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래 姓은 母系를 표시, 氏는 父系를 표시, 최초의 姓들은 모두 ‘女’ 부수 사용
⊙ 周와 로마의 姓氏제도 유사, 姓은 로마의 ‘Gens’, 氏는 ‘Familia’에 해당
⊙ 중국 史書가 최초로 기록한 법흥왕은 募씨로 되어 있어, 진흥왕순수비에도 신하들의 성씨는
보이지 않아
⊙ 고려 이후에는 西域·東南亞 출신 귀화자 많아… 장순룡·인후 등은 정승 반열에 오르기도
황제의 어머니가 姬水에서 황제를 낳은데서, 姬라는 姓이 생겼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성씨(姓氏)’를 ‘성(姓)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예컨대, 김씨, 이씨 하는 말에서 김(金), 이(李)라고 하는 성에다 존칭으로 씨(氏)를 붙여준 것이 ‘성씨’라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중국 주(周)나라 때에는 성과 씨가 별개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성의 기원(起源)을 주대(周代)에 두고 있었다. 주나라에서 혈통 표시로 일찌감치 등장한 것이 성이었다. 당시 주 왕실의 성은 희성(姬姓)이었다.
1955년에 조좌호(曺佐鎬) 동국대 교수가 펴낸 《동양사대관(東洋史大觀)》은 주대의 성씨제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존칭 ‘姬’는 원래 周나라 王室의 姓
〈주의 성씨제도는 로마의 성씨제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주나라 사람의 성은 로마의 ‘Gens’에 해당한 것인데 여러 성 가운데 주 왕실에 속하는 희성(姬姓)이 가장 고귀하고 유력하였다. 성을 여러 씨(氏)로 나눴는데 씨는 주로 거주하는 지명 또는 세습하는 관명(官名)을 따서 붙였다. 씨는 로마의 ‘Familia’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귀족의 칭호는 성(姓)·씨(氏)·명(名) 세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보통 남자는 씨와 이름을 칭하고 여자는 성과 이름을 칭하였다. 가령 진(陳) 나라의 공실(公室) 성은 규(嬀)이며 씨는 진(陳)이었다. 일찍이 진나라 한 공자(公子)가 공실을 찬탈한 바가 있는데 춘추(春秋)에는 그를 진타(陳陀)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진은 씨이고 타(陀)는 이름인데 그가 남자(男子)이기 때문에 성인 규를 생략한 것이다. 그리고 진에서 위국(衛國)으로 출가한 여자가 있었는데 여규(厲嬀), 재규(載嬀)라 하였다. 그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성을 규(嬀)라 하였다. 이것은 로마에서도 같은 것으로 이름(persona), 성(Gens), 씨(Famillia)를 표시한 것인데 남자는 보통 성을 생략하였다.
주 왕실의 성은 희(姬)의 성인데 여자를 모두 희(姬)라고 불렀기 때문에 뒤에 희가 일반 여자의 존칭이 되었다. 주인(周人)의 성은 결혼에서 중요한 의의(意義)를 가진 것으로 그것은 동성간(同姓間) 결혼을 금(禁)하는 것이었다.
후세에 이르러 씨족제도가 문란해져서 성이 사실상 소멸하고 씨와 성을 혼용한 후에도 동성불혼(同姓不婚)의 법이 실제 동씨불취(同氏不娶)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왔다. 가령 장씨(張氏)와 장씨(張氏), 이씨(李氏)와 이씨(李氏)는 아무리 혈연이 멀다 하여도 서로 결혼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었다.〉
주나라의 왕실 성이 희(姬)라고 하였는데 왕실에서 제후(諸侯)로, 즉 봉건국가의 군주로 나가면 동일족으로 희의 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씨(氏)를 새로 갖는 것이 주의 성씨제도였다. 이 제도는 주의 종법(宗法)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주의 종법엔 대종(大宗)과 소종(小宗)이 있었다. 대종은 종갓집과 같은 것으로 처음의 시조(始祖)를 영구히 받드는 것이었다. 소종은 분가(分家)한 계보들을 말하였다.
제후국의 군주로 봉을 받아 소종이 된 맨 처음의 사람을 시봉자(始封者)라고 하였다. 시봉자는 새로운 성을 가졌다. 그것을 ‘씨’라 했는데, 이 씨를 가지고 다시 새로이 혈통을 표시한 것이다. 소종의 시봉자 후손들은 계속 이 ‘씨’를 이어 갔다. 그러다가 그들의 후손에서도 ‘씨’를 만들기도 했다. 이것이 씨의 분출(分出)이다. 여기서 많은 종류의 ‘씨’가 등장하게 된다.
주나라 시대에 최초로 나타난 성들은 모두가 ‘계집 녀(女)’를 부수(部首·글자 변에 붙은 것)로 사용했다. 주나라 왕실의 성이라 하는 희(姬)를 비롯해서 강(姜), 규(嬀), 사(姒), 요(姚), 길(姞) 등이었다.
‘희’는 황제(黃帝)의 어머니가 희수(姬水)라는 곳에서 자식을 낳은 데서 비롯했다. ‘강’은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서 자식을 낳았으므로 ‘강’을 성으로 삼았다. ‘요’는 우순(虞舜)의 어머니가 요허(姚墟)에 살았으므로 이를 성으로 한 것이다.
황제, 신농씨, 우순은 모두 중국 역사가 신화적 인물로 묘사하는 조상들이다. 이들 신화 속 인물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황제는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黃河)지역을 최초로 다스린 제왕이라는 의미다. 황제의 이름은 헌원(軒轅)이었다.
황제, 신농씨, 우순 같은 신화 속 인물들의 성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비롯했다. 성은 원래 모계(母系)를 표시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반면에 제후국의 혈통을 표시하는 ‘씨’는 부계(父系)를 표시하는 것이다. 제후국의 군주가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李’씨의 유래
중국 고대 성씨의 유래를 밝혀 주는 책들이 있다. 5세기에 나온 《위서(魏書)》 〈관씨지(官氏志)〉, 12세기에 나온 《통지(通志)》가 그것이다. 남송(南宋) 때 간행한 《통지》 씨족지(氏族志)에 나타난 이(李)씨의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상(商)나라 때 이정(理征)이란 고위관리가 어떤 사건으로 폭군 주왕(紂王)에게 죽음을 당했다. 그때 그의 부인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정(利正)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 그 모자는 달아나면서 어느 나무 아래서 허기진 몸을 잠시 쉬었다. 이 나무는 오얏나무였다.
모자는 떨어진 오얏나무 열매로 배를 채웠다. 덕분에 모자는 허기를 면한 후에 무사히 딴 나라로 갔고 거기서 아들은 장성하였다. 이후 손자까지 두었고 그 손자는 진(陳)의 대부(大夫) 벼슬까지 올랐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생명을 구해 준 오얏나무를 잊을 수 없다고 하여 오얏나무 이(李)를 성씨로 삼았다.〉
위에 소개한 성씨의 연원을 소개한 책들을 보면, 성씨 가운데는 국명(國名), 지명(地名), 관직명(官職名) 등에서 씨의 글자, 즉 성씨가 된 것이 많았다. 정(鄭), 조(趙), 한(韓), 오(吳), 신(申), 조(曹), 정(丁), 성(成), 서(徐), 황(黃), 노(魯), 송(宋), 주(朱), 진(陣), 양(梁) 등이 나라이름에서 취한 성씨다. 백(白), 배(裵), 노(盧), 방(方), 소(蘇), 신(辛), 양(楊), 고(高), 유(劉), 원(元) 등은 식읍(食邑·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려준 지역)에서 따온 성씨다.
강(姜), 하(河), 임(林), 유(柳), 지(地), 천(千) 등은 지명과 관련한 성씨다. 벼슬이름, 즉 관직에서 따온 성은 장(張), 윤(尹), 최(崔), 홍(洪), 차(車), 추(秋), 사(史) 등이다. 자(字)와 시호(諡號)에서 유래한 성씨도 있는데, 이는 조상의 자나 시호에서 한 글자를 따서 성씨를 삼은 것이다. 손(孫), 문(文), 민(閔), 남(南), 공(孔), 유(兪), 전(田) 등이 이에 해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