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닭뼈’로 대표되는 ‘인류세’ 시대일까
지금, 여기는 천문학과 지질학으로 정의한다. ‘여기’는 은하계 속 태양계 주위를 도는 지구이고, ‘지금’은 공룡이 멸종된 신생대(代·era) 중에서―현생 인류가 진화한 4기(紀·period)의―인류 문명이 시작된 홀로세(世·epoch)다. 그런데 1만1000년 전 시작된 홀로세는 끝났고 지금은 ‘인류세’라는 지질학 논의가 한창이다. 인간의 개발 활동이 지구 환경을 바꿔 놓은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세의 화석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후보 지역도 선정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크로퍼드 호수다.
▷인류세는 2000년 오존층 파괴 메커니즘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개념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인류세 시작점을 1950년대로 정하는 데 합의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핵무기 실험이 시작돼 환경 파괴가 본격화한 시기다.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정의하려면 기준이 될 장소가 있어야 한다. 최근 연구자들이 전 세계 9개 후보 지역 중 선택한 곳이 크로퍼드 호수다. 작지만 수심이 깊어 1000년간의 인류 활동 퇴적물이 벌레나 물살의 방해를 받지 않고 쌓여 있는 곳이다.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의 대표 화석인 공룡처럼 인류세의 시작점을 알리는 대표 물질도 정해야 한다. 그 영향력이 전 지구적이고 측정 가능해야 하는데 후보군에는 핵무기 개발로 인한 방사성 원소, 화석연료의 흔적,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같은 ‘기술 화석’, 그리고 닭 뼈가 있다. 한 해 인류가 먹어 치우는 닭은 700억 마리. 세상에서 가장 흔한 조류가 닭이고 세계 곳곳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닭 뼈가 화석화되고 있다.
▷인류세 인정 여부는 국제지질과학연맹 산하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세 차례 투표를 거쳐 내년 8월 부산서 열리는 국제지질학 총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전망은 엇갈린다. 인류세를 주장하는 이들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의 무게가 1조 t으로 전체 생명체 무게보다 무거워 지질학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반대쪽에선 지구는 인간이 영향을 주기엔 너무나 거대한 존재이고, 인류세는 기후위기를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과학의 역사는 인간을 주변화하는 역사였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은 지동설로 깨졌고, 지질학의 발달로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인간의 역사는 왜소하기 짝이 없으며, 진화론으로 인간은 우월한 종이 아니라 ‘생명의 계통수’의 작은 가지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인류세 논쟁에서는 반대로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꿔 놓은 중심이다. 주인공이지만 난개발로 지구적 위기를 초래한 악역이다. 인류세가 인정되면 인류는 45억 년 지구 역사에서 당대를 스스로 정의하는 최초의 생명체가 된다. 말 그대로 신기원을 여는 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