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길엔 토돌이와 토순이 녀석을 만나는 친구가 있어 즐거움도 있다.
필명(여명)/김진호 시인 수필가
전주 완산 칠봉 공원에 정혜사를 거쳐 습지 생태계 보호 구역으로 나는 자주 산책을 한다.
산책하러 가는 길엔 '천사 어린이' 유치원에서 기르는 토끼 암수 두 마리가 있다.
산책하러 갈 때마다 내가 이름을 지어준 '토 돌이, 토 순이' 한 번도 빠짐없이 들러 인사를 한다. "토돌아 토순아 안녕 잘 있었니" 이렇게 인사를 하면 보금자리 터널 속에서 뛰어나온다. 산책 길엔 나는 어김없이 이 녀석과 친구가 되어 인사를 나눈다. 산책할 때마다 나는 '토돌이, 토순이'를 생각하면서 산책하는 길엔 그 녀석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그리고 꼭 '토돌이, 토순이'가 좋아하는 풀을 뜯어가곤 한다. 이 녀석들 내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알아차린다. "토돌아, 토순아 안녕! 맛있는 밥 가져왔다 먹어라" 이렇게 인사를 하면 보금자리 속에서 뛰어나온다. 풀을 주면 이 녀석들 눈길도 안 주곤 맛있게 잘도 먹는다.
어느 날이었다. 수컷인 토돌이가 보이질 않고 토순이만 나를 맞이한다. 웬일일까 궁금했다. 나는 어린이집 보모 선생님에게 물었다. "토끼 한 마리가 보이질 않네요." "네 선생님 왠지 모르지만 한 마리가 죽어 묻어주었어요." "아 그래요. 그동안 좋은 친구였는데 슬프고 너무나 서운하네요" "선생님이 항상 풀을 주었는데 저도 서운해요" 말하면서 보모 선생님도 아쉬워했다. 지금도 산책을 할 때마다 꼭 들러 인사를 한다.
오늘도 외롭게 지냈을 토순이와 인사를 하곤 한다. "토순아 잘 있었니 날씨가 무척 춥구나 춥진 않았니?" 인사를 하면 오늘도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산책로 친구 토순이 언제까지나 토순이가 친구가 되어줄지 외톨이 토순이가 애처롭다. 오늘도 산책하러 가는 길에 토순이가 무사한지 걱정스럽게 어린이집을 찾는다.
요즘은 토순이가 잘 있는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산책로 친구가 되어 준지가 2년이 되었는데 토돌이는 떠나고 오랜 친구였는데 외롭게 혼자 남아있는 토순이가 언제까지 친구가 되어줄지 들릴 때마다 토순이가 잘 있는지 요즘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짝꿍이 죽었으니 얼마나 외옵고 쓸쓸할까 생각하니 측은지심 (惻隱之心)이 든다. 오늘 따라 왠지 우울한 느낌이다.
산책길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완산칠봉 산책로 산책을 한지가 어연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산책로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다정히 인사를 한다. '김 선생, 이 선생, 전 선생' 등은 산책길에 자주 만나 친분이 되어 담소를 나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선생이 보이질 않는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이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보니 인생의 무상함속에 내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날 내 일생동안 '희로애락' 삶이 일순간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시골 뒷골목에서 개구쟁이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난날 생각해 보니 내 삶은 기쁨보다는 가난 속에서 보리고개 배고픈 고난의 고달픈 시절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나는 해방둥이로 태어나 6.25 동족상잔의 비극의 후반의 폐허 속에 국민 모두 어려운 가난과 배고픔 보릿고개를 겪었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짧은 인생 왜 이렇게 아옹다옹하며 다투고 미워하고 그럴까? 권력을 탐하고, 돈에 집착하면 그 욕심 때문에 그 집착이 자신도 고통의 연속이 되고 심리적 압박감이 될 것이며 극단적 이기심 그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짧은 인생 즐겁고 유익한 삶의 행복은 어느 인류학을 연구한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권력자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돈을 지키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하루도 편안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평범하고 욕심이 없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순응하는 사람이 심리적 압박감도 없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단락 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즘 내 뒤를 돌아보면서 이젠 내 생애를 정리해야 할 황혼기에 접어든 삶을 어떻게 즐겁고 유익하게 보람된 삶을 마감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마음이 울적한 것은 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