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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무대가 마련된 프레스센터 연회실이었다.
환영식이 아니고 전역식이라고 했다.
‘월남 참전 육군상사 설효진 49년 만의 만기 전역식’
단상에는 양쪽에 경축이라고 적고, 전역식이라는 이름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프레스센터 연회실에서 환영식 겸 전역식이 있다는 건 국정원 앞에서 전우회장에게 들었다. 국방부 장관이 직접 참석하는 전역식이라고 했다. 들어보니 국방부 장관 이해두, 역시 월남전에 장교로 참전하여 중대를 지휘했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페르세우스는 큰아버지를 안아보기는커녕, 손도 잡아보지 못했다. 잠시 후, 한 시부터 전역식 행사가 있고 행사가 끝나면 연회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페르세우스와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특권으로 무대 바로 앞의 참전 전우회장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애당초, 큰아버지를 만나면 가장 먼저 서울의 유명한 고깃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는 계획은 초라하게 취소되었다. 생각하니 정말 초라한 계획이었다.
무대에서는 행사가 준비 중이었다.
국정원 앞에서 모인 인파보다 프레스센터 연회실에는 더 많은 인파가 운집했다. 물론 경찰도 있었고 카메라를 맨 기자들도 무대를 포진해서 여럿이 있었다.
무대 위에 사회자는 마이크를 테스트하는데 보니 어디서 왔는지 젊은 육군 대위였다. 현역으로 보였다.
이윽고 행사가 시작될 모양이다. 큰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국정원에서 나와서 만세 삼창을 하고 참전 용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바로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고, 어머니와 페르세우스는 닭을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큰아버지를 보다가, 놓쳤고 붉은색 모자를 쓴 참전 용사들과 지하철을 타고 그들이 내리는 곳에서 따라내려 프레스센터로 왔다. 페르세우스는 여기가 아디쯤인지 모르겠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도 처음 오시는 곳일 것이다.
행사가 곧 시작될 모양이다.
사회자가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식순을 설명했다.
사회자는 육군 의장대 소속 김정휘 대위라고 하면서 우렁차게 청중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렸다. 절도가 있었고 붉은색 모자를 쓴 청중들이 절도있게 박수를 보냈다.
아, 이런 행사는 육군 의장대에서 진행하는 모양이구나,
페르세우스는 적잖이 놀랐다.
그 순간, 어머니는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새벽부터 여태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는 걸 생각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페르세우스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무대의 옆문으로 나가니 화장실의 표시가 있고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로 따라가니 남녀 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자리에 들어가니 이미 식은 시작되었다. 국민의례가 있었고, 옆에 있었던 참전 전우회장은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참전 전우회장의 경축사가 있었다.
지금은 무얼 하시는 분인지 경축사는 훌륭했다.
무대 위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육군상사의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큰아버지가 무대의 중간에 있는 의자에 앉아계시면서 경축사를 꼼꼼히 듣고 계셨다.
참전 전우회장은 경축사에서 역사의 산증인 돌아왔다고 했으며 오늘로 우리 역사는 다시 쓰일 것이라는 말을 요지로 했다.
페르세우스는 큰아버지께서 그토록 중요한 역사의 증인이라는 말을 나직하게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다.
그다음은 사회자의 경과보고가 있었다.
경과보고는 월남전 파병의 기록을 전반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여태의 참전 용사는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얼마이고 기록에서 전사자를 1명 줄여서 몇 명이고 생존자는 1명이 늘어서 얼마라고 했다.
이어 국방부 장관 경축사가 있었다. 국방부 장관 이해두는 자신이 월남 파병 용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다음은 큰아버지의 전역신고가 있었다. 전역신고를 받는 대상은 청중, 즉 다시 말해 월남 참전 용사들이었다.
충성! 육군상사 설효진은 오늘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육군상사의 군복을 입은 큰아버지는 청중석을 향해 큰소리로 복창하고 거수경례를 올렸다. 이어서 훈장 수여식이 있었다. 훈장이라고 주기는 해야 하는데 명분이 없었던 모양이다. 사회자가 서훈 내용을 읽고 장기근속 훈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방부 장관이 큰아버지의 명찰이 있는 군복에 달아주었다. 그 훈장이 크게 확대되어 무대 뒤의 스크린에 비추어져서 확대된 훈장을 볼 수가 있었다.
이어서 꽃다발 증정식이었다. 꽃다발을 들고나오는 사람을 사회자가 일일이 소개했는데, 당시의 백마부대, 큰아버지와 가장 가까웠다는 소대장, 중대장, 선임하사, 그리고 분대 전우였는데 모두가 산증인이라고 사회자는 말했다. 박수가 뜨거웠다.
꽃다발 증정식이 끝나자 사회자인 대위는 말했다. 가장 궁금한 시간이라고.
기장 궁금한 시간?
이 행사는 국가 보훈처가 아니라 월남 참전 전우회와 국방부가 주관한다면서 큰아버지에게 그동안 미뤄진 월급의 수령이 있다고 해서 페르세우스는 좀 놀랐다.
월급?
어머니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사회자인 육군 대위 김정휘는 월급은 편의상 현금이나 수표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통장으로 지급한다면서, 설효진 이름으로 된 통장의 사진을 찍은 화면을 무대 뒤의 스크린에 크게 띄웠다. 페르세우스가 보니 큰아버지의 이름이었고 국민은행의 통장이었다. 그 화면이 사라지고 통장에 입금된 액수가 다시 나타났다.
“어머니! 저게 얼마예요?”
“글쎄! 저게 얼마냐?”
놀라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카메라를 맨 기자가 사진을 찍으며 페르세우스의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정확한 숫자를 읽지 못했다. 사회자 김정휘 대위는 월급이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내용도 낱낱이 설명을 해주었다.
국방부와 월남 참전 전우회에서 상의하고 합의로 산출한 금액이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큰아버지가 실종한 날까지는 중사였으니 중사의 월급이고 실종이 된 다음 날부터 육군상사의 월급을 적용해서 호프만식으로 계산을 하고, 이미 잘못 지급된 전사자 수당과 위로금, 47만 원을 인플레이션을 적용, 산출하여 공제한 금액이 화면의 금액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군인월급이라고 했다. 산출 총액은 사회자가 사억구천 얼마라고 했는데 뒷자리는 페르세우스가 다 듣지 못했다. 통장은 국방부 장관이 수여했는데 박수와 함성이 나왔다.
화면이 지워지고 사회자 김정휘 대위는 큰아버지의 전적에 관해서 청중들에게 보고했다. 전적보고는 큰아버지가 해야 하나 편의상 사회자가 대독하였다.
육군 중사 설효진은, 71년 나트랑 지역의 게릴라 토벌 작전 중 정글에서 적군 2명을 사살하고, 퇴각 도중 적의 역습을 받고 포로가 되어 하노이로 후송되었으며, 3개월 뒤 북으로 강제 이송되어 갖가지 적의 공격을 받고 생활하다가, 끝내 전향하지 않고 작년 11월 두만강을 넘어 흑룡강성으로 퇴각하여 베트남 호찌민으로 다시 갔다가 본대로 귀환한 용사라는 요지의 간략한 보고서였다.
“참 멋있다.”
전적보고를 간략하게 들은 어머니는 탄식처럼 뱉었다.
행사는 그야말로 거창하게 진행되었다.
행사가 거창하다기보다는 월남 참전 용사 전우회의 막강한 단결력에 페르세우스는 놀랐다. 정말 군인이었다. 역전의 용사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전쟁을 경험한 군인. 남자라면 해보고 싶은 일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정말 역사의 장을 바꾸는 순간이었다.
사회자는 월남전에서 그동안 말이 많았던 북한군의 개입이 명확한 사실로 드러난 산증인의 역사적인 귀환이라고 했다.
그동안 페르세우스의 진동으로 전환 시켜놓은 전화가 두 통이 왔었다. 페르세우스는 받지 못했다. 하나는 모르는 번호라 의뢰인이지 싶었고, 하나는 안드로메다의 전화였다.
카메라 기자들도 바빴고 사회자도 바빴다. 행사가 끝날 무렵 49년 만의 가족과의 재회 시간이 있었다. 가족 대표로 페르세우스가 지목되었다. 사회자가 페르세우스를 소개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나왔다. 어머니는 그 부분에서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고 청중석에서는 환호가 이어졌다.
페르세우스가 무대로 올라가고 큰아버지가 일어나 포옹하는 것이었다.
큰아버지는 포옹하면서, 네가 민수냐? 얘기 다 들었다, 하시면서 페르세우스의 등을 두드려주셨다. 행사는 백마부대의 부대가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냈다. 참전 용사들은 잊지도 않고 그 노래를 우렁차게 불렀지만, 페르세우스와 어머니는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그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는, 고향 앞으로 가! 의 시간이라고 했다.
고향 앞으로 가?
그게 뭐냐?
어머니가 나직하게 물었다. 글쎄요, 궁금했는데 사회자인 대위는 앞줄에 앉은 페르세우스에게 또 무대로 올라오라고 했다. 페르세우스는 냉큼 무대 위로 올라갔다. 사회자는 큰아버지를 업으라고 했고 큰아버지는 페르세우스에게 업혔다. 그러자 사회자가, 고향 앞으로 가!, 크게 외쳤다.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고 페르세우스는 노쇠한 큰아버지를 업고 무대를 내려왔다.
행사가 끝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뷔페식으로 연회가 벌어졌다.
월남의 참전 용사들은 노병이지만 먹성도 절도가 있고 좋았다. 차려진 음식을 깔끔하게 바닥을 냈다. 밥은 큰아버지 옆에서 먹을 수가 있었다. 어머니와 페르세우스, 큰아버지 셋이서 한 테이블을 자리 잡았다. 먹는 중간에 페르세우스가 모자라는 음식을 더 가져오곤 했다.
“설 상사! 나 아시겠는가? 의무병 최준일!”
“하? 그래 기억나지. 살아 있었네! 반가워! 반가워!”
감격의 순간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밥을 먹는 중간중간에 큰아버지와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포옹을 여러 번 했다. 큰아버지의 소대장과 중대장이라는 노인이 와서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페르세우스와도 인사를 했다. 큰아버지가 받은 명함만 거의 한 줌이었다. 거의 사회의 원로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힌 인물들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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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는 어머니의 복수를 하자, 요긴하게 썼던 무기들이 필요 없었다. 그는 그것들을 헤르메스에게 바쳤고, 헤르메스는 다시 원래 그 무기들의 주인인 요정들에게 돌려주었다. 페르세우스는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었던 아테나 여신에겐 감사의 표시로 메두사의 머리를 바쳤다. 그러자 여신은 그것을 자신의 아이기스 방패에 박아 기념으로 삼았다. 그 후 페르세우스는 지신을 키워준 어부, 딕티스를 세리포스의 왕으로 추대한 다음 어머니 다나에와 아내 안드로메다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아르고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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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마치고 프레스센터를 나선 것은 오후 네 시경이었다.
센터 로비 앞에는 대형 고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맨 기자들은 점심도 먹지 않고 거기까지 따라왔다. 기자도 정말 못 할 짓이라고 페르세우스는 생각했다.
큰아버지의 짐은 한 짐이었다. 명패와 공로패가 여러 개였고, 참전 용사들의 선물까지 있었다, 프레스센터라는 글귀가 적힌 큰 가방을 두 개나 얻어서 넣어서 하나는 어머니가 들었지만. 페르세우스의 손에는 가방 외에 여러 개가 들려 있었다.
당초에 택시를 탄다고 예정했으나 행사장 밖까지 따라 나온 중대장이 어느 중소기업의 회장이라며, 로비 앞에 대기하고 있는 자신의 차를 타고 내려가라고 했다. 기사가 따로 있는 승용차였다. 큰아버지와 페르세우스가 택시가 편하다고 했지만, 중대장으로서 마지막 명령이라며 타고 갈 것을 명했다.
“알겠습니다. 충성!”
육군상사 군복을 입은 큰아버지가 경례를 붙이자 옆에서 지키고 있던 젊은 기사가 페르세우스와 어머니가 든 짐을 받아서 트렁크에 실었다. 어머니는 앞 좌석에 타고 페르세우스와 큰아버지가 뒷좌석에 탔다. 승용차가 프레스센터를 출발하자 승용차를 둘러싼 참전 용사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붙였다.
그 경례에 차창을 열고 큰아버지께서 손을 흔드는 것으로 답했다.
“참 멋있다!”
어머니의 감탄이었다.
페르세우스도 절도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오르자 기사가 해평시가 맞느냐고 물었다. 단정한 양복 차림에 깔끔한 기사였다. 페르세우스가 그 말에 대답하고 생각하니 차를 타고는 여태 모두가 입을 닫고 있었다. 전부가 어디서부터 입을 열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침묵을 깨고 페르세우스가 물었다.
“큰아버지! 월남전에 북한군이 개입한 게 맞나요? 우리는 역사에서 그렇게 안 배웠는데요.”
그것 가장 궁금했다.
“월맹을 도우러 일부가 왔었지. 내 생각으로는 말단 보병은 참가하지 않고 전투기 조종사와 기갑의 탱크 운전병이 참전한 정도야. 몰랐었냐?”
“예! 몰랐었죠. 북으로 압송될 적에 큰아버지 혼자 끌려가셨나요?”
“아니야. 일곱 명이 가다가 두 명은 중공에서 죽고 다섯 명이 평양에 도착했었지.”
“그렇다면 지금 자료는 엉터리이네요. 실종자가 겨우 네 명으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그때 앞 좌석에 앉았던 어머니가 돌아보며 물었다.
“아주버님! 북에 식구들은 없나요?”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요.”
큰아버지는 북한 말투를 쓰지 않고 표준말을 사용했다. 억지로 그렇게 쓰는 말투가 역력했다.
그 부분에서 큰아버지는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북에 들어가서 대남 선전 요원으로 발탁되었다고 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월남전에서 포로가 되어 끌려왔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념과 투쟁하다가 자진해서 북으로 넘어왔다고 하면서 대남 방송에 선전 요원으로 일하면서. 당에서 정해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식들은 없다고 했다. 같이 살았지만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남한으로 꼭 돌아가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같이 사는 여자를 꼬드겼다는 것이다. 남조선으로 가자, 거기에 가면 살길이 있다. 그래서 회령을 갔다가 노선을 이탈하여 심장이 약한 아내와 같이 걸어서 두만강 상류를 넘었다고 했다. 중공 땅이 더 검색이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노라고 하셨다.
남의 화물차를 얻어타고 흑룡강성으로 들어가 어느 조선족 집에서 석 달간 얹혀서 살았는데 거기서 아내가 죽었다고 했다. 본래 심장이 약해서 입술이 푸르죽죽했는데. 장티푸스까지 겹쳐서 병원에도 갈 수가 없었고 눈을 감았다고 했다. 그 조선족에게 장례를 부탁하고는 공안이 덮치기 전에 베이징으로 밤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 어느 전도사를 만나 여권을 만들었다며, 식구라면 흑룡강성에서 죽은 아내가 전부라면서 지금 북에 남는 식구는 없노라고 했다. 거기까지 들은 어머니가 말했다.
“아, 아주버님, 아주버님께서 여기 오셨다는 걸 북에서 알더라도 보복을 당할 식구는 없네요?”
“그런 셈이죠. 제수씨!”
“저는 그걸 가장 먼저 걱정했습니다.”
입을 열기 시작하자 서로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차가 해평시에 도착할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대화가 이어졌다. 큰아버지는 가족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고 어머니도 북한의 실정에 관해 궁금한 게 많았다. 페르세우스는 끼어들지 않고 두 분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국정원에서 하나원으로 들어가라고 종용했지만, 스물한 살까지 이 땅에 살았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뿌리쳤다고 하셨다. 페르세우스는 하나원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다. 그 점을 큰아버지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하나원이란, 북한 이탈 주민들의 초기 적응 교육을 하고, 사회 진출 후 안정적인 국내 정착을 위해 지원을 하는 통일부 산하 기관. 정식 명칭은, 북한 이탈 주민 정착지원 사무소라고 하셨다.
거기를 통하면 탈북주민이 되는 것이고 바로 나오면 참전 용사가 되는 것인데 누가 거기에 들어가겠냐고 하셨다. 그런 걸 어떻게 아셨냐고 어머니가 물었더니 면회한 참전 용사들이 알려주었다고 하시면서, 참전 용사 전우회에서 엄청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국정원에 조사를 받는 동안 매일 참전 용사 중의 변호사가 된 두 전우가 찾아와서 국방부와 싸우고 중재를 놓고 북에 있었던 기간을 복무기간에 합산시켜서 월급을 그렇게 만들었노라고 했다.
처음에는 국가 보훈처가 나섰으나, 변호사 출신 두 전우가 산 사람에게 무슨 보훈처가 필요하냐면서 보훈처를 제치고 국방부와 바로 합의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참전 전우회가 없었다면 일반 탈북민과 같이 분류될 뻔했다는 말씀이었다.
*19.
“아, 50년 만에 밟는 고향이구만!”
이제부터 행정구역상 해평시에 들어간다고 큰아버지께 일러주자 하신, 감탄의 말씀이다. 페르세우스의 귀에는 감탄이 아니라 비통함으로 들렸다.
50년?
얼마나 긴 세월인지 페르세우스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긴 시간일까? 앞자리에 앉은 어머니는 그 말에 또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댔다.
참전 용사, 중대장이 내준 대형승용차를 타고 편하게 집에 왔다.
어머니는 차에서 내려서 기사에게 사례비라도 주려고 했지만, 그는 사무적인 태도로 극구 사양하고 돌아갔다.
페르세우스는 큰아버지께 방을 안내하고 짐을 풀었다.
“집이 상당히 넓구만!”
집에 들어선 큰아버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 집이 넓다니? 북에서는 정말 좁게 산다는 것이었다. 북한과 비교하시니 그렇지 살아보시면 아닐 거라고 했다. 큰아버지의 관심은 핸드폰이었다. 그 귀한 것을 식구마다 다 가지고 있으니 놀랍다는 것이었다. 페르세우스는 무엇보다 큰아버지께 핸드폰을 사드리는 게 당장 급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시자 바빴다.
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일 큰아버지께서 할아버지 산소에 인사를 드리러 가려면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구는 이제 셋이 되었다.
짐을 풀고 세 식구가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어머니는 장을 보러 가시고 페르세우스는 큰아버지를 모시고 핸드폰 가게를 향했다. 핸드폰 가게는 봉곡 사거리에 가면 서너 군데가 밀집해 있었다.
큰아버지를 모시고 천천히 걸어서 내려가는데 큰아버지는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셨다. 고향이 너무도 많이 변해서 옛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고 실망하셨다. 큰아버지는 이 해평에서 중학까지 다니신 분이다. 당시에는 해평시에 해평중학교 하나밖에 없었고 12회 졸업생이라고 정확하게 기억하셨다.
“이 도시에 살고 계시는 동기들도 있겠네요?”
“찬찬히 찾아봐야지. 그게 일이지.”
그렇게 대답하시며 큰아버지는 해가 저무는 봉곡동의 뒷산, 다봉산을 보시더니 저건 옛날 그대로라며 이제 방향을 알겠노라고 하셨다. 저쪽이 형곡동, 저쪽 사곡동, 저 너머는 김천이라며 큰아버지는 기억이 나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정확하게 맞았다.
큰아버지의 이름으로 핸드폰을 만드니 큰아버지는 상당히 흡족해하셨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마치 아이들처럼 좋아하셨다. 국정원에서 직원들이 핸드폰을 쓰는 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아직 주민등록증이 없는 까닭에 중국의 대사관에서 만들었다는 여권을 제시하고 가입했다.
핸드폰은 즉시 개통이 되었다.
페르세우스는 개통이 되자 자신의 전화번호와 어머니 번호를 입력시키고 사용하는 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의 터치가 상당히 신기하신 모양이었다. 중국에서 핸드폰을 보았지만, 모두가 버튼식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큰아버지는 자신의 방에서 충전기에 꽂아둔 핸드폰을 주물럭거리고 계셨다. 말을 걸기가 미안할 정도로 심취하셨다.
페르세우스는 그제야 전화가 온 곳을 더듬었다.
모르는 번호부터 전화하니 의뢰인이지 싶은데 받지 않았다. 다음은 안드로메다에게 전화했다.
“오! 페르세우스여, 안녕!”
누군지 단박에 알았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지금 퇴근하는 중인데 운전 중에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낮에 무슨 일로 전화를 했었느냐고 물었더니, 왜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려고 전화를 했다고 농담을 했다. 페르세우스는 오늘 국정원에 가서 큰아버지를 모셔 왔다고 말하고 행사가 대단했는데 아마도 저녁 뉴스에 나오지 싶다고 했다.
“정말? 그랬군요.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에 일이 끝나서, 귀찮은 전화라 일부러 받지 않나 걱정했어요. 어때요? 가희에게 도움은 받았나요?”
안드로메다는 발랄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희? 아, 그 처녀! 그 골치 아픈 사건을 파악하는데 보험 내용이 아주 중요한 단서를 포착했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안드로메다는 내일 시간이 어떠냐고 물었다.
내일 시간?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데이트 신청을 먼저 안 하기에 자신이 먼저 하려고 시간을 묻는다며 농담을 하면서 사흘간 병원이 쉰다고 했다. 이유는 원장이 세미나에 가가 때문이라고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페르세우스는 혹시 그 원장도 세미나를 빙자하여 또 누드 촬영대회에 가는 게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내일 큰아버지께서 할아버지 산소에 가시는데 함께 가야 한다면서 시간이 나면 전화를 하겠노라고 했고, 안드로메다는 국립묘지에서 자신의 인사를 받고 벌떡 일어나서 오신 큰아버지도 어떤 분인지 보고 싶다고 했다.
눈치를 보니 저녁 늦게까지 큰아버지는 핸드폰을 주물럭거리고 계셨다. 상당히 신기하신 모양이다.
가끔 모르는 게 있으면 방문을 열고 페르세우스를 불렀다. 큰아버지께서 오늘 받은 전우들의 명함은 거의 한 줌이었다. 그걸 다 일일이 입력시키며 전화를 하시고 통화를 하시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는 모양이다.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번호와 어머니의 번호는 즐겨찾기에 넣어드렸다. 즐겨찾기? 이런 희한한 기능도 있었느냐면서 놀라워하셨다. 어머니는 저녁 늦게까지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셨다.
집은 이래야 한다.
페르세우스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큰아버지께서 집에 오시니 뭔지는 모르지만, 집이 그득 찬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집은 이래야 한다. 페르세우스는 비록 거실에 놓인 침대에 누웠지만. 어느 때보다도 아늑했다.
큰아버지는 아직도 방안에서 핸드폰을 주물럭거리고 계시는 모양이다.
밖에 별이 떠 있으려나?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의 별자리가 안녕한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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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는 케페우스의 나라에 거의 일 년을 머물렀다. 그사이 페르세우스의 아내가 된 안드로메다는 페르세스(Perses)라는 아들을 낳았다. 왕인 케페우스는 딸의 부부가 자기 나라에 머물기를 바랐다.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은근히 사위인 페르세우스가 자신의 뒤를 이어 에티오피아를 맡아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무척 걱정되었다. 결국, 그는 안드로메다를 데리고 세리포스 섬으로 돌아갔다.
아들인 어린 페르세스를 장인 케페우스의 후계자로 에티오피아에 남겨둔 채 세리포스 향했다. 헤로도토스(Herodotos)에 의하면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바로 이 페르세스에서 유래했으며, 페르시아인들은 모두 그의 후손이다. 후에 케페우스와 왕비인 카시오페이아가 죽자 포세이돈은 그들을 바다의 괴물과 함께 하늘에 별자리로 박아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카시오페이아 왕비에게 명예가 되지 못했다. 카시오페이아가 일 년 중 대부분을 발을 위로 향한 채 거꾸로 누워 있는 별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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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페르세우스는 누군가 현관에 들어서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큰아버지였다.
어딜 다녀오시는 길인가 물었더니 벌써 뒷산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이라고 하면서 다봉산에 올라가서 산세를 파악하니 옛날의 지형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하시면서 고향산천에 돌아온 사실이 이제야 실감 난다고 하셨다.
그렇지 큰아버지는 돌아오신 거야. 분명히 돌아오신 거야.
페르세우스는 꿈결에 그 말을 응얼거리고는 더 잤던가? 아니면 꿈을 꾸었던가, 모르겠다.
어머니는 음식을 너무 많이 장만하셨다.
한껏 장만하신 것이다.
준비한 음식을 보니 무엇을 이토록 많이 했는지 과일 외에는 전부 포장은 했는데 현관과 거실에 가득 늘려있을 정도였다. 얼른 보아도 트렁크가 없는 페르세우스의 스포츠카에 싣고 큰아버지와 셋이 타기는 무리다.
페르세우스는 잠시 생각했다.
기회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에게 SOS를 때렸다. 이른 아침이지만 실례가 된다는 생각은 절대금물이다. 다른 만만한 친구들은 이 시간이면, 직장을 가진 놈이면 출근을 했을 터이고. 학생이나 백수라면 오밤중일 것이 분명하다. 안드로메다 외에는 달리 연락할 곳이 없었다. 이 처녀를 몰랐더라면 어떡할 뻔했나?
“오! 페르세우스여, 안녕!”
냉큼 전화를 받은 안드로메다는 유쾌하고 발랄한 아침인 모양이다.
“내가 왜 이 아침에 전화했는지 알아 맞춰보세요?”
페르세우스는 능청을 떨었다.
“음, 뻔하지요. 오늘은 국립현충원이 아니라 사립 현충원으로 데이트를 가자고? 꽃이 피는 봄 동산의 데이트?”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 오전에 큰아버지랑 묘소에 참배 간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그랬나요? 십 분 내로 차를 가지고 지난번에 한우를 먹은 고깃집 앞으로 오세요. 아직 카메라를 완전히 포맷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고, 내가 필요한 건 그대가 아니라 차입니다.”
“스포츠카가 그럴 땐 불편하지요. 뒷말은 마땅히 영양가 없는 군더더기로 알겠습니다. 충성!”
역시 발랄한 국군 출신의 처녀였다. 뭔가 통하는 처녀다. 안드로메다가 사는 곳이 부곡동 전원 단지이니 십 분이면 족할 것이다.
어머니를 도와 현관과 거실을 점령한 음식을 아파트 입구 현관으로 꺼내고 있을 때 안드로메다의 빨간색 소형승용차가 아파트 마당에 주차하려다가 페르세우스를 보았는지 현관 앞으로 꽁무니를 디밀었다. 안드로메다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에 머리를 뒤로 묶었다.
화장하지 않아서 그런지 단아하고 순수해 보이는 게 예뻤다.
안드로메다가 어머니를 도와서 음식을 제 차에 뒷좌석과 트렁크에 가지런히 실었다. 음식 외에도 돗자리, 향로, 빈 그릇 등, 페르세우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건도 있었다. 준비물을 한창 차에 싣고 있을 때 큰아버지가 현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군복차림이었다. 어제 입었던 육군상사의 전투복이었다. 안드로메다가 인사만 꾸뻑했다. 준비물은 안드로메다의 차에 넘치도록 싣고 나머지는 페르세우스의 차에 실었다.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안드로메다의 차의 앞 좌석에 탔다. 큰아버지는 페르세우스의 스포츠카가 멋있다고 하면서 역시 앞 좌석 탔다. 어머니가 탄 이상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도 뒤따라서 찾아올 것이다. 선산은 금호동의 낙동강이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장만하셨다는 산이다.
“이 차가 정말 잘 빠졌구나!”
큰아버지는 스포츠카를 들먹이셨다.
“큰아버지 그런 말씀도 하실 줄 아세요?”
“배웠다. 이런 차는 비싸지?”
중고로 샀다고 하면서 현물 시세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얼마를 주고 샀다고 했으며 지금은 얼마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산소로 향하면서 큰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산에 대해서, 차에 대해서, 주택의 가격이며, 심지어 쌀값과 고깃값, 배춧값에 관해서도 얘기를 했다. 그런데 큰아버지는 형곡동의 땅에 관해서 묻지도 궁금해하시지도 않았다. 그게 이상해서 페르세우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옛날 형곡동 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뭐가 궁금해? 국정원에서 다 들었다. 도의원 선거를 두 번이나 치르고 국회의원 선거를 세 번이나 치렀는데 그게 온전하겠느냐? 요즘도 고무신 선거냐?”
“고무신 선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고무신 선거라는 게 있다. 나도 고무신을 받고 투표를 딱 한 번 해보고 입대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말을 해주마.”
이미 차는 선산 입구에 당도했다. 농로에 들어서자 안드로메다의 차가 바로 뒤따라 왔다. 농로가 다 포장이 되어서 차는 야산 입구까지 들어갈 수가 있었다.
봄날의 햇살이 따사로웠다.
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던 참배는 한나절이 넘어서고 있었다. 참배를 마치고 소풍 겸 산소 앞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은 것인데 상당히 더디게 걸렸다. 큰아버지는 이 봄철에 참으로 귀한 수박이라며, 수박과 참외 조각을 안드로메다 앞으로 자꾸 밀어주었다. 안드로메다는 산소 앞 잔디에 깔아놓은 돗자리 가장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큰아버지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 중이었다.
큰아버지는 중국을 거쳐서 북으로 압송되던 절박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부상병 둘이 도저히 걷지 못하자 호송원들은 다른 포로들을 묶어놓고 둘을 산기슭으로 끌고 갔고 곧이어 총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총은 뭐였나요?”
안드로메다가 사뭇, 궁금하다는 듯이 큰아버지께 물었다.
“총? 켈빈이었지. 켈빈이라면 처녀가 뭔지 알아?”
“큰아버지, 이 처녀가 육군 중사 출신이래요.”
말없이 듣고만 있던 페르세우스가 슬쩍 거들었다.
“그래? 그거, 참 놀랍네! 어느 사단에 근무했는데?”
놀라신 건 큰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놀라고 있었다.
“육군 27사단 의무대에 근무했습니다. 국군 간호학교 출신이거든요.”
“간호학교? 그렇더라도, 군사 기초훈련은 받았겠네?”
“겨우 총 이름 정도는 알지요. 겨우 폭발물의 제원 정도를 외웠지요. 부상병의 몸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알아야 하거든요.”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장만해서 가져온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썰고 떡과 송편으로 점심을 때우고 과일을 잘라서 먹으며 오붓한 시간을 산소 앞에서 가졌다. 모두가 한바탕 울고 나자 유쾌한 소풍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묏자리란 자고로 후손이 이렇게 와서 노닥거리며 먹고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해!”
그게 큰아버지의 견해였다.
큰아버지는 이야기하는 편이었고 나머지 셋은 듣고 짧게 묻는 형식이었다. 큰아버지는 가끔 술잔으로 입을 축이시며 두만강을 넘던 이야기와 흑룡강성에서 큰어머니를 묻지도 못하고 베이징으로 급하게 피신한 이야기부터 베트남으로 다시 넘어간 얘기까지 끝이 없었다. 말씀하시는 큰아버지의 무릎 앞에는 스마트폰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큰아버지는 상당히 흡족한 표정으로 그 핸드폰을 수시로 쥐어보고 살펴보셨다. 그렇지만 그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는 곳은 없었다.
누구도 큰아버지의 이야기를 자르고 그만 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큰아버지는 봄날의 긴 해가 중천을 넘어서자. 바로 아래 있는 아버지 산소를 힐끔 보시며 상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또 하셨다. 명색이 국회의원을 재선이나 하신 위인인데 묘가 저렇게 형편없어서는 안 된다는 게 큰아버지의 생각이다. 말씀 중간중간에 그 점을 또 피력하셨다.
할아버지의 산소는 할머니와 쌍분으로 좌판과 석축, 상석으로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페르세우스가 중학을 다닐 적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가 공사감독을 하시면서 인부를 사서 직접 하셨다. 할아버지의 산소에서 석축 아래 있는 아버지의 묘소는 그냥 봉분만 있는 산소라 큰아버지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큰아버지는 직접 주관하시어 그 공사를 하시겠다고 하면서 또 그윽한 눈으로 강을 보았다.
산소에서 보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한눈에 보인다.
큰아버지는 말씀 중간중간에 강을 보았고 페르세우스는 큰아버지의 눈에 흐르는 또 다른 강을 본 것이다. 핏줄이라는 강은 이렇게 흐른다. 해가 멀리 강 건너 비봉산 자락에 걸리자 큰아버지는 그만 돌아가자고 하시고 일어섰다. 먼저 일어서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왜 이 자리에서 긴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들으시라고 하신 말씀, 이라고 했다.
그런가?
큰아버지의 그 말에 어머니와 안드로메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만 가자.”
그 말을 기화로 안드로메다와 어머니는 남은 음식과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큰아버지는 할아버지 산소에 당도해서 큰절은 하시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야 만기 전역을 했습니다.”
좌판도 모자라 옆에 자리를 깔고 정성스레 음식을 손수 차리신 큰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산소 좌판 중간에 있던 음식을 약간 밀고 군복에 달려 있던 훈장을 떼어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산소 앞에 차려자세로 서서 입을 연 첫마디가 그것이었다.
만기 전역?
옆에 나란히 선 페르세우스는 그 말이 맞는지 의심을 했다. 장기근속 훈장을 받을 정도이니 만기 전역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그렇게 신고식처럼 외친 큰아버지께서 큰절을 올리시지 않고 거수경례를 척, 붙었다.
이게 만기 전역 신고식인가?
페르세우스는 옆에 차려자세로 선 안드로메다를 힐끔 보았다. 눈으로 물은 것이다. 안드로메다는 눈이 마주치자, 옳고 지당한 말씀, 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아버지는 거수경례를 오랫동안 지속했다.
이거 너무 오래 하시는 거 아닌가?
페르세우스가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가만히 보니 큰아버지의 거수경례를 한 손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끝내 눈물이 큰아버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급기야 다리를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페르세우스와 어머니, 심지어 안드로메다까지 볼에는 눈물이 흘러넘쳤다. 페르세우스는 경례를 한 채 후들거리는 큰아버지를 부축하며 산소 앞 잔디에 앉히셨다. 큰아버지는 산소 앞에 퍼질러 앉아서, 흐트러진 자세로 한참이나 땅을 치며 오열하셨다.
오열하는 큰아버지의 어깨를 부여잡고 페르세우스는 큰아버지가 이미 늙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큰아버지는 이미 초로의 노인이 된 것이다. 건장한 청년으로 입대했다가 초로의 노인이 되어 정말 만기 전역을 하신 것이었다.
산소 참배치고는 유쾌한 봄 소풍이었다.
산소에서 내려와서 큰아버지는 페르세우스가 모시고, 어머니는 안드로메다의 차에 당연하다는 듯이 올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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