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지난다.
밤새 눈발이 하얗게 내렸다
봄날에 벚꽃 철이 있기에
이 추위도 견디며 오늘도 살고 있다
1972년 10월26일 박정희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개정을 위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내무반에 저녁 식사를 하고 쉬고 있을 때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평소 비상훈련은 인원점검만 하고 30분 안에 끝났다
이날은 차량으로 청주 시내로 출동을 했다
관 공소 언론사 대학 주요 시설을 군인이 완전장악을 했다.
건물 이층에 있는 MBC 방송 출입문에 무장군인을 보고
출근하는 이숙영 아나운서가 기겁을 하고 놀라서 도망쳤다
계엄이 선포되면 지역 사단장이 도지사의 행정권한을 갖는다.
시내는 계엄군들이 완정 장악하였다
퇴폐풍조 사범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주로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주로 단속했다
사거리에서 미니스커트는 여기까지 치마를 내리라고 다리에 페인트로 표시를 해 주었고
장발은 그 자리에서 가위로 머리를 잘라 주었다
군인들 폭력에 민간인은 꼼짝 하지 못했다
밤에 순찰하는 계엄군들은 술집을 돌면서 눈에 거슬리면 모두 잡아들였다
취한 술기운에 이러도 되는 거냐고 큰소리를 치면서 들어오지만
취조실에 10분 다녀오면 그렇게 기고만장한 사람이 숨도 재대로 못 쉬었다
산에 멧돼지를 잡듯이 사람을 잡들이 했다
인간의 연약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구석진 사무실에서 내일 출간될 신문을 검사하면서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아침이면 부모님들이 간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들 딸 찾으려
계엄분소 정문 앞으로 수없이 모여 들었다
나는 법원 검찰청에 파견되었다
익산에 사는 송정호 법무부 장관이 이곳 검찰청 검사였다
법무관과 고대 선후배 관계였고 , 사무실에 사건처리 결재하러 가끔 왔다,
업무는 검찰청 사건과 와 관계가 많았다
고자세인 검찰청 직원들의 모습을 쉽게 느낄 수 있었고
아침에 경찰서 수사과에서 사건 송치하려고 수사계장이 매일 아침 사건과에 온다.
9급 검찰청 젊은 직원이 아버지 같은 연세의 수사계장을 다루는 모습이
자주 눈에 거슬렸다, 그때 그 젊은 직원의 실수로 상부에 통계보고가 틀렸다
수사계장이 당한 것이 생각이 나서 몇 배로 갚어 주었다
수사계장이 속이 너무 시원하다고 식사 대접을 받았다.
그 당시 계엄업무에 협조를 안 하면 상부에 보고하면 즉시 면직 이였다
충주에 지원 판사가 면직 당했다
밤마다 난리가 나는 곳은 북문 시장에 있는 집성촌 이였다
퇴폐풍조사범 단속으로 이들을 밤마다 단속하며 잡아 들였다
70년대 일자리가 없었기에 이들은 애기 우유 값과 자식들 수업료를 이곳에서 벌어야 했다
그렇게 심하게 단속해도 이들은 생존의 수단이기에 죽기 살기로 견디었다
이들이 갇힌 유치장 부근엔 갈 수가 없었다. 군인만 보면 쌍욕을 하였고
재판하는 날엔 청주시내 창녀와 포주들은 법원에 총집합을 하였다
진천에는 미군부대 기지촌이 있었다, 군 검 경 합동 단속을 이곳에 나갔다
어느 집에 갔더니 방문은 잠기고 열어 주지 안했다
경찰이 문짝을 발로 찼더니만 실오라기 걸치지 않고 마루에 나와서
너희들이 먹여 살려 줄 거냐고 악을 쓰면서 욕을 하였다
경찰이 발로 걷어찼더니만 마당에 나둥글러 졌다, 마당엔 약간 눈이 쌓였을 때였다
심장이 떨리고 볼 수가 없는 관경 이였다,
경찰을 억지로 데리고 나왔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안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인가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가.....
많은 생각을 갖게 하였다
50년 전의 이야기이다 , 그 당시의 의식수준과 사고방식이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
50년 전의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각하께서는 너무나 한심하다
봉황인줄 알았는데 닭 이였고
빛나는 작은 별 인줄 알았는데 개똥벌레인줄을
작은 쪽방에서 느낄 때가 머지 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