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은 "연애야말로 생명의 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요..
굳이 이런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랑이란 말에 설레지 않은 사람은 어디도 없을 것이며, 그 소중함에 고개숙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사랑이 빠질 수 없고 그러하기에 남녀사이의 애정은 역사를 만든다는 말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세계의 저명인사들, 이른바 이름께나 알려진 유명인들은 어떤 사랑은 했을까요?!
사랑을 주제로한 명화들과 함께 감상하시지요...
루 살로메 1914
내 눈빛을 지우십시오.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십시오. 나는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나의 양팔이 꺾이어 당신을 붙들 수 없다면 나의 불붙은 심장으로 당신을 붙잡을 것입니다.
나의 심장이 멈춘다면 나의 뇌수라도 그대를 향해 노래할 것입니다.
나의 뇌수마저 불태운다면 나는 당신을 내 핏속에 싣고 갈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연인인 루 살로메에게 헌정한 <기도시집> 제2부중에서 -
오른쪽 맨끝이 루 살로메, 그 옆이 릴케
시인 릴케가 루 살로메에게 한 눈에 반하여 바친 애타는 사랑이 절절히 묻어나는 시입니다..
릴케와 루살로메는 이른바 "드메커플'이라 불리우는 연상 연하 커플의 대표적 사례인데, 드메라는 말의 유례는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연상의 여성에게만 사랑을 고백한 드메라는 청년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릴케와 루 살로메 외에도 유명한 드메커플로는, 쇼팽과 조르주 상드, 나폴레옹 1세와 보나파르트 조세핀 등이 있죠...
마릴린 먼로와 아서 밀러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란 먼로는 아서밀러를 아빠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심지어 그를 따라 유대교로 개종할 만큼 먼로에게 밀러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밀러는 먼로와의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평온하고 조용한 환경을 필요로 하는 그와 달리, 활발한 성격의 먼로는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분위기를 즐겼다..
그녀는 날마다 수많은 친구들을 초대해 아서 밀러의 평온함을 깨 버렸고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곤 했다..
먼로는 화목하고 다복한 가정을 갖고 싶어 했지만, 밀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두번이나 유산한다..
누구보다도 사랑을 갈망했지만 자기 자신만은 사랑할 줄 몰랏던 마릴린 먼로...
그녀는 아서 밀러에 대한 열등감과 그로 인한 외로움, 연기에 대한 강박 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점점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가던 먼로는 결국 1961년 아서밀러와도 헤어지고 만다..
"그녀는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길거리에서 몰려들어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에게 한 편의 시를 낭송해 주려 애쓴 시인이었어요"
밀러는 먼로의 여리고 따뜻했던 마음까지도 알아주는 유일한 남자였다..
둘은 비록 헤어졌지만, 서로의 다른 면을, 그 경계의불안까지도 사랑으로 감싸안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던 커플이었던 것이다...
심슨부인과 윈저공
세기의 로멘스로 유명한
윈저공과 심슨부인의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드믈 것이다...
윈저공은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고 연상인 심슨부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그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왕좌를 버렸고.. 평민으로 돌아와 이혼녀 심슨부인과 결혼을 했다...
심슨부인은 윈저공이 반한 '심슨 블루'라는 푸른색 드레스 코드를 살아있는 동안 고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년 윈저공의 고백을 보면 심슨부인이 지겨워 죽을 맛이었다고 하니.. 눈꺼풀에 콩깍지가 씌워 왕좌를 버리고 평민으로 돌아가면서 까지 단행했던 결혼과.. 자신의 혼을 단 한번에 흔들었던 심슨부인의 파란색 드레스가 증오스럽지는 않았을까?;;
윈저공은 왕좌를 버리고 전 세계를 떠들석하게 만든 자신의 사랑에 대한 책임을 다하느라 끝까지 심슨부인과의 관계를 살아냈다고 전해 진다...
사랑이란 그런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도 함께 세월을 먹어 퇴색하고 그 빛을 바래가는...
그나마 인간의 사랑중에 가장 신의 사랑에 근접해 있다는 어미의 사랑마저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심슨 블루'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나를 마를린 먼로와 비교하곤 해요. 하지만 난 그녀와 비교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빨리 죽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서기 때문이에요. 난 이 세상에서 사랑을 이루고 싶어요."
- 다이애나비 -
"처음 빅토리아를 보았을 때는 눈부시게 예뻤습니다. 지금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는 성스러워 보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백 가지 모습을 모두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마음이 아닐까요?"
- 데이비드 베컴 -
"내 아내는 나를 사랑하는 팬들까지 포용할 줄 알았던 지혜로운 여자였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무 큰 희생을 강요당했던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성룡 -
"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한 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그레이스 캘리 -
요꼬와 내가 만나기 전에 우리는 반쪽짜리 인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랑조차,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 존 레논 -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영화를 할 것이고, 지금 내 곁의 여인을 만날 것이고, 그녀를 사랑할 것입니다. 또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모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 주윤발 -
"내 인생에서 단 한 가지 후회되는 일이 있습니다. 베로니크를 조금 더 빨리 알아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알아보지 못한 만큼 사랑해 주지 못해서 무척 미안합니다."
- 그레고리 팩 -
"심한 고통과 분노의 시간이 있었지만 내 인생의 절반을 그와 함께 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어질 깊은 끈이 우리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 힐러리 클린턴 -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 박수근 화백이 아내 김복순 여사에게 -
..
Richard Clayderman
1. Invisible Love(보이지 않는 사랑)
2. Con Te Partiro
3. 숲속의 오솔길
4. Lyphard Melody(별밤의 피아니스트) 5. 별밤의 세레나데(Starlight Serenade)
6. 아나스타샤 ost Once Upon A December 7. Love Is All Around
8. Little Drummer Boy 9. Souvenir D'enfance (어린시절의추억)
10. Les Demars Jours D'anastasia Kamsky
11. How deep is your Love
..
1953년 프랑스 태생인
'피아노의 시인' 영원한 피아노맨'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프랑스 국립원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이며
로맨틱 하면서도 낭만적인 피아노 연주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팝 피아니스트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78년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로
데뷔 후 26년간 800여곡 이상을 발표하고
70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면서 사랑을 받았다.
야생화는1977년 데뷔곡으로
프랑스 차트 정상에 올랐던 그의 대표곡이며 한 때 피아노를 쳤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이 한 번쯤 쳤던
70년대 대표적인 피아노 연주곡이다.
그는 '브라이언 아담스', '엘튼 존' 등
팝스타들의 곡을 경음악으로 연주했고, 팝과 클래식의 선율을 조화시킨 로맨틱한 곡들을 선보이고 있다.
신승훈의'보이지 않는 사랑',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내한공연에서 연주했고, '한국인을 위한 피아노 연주곡집'을 국내 발매하기도 했다.
1989년 첫 공연 후
여섯번째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은 흔히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파리의 피아노 교사 아들로 태어난 리차드 클레이더만(본명 Philioppe Pages)은 어려서부터 여러차례의 음악 콩쿨 우승과, 콩세르바투와르 음악원 피아노과 수석졸업하는 등 그 천재성으로 프랑스 음악인들 사이에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가 중병에 들면서 그의 인생에 전환기가 찾아오는데 리차드는 이때부터 세션주자로 돈을 벌면서 상업연주자의 활로를 찾기 시작하였다. 리차드는 1977년,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폴 드 셰빌(paul de Sennevill)에 의해 픽업되어 데뷔. 데뷔엘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며 일약 전세계적인 스타로 우뚝선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대로 이 때부터 그의 음악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는데,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의 성공은 그로 하여금 로맨틱한 상업연주자로 정통 음악을 하고 있지않다고 혹평 받게 했다. 근래의 인터뷰에서 리차드는
자신의 음악성과 관련한 주변의 비판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있으며, 팝 아티스트로서 현재의 위치에 만족해 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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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계절이 계절인지라,
한껏 분위기 좀 내봤습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십시요...
헤라님은 마음이 마이클처럼 따뜻한 분인가봐요 글과 음악에서 느껴져요 부러워요
대학시절 친구집에서 친구언니가 연주하던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를 듣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지요 결혼후 애들 피아노 배울때 같이 학원 다니며
낑낑 배우며 연주 흉내내던 시절이 그리워지는군요
와~ 나 진짜 우리 헤라님때문에... ㅜ.ㅜ
일단,,, 정리좀 해놓고 다시 들어와서 볼께요.. 님 정말 짱!
항상 고마워요! 헤라님^^
글중에 제일 눈에 들어오는 글은 성룡의 말이...
성룡 글을 읽으면서 리사가 생각 나는군요.
리사가 조금만 지혜롭고 포용력 있는 여자 였다면
마이클 인생은 좀 달랐지 않았을까...
여복도 지지리없는 마이클 ㅠㅠ
사랑이 없으면 시인은 시를 지을수 없을거예요..사랑이 없으면 화가는 그림을 그릴수 없을거예요. 사랑이 없으면 음악가는 작곡을 할수없을거예요. 사랑이 없으면 인류는 살아남지 못할거예요.. 사랑하며 살아요.. 사랑하면서요..피아노곡이 정말 아름답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