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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문산(石門山, 282.5m), 아래 도로 갓길에 등산객들이 끝 간 데 없이 주차하였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그것은 한마디로 ‘그리움’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움은 사람을 충동질하여 그 양
태를 바꾸어 놓는다. 산이 바로 그렇다. 산은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눈짓을 보낸다. 그것은 이미
남이 아니다. 내 속에 일찍부터 있었던 것의 손짓이요 눈빛이다. (…)사람이 산을 쳐다보면 그것이 설령 멀리 갈맷
빛으로 아득해 보이더라도, 혹은 그것이 험준해 보여 감히 근접할 용기를 품게 해주지 않더라도, 공연히 그야말로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안에서 찾고 있었던 바 이것을
산이 품고 있다는 것일까.
―― 김장호(金長好),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1995)의 ‘산의 미학’에서
▶ 산행일시 : 2023년 4월 8일(토), 금요무박,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코스 : 오소재,주작능선,작천소령,덕룡능선,소석문,석문산,구름다리,수리바위,구름다리,석문공원
▶ 산행거리 : 도상 13.4km
▶ 산행시간 : 10시간 42분
▶ 교 통 편 : 대성산악회(27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0 : 00 - 복정역 1번 출구
04 : 50 - 오소재(烏巢-), 산행시작(05 : 20)
05 : 30 - 능선진입, 292.3m봉
05 : 54 - 405.0m봉
07 : 03 - △428.1m봉
07 : 32 - 412.3m봉
08 : 05 - 384.9m봉
08 : 15 - 작천소령(수양리재)
08 : 42 - 주작산(朱雀山, 477.7m)
09 : 05 - 436.9m봉
10 : 08 - 438.5m봉
10 : 35 - 덕룡산 서봉(432.8m)
10 : 55 - 덕룡산 동봉(420.0m)
11 : 15 - 355.3m봉
11 : 55 - 285.7m봉
12 : 25 - 소석문
12 : 50 - 석문산(石門山, 282.5m)
13 : 12 - 구름다리
13 : 25 - 수리바위 아래에서 점심( ~ 13 : 40)
14 : 02 - 구름다리, 석문공원, 산행종료
<부 록>
14 : 30 - 다산박물관 주차장
14 : 47 - 다산초당
15 : 11 - 백련사
15 : 20 - 백련사 주차장
15 : 27 - 다산박물관 주차장( ~ 16 : 26)
2-1. 주작산 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해남,완도 1/25,000)
2-2. 덕룡산, 석문산 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해남 1/25,000)
▶ 주작능선
작년에는 주작산을 4월 9일에 갔었다. 그때는 소석문에서 시작하여 덕룡산, 주작산 넘고, 오소재를 지나 아예
두륜산까지 갔었다. 그때는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그만큼 진달래를 보러온 등산객들이 많기도 했다. 봄이 작년보
다 이르기는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진달래가 있을 테고, 그 절정이 지났으니 등산객들도 덜 붐빌 것이다. 그때는
덕룡산을 어두워서 잘 살피지도 못했다. 오늘은 작년과 진행방향을 반대로 하니, 덕룡산을 잘 볼 수 있어 기대가
크다.
오늘은 오소재에서 시작하여 주작산과 덕룡산, 석문산, 만덕산을 넘고, 백련사를 거쳐 다산초당을 들르고 그 아래
다산박물관 주차장까지다. 산행거리 약 21km, 소요예정시간은 11시간이다. 오소재(烏巢-). 주작산의 큰 바위가
까마귀 집을 닮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나 등산객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오늘 이 오소재만큼
경향각지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드는 데가 또 있을 것 같지 않다. 너른 주차장에 산악회 대형버스와 승용차가
빼곡히 들어찼다.
우리는 어두울 때 산행을 시작하기보다는 경치를 즐기기 위해 최대한 늦추기로 한다. 일행 중 절반가량인 열두서
너 명이 종주에 나선다. 작년에 왔지만 캄캄한 밤이고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이라 방향감각이 무디다. 길 건너서
약간 지나면 왼쪽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고 한다. 다른 산악회 불빛이리라. 산속에 떼 지은 반딧불처럼 명멸한다.
그 뒤를 쫓는다. 대기가 차다. 바람까지 분다. 금방 손이 시리다. 핫팩을 가져오지 않은 게 불찰이다.
작년에는 어두울 때는 등로를 막힘없이 지났는데 오늘은 어두울 때부터 막힌다. 대부분 산악회에서 온 단체 등산
객들이라 길게 줄이어 간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이곳을 왔나 보다. 그들을 추월하기가 쉽지 않다.
추월하기 한두 번만이 아니다. 조금 가다보면 또 길게 만고강산 유람하는 줄이 이어진다. 가쁜 숨을 고를 새도 없
다. 10분 걸려 능선에 오르고, 바로 옆의 292.3m봉 용굴바위는 캄캄하여 볼 것이 없으므로 들르지 않는다.
당분간 하늘 가린 숲속 길이다. 군데군데 바윗길이 미끄럽기도 하다. 아마 살얼음이 낀 것 같다. 다시 10분 지나
362.6m봉을 넘는다. 오른쪽 남해는 붉은 긴 띠를 둘렀으니 일출이 06시 10분께로 아직 먼데 마음은 조급하다.
다도해인 남해에서 장려한 일출을 보기란 사실상 어렵다. 해가 섬들 그 산릉에서 솟기 마련이다. 굳이 암봉인
405.0m봉에서 서성이며 지켜보지 않아도 그러하다. 다만 아침 첫 햇살 받는 붉은 색조의 두륜산 연릉 연봉과
지나온 산릉이 가경이다.
날이 훤해지고 봉봉은 물론 암릉 길도 걸음걸음이 전후좌우 가경이다. 앞의 암릉은 어서 가서 오르고 싶고, 뒤의
암릉은 두고 가기 차마 아깝다. 왼쪽은 산 첩첩이고 오른쪽은 섬 첩첩이다. 진달래는 다 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기암괴석의 암릉미가 덜한지는 않다. 가는 등산객들을 얼추 따라잡았으나 오는 등산객들과 자주 마주친다. 이때
는 나 혼자 걸음이다. 서로 교대하여 오르내리자고 사정하여 지나기도 한다.
3. 일출 직전의 주작 능선 북쪽 이목리 주변
4. 일출 직후 남해
5. 아침 첫 햇살 받는 위봉(胃峰, 533m)
6. 주작능선, 멀리는 오른쪽부터 두륜산 노승봉, 가련봉, 위봉
7. 주작능선, 멀리는 두륜산 노승봉과 가련봉
8. 남해 아침
9. 주작능선 주봉인 △428.1m봉
혹자는 주작능선이 설악산 공룡능선 못지않게 힘들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주작능선은 삼각점 봉 1개와
표고점 봉 8개를 포함하여 26개 봉우리라고 한다. 능선길이는 공룡능선과 같은 4.5km이다. 지난겨울 나는 공룡
능선을 지나는 데 3시간이 걸렸다. 오늘 나는 주작능선이 막히기도 했지만 휴식 없이 줄달음하여 2시간 55분 걸
렸다. 난이도는 여기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고, 잔 봉우리가 워낙 많아 나중에는 지겹기까지 했다.
△428.1m봉. 주작능선 4.5km의 주봉으로 주작산 정상 노릇을 한다. 삼각점은 2등이다. 해남 25, 1990 복구. 이
암봉 자체도 아름답거니와 여기서 둘러보는 사방의 경치가 빼어나다. 이곳 안내판의 내용이다. “주작산은 이름에
서도 풍기듯이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듯한 형상을 지닌 산입니다. 봉황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지점이
최고봉으로 우측날개 부분은 해남 오소재로 이어지는 암릉이며 좌측날개는 작천소령 북쪽에서 덕룡산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입니다. (…)산행은 수양리재에서 시작, 임도를 이용하여 정상에 오를 수 있으며 승용차로도 진입
할 수 있습니다.”
주작산 정상은 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천소령에서 동쪽으로 1.9km 떨어진 429.5m봉을 말한다. 국토지리
정보원 지형도도 429.5m봉을 ‘주작산’이라 하고 있다. 주작은 한자로는 ‘붉은 참새’이지만 백호, 청룡, 현무 등과
더불어 사신(四神)의 하나로 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붉은 봉황을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수려한 주작능선이 예전에는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옛 문인들의 시구가 하나 찾지 못했다.
국토정보지리원 지형도에서도 오소재에서 작천소령에 이르는 암릉 길 4.5km에 명기된 산 이름은 없고, 김형수의
등산길 안내서인 『韓國400山行記』에서도 주작산은 보이지 않고, 예전 신문지상에 으레 소개하는 산행지에도 없
다. 산 전문지인 「월간 산」지에서 1997년 3월호에서야 개척산행으로 “다도해를 향해 비상하는 봉황”이란 제하에
‘까탈스런 10km 암릉과 억새능선의 조화’라는 부제로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10km 암릉은 덕룡산까지를 포함한다.
앞의 암봉이 눈으로는 가까워도 발로는 되게 멀다. 그 사이에 또한 오르기 만만치 않은 암봉이 숨어 있기 일쑤이
다. 안부마다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탈출로가 있다. 412.3m봉 내린 안부는 정자가 있는 진달래 평원이다. 작년에
는 참으로 화려했다. 이곳 ┫자 갈림길에서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왼쪽 길로 작천소령을 오간다. 나는 바로 앞의
험준한 암봉인 384.9m을 오를 수 없지만 그 동쪽 사면을 돌아가려고 직등한다.
잘난 등로는 주작산(429.5m)을 오가는 길이다. 일단의 등산객을 만나서 작천소령에서 오시느냐 물었더니 자기들
은 수양리에서 주작산을 올랐다가 작천소령으로 가는 길이라며, 도리어 나더러 작천소령 가는 길을 묻는다. 그렇
다면 그 길을 지나쳤다. 얼른 뒤돌아 오른쪽 흐릿한 소로를 찾는다. 384.9m봉 동쪽 사면을 길게 돌아 임도가 지나
는 작천소령이다.
10. 멀리 가운데는 월출산, 그 앞 오른쪽은 서기산(西基山, 511.3m)
11. 주작능선, 진달래는 졌다
15. 주작능선 384.9m봉. 등산객들이 줄이어 내려오고 있다
16. 주작능선, 멀리 가운데는 두륜산 가련봉
▶ 덕룡능선
작천소령. 그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없다. 한자 쓰임을 아는 이도 없다. 지금은 이곳 지명을 따서 ‘수양리재(水良
里-)’라고 한다. 곧장 덕룡산을 향한다. 등산 안내도에는 소석문까지 6.44km, 6시간 걸린다고 한다. 먼저 477.7m
봉까지 가파른 오르막 0.7km를 극복하고 나면 얼마간 수월한 등로가 이어진다. 열 걸음이 멀다 하고 등산객들과
마주치지만 암릉이 아니라서 서로 비켜서 간다. 오르다 숨차면 걸음 멈추고 뒤돌아 주작능선과 두륜산 연릉, 연봉
을 감상한다.
477.7m봉은 주작, 덕룡, 만덕산까지 이르는 21km 능선 길에 가장 높은 봉우리다. 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이지만
정상 표지석은 ‘朱雀山, 四七五m’라 하고 있다. 사방 훤히 트인 경점임을 물론이다. 비파산 너머로 월출산이 한층
가깝게 보이고 덕룡주릉은 발싸심하게 만든다. 완만한 내리막이다. 405.4m봉을 대깍 넘고 부드럽게 내렸다가
부드럽게 오른다. 436.9m봉도 경점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몰렸다. 소석문에서 산행하는 행렬은 더는 없겠지 한
내 생각은 잘못이었다.
소석문은 무박 산행하는 새벽 들머리로 잘못 알았다. 소석문은 오전 내내 들머리였다. 소석문에 갈 때까지 내가
역행하는 것처럼 많은 등산객들과 맞부딪쳐야 했다. 새벽에는 맑디맑던 날씨가 점점 미세먼지가 끼지 시작한다.
찬바람도 점점 세게 불어대지만 미세먼지를 쓸어내기는커녕 딴 데 미세먼지를 쓸어오는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한 번도 배낭을 벗어놓고 쉰 적이 없다. 등로 살짝 비킨 너럭바위 골라 쉰다. 샌드위치로 늦은 아침 요기한
다. 산행은 무게와 전쟁일뿐더러 암릉 험로라 아쉽기는 하지만 탁주는 가져오지 않았다.
436.1m봉이 덕룡산 관문이다. 직등하는 길은 없다. 왼쪽으로 길로 돌아 넘는다. 작년에 암봉과 어우러진 진달래
를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던 곳이다. 오늘은 한적하다. 깊은 협곡 지나고 438.5m봉이다. 등산로 안내판은
직등은 위험하니 왼쪽 우회로로 갈 것을 권한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올라갔다. 나도 직등한다. 직벽 오르막에는
층층 손잡이를 마련해 놓았다. 정상에 올라서면 바람이 더욱 세게 불어 자세를 한껏 낮춘다.
내리막에서 잠시 숨 고르고 덕룡산 서봉에 다가간다. 여기도 왼쪽 사면을 도는 우회로가 있다. 이정표에 암릉
직등 0.23km라고 한다. 반대편에서 서봉을 오른 등산객들이 암릉을 줄지어 내려오고 있다. 역행한다. 조금은
미안하다. 작년에 밤중에 내렸던 길이고 작년 봄에 보지 못했던 암릉 암봉이라 새롭기만 하다. 이랬었구나 하니
봉봉이 아깝고 걸음걸음이 알뜰하다. 덕룡산 서봉에서 동봉은 0.2km 남짓으로 가깝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오르면 동봉이다. 동봉을 지났어도 암릉 암봉은 계속 이어진다.
등산객들 또한 끊이지 않는다. 혼자 가는 산행이라 내 앞으로 우리 일행 몇 분이 갔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부지런히 걷는다. 285.7m봉을 넘으면 비로소 덕룡능선도 그 가빴던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수렴 걷으면 소석문 건너로 온통 기암괴석 투성이인 석문산이 찬란하다. 저기를 오른다니 김장호가 ‘산의 미학’에
서 얘기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울창한 숲을 지나 봉황천을 징검다리로 건너고 도로에 올라선다.
이정표가 석문산을 안내한다. 석문산 528m. 이제는 오가는 사람이 숫제 없다. 한 피치 오르면 얕은 계곡과 만나
고 바위 밑에서 호수가 연결되어 큰 물통에 물이 넘친다. 한 바가지 떠서 목 축인다. 기도처 막사가 있고 주변의
바위 위에는 아주 조그마한 불상들이 놓였다. 등로가 여기인가 막사를 지났더니 절벽이다. 얕은 계곡 왼쪽에 길이
났다. 가파르다. 석문산이 높이는 282.5m에 불과하지만 고도 250m를 올라야 한다.
17. 주작능선 지능선의 암봉
19. 주작능선
20. 주작산 주봉(429.5m), 작천소령(수양리재)에서 동쪽으로 1.9km 떨어져 있다
21. 또 다른 주작산(477.7m)에서 바라본 주작능선과 두륜산
22. 덕룡산과 만덕산, 멀리 가운데는 제암산(778m)
23. 멀리 가운데는 월출산, 그 앞 오른쪽은 서기산(西基山, 511.3m), 앞 오른쪽은 덕룡능선 436.9m봉
24. 덕룡산 연봉
▶ 석문산(石門山, 282.5m)
이제는 마주 오는 등산객들이 반갑다. 만덕산에서 온다는 그들에게 내 앞서간 일행들의 행방을 물었다. 1km도
더 떨어졌다고 한다. 그들과 만나고 나서 점심을 먹고 오는 중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내 걸음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 가파른 오르막 등로 주변에 내 발목을 붙잡을 야생화가 보이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른다. 혹여
노루귀나 큰괭이밥, 얼레지라도 있다면 그들과 눈 맞춤하느라 제대로 산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석문산. 정상에서는 이 산의 찬란한 기암괴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봄이 완연한 덕룡산 285.7m봉을 뒤돌아
둘러본다. 석문구름다리 830m. 외길이다. 이만하면 잘 났다. 평탄한 숲길을 한참 지나다 급격하게 떨어진다.
등로는 남파랑길로 이어지고 데크계단 올라 구름다리다. 길이 111m, 높이 23, 폭 1.5m, 동시 통과인원 30명. 양끝
에 투명강화유리를 조금 깔아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하였다. 현기증 나게 아찔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구름다리가 흔들리고, 나도 흔들린다. 난간 붙잡고 지난다. 맞은편에 중년부부가 놀러왔다.
내가 지나오는 것을 보더니 자기들도 건너가려고 한다. 여자가 앞장서고, 남자는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질겁하고,
구름다리가 흔들려 더 나아가지를 못한 채 여자를 애타게 부른다. 그만 돌아오라고. 여럿이 가면 겁나지 않을 텐
데, 둘이니 그럴 만도 하다. 석문산과 같은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긴다.
수리바위 턱밑이다. 바람 피해 바위벽에 기대어 점심자리 편다. 입맛이 쓰니 물에 말아 삼킨다. 휴대전화가 울린
다. 01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다. 그러면 받는다. 산행대장님 전화다. 내 위치를 묻는다. 구름다리 지나 291.3m
봉 수리바위 바로 아래라고 알려준다. 만덕산을 가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그만 가까운 석문공원으로 탈출하라고
강권한다. 강제탈출이다. 산행대장님은 전화로 일행 개개인의 현위치를 알아보고, 종주 가능여부를 심사하여
정해진 시간이내 종주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탈출할 것을 종용하고 있는 중이다.
내 앞을 지난 5명이 종주가능여부 심사에 합격하였다. 나는 불합격하였다. 구름다리 아래 석문공원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한다. 어쩌면 불감청고소원이다. 하여 내려가는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등로에서 40m 떨어진 노적봉
전망대에 들러 지나온 석문산 뒷모습을 다시 살핀다. 석문공원으로 탈출한 사람은 나 혼자다. 다른 일행은 소석문
에서 걸어서 다산박물관 주차장으로 가거나, 혹은 택시를 타거나 우리 버스가 픽업한다.
우리 일행 중 대단한 산꾼이 있다. 오소재에서 함께 출발하였는데, 그는 작천소령에서 동쪽으로 1.9km 떨어진
주작산을 들르고도 만덕산을 넘고 백련사를 거쳐 다산초당을 지나 다산박물관 주차장까지 여유 있게 도착하였
다. 그 5명 중에는 반원 님과 빛샘 님도 끼었다. 반원 님과 빛샘 님은 들머리를 달리하여 수양리에서 주작산을
넘어 만덕산까지 갔다. 그래도 혀를 내두를만한 장거가 아닐 수 없다.
앞의 대단한 산꾼 얘기를 좀 더 하련다. 키가 훤칠하고 용모도 준수한 젊은이다. 그는 1대간 9정맥을 마치고, 지맥
은 142개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한 달 4회 산행으로 반드시 산행거리 100km 이상을 걷는다고 한다. 1회 평균
25km다. 이러기 10년이 넘는다고 한다. 쉽기는 백두대간이고 어려운 산행은 지맥이라고 한다. 자투리가 어중간
하게(4~6km 정도) 남을 경우 기어코 마쳐야 하니 상당히 힘들더라고 한다. 내 이런 산꾼을 보기로는 오케이 사다
리 시절의 솔개 님 이후로 처음 본다.
26. 덕룡산 서봉 전위봉인 436.1m봉, 지도에 따라서는 여기를 덕룡산 주봉이라고 한다
27. 덕룡산 서봉 전위봉인 436.1m봉 주변
28. 덕룡산 서봉, 그 왼쪽 뒤는 만덕산, 그 뒤 멀리는 제암산
29. 덕룡산 서봉
30. 덕룡능선
32. 덕룡산 동봉에서 조망, 멀리 제암산과 그 앞에 만덕산, 석문산이 보인다
<부 록>
산행대장님은 나를 다산박물관 주차장에 내려주고, 약간의 시간을 주겠으니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올랐다가 백련
사 주차장에서 기다리면 데리러 오겠다고 한다. 전에 두 번 간 적이 있지만 또 간다. 거리는 2.3km정도다. 여러 단
체 순례자들이 오간다. 다산초당 가는 길이 몰라보게 변했다. 예전에는 정호승 시인이 읊은 ‘뿌리의 길’이었는데,
확장하고 평탄 작업하여 마사토 깔고, 야자매트도 깔고 신작로로 만들어버렸다. 정호승 시인의 아래 ‘뿌리의 길’
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
도리어 발걸음이 팍팍하다. 다산초당도 예전 모습이 아닌 것만 같다. 다산은 이곳에서 18년을 머무르며, 목민심
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다산의 이 유배 덕분(?)에 500
년 조선은 비로소 학문으로 체면을 차릴 수 있다고 하였다.
다산은 책을 집필하느라 하도 오랫동안 방바닥에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짓물렀다고 한다. 이 일을 정수일(鄭守
一, 1934~ ) 교수가 본받기도 했다. 아랍어와 문명교류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정수일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간첩활동으로 주간지 등에 게재된 글을 첩보라 하여 북한에 보냈다고 한다)로 12년을 선고 받고 5년간 복역한
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이 복역기간 중에 중세의 대여행가이며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1304~1368, 본명은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븐
압둘라 무함마드 븐 이브라힘 알 라와티’라고 한다)가 30년에 걸친 여행 중에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현지
견문록을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2001년, 창작과 비평사)로 완역하고 주석하였다. 두 권으로 총 1,075페이지에
달한다. 이 완역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 한다. 이 여행기를 완역하는 동안 정수일 교수도 교도소
방바닥에 오랫동안 앉아 엉덩이가 짓무르자 다산의 강진 유배생활을 생각하고 다산의 고초와 끈기를 본받아,
서서 창틀에 기대어 번역작업을 했다고 한다.
다산초당의 4칸 기둥에 각각 주련을 걸었다. 그중 마지막 주련 ‘晨齋就水聲’가 궁금했다. 그 출전과 뜻을 찾아보았
다. 당나라 법조(法照, ? ~ 772) 스님이 「신라로 귀국하는 무착선사에게 보내며(送無著禪師歸新羅國)」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산의 처지를 빗댄 것이 아닌가 한다.
萬里歸鄕路 고향으로 가는 길은 만리나 먼데
隨緣不算程 인연 따라가며 일정 아니 따지네
尋山百衲弊 산 찾느라 가사 백 벌 모두 헤졌고
過海一杯輕 바다를 건너가는 배는 가볍네
夜宿依雲色 구름에 기대어서 밤에 잠자고
晨齋就水聲 물소리 듣고 새벽 재계하리라
何年持貝葉 어느 해 패엽경을 몸에 지니고
却到漢家城 삼한 나라 성에 문득 도달하려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산길도 잘 다듬었다. 등로 주변과 백련사 절집 주변에는 동백나무 숲이 우거졌
다. 낙화도 꽃이 아니랴, 여기저기 떨어진 동백꽃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여 걷는다. 천년고찰인 백련사는 우선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웅보전, 시왕전, 나한전, 만경루 등의 당우에 주련 하나 달지 않았다. 단지 커다란
돌확의 음수대에 걸은 법구경이 눈에 들어온다.
병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며,
만족을 아는 이가 가장 넉넉한 사람이다.
『법구경(法句經)』 제15장 안락품(安樂品)에 나오는 말이다.
역자에 따라 해석이 약간씩 다르다. 다른 번역은 다음과 같다.
“건강은 가장 큰 이익이고, 만족은 가장 큰 재산이다. 믿고 의지함은 가장 좋은 친구이고, 열반은 가장 큰 즐거움
이다.(無病最利 知足最富 厚爲最友 泥洹最樂)”
백련사 주차장에서 버스에 올라 다산박물관 주차장으로 간다. 일행 모두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탁주와 두부김치
로 간단히 자축하는 뒤풀이를 갖는다. 서울 가는 길 졸린 망막에 주작능선에서 석문산에 이르는 암릉 암봉이 어른
거린다.
33. 덕룡능선
35. 석문산, 높이는 282.5m에 불과하지만 고도 250m를 올라야 한다.
36. 석문 구름다리 지나서 오를 291.3m봉
37. 석문 구름다리 주변
38. 석문산 뒤쪽(북쪽)
39. 다산초당
40. 백련사에서 바라본 강진만, 출렁다리가 가우도(駕牛島)를 잇는다.
첫댓글 아름다운 곳. 주말이면 모여드는 산객들로 시장을 방불케 하는 듯. 좋은 글 잘 봅니다.
5월 15일까지 경방기간이라 설악산 등 국립공원은 통제하기 떄문에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합니다.
주작 덕룡에 진달래는 졌어도, 기암기석 또한 석화이니 볼 것이 많습니다.^^
더 긴 거리에 인파에 밀리고도 소석문에 저희보다 1시간 뒤에 오셨네요.
무거운 카메라에 대단하십니다
만덕산 정상까진 4시간쯤 걸렸는데 아쉽습니다.
산행기 재밌게 읽고 갑니다
반가웠습니다.
빛샘 님과 함께 대단하신 역주이십니다.^^
주작-덕룡의 멋진 암릉군을 보고오셨네요...덕분에 모처럼 주작등의 아름다운 석화! 잘 구경했습니다^^
산이 낮지만 험합니다.
사람 구경도 볼만했습니다.^^
저두 가보려 했는데 올해는 깅쇠가 안되었네요
설악의 사나이가 그것도 등로주의자가 가시기에는 넘흐 싱겁겠지요.^^
산악회 대장님이 알쯜살뜰 하십니다. 그사이 진달래는 많이 졌네요. 남도의 삼삼한 풍경이 눈에 아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