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입력: 2021.09.06 / 추호경 - 경제포커스 08.22)
지난 7월 24일 인천지방법원은 8살짜리 딸을 미니 큐와 옷걸이로 마구 때리는 등 상습적으로 체벌을 가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친모와 계부에게 살인 및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 등 죄를 인정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우리는 아직도 ‘사랑의 매’라는 말을 쓴다. 놀랍게도 인터넷 검색창에 ‘사랑의 매’를 치면 파워링크 ‘사랑의 매’ 관련 광고가 뜨고 유명 인터넷 쇼핑 몰의 상품으로 연결된다. 거기에 들어가 보면 회초리・죽비・효자손・지시봉・채찍 등 여러 물건들이 널려 있는데, 그것들이 과연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들인가?
최근 아이를 때리거나 굶기는 것을 넘어서 쇠사슬에 묶어 두는가 하면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몸을 지지고 여행용 가방 속에 가두어 죽게 하는 등 끔찍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위 인천 사건에서는 소변을 빨대로 빨아먹게 하거나 대변이 묻은 팬티를 입에 물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가해자인 부모들은 하나같이 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들어 이를 바로잡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이에 법 개정 움직임까지 활발히 일어났다. 민법 제915조에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체벌을 하는 것이 법상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으니 폐지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어느 기자는 “부모 회초리에, 법이 회초리 들었다.”고 논평하기도 했는데, 대체로 위 조항 폐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이에 반하여 성경에도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잠언 13:24)라고 했는데 사랑의 매를 법으로 막는 것은 부모에게 자녀의 훈육 역할을 강제로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민법 제915조는 2021. 1.29.자로 개정되어 폐지되었는데, 여기서 나는 법률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정말 ‘매’에 ‘사랑’이 있을까 하는 점만을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매’라는 물리적 폭력에 이르기 전인 ‘꾸짖음’[罵倒]의 단계를 보자. 학교 숙제를 제대로 해 오지 못한 어린 학생에게 담임선생이 “정말 이거밖에 못해?”라거나 “넌 정말 구제불능이야!”라고 소리쳤다. 이 경우 그것이 애정의 표현인지 단지 짜증을 낸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그렇게 소리치며 혼내는 것이 그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 더하여 그 학생의 공책으로 머리를 내리쳤다고 하자. 그러면 그건 짜증을 넘어 폭력으로 화풀이를 한 것이지 정상적인 교육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사랑의 매’도 ‘사랑의 매도’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매나 매도는 사랑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기에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사랑의 매’, 나는 그건 허구라고 본다. 단지 ‘체벌’인데 사랑을 가지고 훈육한다고 미화 내지 자기합리화한 것일 뿐일 것이다. 매는 징계요 벌이다. 벌 주는 사람이 벌 받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피고인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하는 검사는 그 피고인을 사랑하는 것일까? 사형 집행인이 사형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징계요 벌인 매는 폭력으로 맹목적으로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거기에 사랑을 담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제로나 불가능에 가깝다. 매를 맞는 사람도 매를 맞으면서 사랑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은 앞에서 말한 잠언의 내용을 들어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매를 아끼지 말라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 루가복음(15:11~32)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경우를 보자.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 늙은 아버지는 그를 반가이 맞으며 따뜻한 미소로써 품에 안아주는데, 만약 아버지가 그에게 사랑의 매를 마구 때려댔다면 그는 ‘다시 떠나버린 탕자’가 됐을 것이다.
따끔한 매는 우선 맞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어 비행 교정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고치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고통을 못 이기고 또 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잠시 그 비행을 피하는 것일 뿐이다. 처벌에는 교육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이론이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미 정설로 되어 있다. 체벌이 계속되면 그것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비굴한 노예근성만 길러주게 된다.
매를 때리는 부모는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식에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한다. 진정한 애정이 담긴 관심 대신 이러한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자기 잘못의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고 그러한 폭력이 사랑의 한 표현이라는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부모의 뜻에 맞고 칭찬을 받기 위한 행동만을 찾게 되고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통로는 막히게 된다. 이처럼 어린 시절 사랑의 매에 길들여진 아이는 예속적인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부족하니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또한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악은 모든 세대에 걸쳐 새롭게 창조된다는 한 학자의 주장은 섬뜩하게 다가오는데 경청할 만하다.
갓난아기들에겐 잘못이 없다. 어떤 성향을 타고 나든, 갓난아기들은 삶을 파괴하려는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보살핌과 보호,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며, 또 자신을 사랑하려고 한다. 인생의 첫 걸음을 내딛는 시기에 영혼이 학대를 받은 경우에만, 인간은 파괴적인 충동에 내몰린다.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악이 반드시 인간 본성의 일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 보고 메모해 뒀던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출처를 깜빡하고 적지 않았다. 아마도 사형제도와 관련된 것 같은데, 내가 이걸 읽고 섬뜩했던 건 어린아이를 매로 때리는 행위가 사형수도,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도, 사형제도도 만들어 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말 우리는 이 사회를 더욱 밝고 따뜻하게 가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 영혼에게 진정 어린 사랑으로 보살피고 배려해야 한다. 탤런트 김혜자 님의 말씀대로 절대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
(경제포커스 2021.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