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가우도 '함께해(海)길'
2019.3.30
안양일심교회의 일심등산클럽 주최로 전남 강진의 주작산, 덕룡산 산행을 했는데
총 40명 중 절반 가량은 테마팀으로 '가우도와 석문공원, 석문구름다리' 등을 두루 다녀왔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과 도암면의 사이에 위치한 서울 여의도 정도 크기의 작은 섬 가우도는
강진만의 8개 섬 중에서 유일한 유인도로써, 강진의 명산인 보은산이 소(牛)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한자 소우(牛) 자의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고 하여 '가우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유명한 볼거리로 가우도와 대구면을 잇는 저두출렁다리와 도암면을 잇는 망호출렁다리가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2.5 ㎞ 정도 거리의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이 있어 섬 한바퀴를 돌 수 있는데
초목이 무성한 산과 넓고 푸른 바다를 아울러 감상하며 걷는 천혜의 트래킹 코스다.
산책로 중간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이 고장 출신 시인 영랑 김윤식 동상과
가우도 산 위에 청자모양의 짚 라인 승강장이 있으며 근처에 '다산초당마을'을비롯하여
'고려청자촌'과 '고려청자박물관' 등 볼거리가 있다.
저두출렁다리
강진 대구면과 가우도마을을 이어주는 길이 438 미터의 출렁다리
가우도 쪽에서 바라본 저두출렁다리
770 미터 길이의 데크길 시작
가우도 두꺼비바위
두꺼비가 엎드려있는 형상을 하였다 하여 '두꺼비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옛날 가우도마을에 병든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효심이 깊고 착한 청년이 살고있었는데
어느날 마을 어귀에서 아이들이 두꺼비 한 마리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구슬러 구해주게 되었다.
이 후 두꺼비는 자신을 구해준 청년을 졸졸 따라다니다 홀아버지를 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죽었다 다시 태어나 청년과 결혼하여 살게해 달라고 용와께 빌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곳엔 두꺼비 형상을 한 바위가 생기고 두꺼비는 바위 뒤에서 예쁜 처녀로 떠올라
청년과 백년가약을 맺어 잘 살았다는 전설과 함께,사람들은 이 바위를 '사랑을 이루어주는 신선한 바위'라
부르며 사랑하는 남녀가 이 바위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까지 만들어내었다.
근처 다른 예쁜 바위들
영랑 김윤식 시인 동상
영랑 김윤식(1903-1950)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서 출생,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상경하여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뒤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중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넣고
강진에 내려가 독립운동(강진4.4운동)을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 대구형무소 등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에서 수학하였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 귀국하여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1903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청 정지용 정인보 변영로
신석정 등 당대 최고의 시인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장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지 제3호에 .
불후의 명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했으며 1935년에는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은 조국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등을 거부한 채 흠결없는
'대조선인'으로 살았으며 광복 후 신생정부에 참여,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었고 1950년 9월 29일
47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008년 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망호출렁다리
가우도마을과 도암면을 이어주는 총길이 716 미터의 출렁다리
청자짚라인이 있는 가우도마을로 되돌아나오며...
단체로 식사를 했던 '가우도어부친구집'
이 집에서 식사를 하면 짚라인 이용시 요금을 만원을 깎아준다는 티켓을 주고 있다.
집라인 이;용료가 2만5천원이고 밥값이 1만원(해초비빔밥 기준)이니
밥 먹고 타도 2만5천원이고 그냥 집라인만 타도 2만5천원이다. 참 이상한 계산법이다.
입가심으로 한 개씩 먹었던 빵이 참 특이하게 생겼다.
바위와 작품이 있는, 마을 앞 바닷가
다시 저두출렁다리로 원복
발이 안 보이게 찍으니 더 멋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