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물새의 저녁 - 마종기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어머니는 곱게 사그라지셨다.
몇 해 전부터 자주 몸을 털어내셨다.
증인이 될 수 있다고 흰 물새가 나선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시고 가는 다리 꺾고
힘없이 미소 몇 개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
낯선 곳의 낯선 언어가 종일 떠돌아다니는
9월에도 여름이 머물고 있는 먼 나라에서
한숨 끝에 노래의 추임새를 타고 떠나셨다.
그래도 물새는 두 다리를 물에 담그고야
마음 편한 얼굴이 되어 낮잠이 들고
며칠 안 가 그 물새 등에 은근히 기대고서야
잠 깨듯 눈뜨는 호숫가의 보랏빛 꽃들,
그렇게 엇물려 우리는 살아왔다. 어머니는
사랑하던 사람을 찾아 나선 것이 틀림없다.
외롭지 않은 물새가 어느 물가에 있으랴만
나도 두 눈을 당신 안에 은근히 담고서야
시들어버린 둘레를 볼 용기가 생겼다.
떠나시는 어머니를 보듬어 안는 저녁 빛,
이 외딴 풍경은 여명까지 엉겨 있어서
온기가 남은 물새에게 전해진다지만
아직은 물에 젖은 물새의 다리,
물에 젖은 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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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하는 詩
경건한 물새의 저녁 - 마종기
h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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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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