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0월 17일(목)■
(마가복음 15장)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묵상)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40)
이들은 멀리서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십자가 곁으로 갔었다.(요 19:25)
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 옆에서 애통해하는 여인들이었다.
이들은 남자들보다 더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준 여인들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린 여자였는데, 예수께서 치료해 주셨다. (눅 8:1)
그녀는 가장 흉악하고 천한 여자였는데, 가장 경건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었다. 아마 성경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모친으로 대부분 주석하지만, 필자의 의견에는 마가가 예수님의 모친을 그렇게 묘사하지 않았나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마가는 마가복음 6장 3절에서 예수님의 동생중에 야고보와 요세(우리나라 성경에는 요셉으로 번역되었으나 원어에는 요세로 되어있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이 그 자리에 분명히 있었는데(요 19:27), 마가가 누락시켰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이다. 살로메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동생이기도 하다.(요 19:25)
이들은 평소에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소유를 털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뒷바라지 했다(눅 8:3).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이들이야 말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주님을 섬긴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성경에는 사역의 전면에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주님께 충성되고 헌신된 삶을 살아간 수 많은 여인들을 소개한다. 이들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구한 진정한 일꾼들이다. 사람들은 사역의 화려함으로 열광하지만 주님은 결코 사역의 화려함 여부로 상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42)
원래 유월절 다음날은 안식일로 지키도록 되어있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유월절 당일이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이제 유월절과 그 날짜들은 모두 과거의 그림자가 되었다.
실체가 오신 다음에는 그림자는 의미가 없다. 실체되신 예수님을 붙잡지 않고 오늘날의 유월절 날짜를 알고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상홍 집단(하나님 어머니라고 부르는 집단)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바로 사이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43)
나는 성경을 읽을 때 헬라어 톨메사스를 '당돌히'라고 번역한 것에 감탄한다. 우리 신앙에서 '당돌히'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리마대 요셉은 매우 적절하게 그렇게 행동했다.
아리마대 요셉은 한마디로 고위공무원이었다. 그가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한 당시 최고 지도자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서 시체를 달라고 한 것은 빌라도에게 '나는 당신이 죄인으로 정죄한 자와 무척 친한 사람'이라고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빌라도에게 대적하고자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행위며, 출세를 포기한 것은 물론, 지금 있는 자리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다.
그 모든 것을 담보하며 기꺼이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 무덤에 안치한 요셉은 참으로 본받을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 같아도, 암암리에 예수님을 위해 목숨걸고 사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고, 이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이다. 나도 이런 믿음의 선진들을 따르기를 원한다.
주 예수님, 어떤 위험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님을 시인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믿음을 선포할 수 있는 용기있는 성도가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