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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창작 디카시 1 칠성판
타깁남(김석윤) 추천 0 조회 269 23.07.06 03:21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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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7.06 04:16

    첫댓글 아--할머니

  • 작성자 23.07.06 23:03

    저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모두
    90세까지 장수하기는 하셨지만
    두 분 다 허리가 ㄱ자로 굽으셨습니다.
    그때는 모두 집에서 생을 마감하셨고요.
    시골이라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온 가족이 함께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린 저도 그 자리에 있었고요.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때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캐나다 디카시 협회의 왕성한 활동에
    멀리서나마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 23.07.06 23:17

    @타깁남(김석윤) 저는 할머니를 뵌 적이 없지요
    실향민 가족이지요
    얼떨결에 나이를 먹어 할머니가 되었네요
    할머니라는 정다운 단어에 맞갖은 사람이 되어야할텐데요

  • 작성자 23.07.06 23:35

    @신금재 美思 뵙지 못한 할머니의 몫까지
    손주들에게 다 하시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ㅎㅎ
    부러움과 함께 축하드립니다.

  • 23.07.06 07:57

    돌아 가시자 비로소 허리가 편안해지셨군요.

    살아 생전에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 작성자 23.07.06 23:08

    시골 고향 마을
    그 시절에는 다들 힘든 농사일로
    대부분의 어른들이 다들 허리가 굽으셨지요.
    마지막까지 일을 놓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다음에야 편히 누워 쉴 수 있었지요.

    어떻게 보면
    현대인의 삶도 다소 나아졌다고 하나
    죽은 날까지 삶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23.07.06 05:37

    칠성판
    참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삶을 내려놓으시고 나서야
    허리 쭉펴진 할머니
    편해지셧겠지요

  • 작성자 23.07.06 23:11

    지금의 장례 절차에서는
    보기 힘든 칠성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는 동안 짊어진 무게로
    등 굽은 망자를 반듯하게 염하는 것은 같더군요.

  • 23.07.07 17:05

    할머니가 떠나신 지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까지도 저렇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계셨구나!

    모처럼 당신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손자는 눈시울을 붉힙니다.

  • 작성자 23.07.06 23:13

    지금도 한옥의 부엌(정지)문이나
    저런 나무대문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 문턱 너머에서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공감 고맙습니다.

  • 23.07.06 07:04

    생을 놓고서야 허리를 펼 수 있다니 마음이 찡...합니다.이제서라도 편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작성자 23.07.06 23:14

    디카시를 쓰면서부터
    마음 속에 있던 것들이
    어떤 사물과 대상을 만나면
    투영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저 대문도 그러했습니다.

  • 23.07.06 07:54

    칠성판 소환해주셔서 다시 한번 생각 합니다

    객지에서 한평생인 저희는
    오래된 죽음 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환기가 됩니다

  • 작성자 23.07.06 23:17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현재는 잊혀진 명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등에 칠성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23.07.06 09:59

    ㄱ자로 꼬부라진 등을
    돌아가신 후에야 곧게 펴고 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팔순 중반이 되신 아버지의 구부러진 등허리도
    그때서야 반듯이 펼 수 있으시겠구나,
    생각만해도 울컥 눈물납니다ㅜㅜ

  • 작성자 23.07.06 23:24

    입에 올리고 싶지 않는 주제이지만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서
    피하고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연로한 아버님이 계신다니
    더욱 깊이 읽으신 듯합니다.
    다음에는 ㅎㅎ
    하실 수 있는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23.07.06 15:15

    자손에게 命과 福 주십사고 손이 닳도록 구부린 허리, 찡합니다.

  • 작성자 23.07.06 23:28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째! 상갓집에서 뵌 듯한 분위기입니다. ㅎㅎ

    신새벽 장독대에 비손하던 모습과 함께
    지금의 후손들 건강과 안위가 그분들의
    기도 덕분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 23.07.07 07:42

    @타깁남(김석윤) 그냥 저의 고향집 할머님의 일상이 떠올라서 그랬는데 좋은 글에 그런 느낌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命福과 冥福은 엄연히 다르지요. 그래서 한자를 넣었습니다^^

  • 작성자 23.07.08 01:26

    @김미형 또 한번 말과 글이 온전히 화자의 뜻을 전달하는데
    얼마나 부족한 수단인지를 실감합니다.

    선생님의 댓글에 제가 '상갓집'이라 표현한 것은
    서로 처음 뵈어 무지 반갑기는 하지만
    마침 시의 내용이 밝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서
    (마치 상갓집에서 뵌 것처럼)
    과도한 웃음과 리엑션으로 반길 수 없다는 뜻으로
    유머랍시고 그런 비유를 쓴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명과 복을 두고
    상갓집이라는 어휘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죄송해야 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 23.07.06 16:07

    무슨 말을 할까 먹먹해서
    몇 번이나 돌아섰어요.
    우리 할머니도 아흔에 떠나셨어요.
    가장 덥던 날 뉴스에선
    아스팔트에 계란프라이를 하고
    김일성의 죽음을
    알리느라 시끄럽던 그해 여름.
    그때 당시에,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지요...
    더 그리 크게 울 일은
    없을 것처럼요.

  • 작성자 23.07.06 23:33

    그냥 가시지!
    이리 다시 오셔서
    저까지 더 울컥하게 하시네요. ㅠㅠ

    제가 제일 크게 많이 운 적은
    아버지를 언 땅에 묻고
    그 깊고 붉은 상처에 흙 몇 줌 얹고
    고작 뗏장을 덮어 드리고
    집에 와 따뜻한 방에서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기에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밥알을 넘길 때였습니다.


  • 23.07.07 23:07

    칠성판이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우리 아버진 오십 중반에 돌아가셨지요
    너무 황망해서 슬픔도 제대로 못 느꼈습니다...

  • 작성자 23.07.08 01:33

    아버님을 일찍 여의셨군요.
    저희 어머니도 오십 후반에 돌아가셨는데...
    옛날 시골에서는
    정식 칠성판이 아닌 나무문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문득 그런 것들이 떠올라 써 본 것입니다.

  • 23.07.08 10:43

    지인이 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지인도 시어머니를 집에서 보냈는데
    누워서만 지내시던 시어머니 한 쪽 다리가 굽었는데
    돌아가시자 다리 펴드렸다는 애기를..

  • 작성자 23.07.08 22:29

    살아생전에 굽고 꺾인 삶이니
    죽어서 만이라도 반듯하게 뉘여
    편히 쉬도록 하고픈 마음이겠죠.
    오랜만에 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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