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야전병원으로 변한 경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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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 곳곳은 지난 며칠간 계속된 대학생들의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시위현장에서 다쳐 실려온 전.의경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이번 시위로 연세대에서 후송돼 온 전.의경은 줄잡아 7백여명으로 이중 중상자만 40명이 넘는다.
이들은 시위진압보다는 방범순찰이 주임무인 각 경찰서 방범순찰대원이 대부분으로 머리가 찢어져 40여 바늘을 꿰멘 중상자도 상처가 더 심한 동료들을 위해 입원실을 양보하고 퇴원했다. 이 병원 개원 이래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시위부상자가 치료를 받은 것은 처음 이라는 것이 병원측의 설명. 이때문에 학생들과의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던 15일 밤에는 응급실 뿐만 아니라 이 병원 전체가 `야전병원'으로 변했었다.
병원 곳곳에는 팔과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목발을 짚고 힘겹게 발걸음을 떼는 의경들과 화상을 입고 연신 신음을 토해 내는 의경들의 처절한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응급실에는 두개골 함몰 골절상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 머리털을 제거중인 朴모 상경(21)과 이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동료의 힘없는 모습이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5층과 6층 입원실에는 중상자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모두 "어제 오후의 연세대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며 입을 모았다. 또 "대학 구내로 수차례 진입한데다 진압전문인 기동대보다는 시위진압이 서투른 방범순찰대가 많이 투입돼 부상자가 속출한 것 같다"며 힘없이 말했다.
제대 50여일을 남겨놓고 6층에 입원한 조모 수경(22)은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포위돼 쇠파이프로 몰매를 맞아 척추에 금이 갔다"면서 "학생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맞고도 살기 위해 정문을 향해 뛸 수 밖에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목과 머리 등에 상처를 입은 김원찬 일경(21.전주공전 1년 휴학)도 "기절해 있다 학생들이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깨 보니 동료들의 `살려달라'는 애원과 절규가 들려왔다"며 "백양로 끝에 난 정문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이들 중상자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 보다는 선후배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동료애를 보였다.
5층 입원실에는 외상은 없으나 기억상실증 증세를 보이는 김모 일경(21)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모르겠냐"는 질문에 김일경은 "아저씨 누구세요.여기가 어디죠"라며 동료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도 싸우기 싫죠. 그러나 싸워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이들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병원 관계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1996. 8. 16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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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연세대사태 당시 전,의경 사상자는 사망 1명, 부상 861명(중태40명)
※ 사망자는 서울 제1기동대 6중대 故 김종희 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