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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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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복음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6.18-23 <또는 1.18-23>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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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2026.09.07 20:26 2026년 9월 8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1,18-23 오늘 우리는 한 여자아이의 ‘탄생’을 기립니다. 교회가 생일을 기념하는 이는 셋뿐입니다. 예수님, 세례자 요한, 그리고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보잘것없는 마을의 한 아기 탄생을 왜 온 교회가 기뻐할까요? 그 탄생이 ‘하느님 돌봄의 새벽’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기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오시어 우리를 몸소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복음은 먼저 긴 ‘족보’(1,1-16)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을 거쳐 이어지는 수많은 세대 ― 거룩한 이도, 부끄러운 이도 뒤섞인 그 긴 줄이, 결국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에게로 흘러듭니다. 성모님의 탄생은 이렇게, 하느님께서 수백 년을 ‘참고 돌보아 오신 신실함’의 열매입니다. 성 대 바실리오가 노래했듯, 이 탄생과 함께 ‘구원의 돌봄’이 조용히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중심에 ‘요셉’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게 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마리아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기도 ‘전에’, 그는 이미 ‘단죄와 망신’이 아니라 ‘조용히 지켜 주는 돌봄’을 택한 것입니다. 돌보는 사람은 이렇게, 남을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지 않고 그의 존엄을 말없이 감싸 줍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 이름의 뜻을 밝혀 줍니다. ‘임마누엘’ ―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바로 여기에 ‘돌봄’의 가장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와 함께’ 계시어 돌보시기에, 우리도 서로 곁에 ‘함께’ 있어 주며 돌볼 수 있습니다. 돌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임마누엘의 실천)’입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축일은 이렇게 우리를 부릅니다. ‘하느님이 먼저 너와 함께 계시며 돌보셨으니, 너도 요셉처럼 조용히 지켜 주고, 외로운 이 곁에 ‘함께’ 있어 주며 돌보아라.’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돌보심’을 느끼는가? 나는 요셉처럼 남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감싸 주는가? 나는 외로운 이 ‘곁에 함께 있어 주는’ 돌봄을 사는가? 나는 하느님의 ‘오랜 돌봄’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음을 아는가?
주님, ‘저와 함께 계시며 돌보시는’ 당신을 느끼게 하소서. 요셉처럼 남을 부끄럽게 하지 않고 감싸는 돌봄을 주시고, 외로운 이 곁에 함께 있어 주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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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2026.09.07. 15:32
의심의 이전과 이후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호명환 번역) 의심은 반드시 뒤로 물러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의심이 없는 신앙... 의심의 이전과 이후 2026년 9월 7일 월요일 사랑의 경험 안에 든든한 토대를 둘 때, 의심은 결코 뒤로 물러남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건이 됩니다. - 리처드 로어 CAC 핵심 교수진인 브라이언 맥라렌은 의심을 신앙 성장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는 "정통 교리(orthodoxy, 올바른 믿음)"에 머무르는 데서 "정통 실천(orthopraxy,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의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의심하기 전까지 저는 신앙이란 올바른 교리를 믿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 선생님들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올바른 교리를 믿지 않거나, 최소한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파문당할 수 있을 것이고, 죽은 뒤에는 하느님의 현존(하느님 나라)에서도 파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가르친 것은 결코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배웠고, 자신들이 이해한 규범에 충실하려 애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 길을 따르려 했고, 의심이 없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의심은 그 믿음을 조금씩 깎아내렸습니다. 고통스러운 한 번의 타격마다, 실제로 중요했던 것은 믿음의 조항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맑은 창이었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교리의 조항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며, 가치와 영성을 세우는 틀이고, 참된 삶이 될 수 있는 깊은 비전을 향해 살아가려는 헌신이며, 곧 사랑으로 드러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 모든 세월 동안 제가 "저는 믿나이다."라고 고백할 때, 저는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훨씬 더 깊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두고 논쟁을 벌이던 그 밑바닥에는, 훨씬 더 깊고 참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예를 들어, 창조 이야기가 창세기에 묘사된 그대로 실제 일어났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저는 세상을 실제로 소중하고 아름답고 의미 있는 창조물인 것처럼 살아가기로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 또한 그 창조의 일부인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야기들을 사실 그대로 믿었는지가 아니라, 그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믿고 그 의미를 따라 살아가려 했는지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의미가 내 안에서 숨 쉬고, 저를 움직이며, 저를 가득 채우도록 허락하는 것이었지요.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정확한지 여부는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제가 그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의미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제 믿음의 사실성을 의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저는 오히려 그 믿음의 참된 생명력 있는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의심은 신앙의 죽음을 의미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의심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신앙이 탄생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믿음의 조항'을 넘어서는 신앙, 사랑으로 드러나는 신앙, 더 깊어지고 넓어져서 당신의 삶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신앙 말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제 신앙 여정 속에서 "매일 묵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브라이언 맥라렌 선생님의 훌륭한 저서들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그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제 의심과 질문들이 결코 이단이 아니며, 제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위안이 됩니다. —Katy B. References Brian D. McLaren, Faith After Doubt: Why Your Beliefs Stopped Working and What to Do About It (St. Martins, 2021), 206, 207, 212.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enna Keiper, CAC Environment, 2019-10-09, Photograph, CAC campus, Albuquerque NM. "되어 가는 여정" 위에서 짐을 내려놓고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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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6.09.08 03:48
- 주님의 어머니로 재탄생하는 우리
마리아의 탄생을 우리가 축하하는 것은 마리아의 탄생이 우리와 의미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탄생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축하할 리 없지요.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 여자나 어미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잖아요?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요. 아내를 너무 사랑하면 처가 집 말뚝에게도 절을 한다고.
그래서 옛날 저의 어머니 환갑 때 어떤 분이 저의 어머니께 신부님 아들을 저희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축하드린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는 마리아가 고맙기 때문이고, 마리아가 고마운 이유는 마리아로 주님께서 오셨기 때문이고, 주님께서 오셨기에 우리가 구원받고 행복하게 됐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 9월 8일 마리아 탄생 축일과 12월 8일 성모 무염시태 축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 곧 주님의 탄생과 밀접하게 일치하는 축일이고, 성모 무염시태 축일 아홉 달 뒤 오늘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낳아주신 마리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리면서 우리는 축하만 할 것이 아니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낳아주신 동정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의 어머니들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먼저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동정 마리아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봉쇄 관상 수녀들을 그리스도의 정배라고 불렀는데 그것과 달리 프란치스코는 성령의 정배라고 불렀던 것이며 이는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잉태하셨기 때문이었지요.
다음으로 성령의 정배로서 주님을 잉태하고 낳아주신 성모 마리아처럼 우리도 주님을 잉태하고 낳아드리기까지 하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동정녀가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그 이상하고 괴상한 말을 성모 마리아께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신 그 아홉 달의 임신 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말씀이신 주님을 임신하고 태교까지 하는 아홉 달이 있어야겠지요.
그런 다음 내 안에서 자라난 하느님의 말씀을 이제 실천을 통하여 낳는 것입니다. 아홉 달 동안 내 안에서 태아였던 주님을 이제 아기로 세상에 낳아주는 것인데,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그 거룩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을 낳아준다고 프란치스코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마리아처럼 성령의 정배로,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재탄생하기로 마음먹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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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숨영성 묵상글 2026.09.08. 05:30 성모님 탄생을 기념하며 우리 존재의 엄청난 의미를 새겨 봅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릅니다. 마리아를 이 "테오토코스(Theotokos, 그리스어로 '하느님을 낳으신 분)"으로 묘사하는 성화들(이콘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호칭은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네스토리우스라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지닌 두 인격이라고 주장하며, 마리아가 단지 인간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뿐 하느님 제2의 위격이신 성자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아니라고 반대했습니다. 이를 따르는 이들이 많아지자 교회는 431년 에페소에서 공의회를 열고 마리아가 참으로 "테오토코스", 곧 하느님을 낳으신 분,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선언하며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일치되어 계신 분이심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어 451년 칼케돈 공의회도 이 선언을 재확인하며 이 가르침을 정통 교회의 가르침으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이 호칭은 마리아에 대한 존칭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곧, 아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도 태어나는 것처럼,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육화의 신비를 드러낼 뿐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을 완전히 하나로 지니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줍니다. 그러니까 "테오토코스"라는 호칭은 단순히 마리아를 칭송하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결합된 신비를 드러내는 교회의 신앙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인간 존재의 그 심오한 의미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모님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인류 구원과 완성을 향한 당신의 계획을 펼쳐 가시는 데 있어 성모님이 하신 역할이 엄청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와 더불어 성모님이 하느님의 이 계획에 참여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에게 원죄 이전의 인간 존재, 즉 본래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 주셨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에 의해 기적처럼 창조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족보를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미 예언된 존재요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 1,4-5) 하고 선언하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그 지위고하나 인종, 학벌, 외모, 능력 등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느님 안에서 이미 선택되고 예언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성모님은 우리에게 이 사랑의 진리를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시는 분인 셈입니다. 시편 저자도 139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제가 남 몰래 만들어질 때 제가 땅 깊은 곳에서 짜일 때 제 뼈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 이미 정해진 날 가운데 아직 하나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 당신 책에 그 모든 것이 쓰였습니다."(시편 139,14-16). 이 두 성경의 선언은 우리 존재가 이미 하느님 안에 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글에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알리 비나지르 박사'(Dr. Ali Binazir)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재할 확률에 대해 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 가운데 부모님이 만나게 될 확률: 2만 분의 1. - 그 만남이 이어져 생명이 탄생할 확률: 400조 분의 1 - 조상 대대로 이어져 지금의 '내'가 존재할 확률: 10의 2,85,000제곱 분의 1 제가 정확하게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정도일 겁니다. 엄청나지요?! 아니 가히 상상도 하지 못할 확률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존재 자체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언된 삶이든, 우연처럼 보이는 삶이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지루함과 설렘 속에서 '내' 삶이 기적임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당신은 또 다른 기적들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 때로는 성가시게 느껴지는 이들, 뉴스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까지도 모두 하느님의 기적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삶은 가장 큰 선물이며, 하느님께서는 그 선물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나누라고 초대하십니다. 성모님의 탄생 축일에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우리 존재의 이 엄청난 의미를 새기며 우리 내면에서 감사의 정과 사랑의 정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 불씨는 절대 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감사와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연금술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랑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감사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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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0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이 마르첼리노 M. 수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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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기도 1 하느님께서 들어오시는 거룩한 여백 ( 2026.08.26. 10:41 ) http://www.ofmkorea.org/ofmkfb/584127
가난과 기도 2 팔을 벌리시는 하느님과 포옹의 사랑 ( 2026.08.27. 01:21 ) http://www.ofmkorea.org/ofmkfb/584146
가난과 기도 3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과 존재의 가난 ( 2026.08.28. 03:06 ) http://www.ofmkorea.org/ofmkfb/584207
가난과 기도 4 형제 안에서 배우는 가난과 무소유 ( 2026.08.29. 03:36 ) http://www.ofmkorea.org/ofmkfb/584312
가난과 기도 5 사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한 교환 ( 2026.08.30. 05:42 ) http://www.ofmkorea.org/ofmkfb/584342
가난과 기도 6 보게 되는 사람에서 기도가 된 사람으로( 2026.09.02. 06:35 ) http://www.ofmkorea.org/ofmkfb/584513
가난과 기도 7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 2026.09.04. 19:58 ) http://www.ofmkorea.org/ofmkfb/58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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