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타락하여 영원한 파멸에 이를 수 있는가?
중생한 사람이라도 자기 속에 거하는 죄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아담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겼다. 그러나 마귀의 미혹에 빠져서 자신을 사단의 편에 내어준 후부터 사람은 스스로 죄의 종이 되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본성적으로 죄와 사망의 종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들을 흑암의 권세와 종 됨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속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 예수님은 당신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구속해 주셨고 마귀의 모든 권세와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을 시키셨다.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성도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 18).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하나님께서 신자를 택정하셨고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모든 은덕에 참여시키셨고 성령으로 중생하여 의롭게 되었으며 영화롭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몸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받지 않았다. 신자라도 자기 속에 거하는 죄 때문에(롬 7:20) 죄를 초월하여 살 수는 없다(요일 1:8). 우리는 여전히 실수가 많고(약 3:2) 마귀와 세상과 자신의 육체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여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 순간도 서 있을 수 없다(하이델베르크 127문답).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 해도 이생에서는 미미한 수준의 순종을 그것도 시작만 할 수 있을 뿐이며 아직도 모든 악으로 향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져 있다(하이델베르크 114문답). 이 세상에서 행하는 최상의 행위도 모두 불완전하고 죄로 오염되어져 있다. 이와 같이 신자 자신만을 생각하면 은혜와 믿음에서 떨어지고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는 것은 확실하다.
여전히 불안정 한 상태에 있어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경영은 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언약은 옮기거나 실패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와, 보존하심과, 성령님의 보존하시는 썩지 아니하는 중생의 씨와 말씀을 통하여 다시 새롭게 하심과 회개케 하심과 인치심 때문에 참된 신자는 결코 파멸에 이르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죄와 투쟁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속 때문에 내가 전 생애 동안 투쟁해야만 하는 나의 죄악된 본성을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당신 자신의 소유를 보존하신다(하이델베르크 56문답).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최종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얻기까지 악에서 구원하신다. 견인의 원인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의지나 결심이 아닌 것이다.
일반신자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교회 지도자라 할지라도 간음이나 살인이나 주님을 배반함과 같은 심각한 죄악들에서 초월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있어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 26:41).
연약한 우리의 의지
신자들은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내면에는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신자는 깨어있어야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힘을 더하시도록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붙들어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주님은 베드로가 타락하여 당신을 부인할 것을 아셨다. 그러나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단 한순간이라도 당신의 손을 거두신다면 과연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단 한 명이라도 버틸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고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벧전 1:3~5).
또한 죄에 빠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경멸하지 말고 오직 겸손하게 그들을 돕고 격려해야한다. 그런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빛이 다시 그들에게 비칠 때까지 그들은 하나님께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고, 믿음의 역사를 방해하며, 밧세바와 간음한 다윗처럼 양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즐거움이 삶 속에서 사라져 불안하고, 때로는 잠시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감각마저 상실하기도 한다(엡 4:30; 시 32:3~5).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변치 않는 목적에 따라 심지어 당신의 백성들이 제 아무리 심각하게 타락했다하더라도 그들에게서 성령을 완전히 거두시지 아니하신다. 이를테면 양자의 은혜를 상실함에 이르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죄를 범하게 내버려두시거나, 전적으로 멀어져가게 하시거나, 영원한 멸망에 빠지도록 허용하지 않으신다(갈 4:5; 요일 5:16~18; 마 12:31,32).
멸망에 빠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기도와 말씀에 게을리 한 신자는 사단과 세상과 육신으로 인해 쉽게 타락할 수 있으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령과 말씀으로 택함 받은 자들이 영원한 멸망으로 잃어버린바 되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택함 받은 자를 사단의 통치로부터 해방시키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날마다 범하는 죄들 가운데 연약함에 머물러 있게 함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겸손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완전을 더욱 열망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차식 목사(덕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