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눈치채지 못했지만 기시다 후미오 전총리 퇴임직전 대만해협에 날린 '마지막 방귀' / 10/9(수) / 현대 비즈니스
◇ 신이시바 쇼크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재 탄생 후, 최초의 영업일이 된 9월 30일의 도쿄 증권거래소의 닛케이 평균주가가 전주말의 종가보다 1910엔 이상 하락해 3만 7919엔으로 거래를 끝냈다. 그것을 시장 관계자는 「이시바 쇼크」라고 불렀다.
아베노믹스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 '엔저·금리인하·주식고' 도래로 점찍은 시장 관계자들의 '김칫국'은 크게 빗나갔다.
하지만 이번 '신이시바 쇼크'는 전혀 양상이 다르다. 10월 6일 오후 0시59분 도쿄 나가타초 자민당 본부에 들어선 이시바 총리는 소집한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 선대위원장과 1시간 넘게 4층 총재 응접실에서 다른 사람을 가리지 않고 협의했다. 전날 밤에도 이시바, 모리야마, 고이즈미 씨는 역시 같은 곳에서 약 1시간 반 동안 협의하고 있다. 이날은 수상 최측근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동석했다.
협의 목적은, 정치 자금 파티를 둘러싼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불기재가 있던 의원의 중의원 선거(9일 해산·15일 공시·27일 투개표)의 대응(당공천의 시비)에 대해 새로운 방침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수상 취임 후 첫 보도 각사 내각 지지율 조사는 이시바 씨 주변이 기대한 만큼 높지 않았다(요미우리 신문 51%, 닛케이 신문 51%, 아사히 신문 46%, 교도 통신 50.7%. 각사 1~2일 실시). 공동 조사의 질문 「이시바 수상으로 교대한 것으로 자민당의 정치와 돈의 문제가 해결로 향한다고 생각합니까?」에 대해 「향한다고 생각한다」가 22.8%, 「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73.0%였다.
이시바 씨의 위기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당초 총리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비자금 문제를 공천비공천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기로 했으나 여론의 반발은 물론 당내에서도 논란이 일자 이시바·모리야마·고이즈미 구수회동에서 강경 자세로 돌아선 것이다.
◇ 이시바 총리의 더 큰 위기감
「이시바 쇼크 제2탄」의 직격을 받은 「뒷돈 의원」은, 자민당의 구아베파를 중심으로 정치 자금 규정법 위반 사건으로 당내 처분을 받은 중의원 의원 중, 처분이 무거웠던 의원등 일부를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비공인으로 한다.
동파 간부인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산업상, 타카기 츠요시 전 국회대책위원장, 하기우다 코이치 전 정조(政調)회장, 미츠바야시 히로미 중의원의원과 구 2계파의 히라사와 카츠에이 전 부흥상 등이 비공인. 그 밖에도 설명 책임을 충분히 다하지 않고 현지의 이해가 충분히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는 의원도 비공인으로 한다고, 이시바 수상은 3자 협의 후의 관저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언명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비공천 통보되는 현직 의원은 10명 정도로 알려졌다. 이 수가 많은지, 적은지 판단은 갈리는 부분이지만, 모리야마 집행부가 짊어질 리스크는 비공인으로 입후보·당선된 사람을 추가로 공천했을 경우의 세태의 평가다.
실은 자민당은 독자적인 정세 조사를 실시해(10월 5~6일), 차기 중의원 선거는 자민, 공명 양당 합쳐 과반수 233석을 겨우 웃도는 정도라는 중간 보고를 모리야마 간사장과 고이즈미 선대위원장에게 올리고 있었다. 이 또한 이시바 씨의 위기감을 더욱 강하게 한 것이다.
이 정세조사 결과는 고이즈미의 후견인인 스가 요시히데 부총재(전 총리)와 모리야마와 기맥을 통하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에게도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신구 킹메이커 모두 밟는 것이다.
필자가 이름 붙인 '키시바 내각'이 업계 내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쨌든 지금, 키시다 씨는 실로 열량이 높다. 미구의 정권에 머무르지 않고, 미디어에서도 키시다 수상시의 외교 안보 정책에 지극히 높은 평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방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9월 25일에 해상자위대 호위함 「사자나미」가 대만 해협을 통과한 것이다.
◇ 기시다 전 수상의 레거시
자위대 출범 70년 만에 처음으로 주전장 대만해협에 해상자위대 선박 파견 통과 출동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물론 군사적 위압을 거듭하는 중국에 대한 강한 견제다.
총재 선거 5일전의 21일 오후(미 동부 시간), 미 델라웨어주 체재 중인 키시다 수상이 수행한 아키바 타케오 국가안전보장국장 등과 최종 협의 후에 비밀 장치 부착 전화로 키하라 미노루 방위상에게 출동을 명령했다. 이어 28일 '사자나미'는 남중국해에서 열린 미-일-호주-NZ 5개국 해군 연합훈련에 참가했다.
미일호인 4자 체제(Quad)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제창자이지만, 미일한과 미일비의 3자 안보 체제는 기시다 전 총리의 레거시(정치 유산)이다. 열량의 원천은 여기인 것이다.
총재 퇴임 후 실의에 잠길 틈도 없이 높은 열량을 유지하는 기시다 전 총리의 동향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읽고 싶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쌓은 아성을 무너뜨리다…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가 행한 '생각보다 제대로 된 각료와 당 인사'를 해설하자]
토시카와 다카오(언론인 인사이드라인 편집장)
https://news.yahoo.co.jp/articles/f37b2fec5ccf93a678b6e85a6cbd25f2e1d5b9ea?page=1
ほとんどの人が気づいていないけれど…岸田文雄前総理が退任直前、台湾海峡に放った「最後っ屁」
10/9(水) 8:04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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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ビジネス
シン・石破ショッ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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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民党の石破茂新総裁誕生後、最初の営業日となった9月30日の東京証券取引所の日経平均株価が前週末の終値より1910円超下落して3万7919円で取引を終えた。それを市場関係者は「石破ショック」と呼んだ。
【一覧】「いきなり総選挙」完全当落予測(東京・南関東編)
アベノミクスの継承者を自任する高市早苗前経済安全保障相が決戦投票で勝利すれば「円安・金利下げ・株高」到来と目論んだ市場関係者の「捕らぬ狸の皮算用」は大外れとなった。
だが、今回の「シン・石破ショック」は全く様相が違う。10月6日午後0時59分、東京・永田町の自民党本部に入った石破首相は招集した森山裕幹事長、小泉進次郎選対委員長と1時間超、4階の総裁応接室で余人を交えず協議した。前日夜も石破、森山、小泉氏はやはり同所で約1時間半協議している。この日は首相最側近の赤澤亮正経済再生相が同席した。
協議目的は、政治資金パーティーを巡る政治資金収支報告書に不記載があった議員の衆院選(9日解散・15日公示・27日投開票)の対応(党公認の是非)について新たな方針を打ち出すためだった。
首相就任後初の報道各社内閣支持率調査は石破氏周辺が期待したほど高くなかった(読売新聞51%、日経新聞51%、朝日新聞46%、共同通信50.7%。各社1~2日実施)。共同調査の質問「石破首相に交代したことで自民党の政治とカネの問題が解決に向かうと思いますか?」に対し「向かうと思う」が22.8%、「向かうと思わない」は73.0%だった。
石破氏の危機感は半端ないものとなった。当初、首相を含め党執行部は裏金問題を公認・非公認の判断基準にしない方針で一致をみていたが、世論の反発だけではなく党内からも異論が噴出したため、石破・森山・小泉鳩首会合で強硬姿勢に転じたのだ。
石破総理のさらなる危機感
「石破ショック第2弾」の直撃を受けた「裏金議員」は、自民党の旧安倍派を中心に政治資金規正法違反事件で党内処分を受けた衆院議員のうち、処分の重かった議員ら一部を次期衆院選で非公認とする。
同派幹部の下村博文元文部科学相、西村康稔元経産相、高木毅元国対委員長、萩生田光一元政調会長、三ッ林裕巳衆院議員と旧二階派の平沢勝栄元復興相らが非公認。他にも説明責任を十分に果たさず地元の理解が十分に進んでいないと判断される議員も非公認にすると、石破首相は3者協議後の官邸記者団とのインタビューで言明している。
最終的に非公認通告される現職議員は10人ぐらいとされる。この数が多いのか、少ないのか判断は分かれるところだが、森山執行部が背負うリスクは非公認で立候補・当選した者を追加公認した場合の世上の評価である。
実は自民党は独自の情勢調査を行い(10月5~6日)、次期衆院選は自民、公明両党合わせて過半数233議席をギリギリ上回る程度との中間報告を森山幹事長と小泉選対委員長に上げていた。これまた石破氏の危機感をより強めたのである。
この情勢調査の結果は、小泉氏の後見人である菅義偉副総裁(元首相)と森山氏と気脈を通じる岸田文雄前首相にもほぼリアルタイムで伝えられた。新旧キングメーカー揃い踏みなのだ。
筆者が名付けた「岸石破(キシーバ)内閣」が業界内で流通しているという。それはともかく今、岸田氏は実に熱量が高い。米欧の政権に留まらず、メディアでも岸田首相時の外交安保政策に極めて高い評価を与えているからだ。
その最後っ屁と言えるのが、9月25日に海上自衛隊護衛艦「さざなみ」が台湾海峡を通過したことである。
岸田前首相のレガシー
自衛隊発足70年にして初めて、主戦場・台湾海峡に海自船舶派遣・通過の出動命令が発出されたのだ。もちろん、軍事的な威圧を繰り返す中国への強い牽制である。
総裁選5日前の21日午後(米東部時間)、米デラウェア州滞在中の岸田首相が随行した秋葉剛男国家安全保障局長らと最終協議後に保秘装置付き電話で木原稔防衛相に出動を命じた。その後の28日、「さざなみ」は南シナ海で行われた日米豪比NZ5ヵ国海軍合同演習に参加した。
日米豪印4ヵ国枠組み(Quad)は安倍晋三元首相が提唱者だが、日米韓と日米比の3ヵ国安保枠組みは岸田前首相のレガシー(政治遺産)である。熱量の源はここなのだ。
総裁退任後、失意に沈むひまもなく高い熱量を保ちつづける岸田前首相の動向に注目が集ま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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歳川 隆雄(ジャーナリスト・「インサイドライン」編集長)