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초 이맘때 3박4일간 멀리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강원도 어느 사찰에 묶은 적이 있었다.
산속이라 찾아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지은 건물들을 찾는 이들도 없어 나와 몇몇 스님들 그리고 스님들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분들과 종무소 직원 몇몇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육류가 없는 없는 식사였기에 오후 4시 30분 경에 저녁을 먹으면 새벽 5시에 밥을 먹을 때 까지 내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잠꾸러기인 나도 허기를 채우고자 예불엔 참석 못하고 아침을 먹으러 일찍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 산사에서 뒹글거리며 읽었던 책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점', 그리고 '코스모스'란 책이다.
1977년 나사에서 태양계를 비롯한 행성 탐사를 위해 보이저 1호와 2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그리고 1990년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칼 세이건은 보이저호 1호의 궤도를 돌려 지구의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다.
칼 세이건은 자신의 책 '창백한 푸른점'에서 카메라의 렌즈 손상 위험과 방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과다한 소비로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사진촬영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이저 1호는 결국 지구로 방향을 돌렸고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진을 촬영해 전송한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명왕성을 벗어나며 찍은 모습이다. 보일듯 말듯 창백한 작은 점이 지구다. 태양계를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인 명왕성에서 찍은 사진인데도 지구는 먼지와 같을 뿐이다. 그의 말 대로 거대한 우주의 암흑속에 있는 외로운 작은 점인 여기가 우리의 집이자 자신이고 인류의 시작이고 전부다.>
이 책을 산사에서 보고 있을 무렵인 3년전 이맘때 췌장에 암으로 변할수 있는 3센티 정도의 혹을 발견했다.
의사는 3센티면 위험수위라며 췌장뿐 아니라 위장 십이지장, 비장 등 5개를 한꺼번에 수술할 것을 권유했다.
또한 1년전부터 매일 온몸에 돋아나는 두드러기 증상이 생겨 매일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해야 했고, 공황장애 증상도 생기기 시작했을 때다.
그때 처음으로 몇 개월 간 휴직이란 걸 했다.
결혼 이후 오롯이 내 문제로 그렇게 길게 쉬어 본것은 아마 처음이었다.
사방이 벽이었고 암흑이었다.
그러나, 보이저 1호가 명왕성에서 자신이 출발했던 지구로 방향을 돌렸듯이 나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이라는 반갑지 않은 선물을 통해서야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찾기 시작했다.
내게 이 고통이 없었다면 우주의 심연속을 향해 가는 보이저호처럼 나 역시 보이지 않는 미래와 세상을 향해 돌진할 뿐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그토록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죽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충격,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그 심오한 뜻을 찾으려 하지도 않을 뿐 더러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나에게 고통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였다.
예수의 첫번째 가르침은 "회개하라!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였다.
'회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신앙인들이 '회개'를 좁은 의미의 죄에서의 뉘우침, 성찰 등을 이야기 하나, '회개'를 말하는 희랍어 메타노이아(metanoia)의 원래 뜻은 마음을 바꾸는 근본적인 '전향'이다.
즉,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가르침은 "삶의 방향을 바꿔라 그러면 네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찾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첫댓글 작년 1월에 3년전 일을 회상하면서 쓴 글입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건강이나 실패 등 자신이 어쩔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찾기 위한 방향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때 고통은 고통의 아니라, 자신을 깨우기 위한 신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