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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복을 받으려면
참고말씀: 민12:3; 시42:1,2; 51:10; 마11:29; 18:33,35; 눅6:20,23-25; 12:21; 18:13; 엡4:3; 골3:13; 딤후1:2; 2:21; 3:3,12; 약4:8
읽을말씀: 마5:1-12
주제말씀: 마5:1-3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첫째,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5:1,2)
우리는 다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복 받기를 원하고, 우리의 가정이 복 받기를 원하며, 우리의 자녀들이 복 받기를 원하며,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 받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복 받기를 원한다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복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막연하게 기다리기보다는 그 실체부터 파악하고 구할 때 재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소 막연하게 생각하고 또 막연하게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구하는 복들의 목록입니다. 주로 어떤 것들을 구하곤 합니까? 가족의 건강, 자녀의 형통, 물질문제의 해결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무엇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들, 그중에서도 특히 팔복(八福)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8가지로 알려주셨는데, 누가 이 같은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3절), 애통하는 자(4절), 온유한 자(5절),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6절), 긍휼히 여기는 자(7절), 마음이 청결한 자(8절), 화평하게 하는 자(9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10-12절)입니다.
그들이 받게 될 복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천국(3,10절), 위로(4절), 땅(5절), 배부름(6절), 긍휼히 여김 받음(7절), 하나님을 대면함(8절), 하나님의 자녀가 됨(9절), 하늘의 상급(12절)입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하나 같이 이 땅의 일시적, 물질적인 것들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천국, 곧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깊은 것들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절 하) /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10절 하) 즉 다 천국과 관련된 것들로써, 지금 여기에서 받게 되거나 천국에 가서 받게 될 복들인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12절 상)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들을 깨닫고, 그것들을 부지런히 구하고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지금 어떻습니까? 아직도 막연하게 복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팔복을 통해 제대로 깨닫고 구하기를 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을 알았으면 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하나님이 주시는 복들을 받으려면, 먼저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가난한 심령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절) 어째서입니까? 세상과 자기에 대하여 가난해질 때, 비로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
이는 마치 무엇을 연상하게 합니까? 그릇의 준비입니다. 즉 세상과 자기에 대하여 마음의 그릇을 비워두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딤후2:21 상) 이 빈 자리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들로 새롭게 채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한다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합니까? 가난한 심령, 곧 심령의 빈 그릇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그런데 많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것들로 이미 부요하고 배불러 있습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여 울리로다.”(눅6:23-25)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들이 들어설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한편, 가난한 심령이 준비 되었으면, 여기에 어떤 것들로 하나씩 채워나가야 합니까?
① 애통의 마음(영적인 애통)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절) 이는 물론 무엇이 아닙니까? 세상적인 애통함입니다. 오히려 무엇입니까? 영적인 애통으로써, 불의(不義)에 대한 애통이자, 자기 의에 대한 애통이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는 애통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애통함이 있습니까? 가슴을 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울부짖고 있느냔 말입니다.
② 온유한 마음 ↔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운 마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절) 이는 물론 무엇이 아닙니까? 우유부단(優柔不斷)입니다. 오히려 무엇입니까? 부드럽고 겸손하되 노하기를 더디 하고 절제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상) 참고로, 온유한 마음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운 마음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딤후3:3 중)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온유함이 있습니까?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되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묵묵히 참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느냔 말입니다.
③ 영적인 주림과 목마름(하나님과 그 의를 향한 갈망)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절) 이는 물론 무엇이 아닙니까? 육적인 주림과 목마름입니다. 오히려 무엇입니까? 영적인 주림과 목마름입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요 하나님의 의(뜻)을 이루고자 하는 갈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42:1,2)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영적 주림과 목마름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느냔 말입니다.
④ 긍휼의 마음 ↔ 무정한 마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절) 이는 물론 무엇이 아닙니까? 싸구려 동정심입니다. 오히려 무엇입니까? 주께서 우리를 용납하고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마18:33) 참고로, 긍휼의 마음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무정함입니다. “무정하며...”(딤후3:3 상)
물론 긍휼의 마음은 누가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까? 긍휼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후1:2 하)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긍휼의 마음이 있습니까? 싸구려 동정심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냔 말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마18:35 상)
⑤ 청결한 마음(정한 마음, 정직한 마음) ↔ 두 마음, 정직하지 못한 마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절) 이는 어떤 마음을 가리킵니까? 죄와 탐욕으로부터 성결케 된 마음이며,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 하) 하나님과 세상(우상)을 동시에 섬기려는 두 마음이 아닌 하나님께로 고정된 정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성결한 마음이 있습니까? 날마다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을 품고 있느냔 말입니다.
⑥ 화평의 마음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절) 이는 물론 무엇이 아닙니까? 무턱대고 ‘평안하다, 평안하다’하는 자기 최면이나 안일함입니다. 오히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평강의 줄로써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교회와 가정)을 힘써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화평의 마음이 있습니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들을 힘써 지키고 있느냔 말입니다.
⑦ 신앙적 고난도 감수하려는 마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10절) 이는 무엇을 각오하는 마음가짐입니까?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당연히 오는 신앙적인 박해나 저항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신앙적 박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욕함이나 박해, 모든 악한 말 등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1절) 그러나 신앙적 고난도 감수하는 마음을 지는 자는 무엇을 보면서 묵묵히 견뎌낼 수 있습니까? 하늘의 상급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2절)
우리에게는 이 같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어떠한 신앙적 고난도 감수하려는 마음이 있느냔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참된 복들이 무엇이고, 무엇을 통해 그것들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참된 복을 깨달았습니까?
알았으면 이것들을 부지런히 구하기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즉 심령의 빈 그릇을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영적인 주림과 목마름, 긍휼의 마음, 성결한 마음, 화평의 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적 고난도 감수하려는 마음까지 부지런히 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러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복들로 채워나갈 수 있음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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