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도여행 준비 1
나는 사실 제대를 하고 나서도 여행을 갈지 말지에 대한 확실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놈의 여행에 묻어 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예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를 할 때쯤 그놈은 이미 가고 싶은 도시와 일정 등을 간략하게나마 짜고 있었다.
결국 나도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은 시간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빡빡했던 것이었다. 나는 여권하고 비자는 무엇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지는 커녕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인도로 가는 출발일은 불과 15일 후였다.
일단은 여권을 만들라는 예기를 듣고 재빨리 디카로 사진을 찍어 노원구청으로 향했다. 노원구청 측에서는 여권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림자가 진 사진은 입국거부를 당할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디카로 찍어서 그 비싼 인화지에 프린트를 했더니만 안된다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이런 틈새시장을 노리는 자는 반드시 있는 법... 가까운 거리에 즉석 사진관이 있다는 예기를 듣고 당장 달려갔다. 내 것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디카로 찍어주는 그 사진관은 사진을 6장을 찍어주고 무려 만 원을 받았다. 웬지 구청으로 돌아오는 길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피 같은 돈이었지만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군사관련 서적과 항공관련 서적도 아니면서 내 돈 주고 산 책은 5권도 안되는데 그 귀하디귀한 것 중에 가장 최근에 샀던 괴짜경제학이라는 책에서 본 인센티브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면서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별로 비싼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세상물정에 어두웠을 뿐이다.
여권을 만들려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심히 서류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옆사람 것을 베껴 쓰기에 바빴고 아주머니들은 열심히 물어보기에 바빴다. 뭔 외국을 나가려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나 역시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 서류를 열심히 컨닝을 해가면서 작성을 하고 건네주자 무려 1주일이나 걸린다고 했다. 게다가 단수여권이라고는 해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비쌌다.
나중에 안 예기지만 보통의 경우는 단수여권보다는 복수여권을 만든다고 했다. 물론 나는 언제 또 외국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복수여권을 만들어 두느니 차라리 단수여권을 만드는 게 낫다는 생각에 단수여권을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여권이 나오는 1주일 동안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인도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사 홈 페이지를 몇 군데 돌아봤지만 딱히 쓸만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도여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고 별 걱정도 되지 않았다. 배낭여행 가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그 사람들도 밥 먹고 여행만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고 배낭여행 해봐야 한 두 번인데 우리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못할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여행을 출발하기 며칠 전에 우리의 현실을 솔직하게 바라보면서 극적으로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항공편도 슬슬 알아보고 있었다.
일주일 후에 여권을 받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여권이라는 걸 보기도 처음 봤다. 여권을 받아들고 도봉경찰서에 도검소지 허가증을 재발급 받으러 가면서 연신 여권을 들여다보았다. 뭔가 신기한 게 많이도 있었다. 앞장에는 협조문 비스무리 한 것과 그 뒷면에는 내 신상명세와 함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뒷장부터는 사증 이라는 게 여러 개가 있었다. Visa Visa... 흠... 비자 비슷하긴 한데 그럼 비자가 아니라 비사였나? 한글로 사증이라는데 사증은 뭐지? 도무지 사증과 Visa 만 보고는 뭐하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통장같이 여러 면이 똑같이 되어 있는 걸로 보아 뭔가를 쓰거나 붙이는 것 같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도장을 찍어주는데 그것 같기도 하고.... 룰루 랄라 도봉경찰서에 귀찮은 일을 하러 가면서도 이제 뭔가 여행을 가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았다. 바로 그 다음날... 우리는 비자를 만들기 위해 인도 대사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