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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기자 스크랩 우리나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충주박물관을 소개합니다.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101 15.11.06 03: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충주박물관은 충주중앙탑 사적공원 내에 위치해 있고, 시민들이 기증한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충주박물관은 크게 제1관, 제2관, 야외전시로 나누어 있으며, 제가 오늘 소개하는 제1관은 역사 1ㆍ2실, 민속12실로 구분하여 불교미술품과 민속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충주박물관 제1관 전경입니다. 야외에도 다양한 전시물이 있습니다.


 

충주박물관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관람 일과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이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충주박물관 제1관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충주박물관 안내팜플렛을 챙겨서 관람하였습니다.


 

충주박물관 종합안내도입니다.


 

충주 읍성은 지금의 충주시 성내동 일대에 있었는데 외형상 동서가 약간 긴 장방형이었습니다. 읍성에는 동서남북의 4대문 및 비상통로인 야문과 수구문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성내 도로는 지형에 따라 자연 발생한 소로를 이용하여 4대문과 각 시설들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성 밖에도 성벽을 따라 좁은 도로가 있어 각문을 연결하였습니다.

 

읍성의 둘레는 380보 또는 3,650척이라는 기록과 360장이라는 <여지도서>의 기록이 있습니다. 360장을 보로 계산하면 730보, 척으로 계산하면 3,650척이 됩니다. 이를 통해 보면 성의 둘레는 1.2km, 높이는 약 2.4m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읍성 안과 밖에는 각종 관아건물과 누정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읍성 안에 조선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실록각이 있었는데, 읍성 동문 안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충주읍성을 석축성으로 크게 개축한 것은, 고종 6년(1869) 2월부터 11월까지의 일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세운 축성사적비에 의하면 개축된 읍성은 둘레 3,950척, 두께 25척, 높이 20척, 치첩(여장) 415칸이라 합니다. 성문은 동서남북의 4대문과 비상통로인 야문 그리고 수구문이 있었습니다. 북문은 정문이었으므로 다른 문들보다 웅장하였습니다. 북문 위에는 공신루라 하는 2층 문루가 있었는데, 고종 6년(1869)에 성을 개축하고 경천문이라 편액 하였습니다.

 

남풍루라 했던 남문은 1910년대에 찍은 사진으로 보아 홍예문이었으며, 2층 문루를 개축 후 봉하문이라 편액하였습니다. 망경루라 한 서문은 개축 후 휘금문이라 편액하였고, 동문은 본래 없었던 듯하나 개축하고 조양문이라 편액하였습니다. 4대문 안에는 모두 수문청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충주축성사적비>

 

1869년 당시 충주 목사였던 조병로가 충주읍성을 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871년에 세운 것입니다. 화강암의 석비로 앞면에는 당시 충주읍성의 규모를 상세히 기록하였으며, 뒷면에는 축성에 참여한 각 부분의 공사 책임자와 목수, 석수 등의 여러 장인(전문기술자)들과 후원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성신방석>

1978년 예성문화연구회에서 발견하여 충주박물관에 기증한 충주읍성의 성들입니다. 전면에 태극문양을 중심으로 직경 15cm 8엽 연화문을 새기고, 그 좌우로는 화려한 당초문을 배치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충주의 별호인 예성을 증명하는 자료이며, 태극문양이 석조미술에 응용된 예로 자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충주미륵리사지>

 

지롭재와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북향으로 펼쳐진 절터로 여기에 일찍이 석실사원이 경영되었으나 오래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석조물만 남아 있습니다.

 

미륵대원사지 안에는 보물 95호인 5층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 석조보살의상 등 많은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미륵리 석불입상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입니다. 석불이 있는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에 높이 6m를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에 봉안하였습니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어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 된 반축조 석실입니다. 석굴암을 모방한 고려 초기의 절터로 규모가 웅장한 반면에 퇴화과정이 역력한 석굴이라 하겠습니다.

 

이 절터는 청주대학교박물관ㆍ이화여자대학교 발굴팀에 의해 여러 차례 조사가 이루어져 그 윤곽이 다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발굴 당시 ‘미륵대원’ 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는 등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 초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 후기 고종 때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연화문수막새(고려시대) : 중심부를 귀목문으로 장식하고 외연부에 연판문을 두른 수막새기와

* 당초문암막새편(조선시대) : 외구에 연주를 두르고 내구에 당초문을 시문한 임막새 기와편


 

 

고려시대 유물인 명문와편, 명문기와편, 치미편입니다.


 

충주 지도상의 불교문화재(불상)과 전통사찰 및 사지가 있는 위치입니다.

박물관 계단으로 층별로 이동하여 전시품을 감상하였습니다.


 

고려청자편(고려시대), 육자진언 수막새(조선시대), 명문암막새(조선시대) 유물입니다.


 

 

현대시대 유물인 철화병, 인화문분청, 백자호입니다.


<목판인쇄 (Woodblock printing)>

 

목판을 사용하여 책을 찍어내는 인쇄방법입니다.

필요한 용구에는 먹물종이먹솔밀랍기름판 등이 있습니다. 인쇄방법은 먹솔로 목판의 문자면에 먹물을 고르게 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밀랍 또는 기름을 묻힌, 부드러운 털 뭉치로 만든 인체로 가볍게 골고루 문질러 찍어냅니다. 한국에는 확인된 최초의 목판 인쇄는 704~706년의 신라 성왕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목판 인쇄물 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인쇄물입니다.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지금까지 충주박물관 제1관에 대하여 주요 유물 위주로 알려드렸습니다.

 

충주 여행하실 때 충주중앙탑 사적공원, 충주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 충주박물관이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니 이 세 군데를 코스로 다니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 취재: 청춘예찬 대학생기자 박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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