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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 출판된 계기-'도올 김용옥'에게 화두를 던져
여러분! 스님이 6,7년 전에 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 있잖아요.
이 책 표지에 연꽃 한 송이가 있지요. 연꽃 한 송이.
이 연꽃 한 송이가 현재 우리 영산불교를 상징하는 마크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연을 내가 지금까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제자들한테 전번에 간단하게 말씀드렸는데, 이 정도는 알아야 됩니다.
영산불교의 마크, 연꽃 한 송이. 이 사연이 있습니다. 이 정도는 알아야 돼.
이것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법문을 이어가겠습니다.
2547년도니까 한 8년 된 것 같습니다.
8년도 전에, 그러니까 서울에서 이제 우리 도반 '광명 만덕'님하고,
그분의 어머니하고, 나하고, 여기 영산스님하고, 네 사람이 이쪽으로 왔잖아요.
서울에서 수행하다가 이제 이쪽에 터를 잡아가지고 조그마한 가건물을
해체 복원해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려대학교에 이름 있는 철학교수가 한 분 있었는데 명성이 대단했어요.
이름이 '도올 김용옥'이라는 사람입니다.
'도올 김용옥'. 이분이 동양철학을 전공한 분입니다.
동양철학을 전공했는데,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야.
그래서 동서고금의 철학 ․ 종교를 두루 섭렵하고, 원광대학교에서 한의학을 공부하여
의학에도 해박하고, 또 교수로 재직 하고 있었습니다. 변재도 있고, 아는 것이 깊고 넓고,
그래서 대석학으로 인정을 받은 교수였습니다. '도올 김용옥'이지요.
이 분이 쓴 책에서나, 또 이 분이 가서 강의하다가 불교가 생각나면
불교를 마구 헐뜯는다 그거예요. 그때는 MBC(문화방송) 공개강좌가 있어서
몇 번 특강을 했다고 해요. 아! 그런데 그 수백만이 시청하는 그TV강좌에서
불교를, 불법승 삼보를 마구 헐뜯는다 그거예요. 그래가지고 신도들한테 전화도 왔습니다.
내가 그때 '현대불교신문' 한 가지를 봤어요. 현대불교신문 하나를 보고 있었는데,
기사가 난 것이 심상치 않더라고요. ‘이래도 되느냐’ 그거지. 이래도 되느냐?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그거예요.
그래서 그 당시 내가 아는 신도를 통해서 '도올 김용옥'씨가 쓴 책을 몇 권 구입해서
보내 달라고 했더니 2권을 보내 왔더라고요. 읽어보니까 그 책에도 불교를
형편없이 깔아뭉개 놓았어. 부처님을 갖다가 정말로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부처님을 그렇게 비방하고 능멸하면 안 되는 거예요.
'도올 김용옥'이가 부처님을 폄훼한 말을 내가 차마 옮기지 못 하겠어요.
그 당시 그의 글을 보고, 이건 좌시할 수 없더라고요. 좌시해서는 안 되겠더라고.
그런데 그 사람이 MBC특강 공개강좌에서 부처님을 빌어서 또 그런 말을 막 한다. 그거라. 불교의 중심사상인 윤회설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이건 뭐..., 방편이라고 해가지고,
윤회도 없고 영혼도 없고...,자기 주관대로 막 내뱉는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도저히 그냥 놔두면 안 되겠더라고.
그런데 그 누구도 그분을 갖다가 크게 호통을 칠 사람이 없다 그거예요.
호통 칠 사람이 아무도 없어. 거대한 종단에서도 가만히 보고만 있다 그거라.
내가 그 말을 들었단 말이에요. 듣고, ‘이거 안 되겠구나’생각했습니다.
자칭 변재요, 자칭 대석학이요, 우주의 보물인양 자기 입에서 자기를 그렇게 과찬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네요. 그 '도올 김용옥'이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아무리 봐도 본체인 공(空)을 뚫지도 못했어.
말하자면 견성도 못했단 말입니다. 화두타파도 못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더욱 가관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이 사람을 혼내줄까’하고 생각을 하다가
‘됐다! 내가 이런 화두를(공안을) 던져야 되겠다.’ 내가 물론 그 사람을 갖다가
한번 철퇴를 치는데, 물론 그 사람이 ‘변재이고 자칭 석학이기 때문에 응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내가 화두를 던진 거예요.
그때 부산에 있는 ‘대한불교’ 신문에다가 특별 기고를 냈습니다.
큰 신문 한 면 전체가 다뤄질 수 있도록 크고, 아주 쇼킹하게 특별 기고를 쓴 거예요.
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은 아주 얌전하고 부드럽게 쓴 것입니다.
이 책 속에도 그 내용이 있잖아요. 그때는 내가 ‘이걸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대단히 섬뜩하게 쓴 거예요. 그래서 ‘대한불교’ 신문사에 기고문을 보냈습니다.
그 ‘대한불교’ 역사가 한 10년이 넘고, 독자가 5만이라고 합니다.
대단한 불교신문 주간지였습니다. 내가 보낸 기고문이 ‘삼보전에 사죄하라.’는 내용이었지요.
보냈더니 그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어. 신문사측에서 ‘스님! 한번 뵙시다.’ 그러시더라고.
그쪽의 표현이 ‘원고를 받아 봤습니다. 그런데 간담이 서늘합니다.
이건 신문에 내야 되겠습니다. 이건 우리 사운을 걸고 내는데,
지금 조계종을 비롯해서 여러 종단이 다 벙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묵묵부답입디다.
묵묵부답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나와서 일갈(一喝)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거 이거 내야 되겠습니다.’ 하고 전화가 온 거예요.
그래서 전화로만 안 될 것 같아서 제자를 한 명 데리고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서
영업용 택시를 타고 갔더니, 그 편집 책임자하고 기자들이 나와 가지고 놀라더라고.
‘큰스님이 어떻게 영업용 택시를...,승용차도 한 대없습니까?’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 기자들을 앉혀놓고 내가 법문을 해주었어요.
'도올'의 그 학견에 대해서, 그의 불교에 대한 곡해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썼는데,
이건 이러한 의미다 하고 쭈~욱 설명을 해주니까 ‘좋~다!’는 거예요.
이건 '도올'이 아니라 '도올 할아버지'도 도저히 대답 못하겠다 그거라. 그게 뭐냐?
부처님께서 영축산 영산회상에서 많은 대중을 상대해서 법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법문이었데, 그것은 뭐냐? 거염화(擧拈花)라고 해.
거염화(擧拈花), 법상에 올라가셔서 말씀도 없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인 거예요.
말없는 법문이어요.
부처님께서 법문을 한다고 하면 어떤 줄 압니까?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여러분들, 어떤 줄 아세요? 1,200명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여러분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하늘사람(天人), 그 많은 성중,
성중이라면 색계 무색계의 성자들 성자의 반열에 올라간 사람들을 말하는데,
우리 같으면 여기에 소나무가 많잖아요.
내가 법문 할 때에는 이 소나무를 키우고 보살피는 요정들, 요정들이 수 백 명옵니다.
와서 듣습니다. 오늘도 많이 와서 듣거든요. 법문 듣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정토의 보살들, 그리고 부처님들,
구름같이 운집 해가지고 듣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법좌에서 부처님께서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단 말이에요. 거염화(擧拈花)했어.
그런데 그 꽃 한 송이가 ‘범천에서 바친 꽃이다. 극락세계에서 온 꽃이다.
사왕천에서 바치는 꽃이다.’라는 말이 경에 있습니다. 경마다 다릅니다.
범천에서는 금보라라는 꽃을 바쳤다고 했고, 또 사왕천에서는 수국화 라고도 하고
연꽃이라고도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나도 '도올'을 때릴 때 연꽃 한 송이로 화두를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천왕이, 혹은 범천이 부처님께 꽃 한 송이를 갖다 바쳤습니다.
그걸 딱 들고 청법 하는 대중들한테 보였단 말이에요. ‘이거 무슨 뜻이냐?’ 그 말이어.
무슨 도리냐? 아는 사람 맞혀봐라, 그 말이어요.
거염화(擧拈花). 손으로 들었다는 것을 거염(擧拈)이라고 해.
화(花), 꽃 한 송이를. 꽃 한 송이를 들어보였단 말이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 사람들이 바친 꽃은 보이잖아요.
그런데 저기 사천왕의 그 하늘, 저기 범천 하늘, 저기 극락정토에서
그 꽃을 갖다 바쳤는데 청법 대중이 보기나 하겠습니까?
꽃 한 송이가 엄연히 들려 있는데도 안 보이지.
그런데 그 꽃 한 송이를 보여준 이유가 있어요.
너희들이 도를 깨쳤다면 그 도리를 말해봐라 그거요.
여기서의 도는 지금 선방(禪房)에서 하는 도보다 한 단계 위입니다.
선방에서 하는 도는 본체인 공(空)을 깨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의 목표가 되어 있어. 마음자리, 마음자리 깨치는 것. 본래면목, 본성자리,
현상계를 낳은 본체, 선방에서는 이 이치를 깨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몰라요. 대답 못합니다.
눈이 뜨여서 그 차원을 넘은 상락아정의 니르바나세계를 볼 수 있어야 돼.
그 정도를 보게 되면 대답을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거기서도 한 단계 더 들어가야 됩니다.
한 단계 더 올라가면 뭐라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 상적광세계라고 했지요.
그 세계까지 뚫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그래야 법문할 자격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정도 가면 이제 대답합니다. 대답하는 것이거든. 사실 그 대답은 이 책 속에 있습니다.
뒤에 있지요. 가섭 이야기할 때 나오잖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말을 안 하는데,
가섭존자가 혼자 척~ 알아차렸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해.
전기의 플러스(+)하고 마이너스(-)가 딱 합쳐지면 통하잖아요. 상응한다고 그래요.
그렇듯이 네 마음과 내 마음이 통할 때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그래요.
말없이 통하는 거예요. 가섭존자가 빙그레 웃었어요. 파안미소(破顔微笑)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은 아시지. 12두타행으로 유명한 그 가섭존자만이
거염화(擧拈花)에 대해서 파안미소 했습니다. 이 일을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제1조가 됩니다. 부처님 법을 받은 거예요. 부처님께서 인정을 한 거예요.
그 공안을 내가 생각했어요. '도올' 이 사람 때려잡는 건 이것 밖에 없다 그거야.
이것 밖에 없구나. 그래가지고 도올! 내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시오.
만약 이 질문에 대답 못하면 당신...
알지도 못하고, 본체계의 소식도 모르는 주제에, 저 니르바나의 세계를 알지도 못하고,
유무를 초월한 저 절대계의 세계도 모르는 사람이...
내가 보니까 본체계도 뚫지 못한 사람이더라고. 그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그냥 알거든요.
그래서 ‘이 공안을 내어가지고 이 사람을 잡아야 되겠다.’ 생각을 해가지고
내가 '거염화(擧拈花) 화두'를 내어준 거예요. 여러분, 읽어 봤지요?
그 사람이 불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식적인 것인데,
그것도 겉만 완전히 표피적인 것만 알더라고.
지금은 좀 나아졌는지 그래야 나도 보람이 있지.
그런데 내가 진작 여러분한테 설명을 했어야 되는데, 여러분이 다 아는 줄 알고
그냥 덮어둔 지가 지금 한 8년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사 쪽에서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주 무섭게 썼거든요.
《법화경》〈비유품〉에 정법을 비방하면 극무간 지옥을 간다고 했어.
사람으로 혹 태어나더라도 삼중고를 받고나와. 또 구렁이가 되어서 나오고...
아주 그런 것으로 나와요. 당신 참회하라고. 불법을 능멸한 죄, 부처님을 헐뜯고 삼보를
비방한 죄, 이것은 죄업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죄야. 불효오역죄와 똑같은 죄야.
극무간 지옥에 떨어질 죄라. 그러니까 참회하시오.
강의했던 그 MBC 공개강좌 석상에 가서 참회하시오.
지금까지 안 하기 때문에 내가 이글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책이 10판 인쇄도 넘어갔거든요. 이글을 안 내렸지. 그렇게 나갔더니,
그 신문사에서 나한테 ‘스님! 전면 두면을 스님이 지상법문을 하도록 6개월이든지
1년이든지 드리겠습니다.’하고 제의가 왔어요. 그 신문을 펼치면 두면이 상당히 넓잖아요.
그때 나하고 약속하기를 ‘이것은 특별 기고란에다가 최대로 대서특필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한 5만부를 찍는데, 배로 찍겠습니다.
그래가지고 교도소, 군, 대학도서관 등에 막 뿌리렵니다.’라고 했어요.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도올'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도올'을 따르는 펜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 신문을 안 봤겠습니까? 또 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이
벌써 1쇄에 3,000권씩 나가는데, 10쇄도 넘어갔습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6개월 되었거든요. 그런데 안 봤겠습니까? '도올'자신도 봤지요.
대답을 못합니다. 못 하지.
‘너! 대답해라’그거예요. 2600년 전으로 돌아가서 영산회상의 일원으로 앉아 있다고
가정하자. 부처님께서 금바라화꽃, 연꽃 한 송이, 수국화 한 송이를 들고
“이 도리를 말해봐라” 하실 때, ‘너! 한번 말해봐라. 지금 너! 대답해봐라.
대답 못하면 너 책임져야 된다.’그거예요.
유무를 초월한 절대계, 상적광세계까지 뚫었으면 그건 업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되지만, 그리도 못했다면 상락아정 정도 뚫어 봐도 이건 대답합니다.
그 정도도 안 되면 화두타파 해가지고 공부를(보림을) 잘해도 어느 정도 대꾸를 한다고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정도가 아니거든.
그래서 7~8개월간 내가 양면에다가 글을 쭈~욱 낸 것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거기서 간추리고, 또 보완을 하고 해서《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이 나온 거예요. 그랬더니 BTN 불교방송국 회장이 나를 찾아 온 거예요.
나는 그때까지 그 스님을 몰랐어요. '석성우'라는 이름은 알았지.
그래서 한 달에 두 번씩 1년 동안 법문해 달라고 요청해왔어.
그래서 법문을 했던 것입니다. 했는데, 우린 염불이기 때문에, ‘염불이 정법’이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조계종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1300년 동안 한국의 스님들의 공부는 참선이었습니다.
화두선, 공안선(公案禪), 조사선(祖師禪) 공부를 했다 그거예요.
이게 더 이상 우리 신도들한테 이런 법문을 하게 되면 조계종이 큰일 났다 싶어서
무서운 압력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BTN법문을 스스로 중단한 거예요.
여러분! 아셨지요?
출처:2011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