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은 캡처를 했구요 노을은 안귀옥 변호사 권사님 작품 자주 사용합니다. 하늘꿈 교회 유튜브 영상 탁월한 실력 덕분에 실제와 같은 감동 감사했습니다 찬양도 감상해보시겠어요.
눈물납니다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진정한 용기는?
어느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 '용기'는 어떠한 두려움에도 맞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대신 '어리석음'이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용기는 끊임없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도전을 하니 두려움도 생기는 것이다. 만약 두려음을 느끼지 못 한다면 도전력 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이 겁이 많으면 소심해 지고 안정 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격렬한 전투가 한창인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 에 떨게 된다. 매일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벌어졌으며 많은 전우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이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공포 속에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희소식이 전해졌다.병사들의 방어를 위해 총알을 막는 방탄복이 보급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병사 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다. 방탄복을 입고 나서는 더 용감 하게 적진을 향해 돌진하게 되었다. 그중 방탄복을 입고 자신감이 지나치게 올라버린 병사 한 명은 누가 봐도 무모 해 보이는 돌격을 하곤 했다. 다른 병사들이 만류했지만, 그 병사는 걱정해주는 전우를 비웃으며 말했다. “이런 겁쟁이 같으니. 방탄복이 총알을 다 막아주는데 뭐가 무섭다는 거야!” 그리고 다음 전투에 그 병사는 다른 병사 들이 말리기도 전에 또 무모한 돌격을 감행했다. 그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왔고 병사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적군은 탄환이 방탄복을 입은 가슴이 아니라 다리를 관통 해 버린 것이다. 결국 그 병사는 안타깝게도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우리들 중에도 한쪽만 가리고 전체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저 병사처럼 그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용기는 무모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다가 오더라도 그것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뜻한바를 이루어 내는 도전 정신인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은 한번도 생각 해 보지는 않았는가?
고난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 무엇이라 표현하기 조차 힘든 가운데 그래도 이 고난의 시간에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기에 오늘도 고난과 싸우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드린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감당 할 시험을 준다고 했으며, 감당 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의 19세기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우리들에게 "삶에 대해 절망하지 마라. 우리에겐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만한 힘이 있다."고 했다. 즉, 모든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고난은 누구든 감당 하지 못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루즈벨트는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 항상 두 개의 안경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그의 눈이 원시와 근시였기 때문이었다. 한 안경은 가까 운 곳을, 다른 안경은, 먼 곳을 볼 때 사용했다. 처음에 그는 두 개의 안경을 강철 안경집에 넣어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을 몹시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사건을 계기로 바뀌게 되었다. 그가 많은 대중이 모인 밀워키시 에서 연설을 할 때였다. 한 사내가 그를 향해 총을 겨누 었다. 보통의 경우에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목숨을 건졌다. 총을 맞고도 그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의 조끼 안주머니에 늘 가지고 다니던 강철 안경집 덕분이었다. 총알이 안경집을 맞고 튕겨 나가 허파를 비켜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총알에 맞아 찌그러진 안경집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강철로 된 두 개의 안경집이 무척이나 귀찮다고 여겼 다. 그런데 이 안경집이 저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고 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정말 루즈벨트의 강철 안경집처럼 고난 이 ‘귀찮은 짐’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고난 때문에 누군가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고, 또 누군 가는 삶에서 의미를 찾게 되며, 어떤 이는 다시 일어서 기도 한다. 그러기에 고난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때로는 고난을 통과하는 과정을 통해 새롭고, 자신의 인생의 문제 를 해결하면서 힘을 가지게 하며 유익하게 만든다.
2020.8.24 신용대담임목사님
대표기도 김영덕장로님
헌 신( dedication)
세상을 살다 보면 '희생'(sacrifice)과 '헌신'(dedication) 이 혼돈 되어 쓰일 때가 많다. '희생’은 스스로가 아니라 억지로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면,, ‘헌신’은 내 스스로가 남을 위하여 나를 드리는 것이라고 정의 할 수가 있다.그래서 헌신은 오래가고..값진 것이며, 그 자체가 축복이 된다. 그러기에 영국의 문학가며 시인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헌신이야말로 사랑의 연습이다. 헌신 으로 사랑은 자란다." 라고 했다.
대영제국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이었던 버큰헤드호는 군인과 민간인 638명을 태우고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 중이었다. 케이프타운에서 65km 떨어진 바다를 지나던 버큰헤드호는 2월 26일 새벽 2시, 그만 암초와 충돌하고 말았다. 서서히 침몰하던 배는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차가운 바닷물이 들이닥치 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완전히 허리가 끊긴 배에 는 고작 3척의 구명정이 있었는데 1척당 60명, 전부 합해 180명밖에 탈 수 없었다. 더구나 그곳은 사나운 상어 떼 가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랑은 더욱 심해졌다. 그 때, 그 배에 타고 있던 영국군 74 보병 연대의 지휘관인 알렉산더 세튼 중령은 병사들을 갑판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여성과 어린이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라!” 병사들은 횃불을 밝히고,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옮겨 태웠다. 구명정은 점점 멀어져 갔다. 버큰헤드호의 병사 들은 의연한 자세로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판자에 매달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병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중령님의 지시 에 불평 한마디 없었다. 그 명령이 곧 죽음이라는 걸 알면 서도..” 바로 이때부터 ‘여성과 어린이부터’라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차가운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버큰헤드호 병사들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명예 롭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 버큰헤드호의 병사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과 울림을 준다. 우리는 언제나 남보다 나를 우선시하며 살아가고 있었는지 잠시나마 반성을 해 보게 한다. 나를 통해 남이 살고, 그 상대가 위로 받을 수 있고 용기를 찾고, 다시 살아 갈 수 있도록 나를 내어 주는 삶을 살아 가는 나는 될 수 없을까? 깊게 묵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