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국감-기후변화가 불러온 흰개미 피해
기후변화 속 흰개미 피해 확산…강남 논현동까지 출현
경복궁 등 5대 궁궐과 종묘 주요 목조문화유산 피해 확인
기온 상승·습도 변화 속 수도권·강원권까지 피해 분포 확대
방제 실적보다 군체 제거 확인과 재발 방지 체계 구축이 우선
미국, 건축물 예방부터 전문 방제·사후관리까지 통합 대응
그동안 남부 지방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던 흰개미 피해가 수도권과 강원권까지 확산하면서 국보와 보물 등 주요 목조문화유산의 보존에 비상이 걸렸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과 습도 환경의 변화, 외래종 유입 가능성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일회성 약제 처리에 머물지 않고 예방부터 방제 효과 확인, 사후 모니터링까지 연계하는 과학적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5월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주택가에서도 마른나무흰개미가 출현해 관심을 모았다. 당시 정부는 실내 문틀에서 여왕개미를 포함한 군체를 확인해 방제했으며, 주변 지역으로 확산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흰개미 문제가 남부 지방의 목조 건축물에 국한되지 않고 도심 생활권에서도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윤덕 의원(더불어민주당·전북 전주시갑)은 지난 8일 국가유산청을 대상으로 열린 국정감사에서 목조문화유산의 흰개미 피해 실태를 지적하고 체계적인 방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김 의원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목조문화유산 생물 피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보인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종묘 정전(해체·보수 중)을 비롯해 보물인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홍화문, 창덕궁 신정전, 창경궁 숭문당·양화당·영춘헌, 덕수궁 중화문 등 주요 궁궐과 종묘·사찰의 목조 건축유산에서 흰개미 피해가 확인됐다.
과거 남부 지방에 집중됐던 피해가 서울·경기권의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종묘와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 등 북부 지역에서도 확인되면서 피해 분포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마른나무흰개미 등 외래종의 유입 가능성도 제기돼 국내 서식종과 외래종을 구분한 조사·대응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 방제 실적보다 군체 제거와 재발 여부 확인이 중요
흰개미 피해는 목재 내부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초기 발견이 쉽지 않다. 외부에서 흔적이 확인되거나 탐지견 등을 통해 피해가 발견됐을 때는 이미 목재 내부의 손상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문화유산은 원형 보존이 중요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진 뒤 목재를 교체하거나 구조를 보수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방제사업의 횟수 자체보다 방제 결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관리체계가 충분한지에 있다. 국가유산청의 방제·보수사업이 연간 10여 개소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과 함께, 흰개미 방제약 설치나 점검 완료를 방제 성과로 처리하는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흰개미 방제는 약제를 설치하거나 처리했다는 사실만으로 완료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여왕개미를 포함한 군체의 활동이 실제로 중단됐는지, 일정 기간 이후 재발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제 전후의 활동 수준을 비교하고 추적조사를 실시해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또한 활동 흔적이 관찰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군체가 완전히 제거됐다는 판단은 구분해야 한다. 조사 결과가 불명확한 사례는 별도로 관리하고, 추가 점검을 통해 방제 효과를 확인하는 절차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23년 국감에서도 확인된 목조문화재 피해
흰개미 피해의 심각성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2023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의원이 당시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흰개미 피해로 방제를 시행한 국가지정 목조문화재는 조사 대상 78건 중 17건으로 피해율이 21.8%에 달했다. 최근 5년간은 조사 대상 369건 중 71건에서 피해가 확인돼 19.2%의 피해율을 기록했다.
이는 해당 조사 대상과 기간에 한정된 수치지만, 조사 대상 목조문화재 5건 중 약 1건에서 피해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예방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023년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피해 예방과 긴급보수의 필요성이 2026년에도 다시 정책 과제로 부각된 것은 조사와 방제 활동을 실제 피해 감소로 연결하는 데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 기온·습도 변화와 외래종 유입, 과학적 분석 필요
흰개미 피해 분포가 수도권과 강원권까지 확대된 배경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과 습도 조건의 변화, 건축물 주변의 서식환경, 외래종 유입 등이 거론된다.
한반도의 기온 상승과 강수·습도 환경 변화가 흰개미의 생존과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역별로 관측하고, 피해 분포와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다만 피해 지역이 넓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기후변화가 피해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국내 서식종의 분포 변화, 목재와 토양의 접촉 여부, 주변 수목과 그루터기, 건축물의 누수·배수·환기 상태 등 다양한 요인을 함께 조사해야 한다.
외래종 문제 역시 별도의 관리 대상이다. 국내 서식 흰개미와 외래 흰개미는 종류와 생태적 특성에 따라 피해 양상과 대응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종을 정확하게 동정하고 분포를 파악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방제방식을 적용하면 효과를 검증하기 어렵다.
흰개미는 목재 내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확인되는 흔적만으로 피해 정도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육안조사와 탐지견, 모니터링 장치 등 다양한 조사 방법을 활용하되, 탐지 결과와 실제 군체 활동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 표준 조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 미국, 건축물 예방부터 방제 이후 관리까지 연계
미국은 흰개미를 발견한 뒤 약제를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물의 구조적 취약성, 주변 환경, 전문 방제, 사후 점검을 연계해 관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사진 뉴올리언즈 보도에 묻은 흰개미 방지 장치, 보도에 작은 구멍을 뚫어 설치하는 지중 흰개미 모니터링·방제용 베이트 스테이션(Termite Bait Station)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흰개미 예방·관리를 위해 건축물 기초와 목재의 접촉을 줄이고, 기초부 틈새를 차단하며, 배수와 누수·환기 상태를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점검하도록 권고한다. 방제 방법으로는 토양 처리형 약제와 유인 살충제 등을 활용하는 방법이 제시된다.
약제 사용은 연방 차원의 등록·안전관리 체계와 주정부의 관련 규제를 받으며, 방제업체에 대한 면허와 자격 요건도 주별로 적용된다. EPA는 약제의 방제 효과뿐 아니라 사용 과정에서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위험을 줄이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룬다.
자료: 미국 환경보호청(EPA), ‘Termites: How to Identify and Control Them’
일본 역시 목조건축물의 방충·방의 처리기술과 건축물 유지관리 기준을 발전시켜 왔다. 관련 기술지침에서는 목조 건축물의 부식과 흰개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처리방법 등을 다룬다. 다만 일본의 모든 일반 주택에 흰개미 전용 의무점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건축물의 종류와 관련 제도에 따라 관리 범위가 다르다.
일본의 건축물 환경위생관리 기준도 특정 건축물을 대상으로 해충의 발생과 침입 경로를 조사하고 필요한 방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모든 주택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흰개미 관리제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해외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특정 약제나 방제기술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 조사와 예방, 방제, 효과 확인, 재발 감시를 하나의 관리과정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 국가유산 방제를 넘어 통합적 예방관리 체계로
국가유산청과 국립문화유산연구원도 목조문화유산의 생물 피해 조사와 모니터링, 방제기술 연구 등을 추진해 왔다. 앞으로는 이러한 조사·연구 성과를 실제 피해 감소와 장기적인 재발 방지로 연결하는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첫째, 전국 단위의 흰개미 분포·피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흰개미 종류와 피해 건축물, 발견 시기, 방제 방법, 후속 조사 결과 등을 표준화해 기록하고 지역별 위험도를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피해 발생 이후 대응하는 방식에서 위험지역을 사전에 파악하는 예방 중심 관리로 전환할 수 있다.
둘째, 방제 성과 판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방제약 설치, 약제 처리, 활동 감소, 군체 제거 확인, 재발 여부를 서로 다른 단계로 구분해야 한다. 일정 기간 추적조사를 실시하고, 판정이 불가능하거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례는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셋째, 긴급보수와 전문 방제인력을 연계해야 한다. 피해가 확인된 뒤 행정절차로 대응이 늦어지는 문제를 줄이고, 방제 결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전문인력과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문화유산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방제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전문기술과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
넷째, 문화유산 주변의 서식환경까지 관리해야 한다. 목재 잔재와 그루터기, 누수, 배수 불량 등 위험요인을 조사하고 주변 건축물로 피해가 확산할 가능성도 점검해야 한다. 다만 환경정비 과정에서 생태적 영향을 고려하고 불필요한 약제 사용을 줄이는 원칙도 함께 적용해야 한다.
다섯째, 문화유산에서 축적한 조사·모니터링 기술을 피해 우려가 높은 일반 목조건축물과 생활권 건축물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모든 건축물에 일률적인 의무점검을 부과하기보다는 지역별 위험도와 건축물의 특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 방제 실적이 아니라 피해 감소를 입증해야
2023년 국정감사에서 목조문화재의 높은 피해율과 긴급보수 필요성이 제기된 데 이어, 2026년에는 5대 궁궐과 종묘를 비롯한 주요 문화유산의 피해 실태와 방제 성과 검증 문제가 다시 국회에서 다뤄졌다.
흰개미 대응정책은 약제를 설치하고 사업을 완료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피해를 조기에 발견하고 군체 활동을 실질적으로 억제하거나 제거했는지 확인하며, 재발 여부를 추적하는 과정까지 방제사업의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건축물 예방, 전문 방제, 지속적인 점검은 서로 연결돼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문화유산 보존을 중심으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통합적인 예방관리 체계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보존의 성과는 방제사업의 완료 건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수백 년을 이어온 목조 건축물의 피해를 얼마나 줄였는지, 방제 이후에도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데 있다. 이제 흰개미 관리정책의 평가 기준도 단순한 방제 실적에서 실질적인 피해 감소와 재발 방지로 전환해야 한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서정원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