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자수, 전향
나이를 먹었더니,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렇다 보니 독서 편지 쓰는 것이 하나둘 밀려 쌓여가고 있구나.
어제는 잠을 좀 많이 자서 그런지
오늘은 좀 컨디션이 괜찮아서,
또 피곤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독서편지를 하나 써야겠구나.
오늘 이야기할 책은 지난번에 이어서
정지아 님의 <빨치산의 딸> 2권에 관한 이야기란다.
지난 번에 말한 것처럼
2권은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뒷부분 이야기와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그러면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1부 ‘조국이 부르다’의 뒷부분 이야기를 해줄게.
<빨치산의 딸> 1권은
한국전쟁 중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방에 있던 국군들과 미군들이 빨치산을 진압하기 위해
지리산 인근으로 대거 내려왔고,
그들을 피해 빨치산들은 쫓겨가고 있는 부분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국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빨치산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들은 작전 변경을 해야 했어.
그 중에 하나가 위중자수였단다.
유혁운의 연인 김춘옥이 그 작전에 재격이었단다.
왜냐하면 김춘옥의 집안이 잘 사는 집안이었거든.
김춘옥도 그 작전에 흔쾌히 동의하였단다.
위장자수를 한 이후 지하에 침투하여 세력을 키워가기로 했어.
유혁운은 김춘옥의 위장자수 준비를 도와주었어.
믿을만한 지인의 집에 은거하면서 준비를 하였고,
김춘옥은 자수를 하였고 경찰도 김춘옥의 자수를 인정해 주었단다.
그런데 김춘옥의 위장자수를 준비하면서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라는 설득과 압박을 받았어.
더욱이 산에서 내려 와 있었기 때문에 퇴로까지 막힌 상황이었어.
고민 끝에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기로 했단다.
위장자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길고 긴 시간싸움이었단다.
경찰의 감시가 이어지는 와중에 지하 세력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았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는데 일년의 시간이 필요했어.
위장자수를 하고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옛동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하지만 그 동지가 배신을 했을 줄이야.
옛 동지의 배신으로 위장자수라는 것이 드러나고 체포되고 온갖 고만을 당했단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확정되었어.
그 때가 1954년이었어.
위장자수를 했던 김춘옥은 진짜 자주를 선택했단다.
힘든 산 생활을 하다가 편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 같더구나.
그렇게 변심한 김춘옥이 면회를 왔는데,
유혁운은 김춘옥과 결별하였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57년 유혁운은 전향하기로 결심했단다.
전향을 하면 일단 출소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진짜 전향이 아니고 전향인 척 하려고 했어.
밖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시 그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여기까지가 1권부터 이어진 1부 ‘조국이 부르다’의 이야기란다.
아빠는 1부를 읽으면서
김춘옥이라는 사람이 정지아 작가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1. 지리산의 영웅들
2부 ‘지리산의 영웅들’은 앞서 이야기했지만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란다.
아빠는 이런 내용을 모르고 읽어서
처음에 읽을 때는 1분의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좀 읽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내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옥남이라는 여자가 있었어.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집안이 어렵다 보니 부모님은 딸까지 공부를 시키지는 않았어.
하지만 혼자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고,
옥남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남편은 최규복이란 사람으로 장난기도 많고 재미있는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정을 붙이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최규복에게 정도 붙였단다.
그런데 1944년 최규복은 일제에 의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었고,
다행히 1945년 가을에 몸 건강히 살아서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남편은 사회주의 사상을 알게 되어 사회주의 운동을 하였어.
빨치산 활동도 하게 되었는데,
최규복은 옥남에게 같이 하자고 했단다.
최규복이 빨치산 활동하는 것이 알려지자
경찰은 최규복 집안을 들쑤셔 놓았고
최규복의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
옥남도 최규복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을 했단다.
그리고 산에서 아이도 낳았어.
산에서 도망 다니면서 어린 아가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
먹는 것도 편편치 않고 말이야.
결국 아이는 얼마 못 가서 그만 죽고 말았단다.
옥남은 지리산의 이현상 부대에서 소속되어 일했단다.
이름도 본명을 버리고 옥자로 바꾸어 활동했어…
남편과 한참 떨어져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기도 했단다.
그런 와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어.
1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물밀듯이 내려와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에게도 활약을 넣어주었지.
더 이상 산에 숨어 활동할 필요가 없어졌어.
이현상 부대는 낙동강 전선에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어.
이때 최규복도 참가했단다.
하지만 최규복은 그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단다.
…
인천상륙작전 이후 상황은 급변하게 반전되었어.
전선은 다시 중부 지방에서 형성되었고,
이현상 부대는 중부 지방을 지원하기 위해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하였단다.
전선은 중부 지방에서 계속 올라갔고,
이현상 부대도 계속 북상하여 북쪽 땅까지 가서
거물급 인사인 이승엽을 만나기도 했단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어.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후방을 교란하라는 역할이었어.
그래서 그들은 남부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남하하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았던 옥남에게 북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제안했지만
옥남은 끝까지 현장에서 투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남부군에 합류했단다.
남부군은 다시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왔단다.
내려오면서도 여기저기서 국군과 결전을 벌였고,
지리산까지 내려왔어.
지리산을 거점으로 유격활동을 했단다.
지리산에 가보면 세석 산장에서 장대목 산장까지 가는 길에
넓은 평원이 이어져 있고 나무들이 별로 없는 곳이 있는데,
빨치산 토벌을 위해 나무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그렇듯 지리산은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곳이란다.
아빠가 예전에 지리산을 좋아해서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그곳에 깃든 역사로 인해 숙연해지곤 했단다.
…
2. 하산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리산에서 유격 활동은 쉽지 않았어.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힘들었단다.
용변 보는 것도 그렇고 생리 현상도 그렇고 말이야.
하지만 여성 동지들도 꿋꿋하게 유격 활동을 했단다.
북으로부터 지원이 끊긴 남부군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400여명이었던 남부군은 150여 명으로 줄어들었어.
북쪽에서 이승엽 간첩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이 남부군에까지 전해졌단다.
전쟁 실패의 책임을 남로당 출신인 박헌영과 이승엽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북한의 음모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이 일로 이승엽 측근이었던 이현상도 종파주의자로 비판을 받고,
직책에서 물러났단다.
그리고 1953년 매복 중 죽고 말았대.
이현상이 죽고 나서 남부군을 궤멸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
(305-306)
지리산의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이 지고 거센 북풍과 함께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남부군의 마지막 낙원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11월 초 서남지구 경찰병력이 총동원되어 비행기까지 합동으로 달궁을 공격해 들어왔다. 대형폭탄과 기총사격에 밀려 남부군은 결국 한 달여의 천국을 버리고 그 달 말까지 지리산 곳곳의 골짜기를 전전하면서 월동준비에 바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겨울과 함께 남한 빨치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그 유명한 수도사단의 공세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후평에서 9백여 명에 가까운 대부대로 승승장구하던 남부군은 이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고 난 후 150여 명 정도만이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 수많은 인민군 정규부대도 넘지 못한 낙동강을 넘어 종횡무진 적의 심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남부군, 후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몇 천 리 장정 동안 유격부대답게 후방의 적을 마음껏 섬멸하고 다니던 남부군의 사실상의 유격투쟁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
오늘 이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아빠가 예전에 안재성 님의 <이현상 평전>을 읽고 쓴 독서편지가 있으니
다시 한번 읽어보면 오늘 해준 이야기랑 연계되어 좋을 것 같구나.
…
옥남은 부상을 입어 환자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동료의 배신으로 토벌대에 생포되었고,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단다.
================
(388-389)
남편의 얼굴이, 이현상, 박종하, 이진범, 양봉순, 다 기억할 수도 없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피가 스미고 살이 썩은 이 산은 봄이면 더 눈부신 녹음을 피워낼 것이다. 이 산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역사는 소용돌이치며 저 거대한 지리산의 산맥처럼 수많은 봉우리를 만들며 흘러갔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또 다른 동지들이 정상으로 오를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만큼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꿈꾸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마실 동무도, 김 영감도……
================
….
여기까지가 <빨치산의 딸> 2권의 이야기란다.
1부에서 이야기한 아버지와
2부에서 이야기한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까지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이야기는 옥남이 하산하는 부분에서 끝을 맺었단다.
소설 어디선가 다른 소속으로 근무하던
혁운과 옥남이 한번 스치듯 만나 인사를 나눴던 장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고,
이후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 궁금하기도 하구나.
그런데 이전에 읽은 정지아 작가님의 책들 중에
부모님이 어떻게 만났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거든…
한참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내려 했지만 슬프게도 생각이 나질 않았단다.
독서편지를 뒤져봤지만 그런 내용이 없었어.
아쉬운 기억력을 탓해야겠구나.
…
빨치산의 딸.. 참 잘 읽었단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부리까지 서로 겨누어야 했나 싶지만,
그들에게는 사상은 목숨보다 중요했나 보구나.
그리고 그들의 열정을 다 마칠 수 있던 것이 또 그들이 믿는 사상인가 보다.
무엇인가 하나에 빠져 온몸을 다 바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면서,
아빠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구나.
아무튼 정지아 님의 글빨로 인해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책 속에서 지리산이 많이 등장하여 문득 지리산에 가보고 싶구나.
마지막으로 천왕봉에 오른 것이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구나.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지리산 천왕봉에 한번 가보고 싶구나.
너희들도 함께 가면 더 좋고…^^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52년 4월 10일경, 곡성 봉두산에 있던 도당 연락과 분트가 적의 기습으로 전멸당하고 생포자까지 생기는 바람에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기존의 모든 연락루트가 차단됐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녀는 그 산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책제목 : 빨치산의 딸 2
지은이 : 정지아
펴낸곳 : 필맥
페이지 : 392 page
책무게 : 510 g
펴낸날 : 2005년 05월 30일
책정가 : 9,500원
읽은날 : 2025.01.29~2025.01.31
글쓴날 : 2025.02.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