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힘겹게, 불편하게 시청한 드라마가 또 있었을까 싶다. 지난달 28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리미티드 시리즈 '돌풍'(박경수 극본, 김용완 연출 12부작)을 마침내 다 봤다. 이 작품은 한때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꿈꾸던 운동권 세대가 현실 정치에서 직면하는 내적 혼란과 갈등, 동지들의 분열을 다룬다.
진보 진영과 운동권 세대의 정치현실 착근 실패와 좌절을 다뤄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자신을 한때 운동권 또는 친운동권 지지자라고 자부하는 이들-아마도 이 땅의 대다수 386세대가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데-을 의도적으로 후벼 파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6회 초반을 보다 이 시리즈를 그만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박동호(설경구)와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정수진(김희애)이란 캐릭터가 지난 정부 부총리를 지낸 A를 연상케 한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렇잖아도 A와 김희애의 곱상한 외모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런 기사를 보니 퍼뜩 A의 남편이 스스로 극단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시리즈가 공개된 것은 지난달 28일이고, A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이 같은 달 5일이었으니 이 시리즈가 극단을 선택한 동기로 작용했을 리 만무하지만, 정수진의 말로가 궁금했다. 박동호야 워낙 노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라 그가 절벽 위에서 몸을 던질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정수진이 학생 시절 갇혔던 교도소 담에 써놓았던 '민주주의 만세'를 다시 보며 오열한다는 장면이 어떻게 표현될지 무척 궁금해졌다.
박동호의 자살 장면이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다르게 그려지고, 정수진이 남편의 죽음마저 자신이 함정에서 빠져나가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설정이 약간 기막히게 다가왔다.
이런 정치 드라마는 '잘해야 본전'일 수 밖에 없는데 박경수 작가는 작정한 듯 우리 정치, 그 중에서도 진보 진영의 치부와 분열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6회까지 시청했을 때 극 전개 속도가 너무 휘황해 어질어질해 제대로, 더 이상 시청하기가 어렵다고 자백한 일이 있다. 12회까지 시청을 마친 지금까지도 그 시청 소감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흔히 이런 정치 드라마에 사람들이 내놓는 반응으로 가장 흔한 것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를 매일 어지러이 접하는 시청자들에게 정치 드라마는 필요 이상으로 피곤한 고문 도구일 수도 있다. 정의와 평등을 외치던 너희는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는가, 집요하게 묻고 따지는 질문들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한데 박경수 작가는 거듭된 반전과 충격적인 극 전개 속에 불편한 질문을 대놓고 묻고 또 묻는다.
아래 두 기사를 예로 들어보자. 한 기사는 진보와 보수 정치권이 이 드라마를 어떤 시각에서 보고 있는지 주마간산하듯 보여준다. 그 다음 기사는 한때 운동권이었다가 지금은 날선 비판을 가하는 이가 제2의 조국을 예감한다고 희망을 섞은 듯한 전망을 들려준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속설을 이렇게 강력하게 증거하다니...
"운동권 모욕"…盧 닮은 드라마 '돌풍'에 극과극 갈린 정치권 (daum.net)
돌풍, 제2의 조국 사태 예고하다 [민경우의 운동권 이야기] (daum.net)
내가 어질하고 현기증을 느낀 대목은 윤석열 정부 출범 2년 뒤 우리가 겪는 극심한 혼란과 엉망진창의 정치현실에 이 드라마가 어떤 시사점을 던지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여야 모두 극심한 진영 논리에 갇혀 그 모순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어떤 치유의 전망도 보여주지 않는 시점이며, 특히 보수 세력의 분열과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 이 드라마는 진보 대통령이 건너 뛰어 집권한 10년의 성적표를 놓고 진보의 분열과 그 대차대조를 맞춰보라고 강요하는 것 같은 점이 못내 마뜩찮았다.
또 하나 현실과 드라마의 닮은꼴을 의도하면서도 막상 캐릭터에는 여러 상반된 인물을 뒤섞어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나 싶다. 캐릭터에는 현실 정치인들의 모습을 부여하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빠져나가려는 것 같아 개운찮았다.
물론 12회를 다 본 소감은 그럭저럭 볼 만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개운찮은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45분 안팎의 12회 분량은 무더운 이 계절, 서늘한 바람 한 줄기를 안길 만하다. 누구나 박동호처럼, 심지어 박경수 작가처럼 세상 추한 것들을 확 쓸어버리고 싶은 갈증에 타는 목마름을 느낀다. 누구나 박동호처럼,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려 끝까지 밀어붙이고 한때 동지였던 이를 죽음과 같은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손수건'을 손에 쥐고 절벽 위에서 몸을 던지지 못한다.
사실 모두는 조금은 비겁하게 몸을 사리고 움추리며 오늘과 현실에 타협하고 안주한다. 그런 이들의 안일함에 경종을 울리려 했다면, 그게 박경수 작가의 의도라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이긴 한다.
하나마나한 얘기를 첨언하자면, 이 불편한 정치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작가 혼자 각본을 쓰지 않고, 여럿의 의견을 모아 창작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작가 혼자 썼으니 이렇게 뚝심있게 밀어붙였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일일이 지적하기엔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생뚱맞거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러 작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협업 시스템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다.
이 드라마를 비교적 초기에 시청한 이들이 헛웃음을 터뜨린 장면이 있었다. 사법시험의 한자 '사'를 개인 사로 표기한 실수였다. 혹자는 세상을 바꾼다는 미명으로 정치에 발을 들인 이들이 결국은 개인의 이익을 포획하려 앞장 서는 현실을 풍자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11일 아침 5회를 빨리 감기하며 확인했는데 '사법시험 면접' 플래카드 장면을 찾을 수 없었다. 배우 얼굴 표정으로 바뀐 것 같다. 물론 지엽말단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