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의 세례축일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30여년의 사생활을 마감하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이정표를 묵상하고, 또한 우리자신의 세례를 상기함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잘 살고 있는지도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사생활과 공생활의 분기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활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유다의 법을 지키셨듯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품위를 인정하셨고,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시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메시아 왕으로서 그 권능을 행사하실 것이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심은 은총의 때,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였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는 심판의 때가 지나고 은총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세례성사가 세속과 죄악에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총의 시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합일(合一)이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나무에 우리가 접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그대로 이어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평신도사도직의 본질적인 원천이 있는 것입니다.
비천하게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구유에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죄 없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스스로 죄인임을 자청하면서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받으심으로서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는 겸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몇 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였던 ‘헨리누에’ 박사가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박약자 수용시설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이 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의 저서 20여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였다. 그가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박약자 시설에 들어가서 정박아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여주고, 정박아들과 같이 놀아주는 등 잡일을 하면서 받는 봉급이란 생계에도 타격을 입을 만큼 작은 봉급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고생과 낮은 봉급에도, 언제나 기뻐하고 만족해했다. 사람들이 왜 이런 고생을 자처하느냐고 물을 때, 언제나 웃음과 침묵으로 대답하던 그가 최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책을 통하여 그 답을 주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올라가는 길만 신경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말을 듣고, 언제나 1등으로 달렸으며, 하버드대학교수까지 되었다. 나의 저서는 20여권이 뭇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오직 성공을 위하여 더 높이, 더 크게, 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만 달려 왔다. 그러나 한 정박아를 만나면서, 인간이란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내리막길을 갈 때 성숙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르막길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는데, 내리막길에서는 복음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라고 했다.”
하느님과 이웃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낮은 자되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여 내리막길을 자청하여 가고자 할 때 인간이 성숙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요즘처럼 주연만을 원하고 1등만을 요구하며, ‘왕자 병’ ‘공주병’ 에 길들여진 우리 세대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례 받은 자의 삶,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은 이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죄인처럼 낮은 자 되시고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겸손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이런 겸손을 사랑으로 실천할 때 사랑이신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작은 권력, 작은 재물, 작은 명예로 인하여 내리막길을 택하기 어려워하는 우리는 무엇으로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세례 받은 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겸손과 크신 사랑을 본받는 것이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례 받은 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