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4월17일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7,51─8,1ㄱ
복음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5
◈ [수도회] 인간적 사랑의 유효 기간
2018년 나해 4월17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요한 6,30-35
인간적 사랑의 유효 기간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많이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청취자들에게 요즘 가정의
절대권력자이신 엄마에 대해 아들 딸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문자를 받고 있었습니다. 질문이 흥미롭고 현실적이었던지, 그야말로
폭풍문자들이 쇄도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면 이렇습니다.
“식사 다 차려놓고 식구들에게 밥먹으러 오라할때, 재깍재깍 안오는
것.” “옛날의 촌스런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기껏 이름 바꿨는데,
누군가 옛날 엄마 이름 부르는 것.” “황금빛 내 인생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옆에서 아빠가 말거는 것.”
그리고 어떤 딸은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가
하는 모든 것, 말하는 것, 밥먹는 것, 숨쉬는 것 까지 모두 싫어해요.”
한 아들은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우리 엄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빠를 꼭 빼닮은 저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 사연을 들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싫은 사람과 왜
결혼했냐는 것입니다. 솔직히 불과 20년 전, 30년전 결혼할 때의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마도 둘 다 서로 죽고 못살았을 것입니다. 멋진 맨트도
스스럼없이 날렸을 것입니다. “그대는 내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대는
내 삶의 의미입니다. 그대가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그대가 내게
다가오자 내 삶의 환해졌습니다, 그대 존재가 내게 곧 구원이요
천국입니다!”
그런 꿈같던 시절에는, 그가 한 며칠, 해외 출장가서, 같은 하늘 아래
없는 날은, 삶의 활기도 사라지고, 아무런 재미도 없고, 가슴도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그가 옆에
있으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숨을 쉴수가 없습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미국의 한 전문가 집단에서 조사한 결과, 사랑에 유효 기간이 있는데,
대체로 그 기간은 30개월 정도랍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결혼 30개월 이후에는, 우리 각 가정 안에서 피나는 노력을 시작할
때인 것입니다. 순교자적 인내와, 목숨 건 기도와, 불굴의 신앙이
필요한 때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유효기간을 연장시켜나가는
데 아주 좋은 조건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시들해갈 무렵, 다른 사람들은 그 고통, 그 결핍을 채우지 못해
방황하고 괴로워할 무렵, 우리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보루이자 영원한
연인, 바로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해서, 특히 가까이 몸붙여 살아가는 존재들로부터 큰 환멸과
실망을 느낄 때, 그들로부터 염증을 느끼고 좌절을 느낄 때, 찾아갈
때 마다 불멸의 연인이신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칠 때 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우리는 주님께 다가가고, 그
주님 사랑 안에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내서 사랑의 유효기간을 더
연장시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한적이고 유한한 인간적 사랑의
유효 기간을 어떻게 해서든 연장시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성생활이요 기도생활인 것입니다.
오늘도 세파에 지치고, 인간에 지치고, 삶에 지친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복음 6장 35절)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고 계시는데, 우리가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 35)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17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 35)
절실한 목마름의 여정입니다.
목마름과 믿음은 함께 존재합니다.
광야도 하느님의 것이며 빵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은 하느님을 향할 때만
해소될 수 있는 영광의 목마름입니다.
하느님을 향하기 위해선 떠날 수 있어야합니다.
생명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향할 때 참된 생명이 됩니다.
광야의 시간은 주님을 알게되는 간절한 시간이 됩니다.
목마르고 허기진 광야에서도 만나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찾는 것이 아닌 믿는 만남으로 우리의 목마름은 해소됩니다.
모든 것이 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목마름처럼 절실한 것입니다.
절실하기에 소중한 것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영적 목마름으로 허기지면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4월17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요한 6,30-35)
영적 목마름으로 허기지면
일반적으로 세상의 것은 ‘이것, 저것 다 해봐도 결국은 싫증이 납니다.
물론 취미생활로 한 곳에 투신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신비롭고 깊어만 집니다.
그러니 세상 것에 매이지 마십시오. 세상 것은 결국 그의 혼을 유혹
할 뿐입니다.’천상 것에 마음을 두고 하느님만을 갈망해 보십시오.
자유를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조상들에게 만나를 내려준 분은 모세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만나를 내려주신 분 보다는 만나, 즉 빵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하자,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차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명의 빵이신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성녀 체칠리아는“영원을 살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에서의 몇 년은 잃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하고 말합니다. 현세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은 천상의 것을 바라며 영원한 것을 미리 준비하며
투신을 해야 하겠습니다. 농사 준비를 하더라도 가을의 풍요로운
수확을 위해서 봄부터 씨를 뿌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흘리는데 영생을
위해서 그만한 대가를 감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인간의 공로
이전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선물을 주십니다. 영생은 무상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선물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 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시고 여인이 그것을 거절 하자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하시고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했듯이 그리고 여인이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간청했듯이 우리도 영원의 빵을, 생명의 물을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영적 목마름으로 허기를 느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허기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빵이십니다. 과거에 한때 주신 빵이 아니라 지금 내려 주시는
빵입니다.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면
주님께서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잠언16,9). 그러므로 ‘우리의 앞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몸소 해 주실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에 오직 순명할 따름이요 자기의 주견과
고집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생명의 빵, 생명의 물을
희망하는 오늘을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핑프족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4월17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핑프족
오늘은 “핑프족”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 말씀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도서관을 찾아 정보를 찾기보다 온라인 검색창을 통해 쉽게
지식을 찾지요. 그런데 자신이 간단한 지식이나 정보조차도
스스로 찾기보다는 무작정 질문부터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핑프족’이라 말합니다. ‘핑프족’은 '핑거
프린세스(finger princess)' 또는 '핑거 프린스(finger prince)'를
줄인 말입니다. 스스로가 고민하거나 생각 없이 그냥 다른 사람의
지식을 빌려 얻기만 하는 습관이 만든 현상이라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 성도들 역시 자신이 성경을 찾아 하나님을
알아가려하거나 묵상하기보다는 쉽게 검증되지도 않은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거짓정보, 가짜정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는 것입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말씀을 간절히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귀하고
귀한 생명의 양식을 아무 노력도 없이 거저 받아먹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검증도 없이 쉽게 얻으려하지 마십시오. 보석을
캐듯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찾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수원]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17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
복음: 요한 6,30-35: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29절)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시자, 군중들은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30절)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모세의 이야기를 한다. 군중들은 모세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다가 백성들을 먹였다고 한다. 빵의 기적을 보았지만
그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기적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31절)고 한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구원자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면,
그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모세보다 더
위대한 기적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빵’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32절) 그 말씀을 듣자 그들은 “선생님,
그 빵을 저희에게 주십시오.”라고 한다. 그들은 아직도 그 빵을 우리가
먹는 빵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식욕을 채우려 그분께 달려간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시며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33절) 이 빵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을
행하셨다. 그리고 광야에서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분은 당신의
몸과 피를 그들에게 주시기 전에 그들의 입을 당신의 빵과 포도주에
익숙하게 하시려 하셨다. 그들에게 당신의 살아 있는 몸과 피를
충만히 누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썩어 없어질 빵과
포도주를 충분히 맛보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성체성사라고 하는
최고의 선물을 주시려고 작은 것들을 공짜로 주셨다. 빵과 포도주의
기적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시니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의 빵이시다. 그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33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있으면서 그분의 몸과 떨어지지 않기를
청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양식으로서의
빵을 청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확실히 배불리
먹이고 완전하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야말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신 참된 만나,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시다.(베들레헴: 빵의 집)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하느님의 빵, 곧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피, 곧 썩어
없어지지 않을 사랑을 음료로 마시기를 원합니다.”(로마 7) 이 빵은
그분의 신성을 가리킨다. 성찬례의 빵이 거기에 내리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빵이 되듯이 이 신성은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이다. 그래서 이 빵은 삶 전체를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어
놓을 빵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풍요로운 보물이시다. 그분의 빵이 풍요롭기 때문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배고픔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사도들에게 그 빵을 주셨고
(마태 15,36 참조), 오늘날에는 당신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분은 사제로서 매일 당신의 말씀으로 그것을 축성하시기 때문이다.
이 빵은 그래서 신자들의 양식이 되었다. 이 빵으로 참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도우심을 청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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