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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천상적 삶인 동시에 천사적 삶을 추구합시다!
오늘 세 천사 축일입니다. 오늘 봉독되는 말씀과 전례에 따르면 천사는 하느님 곁에 머무는 존재, 하느님을 바라보는 존재,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존재,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존재입니다.
또한 천사는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 위에 오르내리는 존재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 지척에서 하느님을 모시는 존재, 하느님께 시중을 드는 존재, 하느님의 심부름꾼 같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천사는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영적 존재로서 그들이 하루 온종일, 사시사철, 수천년 동안 하는 일은 그저 하느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드리는 일입니다. 그 구체적인 표시로 끊임없이 하느님의 영광과 위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천사들에게는 오직 한분 하느님 뿐입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오직 하느님입니다. 그들의 최우선적 선택 역시 하느님입니다.
천사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만왕의 왕이시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만유 위에 가장 지존하시고 거룩하신 분,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천사처럼 살아가시는 분들이 분명 계십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기도 안에서 영적으로 사십니다. 매일 미사 빠지지 않으시고, 정기적인 고백성사에 충실합니다. 자주 피정이나 성지 순례를 다니십니다.
어떤 사람 보기에 팔자 좋구나, 하겠지만, 어떤 분에게는 무척 어울리는 삶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입니다.
물론 고된 직장 생활에다가 자녀 양육에 하루하루가 바쁜 젊은 세대들은 그렇게 살다가는 결과는 ‘폭망’입니다. 그러나 이제 연세도 드시고, 그간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들, 달릴 길을 다 달린 분들은 지상에 머물지만 천사를 닮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지상에서 원없이 누릴 것 다 누렸으니, 이제는 비록 이 땅위에 머물지만 항상 시선을 들어 천상을 그리워해야 할 것입니다. 자주 시선을 들어 하느님을 바라보며, 비록 노화와 병고로 인한 고통이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천상적 삶’인 동시에 ‘천사적 삶’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요한 1,47-51
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한다
오늘은 세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과 대화하시고 친교 맺으시면 되지 왜 천사를 만드셔서 중개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관계를 맺는 두 당사자 간의 거리는 멀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관계 당사자가 서로 가까워질수록 관계는 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는 믿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너무 가까워서 하나가 되어버리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실상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둘이 뭉쳐서 하나가 되면 독립성과 개별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존중이 사라집니다.
이게 사라지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소유하는 물건처럼 취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나의 ‘자유’가 구속당하면 그것으로 관계는 이미 소멸을 시작하게 됩니다.
남자를 자기 침대에 묶어 놓는 영화 ‘미저리’나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손과 발을 자르는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와 같은 것들은 공포가 따로 없습니다.
상대가 나를 떠날 수 없게 되면 이제 상대를 나와 함께 머물게 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간에 상대를 잡아놓기 위해 내어놓아야 하는 ‘피’, 곧 ‘희생’이 사라지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서로의 ‘피’입니다.
이것이 상대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이 ‘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과 머물게 하려고 당신 천사인 ‘그리스도’를 내어놓으시고 인간은 ‘선악과’를 봉헌합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당신과 머물게 하시려고 당신 살과 피와 같은 ‘교회’를 내어놓고 이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라는 천사를 통해 좋은 친교를 맺으십니다.
모든 관계가 이렇습니다.
중간에 피와 같은 천사가 오가지 않으면 관계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하늘과 땅처럼 실제 거리는 멉니다.
절대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때 하늘을 나타내는 아버지와 땅을 나타내는 아드님이 그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을 오가는 두 분의 피가 곧 천사들, ‘성령’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랑은 삼위일체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하느님을 닮지 못했습니다.
피를 흘릴 줄 모릅니다.
소유의 본성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남자와 여자는 사귈 때 피가 덜 담긴 매개체를 이용합니다.
영화나 책, 음악이나 취미 등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나서 함께 살다 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일본에서 흥행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도 두 남녀의 이런 관계를 잘 표현했습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해서 만난 두 연인은 함께 동거합니다.
하지만 3년이 되니 현실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막상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돈은 곧 나의 희생이자 피와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 로맨스를 꿈꿉니다.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까지 따서 들어간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러자 남자는 화가 납니다.
자신도 만화 그리는 것이 좋지만 함께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데 여자는 여전히 이전 즐거움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런 애매한 곳 들어갔다가 잘 안 되면 어쩌려고?”
여자는 자신의 취향을 짓밟는 남자에게 짜증을 내며 말합니다.
“그거야 그때 가서…. 맞는 말이야.
너는 업무에 책임감을 갖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생각 안 해. 일이니까.
거래처 분이 뒈지라며 욕하고 침을 뱉을 때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아. 업무니까.”
“그 거래처 사람 정상이 아니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못 느낄 거야.
그런 인간이 너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어쩌면 나도 이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 있어.
‘골든 카무이’도 7권에서 멈췄고 ‘보석의 나라’ 이야기는 기억도 안 나고 아직도 그런 걸 읽는 네가 부럽기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이 말합니다.
“읽으면 되잖아. 숨 좀 돌리면서 살아.”
남자도 짜증이 납니다.
“그게 안 돼. 머리에 안 들어와!
‘퍼즐 앤 드래곤’ 외엔 하고 싶지 않아……. 어쨌거나 직장 일도 생활을 하기 위한 거잖아.
전혀 힘들지 않아. 취미를 살리니 뭐니 하는 건 내 입장에선 인생을 얕보는 거로 들려.”
“좋아서 함께 지내는데 왜 그리 돈만 중시해?”
“오래 함께 있고 싶으니까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여자는 소리를 지릅니다.
“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긴 싫어. 즐겁게 살고 싶어.”
남자도 소리 지릅니다.
“그럼 결혼하자! 결혼하자고. 내가 열심히 돈 벌게. 넌 돈 벌지 말고 집에 있어.
집안일 안 해도 돼. 매일 좋아하는 일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 읖조립니다.
“그거 프로포즈야? 지금 프로포즈 한 거야? 생각했던 거랑 완전 다르네. 휴….”
남자도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없던 걸로 해….”
그렇게 둘은 4년의 동거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하지 못합니다.
남자는 함께 사는 것에 의를 두고 살려고 하지만 여자는 더는 아무 로맨스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함께 살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헤어지자고 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방을 구하는 3개월 동안 함께 사는데 이젠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니 친구처럼 다시 재밌게 사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상대를 구속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둘의 사이를 희생의 피로 메웠으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두 사람이 마음이 맞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아드님은 땅입니다.
서로 하늘과 땅처럼 멉니다.
이는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 전부를, 아드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성령을 아버지께 보내십니다.
이 오가는 천사와 같은 성령님이 둘의 공간을 메워줍니다.
이렇게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과 같은 사랑을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탄생하는 것이 그 자녀들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오가는 천사의 도움으로 시들지 않는 사랑을 하는 하느님 사랑을 닮은 자녀들입니다.
천사의 존재는 바로 이 삼위일체 사랑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합니다.
자유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 요한 1,47-51: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51절) 천사란 누구인가?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Angelus Dei)이자,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능력을 수행하는 영적 존재이다. 히브 1,14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라고 기록한다. 성경에서 천사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영적 존재이다. 이러한 묘사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표현이다.
1. 복음의 의미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하신 말씀은 단순히 개인적인 칭찬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구원의 신비를 드러낸다. 야곱이 베텔에서 꿈에 본 하늘 층계(창세 28,12)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그 층계의 ‘중심’은 바로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가 열리고, 천상과 지상의 거리가 사라진다.
2. 교부들의 묵상
성 아우구스티노는 천사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한다. “천사란 이름은 본성이 아니라, 사명에서 비롯된다. 본성으로는 영이요, 사명으로는 사자이다.”(Enarr. in Ps. 103,1,15) 즉, 천사는 그 자체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라는 점이 본질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 “천사란 하느님의 현존을 봉사하며, 인간을 섬김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Hom. in Evang. 34,8) 천사들은 단순히 하늘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인간의 삶 안에 실현시키는 도구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하늘과 땅을 잇는 그리스도의 사명 안에서 천사의 역할을 설명하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다. 천사들은 그분 안에서 내려오고 올라가며, 인간은 그분 안에서 하늘에 이른다.”(In Joannem hom. 21,2)라고 한다.
3. 교회의 가르침
교리서는 천사들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다. “천사들은 전 존재와 지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피조물의 구원 사업에 협력한다.”(329항) 그리고 특히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어린이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곁에는 수호천사가 동반한다.”(336항) 천사들의 존재는 단순한 신비한 이야기나 상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지키신다는 표지이다.
4. 세 대천사의 모범
성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이름 그대로, 교회의 수호자이며 영적 전쟁에서 악에 맞서는 용기의 상징이다.(묵시 12,7 참조) 성 가브리엘은 마리아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구원 신비의 시작을 알린 ‘복음의 첫 사자’로 ‘하느님의 권능’이라는 뜻이다.(루카 1,26-38) 성 라파엘은 토비야에게 동반자로 다가와 치유와 인도를 베푸신, ‘하느님의 치유’ 그 자체이다.(토빗 12,15 참조)
5.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 우리는 세 대천사를 기리며, 우리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자(Angelus)가 될 수 있는가를 묵상해야 한다. 미카엘처럼 악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수호하는 용기, 가브리엘처럼 희망과 복음을 전하는 기쁨의 메신저, 라파엘처럼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고 동행하는 친밀한 사랑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삶 속에서 천사와 같은 위로와 인도로 드러날 수 있다.
6. 삶의 적용
가정 안에서는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천사가 될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는 약한 이들을 보듬는 천사가 될 수 있다. 사회 안에서는 정의와 진리를 증언하는 천사가 될 수 있다. 천사들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연결고리가 되었듯이, 오늘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 이웃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때,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천사와 같은 사명을 사는 것이다.
7. 마침기도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여, 저희가 악을 물리치는 용기, 복음을 전하는 기쁨,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저희를 도와주소서. 저희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어느 책에서 미국의 글로벌 출판 미디어 기업 ‘포브스’가 선정한 대우 받지 못하는 직장 상사 유형 6가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포용력 없는 상사,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어하는 상사,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상사, 평판이 나쁜 상사, 자기중심적인 상사. 그렇다면 대망의 1위는 어떤 상사일까요? ‘베일에 싸인 상사’였습니다. 비밀 투성이의 상사, 그래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사는 불분명하고 비논리적인 지시만 내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서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런 리더는 정말로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르는 주님은 어떠실까요? 주님께서는 먼저 모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비밀보다 진실을 분명하게 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이런 삶이 훨씬 편합니다. 비밀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진실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편하게 다가오기에, 주변에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신 주님을 닮아, 우리 역시 비밀보다는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향해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라고 말씀하십니다. 편견 없이 메시아를 찾아온 참된 이스라엘의 표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라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아래는 율법을 묵상하고 메시아의 오심과 하느님 나라의 구원을 갈망하고 기도하던 경건한 공간을 상징합니다. 이런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인간의 시선을 넘어 영혼 깊은 곳의 갈망과 기도를 꿰뚫어 보시는 신적 권능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나엘은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50)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를 계속해서 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을 모시는 대천사를 기억하면서 주님을 찬미하는 날이 바로 오늘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성 미카엘은 하늘 문을 열고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영적 투쟁의 승리자이며, 성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음을 전 인류에게 선포한 메신저의 원형입니다. 성 라파엘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참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도록 신앙의 눈을 밝혀주십니다.
이런 대천사들이 주님을 모시면서 우리가 주님을 알 수 있도록, 찬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 역시 대천사의 모습처럼 세상이 주님을 알 수 있도록, 찬미의 삶을 살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거짓과 비밀보다는 진실한 삶을 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바람은 촛불 하나를 깨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불이 되어 바람이 맞이하라(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9.29.화.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하늘을 보여 주는
하느님의 세 빛,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세 대천사가 있습니다.
하늘의 대천사는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희망을 전하며,
상처 입은 이와 함께 걷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우리 삶에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게 됩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여 주며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역사 안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옳은 것을 선택하고,
사람을 살리는 말을 건네며,
힘든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을 혼자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수많은 만남과 도움과 은총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음을 깨닫습니다.
자아를 비우고,
말씀을 듣고,
하느님과 함께 걷는
깨어있음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더 커지는 데
삶의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진실한 겸손과 경청,
동행이 참된 존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또한 서로에게
대천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세상에 용기와 희망과 치유를
전하는 우리의 삶이길 기도드립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님 - 전주교구
『천사』
1) 히브리서 저자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라고 말합니다(히브 1,14). 천사는 하느님을 시중들고, 섬기고, 찬미하는 일을 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천사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인간들에게 파견되어서 인간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천사의 이름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뿐인데, 다른 천사들에게도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천사들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인간들처럼 천사들도 ‘피조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경배 대상이 아니고, 우리는 천사들을 존경하지만 섬기거나 경배하지는 않습니다.
묵시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천사가 또 이어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참된 말씀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경배하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마라. 나도 너와 같은 종이다.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너의 형제들과 같은 종일 따름이다. 하느님께 경배하여라. 예수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이다.’(묵시 19,9-10)”
바오로 사도는 천사를 숭배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즐기는 자는 아무도 여러분을 실격시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시에 빠진 나머지 현세적 생각으로 까닭 없이 우쭐거립니다(콜로 2,18).” 이 말은 사실상 천사 숭배를 ‘단죄’한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대천사 축일을 정해서 지내는 것은 천사 숭배가 아니라,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2) 천사들이 하는 일은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판관기에 있는 ‘기드온’의 이야기는, “천사가 나타난 일은 곧 하느님께서 나타나신 일이고, 천사의 말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말하였다(판관 6,12).”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판관 6,14)”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판관 6,22-23).”
기드온이 본 천사는 사실은 하느님이셨고, 천사가 한 말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3) 천사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사탄에 관해서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이 인간에게 나타날 때에는 천사로 위장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1,14). 사탄이 천사로 위장해서 나타날 때 우리는 겉모습만으로는 천사와 사탄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천사의 충고인지 사탄의 유혹인지 판단하고 구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식별 기준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교도권의 권한과 권위도 중요합니다(2코린 11,4).
4)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고, 언제나 항상 우리를 보살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을 하시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단 한 순간도 쉬시지 않고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시기 때문에 당신도 단 한 순간도 쉬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의(천사의) 도움과 보호를 받고 있는데, 그것을 체험하지 못하거나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힘은 ‘믿음’이고, 믿음이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천사의 존재를 믿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과 ‘같은 믿음’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이고, 그 사랑에 ‘삶으로’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건태 루카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오늘 우리는 교회가 제4차 라떼라노 공의회(1215년)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를 통하여 그 존재를 신앙교의, 곧 ‘믿을 교리’로 선포한 미카엘과 가브리엘과 라파엘 대천사를 기념합니다. 한편, 교회는 이 세 천사 이외에 다른 천사의 이름 언급은 금하고 있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피조물이라 하더라도, 천사가 인간과는 달리 영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다신론적 위험을 다분히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가 통상 ‘천사’로 번역하고 있는 용어는 히브리어(mal’ak) 또는 그리스어(angelos)로 ‘심부름꾼’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가 그 역할을 잘 설명하고 있듯이,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존재들”(1,14)입니다.
구약성경 후기 작품 또는 유다교는 고대근동, 그 가운데서도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의 영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들 세계관의 다신론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천사들에 관한 교의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야훼’만이 ‘유일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유일신 사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교 세계에서 빌려온 여러 상징을 이용하여 천사의 세계를 체계화시켜 나갔습니다. 이 천사의 세계에서 대표적인 천사 셋만이 자기들의 기능에 상응하는 고유한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다니 10,13.21; 12,1),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영웅’(다니 8,16; 9,21),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토빗 3,17; 12,15)라는 뜻으로서, 천사들의 고유한 이름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하느님의 속성과,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는 그분의 행업을 가리키는 이름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과 초대 그리스도교는 천사들의 세계에 관한 구약성경과 유다교 전통의 동일한 표현법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성부의 뜻에 따라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며, 끝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곧 그리스도께 종속된 세계로 정리됩니다. 콜로새서가 그 유명한 ‘그리스도 찬가’(1,15-20)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천사들은 그분에 의하여, 그분 안에서,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로 규정됩니다. 따라서 가브리엘 대천사가 즈카르야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루카 1,8-20; 1,26-38),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며(루카 2,8-14), 여인들에게 부활을 선포하고(마태 28,5-7; 마르 16,5-5; 루카 24,4-7; 요한 20,12-13), 사도들에게 승천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사도 1,10-11), 총지휘관인 미카엘 대천사를 중심으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탄과의 싸움을 지속한다는 가르침은(묵시 12,1-9)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미카엘과 가브리엘과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상의 세계는 천상의 세계와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음을 확인합니다. 천상에서는 천사들의 전례가 영원히 지속되고(묵시 4,8-11), 지상에서는 교회의 전례가 거기에 화답합니다(대영광송, 감사송, 거룩하시다 참조).
천사들의 중개와 지상 교회의 협조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 사업을 지속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오늘 하루 천사들을 지상 교회의 보호자로 파견해주심에 감사드리며, 주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다녀지도록 더욱 기도하며 힘쓰는 하루,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김경진 베드로 신부님 - 한마음청소년수련원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
나는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할까요?
주님께서 제 삶의 주관자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가 거듭 강조하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너무나 아름답고 의미있는 슬로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난한 이웃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 가운데 머물며
그들과 동고동락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무한한 자기 낮춤과 포기와 희생이 요구됩니다.
이런 저런 불편함과 피곤함,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과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와 함께
항상 그들과 함께하며 이웃이 되어줄 때
사제는 또 다른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현존이 될 것입니다.
하기 싫어 투덜대도
결국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해내는
깜찍이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 서울대교구
† 찬미예수님
오늘 교회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먹고, 일하고, 집과 자동차를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천사들이 우리를 돕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저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형제들의 세례명을 생일에 맞추어서 정해 주었습니다. 큰형은 9월에 태어나서 미카엘, 둘째 형은 12월에 태어나서 사도 요한, 여동생은 10월에 태어나서 프란체스카로 정해 주었습니다. 저는 5월에 태어났습니다. 생일에 맞춘다면 마티아로 정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저의 세례명을 ‘가브리엘’로 정해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저는 저의 세례명이 좋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였기 때문입니다. 사제인 저도 성사와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특별히 이름이 알려진 세 대천사가 있습니다.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입니다. 천사들의 이름에는 그들의 사명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미카엘이라는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입니다. 오늘 묵시록에서 미카엘은 천사들과 함께 악의 세력과 싸웁니다. 미카엘의 이름 자체가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고백을 들려줍니다.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 세상의 권력도, 재물도, 명예도 하느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식과 능력도 하느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내가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능력, 경험, 재산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미카엘 대천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 이 질문을 마음에 간직하면 우리는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라파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토빗기에서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야의 여행길에 동행합니다. 길을 안내하고, 위험에서 보호하며, 마침내 토빗의 눈을 치유하도록 도와줍니다. 라파엘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우리의 여정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치유가 반드시 육체의 치유만은 아닙니다. 상처 입은 마음도 치유되어야 합니다. 깨어진 관계도 치유되어야 합니다. 오래된 원망과 미움도 치유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실패와 좌절로 상처받은 영혼도 치유가 필요합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치유하십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은 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성모님께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 주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두렵고 힘든 순간이 찾아옵니다. 질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의지할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으며 우리의 기도는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우리를 보호하며 동행하는 이들이 천사들입니다.
오늘 세 대천사의 이름을 우리의 기도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미카엘처럼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고 고백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고, 라파엘처럼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라는 희망을 품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가브리엘처럼 “하느님은 나의 힘”임을 믿으며 두려움을 이겨 내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힘든 사람에게 용기를 주면 가브리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악과 불의에 맞서 선을 선택하면 미카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고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면 라파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 가브리엘, 성 미카엘, 성 라파엘 대천사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도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선을 지키며, 상처를 치유하는 하느님의 작은 천사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복음말씀
제1독서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7-51
그때에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