이 되고 사람들이 먹는 양식도 바뀌어지고 세상의 질서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죄와 벗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되는 이유는 내가 죄를 지으면 여러분 그것은 나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나의 죄는 나와 관계되는 모든 것과의 관계를 뒤틀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나의 죄로 인해서 나 혼자만 고통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련되는 많은 관계성 속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창세기 1장부터 하나님께서는 가르쳐 주시는 거죠.
31절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심히 보시기에 좋았대요.
여기에 심히라고 하는 히브리어 내오더는 열렬하다. 이런 뜻인데요. 양과 질적으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완벽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보시기에 좋아하셨다는 거예요. 왜 왜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그 속에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신 그 궁극적인 목적에 사람을 만드시기 위함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당신의 피조 세계에 두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심히 보시기에 좋아하셨다는 거예요.
한 13년 전에 제가 코스타리카라고 하는 데를 갔었을 때 거기에 칼리브 해변을 한번 찾아 갔습니다.
그 카리브해가 참 그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정말 아름답더군요.
그냥 끝도 없이 펼쳐진 해변의 야자수들 서 있고 은빛 모래사장 푸른 하늘 거기에 흰 구름이 무늬를 그리고 있고 새들 날아가고요. 완벽한 그림 역사예요.
그런데 뭔가 허전해요. 완벽한 그림인데 뭔가 허전해요. 뭔가 저래 뭐가 저렇게 허전한가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뒤 쪽에서 차가 한대 오더니 아가씨 한 세 명의 와 소리를 지르면서 해변으로 뛰어가는 거예요.
그 코스타리카의 인구가 뭐 한 3~400만 명밖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어디를 가도 사람을 잘 못 만납니다 그 허전했던 것이 그 아름다운 해변의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아가씨 3명이 소리를 지르고 해변을 뛰어들어감과 동시에 해변이 살아 움직이는 그때부터 그게 아름다워지는 거여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아무리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한들 여러분이 안 계시면 내가 없으면 하나님은 그저 보시기에 좋을뿐 심히 좋지는 않은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가 절대로 우리를 함부로 가꿀 수 없죠.
정말 우리가 심히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 보기에 아름답도록 우리의 삶을 가꾸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창세기 1장을 3시간에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저 하루 만에 이거 다 그냥 한번 슬쩍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3시간에 나누어서 살펴본 이유는 이 창세기 1장에 있는 이 모든 내용은 전설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휙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렇게 만드시고 이렇게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내용을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서 3시간을 할애 했습니다
이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만이 나머지 성경 모든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고 이 내용 중에서 몇 개를 이건 아닐 거야 못 믿는 사람은 성경에서 많은
부분을 못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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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가 3시간 동안 살펴보았지만 저는 과학자가 아니잖아요. 그저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봤을뿐입니다.
따라서 다음 수요일에는 연세대학교 천문 우주학과 교수이신 윤석진 집사님 우리 교회 집사님이십니다. 윤석진 집사님께서 천문 우주학자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 1장 특강을 해 주시겠습니다.
그분이 볼 때 창세기 1장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이것이 사실의 전달이 되는 이야기인지 한번 특강을 들어보기로 하고요.
7월 18일 날 수요일에는 고대의대 학장이신 최상용 장로님께서 그분도 우리 교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체 사람 몸의 신비로움에 대해서 이게 과연 진화해서 이렇게 될 수 있는 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오묘하게 창조하셨는지 7월 18일 날 두 번째 특강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자 중요한 것은이 창세기 1장을 시작할 때 이 창세기 1장이 누구를 위해서 일차적으로 쓰여졌다 그랬습니까? 400년 동안 노예살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1차적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미디안 시나이 광야를 지나가면서 모세가 얘들아 너희를 이끌어 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니 그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을 쭉 기록했습니다.
설명을 해줬어요 이 창세기 1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표현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비하시고 사람을 만드셨다는 거예요.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면 여러분 우리는 사랑하면 급해져요.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부터 먼저 창조하죠. 그래놓고 내가 너 사랑해 그 사람은 벌벌 떨어야죠. 먹을게 있습니까? 입을게 있습니까? 아마 숱하게 고생시킬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만드신 뒤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모세가 이걸 가르쳐 주는거여요 얘들아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이분을 믿고 우리 이분을 섬기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자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은 광야와도 같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 광야와도 같은 곳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을 때에만 우리가 이 광야 세상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살아가는 진정한 성경의 삶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죠.
우리 마지막으로 잠시 마태복음 6장 25절 34절 한번 찾아보십시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드리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나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나니라
오늘 이따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멘
예 그 근거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창세기 1장을 통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우리를 나를 창조해 주셨음을 확인시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를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주시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겠다고 순서를 바꾸어서 주님 앞에 청구합니다.
주님 믿음은 이 순서를 바로 지키는 것임을 잊지 말게 도와주옵소서
이 순서를 바로 지키는 가운데에 우리의 삶이 매일매일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는 창세기로 엮어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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