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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라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시 <흙의 상소문>
흙의 상소문 / 배은율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싶을 때 흙은 붓을 들어 상소문을 올린다
얼마 전 흙속에 이름 모를 시체가 암매장 당한 적이 있다
이럴 때 흙은 운다, 울음이 붓을 키운다
흙이 밀어올린 나무나 풀들은 보이는 붓이지만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붓도 있다 그러나 보이는 붓보다 보이지 않는 붓의 힘이 더 세다
오래 전에 흙은 붓을 들어 낯빛이 다른 계절들이 서로의 낯빛을 훔쳐 달아난다고 쓴 적이 있다 이런 글은 기상이변이나 전쟁이 났을 때 쓰는 글이다 이럴 때 붓은 투박한 땅의 문체로 겁 없이 흙의 상소문을 쓴다
이따금 꽃가지들마다 이슬이 옮겨 앉는 일, 톡톡 터지는 이슬방울에 볼과 볼을 서로 맞대느라 바람이 물빛 아침을 잊곤 하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 땅은 붓을 들기도 한다 이럴 때 붓은 새의 귀에도 들릴 듯 말 듯 바위 틈 살꽃들의 신음소리처럼 섬세하게 글을 쓴다 하루를 건너온 빛바랜 기억들이 제 생각의 부피를 키우는 동안, 땅은 붓을 들어 날마다 흙의 상소문을 올린다
흙이 상소문을 올리는 곳은 바람이 오가는 허공이다
허공에는 수많은 소문이 살고 있다
그래서 붓은 늘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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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사유의 세계와 아름다운 율조 > 2025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심사평 /김동수 시인
신춘문예 시는 세상을 새롭게 보는 안목의 깊이와 독창적인 문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그것을 창조적 사유의 세계로 견인해 가려는 치열성이 아름답게엮어져 있어야 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네 분의 시를 최종심에 올렸다.
문현순의 「이생규장전」은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을 다룬 김시습의 한문소설을 소재로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모래알처럼 빠져 나가는’ 환상의 경계에서 ‘너를 기다리는’는 화자의 절절한 심정에 공감된 바 있으나 전반적으로 평이한 점이 아쉬웠다.
우병기는 「조약돌3」에서 ‘너를 ~ 이렇게 가꾸어 준 것은/ 햇빛과 달빛, 비바람과 물결’이라며 존재의 본질을 향한 인식의 깊이가 남달랐으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식이 좀더 요구되었다.
끝까지 조온현과 배은율의 시를 놓고 고민하였다. 조온현의 「신계(神界)로 가는 길」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사유, 곧 ‘신계로 가는 길은 걸어 갈 수 없어 육신을 태워 하늘로 보낸다’는 아포리즘과 화장(火葬)을 또 다른 윤회의 성소로 표현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으나 몇 군데 산문적 서술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이에 비해 배은율의 「흙의 상소문」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 이는 불교의 공즉색의 세계와 양자역학의 입자와 파동 그리고 질량·에네지 등가법칙과도 동맥을 이루면서 우주적 비의를 새롭게 읽어내고 있었다. ‘흙이 상소문을 올리는 ~허공에는 수많은 소문이 살고 있다’는 경이로운 표현이 그것으로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한층 드높여 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언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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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소감/배은율
시를 쓰는 지인으로부터 걸려온 위로 전화를 받고 마음을 추스르다가 낯선 전화 한통을 받았다, 당선이란다. 연락이 더 늦었더라면 울렁증으로 목이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무척 기뻤다.
내 삶의 모든 것인 내 시의 현주소, 그 언저리에는 늘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수많은 물음표들이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 이제 시작이다. 그럼에도 나를 증명해 보일 시들은 아직 발아하기 직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시를 쓰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고, 사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힘겨운 내 삶이 안착하는 곳마다, 잃어버려야 하는 것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그곳에 기거하던 검은 파도를 말끔히 걷어내고 저 멀리 수평선을 불러들여도 될 것 같다. 만약 잃어버린 그것들이 천개의 말이 되어 내게 안긴다면? 이니 그것들이 아름다운 시가 된다면 그곳엔 사계절도 없을 것이다.
시린 발을 갖고 있던 제 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신 김동수 선생님과 전라매일 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래도록 애정으로 지도해주신 박남희 교수님 고맙습니다. 끝으로 입버릇처럼 힘들다 말했을 때 말없이 따뜻한 미소로 다가와 톡탁여주었던 나의 문우들, 동국대 시창작반 문우들(성은.은미.정희.현정.남희,주안)과 3년 동안 함께 해온 시전문지 <아토포스> 가족들과 함께 오늘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동안 외로웠을 나의 흙과 허공에게, 그리고 제시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무한한 사랑을 보냅니다.
배은율: 부산 영도 출생. 동국대 행복한 시창작과정 재학. 시전문지 <아토포스> 편집 동인.
챗GTP 분석
1. 제목의 의미
"흙의 상소문"은 흙이 자연과 생명의 대변자로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표현하는 과정과 노력을 상징합니다. 흙이 올리는 "상소문"은 생명, 환경, 기억, 그리고 생태적 순환을 담은 자연의 호소문이자 기록입니다.
2. 주제
자연이 인간과 생태계의 비극을 대변하며, 생명과 조화의 소중함을 상소문 형식으로 표현하는 과정.
자연과 인간의 공존 속에서, 흙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그 고통을 상소문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자 역사의 기록자로서, 말을 대신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무시되거나 은폐된 진실, 자연의 고통 등을 반영합니다.
시는 인간의 탐욕과 파괴로 인해 훼손된 자연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자연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또한, 흙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마지막 쉼터임을 강조하며 인간의 책임을 묻습니다.
3. 상징 분석
흙: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흙은 생명과 죽음을 품고 있는 존재로서, 시체의 암매장이나 계절의 변화를 통해 삶과 역사의 층위를 드러냅니다.
붓: 흙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도구이자, 자연의 언어를 상징합니다. 이는 인간의 언어와 대비되며, 보이는 것(나무와 풀)과 보이지 않는 것(아지랑이 같은 붓)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강조합니다.
허공: 상소문이 전달되는 공간으로, 인간이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자연의 영역을 뜻합니다. 흙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전달되면서 자연의 순환을 암시합니다.
4. 시의 구조
이 시는 다음과 같은 4단 구조로 전개됩니다.
1. 발단: 흙이 상소문을 쓰는 이유와 배경을 제시합니다. 암매장된 시체와 같은 사건을 통해 흙의 울음을 설명합니다.
2. 전개: 흙이 사용하는 다양한 '붓'을 묘사하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대조합니다.
3. 위기: 기상이변, 전쟁, 계절의 변화를 통해 자연의 고통을 드러냅니다.
4. 결말: 흙의 상소문이 허공으로 전달되며, 자연의 순환과 조화 속에서 흙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5. 이미지의 연쇄와 교차
시에서는 붓, 흙, 허공이라는 세 가지 주요 이미지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연쇄적으로 확장됩니다. 흙이 붓을 들어 상소문을 쓰는 모습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소통을 상징합니다. '나무와 풀'과 같은 보이는 붓과 '아지랑이' 같은 보이지 않는 붓은 자연의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대조적으로 표현합니다.
흙 → 붓 → 나무와 풀(보이는 붓) → 아지랑이(보이지 않는 붓) → 계절과 기상이변 → 꽃과 이슬 → 허공
이 이미지는 흙을 중심으로 자연의 순환과 생명력을 표현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6. 연단위 분석
1연: 흙의 울음과 붓의 역할
>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싶을 때 흙은 붓을 들어 상소문을 올린다
얼마 전 흙속에 이름 모를 시체가 암매장 당한 적이 있다
이럴 때 흙은 운다, 울음이 붓을 키운다
흙은 비극을 대변하는 존재로 설정됩니다. 흙 속에 묻힌 이름 모를 시체는 생태계와 인간의 불화에서 비롯된 고통을 상징합니다. "울음이 붓을 키운다"는 고통을 통해 흙이 더 강렬한 방식으로 자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2연: 보이는 붓과 보이지 않는 붓
> 흙이 밀어올린 나무나 풀들은 보이는 붓이지만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붓도 있다
그러나 보이는 붓보다 보이지 않는 붓의 힘이 더 세다
"보이는 붓"은 흙이 만들어내는 생명(나무나 풀)을 상징하며, "보이지 않는 붓"은 자연 속의 보이지 않는 기운과 생명력을 암시합니다. 이 연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욱 강력한 자연의 작용을 강조합니다.
3연: 투박한 문체로 쓴 흙의 기록
> 오래 전에 흙은 붓을 들어 낯빛이 다른 계절들이 서로의 낯빛을 훔쳐 달아난다고 쓴 적이 있다
이런 글은 기상이변이나 전쟁이 났을 때 쓰는 글이다
이럴 때 붓은 투박한 땅의 문체로 겁 없이 흙의 상소문을 쓴다
흙이 기록한 상소문은 계절의 변화와 기상이변 같은 자연의 이상 현상을 대변합니다. "투박한 땅의 문체"는 자연의 메시지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는 점을 상징하며, 이러한 글은 인간과 자연의 불균형을 고발합니다.
4연: 섬세한 기억의 기록
> 이따금 꽃가지들마다 이슬이 옮겨 앉는 일, 톡톡 터지는 이슬방울에 볼과 볼을 서로 맞대느라 바람이 물빛 아침을 잊곤 하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 땅은 붓을 들기도 한다
이럴 때 붓은 새의 귀에도 들릴 듯 말 듯 바위 틈 살꽃들의 신음소리처럼 섬세하게 글을 쓴다
이 연은 자연의 섬세한 기억들을 기록하는 흙의 역할을 묘사합니다. 이슬과 바람, 꽃가지 등 자연의 소소한 현상이 흙의 섬세한 붓끝에서 글로 탄생하며, 이는 사소한 자연의 순간조차도 소중히 기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5연: 흙의 상소문과 허공
> 흙이 상소문을 올리는 곳은 바람이 오가는 허공이다
허공에는 수많은 소문이 살고 있다
그래서 붓은 늘 분주하다
흙의 상소문이 전달되는 "허공"은 자연의 순환과 연결의 공간입니다. 허공 속 "수많은 소문"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상징하며, 흙은 그 메시지를 쉬지 않고 전달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배은율의 「흙의 상소문」에 대한 심사평은 시의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이를 중심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대비
시에서 흙이 밀어올린 나무나 풀은 ‘보이는 붓’이고,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말 듯한 붓은 ‘보이지 않는 붓’이다.
이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즉, 보이는 것(색)이 실체 없는 공(空)과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힘을 갖는다는 구절은, 현대 물리학에서 관측할 수 없는 미시 세계(양자역학적 세계)의 영향력이 더욱 크다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2. 불교 철학: 공즉색(空卽色)의 원리
불교에서는 만물이 ‘공(空)’하여 실체가 없지만, 동시에 ‘색(色)’ 즉,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시에서 흙이 보이지 않는 붓으로 상소문을 올리는 것은, 실체가 없는 세계가 결국 형상을 통해 드러난다는 불교적 사고와 연결된다.
3. 양자역학과 우주적 비의
심사평에서 언급된 ‘입자와 파동’, ‘질량-에너지 등가법칙’과 같은 과학적 개념은 시의 상징성과 잘 맞물린다.
예를 들어, 아지랑이 같은 ‘보이지 않는 붓’은 입자의 이중성(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일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흙이 올리는 상소문이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은 에너지의 흐름, 혹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전파 방식과 유사하다.
4. 흙의 기록과 우주적 순환
시에서 흙은 끊임없이 ‘상소문’을 올린다. 이는 자연의 끊임없는 변화를 기록하는 과정과 같으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순환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흙이 ‘과거의 기억’을 기록한다는 부분은, 자연 속에 새겨진 역사와 정보, 그리고 그것이 바람과 허공을 통해 전해진다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5. 결론: 자연을 통한 우주적 해석
「흙의 상소문」은 자연의 섬세한 기록 방식을 통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를 넘나든다.
심사평에서 강조한 ‘우주적 비의’란, 이러한 자연의 섬세한 작동 원리 속에 감추어진 깊은 철학적·과학적 원리를 가리킨다.
결국, 이 시는 단순한 자연의 기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즉 공즉색(空卽色)의 원리를 통해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는 불교 철학과 현대 과학의 개념을 접목하며, 자연이 가진 내밀한 메시지를 우주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