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학> 2023 봄호, 소시집
도깨비 바람, 일출봉 외 4편
김 광 기
눈보라가 내리치고 있었다. 일출봉
기슭을 치는 바람으로 일어서기도 하고
위에서 다시 바닥을 치듯 꽂히기도 하는
눈보라의 휘날림, 모든 차례에는
기다림과 마주침이 있을 법한데
순서도 없고 시차도 없이 휘몰아친다.
따듯한 지방, 남쪽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이렇게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니,
해 뜨는 풍광이나 좀 보겠다고 올라선 비탈인데
호되게 매선 바람을 겪으며 보니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것이었다.
이쪽저쪽이고 없다. 우당탕탕 몰아치는 바람,
일출봉은 오를 생각도 못하고 혼쭐만 나서 돌아온다.
바람은 안에서도 불고 있었다.
문틈으로 사정없이 들어차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린다. 바닥은 냉골이다.
팔순이 한참 지난 두 노인은 두터운 파커를 입고
바람을 견디는 중이었다. 손님에게
안방을 내주고 건넛방에서 바람과 맞서고 있다.
바닥에서는 전기장판이 철철 끓고 있다.
엉덩이가 뜨거울 정도인데 입김이 나고 있다.
성산 일출봉의 겨우살이는 그렇게 시작되고
긴 세월 동안 그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바람을 막기 시작했다.
창틀을 고치고 문틈을 메우고 문을 닫아걸었다.
오랫동안 돌지 않았던 보일러도 돌리기 시작했다.
방이 후끈후끈해지자 노인들이 견디지 못하고
보일러를 끄기 시작한다. 보일러를 켜면 다시 끄면서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우도 어부와 성산 해녀로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
무서운 칼바람조차도 함께 더불어 살아온 것이었다.
그 바람을 막고 온도를 높여놓으니
먼저 노인들이 질식해 죽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미친바람인 줄 알았는데,
피해서 웅크리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찬바람을 견딜 수 없는 것은 외지인들뿐이었다.
그 차디찬 기운 속에서 해는 뜨고 있었다.
도깨비 바람, 광치기
일출봉에서 바라보면 섭지코지가 보이고
그 길목으로 통하는 바닷가 광치기 해변이 있다.
일명 터진목으로 유명한 바닷가인데
썰물이 되면 넓게 드러나는 바위 터에서 4‧3 당시
몇천 명이 그곳에서 죽었다 한다.
부락민뿐만이 아니고 사람 죽이기 적당한 장소로 지목되어
외지인들까지도 끌고 와서 죽였던 곳이었다.
터진목을 바라보는 동네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것을 추모하는 후손 한 사람은
그곳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살며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 슬픔을 아직도 삭이고 있다고 한다.
그날만 되면 동네 사람 태반이 제사를 지낸다는
동네를 지나 광치기 해변으로 가는 길,
정치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살고 있던 무고한 양민들,
젖먹이에서부터 80이 넘은 노인들까지
무참히 살해되었다고 하는
광치기 해변 왼쪽에는 일출봉이 그림처럼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인물 꽤나 나는 터라는
섭지코지가 바다를 자를 듯이 날이 서 있다.
한겨울의 검은 모래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곳,
회오리쳐 부는 바람은 뭍에서
몰아치기도 하고 바다에서 몰아붙이기도 한다.
도깨비 바람, 태풍
봄이 오나 했더니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의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태풍은 가을 오기 전까지
여덟아홉 개가 지나가고 있었다.
태풍이 제주도를 비껴가는 경우는 없다.
먼바다를 지나는 태풍도 제주는 영향권에 들어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게 된다.
전봇대가 쓰러지고 나무가 뽑히는 것은 예사이다.
태풍이 오기 시작하고부터 지나가기까지
몰아치는 바람에 제주 사람들은 몸살을 앓는다.
외지인들에게 바람은 더 무섭다.
낮이나 밤이나 부는 바람에 동네의 축사가 무너지고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집이 날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에 걱정을 하다 보면
태풍 몸살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문명의 이기에 기대보기도 하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위안을 해보기도 하지만
정전이 되고 동네가 새까매지는 밤이 되면
그 공포는 더해지기만 한다.
시간마다 기상예보를 보고 날씨를 살피면서
바람의 거대한 크기와 그 폭풍의 위력에 또 놀라기도 한다.
제주에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는데,
돌은 태생적인 것이고 바람은 환경적인 것이고
여자는 재난의 결과적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선 바람에도 바다에 배를 띄우는 사람들,
사시사철 바람에 고기는 잡아야 할 시기가 있는 것이라
목숨 걸고 배를 띄웠던 것이
제주에 여자가 많은 이유가 되었던 것이라.
도깨비 바람, 신화
제주에는 제주만의 역사가 있었다.
제주 사람만이 아는 바람의 역사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제주가 갖고 있는 신화처럼 읽는다.
세계에서 신화가 가장 많다는 제주에는
그 신화를 엮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도 한때는 탐라국이었다.
스스로 지킬 수 없었던 비극이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소용돌이칠 때마다 속국으로 전전하기도 했고
언제부터인가 한 나라의 섬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제주는 제주만의 독특한 인식과 특이한 삶의 방식이 있다.
외부 사람들을 마음속에 잘 들이지 않으려는 경계심은
어쩌면 당연한 역사적 교훈인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치는 바람 속에서 제주 사람들이 꿈꾸는 세계가
어쩌면 신화 속 세상인지도 모른다.
제주 사람들은 그들만의 꿈을 꾸며 위안을 받는다.
신화는 그들 삶의 방식이며 집단의식의 원천이다.
괸당 문화 속에서 끈끈함으로 의지하며
스스로를 지켜가려는 사람들,
신화가 실현되지 않는 현대문화 속에서 아직도
그들만의 신화를 쓰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매서운 것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바람,
뜨거운 피가 흐르는 억센 기운이 있다.
도깨비 바람, 동백
한겨울에 피는 붉은 동백꽃 속에
제주 사람들의 한(恨)과 삶의 의지가 있다.
4‧3의 꽃이기도 한 동백꽃은
제주 사람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목을 뚝뚝 꺾어내며 낙화하는 꽃들,
꽃들이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모가지가 끊어져 널려있는 꽃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꽃잎 하나하나 날리는
애기동백을 심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동백보다
이상적인 사랑의 애기동백으로 심상을 다스리는
제주 사람들, 아직 동백꽃을 닮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오갔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섬,
애기동백이 지고 나면 다시 피기 시작하는
동백꽃들처럼 웅크리고 있는 이데아들.
꽃 진 자리에 맺히는 동백 열매처럼
푸르고 단단한 것이 한여름까지 뜨겁게 익어가는
동백나무를 휘돌아 감는 바람,
시시때때로 불었다 그쳤다 하는 도깨비 같은 바람 속,
그 태생이 성산이고 그 상징이 동백이었다.
동박새 같은 뭍의 남자, 이곳에 와서야
제주 여자로만 알았던 아내가
바람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시작 노트
제주와 긴밀하게 접하기 시작한 것은 제주대학교에서 윤석산 교수를 중심으로 문학 동인을 결성한 <다층>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1990년대 말 지인의 소개로 윤석산 교수(시인)를 만나고 그를 중심으로 1999년 창간된 계간문예 《다층》에 문학 동인으로 참여하게 되고 곧이어 《다층》 편집 동인과 《다층》에서 설립한 한국문학도서관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제주도를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제주와의 긴밀한 인연도 시작되었다. 동인으로 같이 참여하고 있던 아내를 만나 부부의 인연이 되고 나서부터 제주는 처가가 있는 더욱 긴밀한 지역이 되었고 20여 년을 자주 드나드는 연고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4년여를 그곳에서 살게 됨으로써 제주 지역의 속성과 제주 사람들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20여 년이 넘게 <다층>이란 인연과 처가가 있다는 인연으로 제주도를 오갔지만 피상적으로만 보고 느꼈던 제주와는 많이 다른 제주살이였다.
도깨비 바람, 일출봉 ; 제주를 오가면서 가장 먼저 부딪치고 실감 나게 마주한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 여자, 돌이 많은 지역의 삼다도라고 할 정도로 제주의 바람은 제주도의 두드러진 특성으로 꼽을 정도이지만 제주에서 겪은 바람의 특성은 제주에서 말하는 뭍이라고 하는 육지의 바람과는 사뭇 다른 바람이었다. 육지의 바람은 대체로 부는 방향이 같아서 비가 올 때 바람 부는 방향으로 우산으로 막으면 대처가 되지만 제주에서 부는 바람은 방향이 일정치 않게 좌우상하에서 몰아붙이듯이 불어서 비가 올 때 우산을 펴면 우산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정한 방향이 없이 휩쓸 듯 부는 바람도 정신없이 나무를 마구 흔들며 춤추게 만드는 바람이었다. 그것은 마치 도깨비가 춤추는 것처럼 보여 ‘도깨비 바람’이라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중부권에서 살며 제주도는 남쪽 끝에 있는 섬이라서 겨울에도 기온이 높아 따듯하고 춥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만난 겨울바람은 혹독하고 매서운 바람이었다. 뭍에서는 겨울에 바람이 잘 불지 않는데 제주에서는 한겨울에도 바람이 그치질 않는다. 그래서 체감온도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매섭고 찬 바람이 살을 에는 듯하다.
도깨비 바람, 광치기 ; 성산 일출봉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멀지 않은 바로 아래 광치기 해변이 있다. 광치기 해변은 너른 바위가 밀물 때는 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는 넓은 바위 바닥이 드러난다. 제주의 비극인 4‧3사건 때 그런 지형적인 조건이 사람들을 처형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타지에 있는 사람들까지 끌고 와 이곳에서 많은 양민을 참살하는 장소로 쓰였다 한다. 대표적인 제주 역사의 비극적인 장소로 알려진 이곳은 지금 4‧3사건 추모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도깨비 바람, 태풍 ; 제주에서 사는 2020년도는 태풍이 가장 많이 오는 해이기도 했다. 한 달에 두어 번씩 오는 태풍에 제주 사람들은 물론 우리와 같은 외지인들도 몸살을 앓게 하였다. 강한 바람에 집이 날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물난리와 정전이 되지는 않나 하는 불안감은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거기에 수시로 치는 천둥과 벼락 치는 소리는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깨비 바람, 신화 ; 학계에서 신화의 보고라고 할 정도로 제주도는 세계에서도 신화가 가장 많다는 지역이다. 제주를 오가면서 굿을 하는 행사를 가끔 보기도 하고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제주의 신화를 학습한 적도 있지만 제주에서 살면서 제주도 사람들에게 신화는 단지 막연하게 피상적으로 정리되는 신화적 형태가 아니라 그들 삶의 근원이자 바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곳곳에 지역 신화의 형태가 있는 것은 물론 제주 사람들의 삶에서도 신화에서 비롯한 터부와 금기 사항들이 그들 삶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었다. 또 제주 사람들에게는 괸당 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친인척 관계에서부터 시작하는 끈끈한 그들만의 지역문화는 외부인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10년을 살기 전에는 동리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풍습을 들 수 있다. 소위 이장 선거라는 것을 하는데 같은 집에 사는 아내는 선거권이 있는데 남편인 나는 10년을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거권이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피선거권인 이장 출마라도 할라치면 20년 이상을 그 동네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처사였는지 이곳이 대한민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깨비 바람, 동백 ; 제주는 4계절 꽃이 피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색다른 꽃이 피고 있다. 특히 겨울에 피는 동백꽃은 제주를 상징할 정도로 흔하게 피고 있는 꽃이다. 동백꽃도 낙화 시기에 꽃송이가 뚝 떨어지는 동백꽃도 있고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며 지는 애기동백도 있다. 초겨울에 애기동백 꽃이 피고 이 꽃이 지는 시기쯤에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여 겨우내 동백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외지인들은 외양만 언뜻 보면서 동백과 애기동백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고 늦겨울에 피는 동백꽃이 제주도 사람들을 더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백꽃은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되새기는 심벌마크의 상징적인 꽃이기도 하다.
*김광기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탈 이야기」 발표 후, <화성문학> 동인 등으로 참여.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작품 활동 시작. 다층 편집동인, 열린시학 기획심의위원, 시산맥 편집위원 등으로 참여. 시집 호두껍질,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등과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외 글쓰기 전략과 논술 등의 저서가 있음. 1998년 <수원예술대상> 및 2011년 <한국시학상> 2019년 <수원시인상> 수상. 아주대 강사 등 역임. 현재, <문학과 사람>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