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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2장 24절 ~ 35절
토루들을 보소서, 그들이 이 성읍을 취하러 왔으며, 이 성읍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하여 이것을 대적하여 싸우는 칼데아인들의 손에 주어졌으니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나이다. 보소서, 주께서 그것을 보시나이다. 24)
Behold the mounts, they are come unto the city to take it; and the city is given into the hand of the Chaldeans, that fight against it, because of the sword, and of the famine, and of the pestilence: and what thou hast spoken is come to pass; and, behold, thou seest it. 24)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침략당하는 과정은 약소국 이스라엘이 무모하게 강대국 바빌론을 대항하는 모습으로 생각하기 쉬운나 반드시 그런것은 아닙니다. 위의 말씀에 전염병(the pestilence)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의 발생시기는 전세계적인 소빙하기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렸습니다. 기온이 낮아지면 농작물의 수확량이 크게 줄어듭니다. 하지만 난류에 감싸여 있는 해양기후인 일본은 조선보다 그 영향을 덜 받았던 것입니다. 조선의 패배는 이러한 기근에 원인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이후에 발생한 경신대기근은 임진왜란의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기근은 곧 전염병이기도 하였습니다. 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으면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입니다.
https://tv.naver.com/v/13518410?t=0
이스라엘은 기근과 전염병이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예루살렘이라는 튼튼한 성으로 방어를 하여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와 바빌론의 공통점은 강의 하구를 기반으로 비옥한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집트와 일본은 매우 유사한 조건을 가진 국가입니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적의 침입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이 거의 유일한 외부 침략 시도였는데 그마져도 태풍으로 좌절되었던 것입니다. 이집트도 나일강 삼각주의 비옥한 곡창지대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조선반도 아래의 길쭉한 섬들이 모여있는 곳이 왜입니다.
일본이 강성해진 이유는 화산토양으로 비옥하고, 외부의 침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왜의 침략에 무너졌던 것과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무너진 것은 역사로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당시에는 알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은 비옥하고 넓은 영토를 가진 일본을 잘 몰랐습니다.
사람의 시각은 상황인식도 제대로 못하는 것뿐만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한치앞의 일도 내다 볼수 없는 것입니다. 조선이나 이스라엘이나 전쟁에서 오판을 한 것입니다.
일본과 이집트와 바빌론이 강성해진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빌론에게 이스라엘을 치도록 강력한 힘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바빌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치도록 허락된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게 바빌론이 있었고, 조선에는 왜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일루미나티가 있는 것입니다. 바빌론과 왜와 일루미나티는 모두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용하시어 재앙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재앙의 목적은 우리를 살리게 하심입니다. 이땅에서 평안함을 우리는 바라지만 잘못된 평안함은 사망에 이르는 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곤란하고 피곤한 일들은 곧 우리 삶의 진실을 바라보게하는 각성제와 같습니다.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돈을 주고 그 밭을 사고, 증인들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읍은 칼데아인의 손에 넘어갔나이다. 25)
And thou hast said unto me, O Lord GOD, Buy thee the field for money, and take witness; for the city is given into the hand of the Chaldeans. 25)
일제는 조선을 합병하고 대대적인 토지측량과 조사를 단행합니다. 기존 조선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여 주었지만 그외의 소유권이 분명하지 않은 토지들은 모두 일본인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졌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패망하고 떠나자 일본인들의 토지와 주택은 적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정부에 귀속되었습니다. 이처럼 정복당한 국가의 토지 소유권은 전쟁의 승리와 관련이 깊습니다.
O 그때에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나이다. 26)
Then came the word of the LORD unto Jeremiah, saying, 26)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있겠느냐? 27)
Behold, I am the LORD, the God of all flesh: is there any thing too hard for me? 27)
위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에서 부딪히는 일들에서는 자신의 생각대로 대처하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시드키야왕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옵고,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마태복음 6장 13절
이 땅을 포함한 하나님의 왕국과 왕국의 권세와 왕국의 영광이 아버지의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그 왕국의 권세와 영광에 해당되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다면 당신은 시드키야왕을 어리석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복음의 지식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은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백신을 인내함은 백신패스적용의 끝이 예고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책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책은 없지만 신념대로 가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신념이며, 그 신념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일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음도 대책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것을 거부할 대안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신뢰하여야만 짐승의 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신패스에 대한 세상적인 대안은 없었고 짐승의 표에 대한 이 땅의 대안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외에는 대책이 없을 것입니다. 무대책으로 버티는 것외에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만한 이 땅의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여 말한다면 많은 신학대교수들과 많은 목사들이 권위를 내세우며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덩달아 함께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모습을 목격하고도 우리는 이 땅의 진정한 권세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뢰가 믿음이며 이것이 없이는 백신도 짐승의 표도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백신의 세상적인 대안은 접종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의 세상적 대안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백신이 아니라 짐승의 표가 먼저 나왔다면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그대로 짐승의 표를 받은 숫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99%는 참 슬픈 숫자가 됩니다. 그러나 백신으로 한 번 깨닫게 해주심은 주께서는 오래 참으시어 기회를 더 주신 것입니다.
사탄의 영을 가진 자들은 사탄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들의 행위로 그들안에 있는 것이 악한 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은 불순종의 영으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이 게임을 하는 것은 문자적으로 지옥을 바라고 지옥의 시간을 플레이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사탄의 자기 선언으로 효력은 전혀없습니다. 다만 이 사탄의 영을 가진 자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가증함에 참여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죄를 짓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토록 바라던 지옥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사탄의 입장에서는 사탄 자신에 타협한 사람들은 모두 지옥을 그토록 바라던 사람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타협하는 모든 사람은 지옥을 그토록 바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대적하는 것과 사탄과 타협하는 것에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칼데아인들의 손과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의 손에 주리니 그가 그것을 취하리라. 28)
Therefore thus saith the LORD; Behold, I will give this city into the hand of the Chaldeans, and into the hand of the Chaldeans, and into the hand of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 and he shall take it: 28)
예루살렘이 칼데아인들의 손과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의 손에 주어진 것은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정확하게 지금도 이런 방식을 추구하며 허락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일루미나티의 권세는 곧 우리의 타협과 안일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에서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입니다. 백신을 맞으라고 압제하는 사람도 백신을 맞고 아픕니다. 우리를 압제하고 공격하는 자들은 우리보다 무조건 더 나약한 자들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들은 나약하여 사탄에게 굴복하고 타협을 하였거나, 아니면 어리석음으로 무지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hy9yvl7R18o?t=75
위의 캐나다의 산불이 동시발화되는 모습은 사탄의 지문입니다. 사탄의 지문을 보셨다면 그들과 타협과 동참은 지옥이므로 죽음을 각오하고 서라도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일루미나티의 막강한 권세가 아니라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이 쓰여져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빌론에 굴복하라라는 예레미야와 같은 메시지가 없는 것이 차이일뿐 과정은 모두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루미나티에 복종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정보를 당신이 알게되는 것은 그들의 죄의 부담감(karma)을 줄이려고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일루미나티의 권세를 존중해서도 안되고, 이런 정보를 전하는 자들을 대단한 영웅처럼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둘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을 볼때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루미나티의 강력함이나 비밀정보를 알려주는 자들의 능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이런 일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합니다.
ufo는 렙틸리언, 지구 평평론(flat earth)와 같은 거짓 깃발(false flag)입니다. 당신에게 미디어를 통하여 전달되는 정보는 그들이 통제하는 정보입니다. 그들이 일부러 주는 정보를 비밀처럼 알려주는 자들을 대단하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예레미야에게 전달하신 하나님의 뜻은 재앙에는 끝이 있으니 그 끝을 기다려 너의 땅을 다시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일루미나티들이 일으키는 재앙속에서도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이 재앙의 끝에는 예레미야의 땅과 같이 우리의 권리를 다시 차지하는 때가 다시 오리라는 것입니다. 악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지만 우리는 포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포기는 악과 함께 악의 정해진 멸망함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계속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사탄과의 타협은 지옥을 그토록 바라는 것이되고, 사탄과의 타협을 거절함은 우리의 목숨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역사에도 일제가 적산(적의 재산)을 남겨두고 조선을 떠나간 것처럼 그러한 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루미나티는 강력해보여도 조선을 점령한 일제나 바빌론의 군대처럼 때가 되면 멸망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땅을 사라고 하신 것은 침략가운데서도 그 끝이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로 향하는 것은 어둡고 비극적인 고통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위선을 감추어졌던 원래의 세상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읍을 대적하여 싸우는 칼데아인들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고 그 지붕 위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술붓는 제사를 부어 나를 격분케 하였던 집들과 함께 그 성읍을 불태우리니 29)
And the Chaldeans, that fight against this city, shall come and set fire on this city, and burn it with the houses, upon whose roofs they have offered incense unto Baal, ans poured out drink offerings unto other gods, to provoke me to anger. 29)
진정한 악이란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람의 죄의 길을 고집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저질러온 이교와 이단 그리고 음란과 하나님을 대적함의 결과를 이제야 치르게 되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이런 일들의 계산의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일들의 기억을 잊는다고해서 이 일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에 반대하고 동참하지 않았다고 징계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의 징계는 집단적입니다. 그 근거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빌론으로 끌려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는 주께서 기억하지 않으셔야 사라집니다. 사람의 편의대로 잊고 싶은 것은 잊고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우상의 위치에 서있는 것이 됩니다. 우상은 군림하지만 아무런 능력은 없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내 앞에서 악만 행하였음이요,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 나를 격분케만 하였음이라. 주가 말하노라. 30)
For the children of Israel and the children of Judah have only done evil before me from their youth: for the children of Israel have only provoked me to anger with the work of their hands, saith the LORD. 30)
이스라엘 자손이 만든 작품으로 하나님을 격분케 할만한 것은 토펫일 것입니다. 우리시대에도 토펫에 견줄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낙태아세포를 복제 배양해서 만든 코로나 백신입니다.
제물을 불구덩이에 넣어서 산채로 태우는 것이나 독극물을 속여 받도록하여 고통속에서 죽게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코로나 백신은 제물을 바치는 도구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은 저와 여러분도 겪게 될것입니다. 그때에 억울하다 할 것이 아니라 다니엘과 세 친구의 모습을 본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성읍을 세운 날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성읍이 나의 격노와 분노를 발하도록 내게 행하였기에 내가 그것을 내 면전에서 옮겨야 하나니 31)
For this city hath been to me as a provocation of mine anger and of my fury from the day that they bulit it even unto this day; that I should remove it from before my face, 31)
힌놈의 골짜기가 예루살렘 남 서쪽에 있었으므로 토펫또한 거기에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자손과 유다 자손의 모든 악 때문이요, 그들이 나를 분노케 하였음이니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들의 고관들과 그들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거민들이라. 32)
Because of all the evil of the children of Israel and of the children of Judah, which they have done to provoke me to anger, they, their kings, their princes, their priests, and their prophets, and the men of Judah, and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32)
재앙을 일으키는 권한이 바빌론에게 주어짐은 곧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의 모든 악 때문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이러한 집단적인 징계와 심판이 이뤄집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어 한국교회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신들의 교회문화를 만들어 그들만의 세상을 추구하고, 성도들을 외면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는 것과 같음입니다. 이 땅에 어려운 일들은 곧 우리 이웃들의 죄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함께 인내하며 겪어내어야만 합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다른 것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처럼 회복 구원받음에 대한 약속과 그에 대한 소망을 가진 것입니다.
그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얼굴을 돌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일찍 일어나 그들을 가르치고 가르쳤으나 그들은 교훈을 받으려고 경청하지 아니하였고 33)
And they have turned unto me the back, and not the face: though I taught them, rising up early and teaching them, yet they have not hearkened to receive instruction. 33)
당시의 이스라엘은 시드키야가 예레미야를 대하는 것처럼 자신들에 대한 긍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을 설득하고 이스라엘의 사명을 전달해주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대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재앙과 같은 징계만이 변화를 불러옵니다.
조선시대도 일본이라는 침략국이 없었다면 지금도 사대부 양반의 지배체제는 유지되었을 것입니다. 수백년간을 사대 기득권을 유지해오다가 스스로의 변화가 아니라 외부의 변화에 의하여 한순간에 붕괴되어버린 것이 반상제도, 즉 양반 상놈체제였습니다.
이렇게 굳어버린 반상체제는 지금의 교회문화로 녹아들어 견고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에도 목사중심주의와 교회중심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세상과 분리되어 자신들의 질서와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중들이 속세를 떠나는 것과 반대로 우리는 세상속에서 낮은 자세로 세상을 감당해야 합니다. 내 자신 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됩니다.
적어도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는 세상의 악이 부끄럽게 여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의 악과 어울리는 기독교인들을 목격하게 되니 사람들은 침묵하지만 그 안에서는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였도다. 34)
But they set their abominations in the house, which is called by my name, to defile it. 34)
그레서 지금의 한국교회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 교회를 가증스럽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이단의 목적이며, 많은 이단들의 목적은 그들의 교세를 확장하여 그들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도록 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혼란을 주고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들을 지어서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에게로 불읕 통과하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 그들이 이 가증함을 행하여 유다로 죄를 짓게 한 것이라. 35)
And they built the high places of Baal, which are in the valley of the son of Hinnom, to cause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to pass through the fire unto Molech; which I commanded them not, neither came it into my mindm that they should do this abomination, to cause Judah to sin. 35)
불을 통과하게 하였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불을 통과하는 의식을 거쳤다는 것이 아니라 토펫, 도벳에서 그들의 자녀들을 불로 태워 죽여서 몰렉에게 바쳤다라는 의미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시체와 뼈들의 골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통과(pass through the fire)라는 말씀 때문에 불길을 만들어 놓고 통과하는 그런 의식으로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왜 주께서는 통과한다는 의미를 쓰셨는지가 궁금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우리 눈에는 그들의 육이 불에 태워져 제물로 소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육은 소멸하지만 그 영과 혼이 불길을 거쳐서 나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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