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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103편1~14절
제목 : 어찌 찬양 안 할까
시인은 자신이 경험한 은총에 이어 이스라엘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용서 앞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본 시에서 “자기에게 찬양 하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송축하여야 할 이유를 크게 둘로 나누어 말씀합니다.
하나는 거룩한 이름을, 또 하나는 받은 은택에 대하여 송축하라고 합니다.
받은 은택은 “자신이 받은 은택과 이스라엘이 받은 은택”에 대하여 말씀하고,
천군 천사 모든 피조물들이 다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심(1~2절)
“[1]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2]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것은 여호와 찬양을 위한 자기 권고적 표현일 뿐 아니라(104:1),
시인이 기꺼이 하나님 찬양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Anderson).
"영혼"으로 찬송함은, 온 몸과 마음을 다 한가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음악은 음악의 영혼이다(Soul music is soul of music).
"내 속에 있는 것들"이란 말은 내장(內臟) 부분을 가리키는데,
모든 사상, 온갖 감정이 작동하는 마음,
다시 말해서 의지, 양심, 이성, 정서 따위로 표현될 수 있는,
인간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전인적 실체들을 가리킵니다.
시인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를 거론하는 대목에서 이 같은
전인적 실체들을 강조하는 이유는
외형적인, 입술로만 드리는 예배를 배격하기 위함입니다.
그것들이 기뻐 동할 만한 찬송은 생명 있는 것입니다.
물론 천상에서나 그 완전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겠으나,
이 같은 전인적 실체를 동원한 예배를 드리겠다는 결심이 있다면,
어느 정도 훌륭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공(人工)으로 일으킬 수 없고 성령님의 감화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설혹 우리에게 그렇게 속에서 솟아 나오는 찬송이 없는 경우에라도,
그것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2) 송축할 내용
(1)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1절)
(2)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2절)
여기서 '은택'이란 3절 이하에 열거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역들을 가리킵니다.
2. 개인에게 임한 찬양의 이유(3~5절)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4]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1)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셨습니다(3a절)
“[3a]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기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독백하듯 선포한 후 과거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은총을 하나하나 열거하기 시작하는데(3-5절),
열거 내용 중 그가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유(赦宥)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총 중 가장 큰 것은 죄 용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땅 위에 사는 동안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에 둘러싸여 사는데,
그중에서도 죄 용서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에 관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이 사실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유명한 교부(敎父)인 어거스틴(Augustine; A.D. 354-430년)이 명확히 밝히는 바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우리 자신의 罪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하나님의 은총이란 없을 것입니다”.
2) 내 병을 고져 주셨습니다(3b절)
“[3b]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여기서‘병'육체적 질병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모두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중시할 때 '모든 육체적 질병'으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육체적 질병으로부터 회복된 과거를 기억하며,
이 같은 고백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Barnes).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의 위대한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어거스틴(Augustine)은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습니다.
“죄 용서함 받은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신체를 이끌고 다녀야 한다...죽음(사망)이 완전히 삼키움을 당하지 않은 까닭에 육체는 아직도 불완전에서 해방되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 육체에 거하는 영혼은 유혹과 시험으로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질병은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
우리는 질병들을 너무 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되신 하나님은 그 질병보다 더 중한 (큰) 분이시다.
전능하신 그 의사에게 못 고칠 질병이란 없다.
그의 손을 뿌리치지 말라. 인간의사는 때때로 실수를 범한다. 왜?
그것은 인간 의사는 자신이 치료를 수행하고 있는 그 환자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환자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만드셨다.
그는 그가 창조하였던 자를 재창조하는 법을 아신다.
그는 자신이 형성하였던 자를 재형성하실 수 있다.
그 의사의 손아래 너 자신을 맡기라...그의 손을 의지하라.
모든 그의 은택들을 잊지 않음으로 그분을 송축하라.
그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3)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했습니다(4a절)
“[4a]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현세에서 부터 우리 영혼의 생명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救贖)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육신의 생명도 그로 말미암아 구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육신이 위험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출된 일이 많습니다.
4)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습니다.(4b절)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란 것은,
곧,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그에게 풍성히 임하여 있음을 말함입니다.
5)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셨습니다(5a절)
“[5a]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우리의 영혼은 좋은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좋은 것이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 그것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한 분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시인은 본 구절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좋은 것'이란 기자가 과거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한 무엇이며,
그 경험은 하나님으로 인해 되어졌습니다.
6)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십니다(5b절)
“[5b]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이 비유는 사40:31의 표현을 연상시키며 그 소재는 독수리의 신속한 날개 짓에서 취하여 진 바 힘과 활력을 나타냅니다(신28:49; 삼하 1:23; 렘 4:13).
모든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분만을 추구하는 자는 날마다 독수리의 날개 침 같은 힘과 활력을 부여 받게 될 것입니다.
3.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찬양의 이유(6~10절)
1) 공의로운 일을 행하며 심판하시는 하나님(6~7절)
(1)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십니다.(6절)
“[6]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
“억압 당하는 모든 자” - 일차적으로는 고통당했던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가리키지만, 좀 더 넓게는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환난과 핍박을 받았던 교회를 암시합니다.
1~5절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였던 기자는,
6~14절에서는 언약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해서 언약 공동체에게도 동일하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해 진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은 온 이스라엘에 미치는 거대한 은총의 범주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2)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습니다(7절).
“[7]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그의 행위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나 의도'(18:21; 25:4, 9; 37:34), '도덕적 성향, 성품'(39:1; 50:23) 등을 뜻하지만,
본 문맥상으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가 그 후에 땅 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규례들, 개인을 포함한 민족, 교회 공동체를 향한 전 포괄적인 하나님의 경륜 등을 뜻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기도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출 33:13).
2) 우리의 죄과에 대하여 너그러우시게 처분하시는 하나님(8~10절)
(1) 인자하심이 풍부하십니다.(8절)
“[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출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특히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부분은 신 4-10장; 27-31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십니다.(9절)
“[9]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① 경책하지 아니하십니다.
'경책하지'는 '다투다','겨루다','법정으로 가다'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정한 율법에 따라 행위를 계속해서 추궁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의하여 그 백성을 판단하십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죄 사함의 과정을 통해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를 드러내시는데 그 까닭은 죄악 된 그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율법의 규례에 따라 철저히 그 행위를 따진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사57:6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②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십니다.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 대해서는 그 노를 결코 계속해서 갖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레19:18에도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 죄와 죄악을 따라 그대로 갚지 아니하십니다(10절)
“[10]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죄...죄악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각각 '헤트'와 '아온' 입니다.
우선 헤트'(죄)는 어원적인 의미에 있어서 '표적을 벗어남', '실수'등을 뜻하며 (욥 5:24; 잠 8:36; 19:2). 함축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한 사람이 그의 자의적인 선택을 따라 표적을 벗어나 길을 잃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또한 '아온'(죄악)은 '구부러지다', '비틀리다' 혹은 '실수하다', '방황하다' 등을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되었는데 따라서 이 명사는 '구부러짐', '왜곡됨' 혹은 '실수', '바른 길에서의 이탈'등이 되겠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후자의 의미를 더 선호합니다(Anderson).
그러나 전자로 보든지 후자로 보든지 강조점은 그 같은 행위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행위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볼 때 '헤트'와 '아온'은 약간의 의미상의 차이는 있지만 주체의 의도성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동일한 용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의도성을 띤 죄악을 용납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징벌의 동기는 그 범법자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범법으로부터 돌이키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조차도 그의 자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4. 이스라엘에게 인자를 베푸신 이유(11~14절)
1) 경외하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크십니다(11절)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36:5)와 유사한 표현입니다.
하늘과 땅의 거리는 인간의 측량기로 잴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끝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그분 자신만큼이나 무한하고 끝이 없습니다. 물론 여기의 자비와 사랑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26:3).
*시26: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2)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기셨습니다.(12절)
“[12]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본문은 그 같은 심각한 죄악을 저지른 자라도 진정 회개하면,
하나님이 크신 자비를 베푸사 완전히 용서하신다는 점을 묘사하고 있는데, 유사 사상을 지닌 표현이 미 7:19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7: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3)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13절)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성(父性)은 단순한 혈통적 관계보다는 순종하는 자와 은혜를 베푸시는 분 사이의 관계를 강조합니다(Gray).
시편에 있어서도 부자(父子)관계는 혈통상, 민족상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순종의 문제에 역점이 두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뜻대로 살아가는 자인 것입니다(11절).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성을 언급하고 있는 곳으로는 출 4:22; 신 14:1; 32:6; 사 1:2; 45:11; 63:16; 64:8; 렘 3:4, 19; 31:9; 호 11:1; 말 1:6; 2:10; 3:17 등이 있다.
4)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14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
체질 특히 이는 인간이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창 2:7에서 사용된 동사 '야차르'에서 파생한 명사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부서지기 쉬움, 연약성 등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을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됩니다(욥 7:5).
이를 달리 말하자면, 티끌과 진흙으로써 지음 받은 연약한 인생은(욥 4:19; 34:15; 전 3:20; 12:7)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써만 진정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78:38).
*78:38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향해서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분은 시인의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송축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인의 병을 고치시고, 언약을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시인을 수치의 자리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필요을 채우시고 고난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라 하십니다.
회개하시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십니다.
절망이 두터울수록 소망을 틔우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분명 회복은 피어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복을 받으시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우리의 영원한 찬양의 주인이자 주제가 되시는 분입니다(1,2절)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향해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해주셔야 할 이유와 내용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와 내용에 대해서는 빈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마10:30)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은혜는 무엇입니까?
2) 위기의 순간과 그 이후의 삶까지도 복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3~5절).
하나님은 시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쳐주시며, 파멸의 자리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것만도 감사한데 사랑과 긍휼로 관을 씌워주시고,
날마다 생명의 기운을 주셔서 언제나 그분 앞에 청춘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은 모두 청춘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으렵니까?
3) 시인은 자신에게 임한 구원의 은총에 이어 공동체에 나타난 구원 사건을 묵상합니다(6~10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의 압제와 시기로 벼랑 끝에 내몰릴 때마다 공의로 함께하시고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자신의 계획을 공유하며 백성과 함께 광야 길을 행군하셨고, 변덕과 불순종을 일삼는 연약한 모습에도 쉽게 노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앞에 우리공동체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4)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아시기에 우리가 행한 대로, 우리가 범한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십니다(11~14절).
이런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같은 죄를 반복하거나 그분의 용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는 하나님게 우리의 진심 어린 사랑만 발견되도록 하십시오.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더 많은 것을 받을지보다 어떻게 그분을 더 사랑하고 경외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